계란이 한 판이라구?
사람들은 흔히 30이란 나이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하긴, 나이를 앞에서 따지자면 여태까지 30이란 나이를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많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결혼이라도 하면 그나마 좋을텐데, 남들 은 쉽게도 하는 결혼을 나는 아직 못했다. 그렇다고 살면서 혼줄 빠지는 진한 연애를 해 본 것도 아니다. 모아 논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피부조차도 예전 같지 않아 칙칙하고 푸석푸석 하다. 거기다 바야흐로 나잇살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시쳇말로 꺾어진 60세라고 하지 않던가? 이래저래 젊은 날을 생각하면 정말 한물간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게 30이란 나이다. 오죽했으면 계란 한 판이라고 했을까?
30세, 그 나이도 젊더라!
사실 나이가 들면 책 고르기가 점점 더 신중해진다. 어떤 책은 딱 그 나이가 느껴지는 책이 있다. 말하자면 저자의 나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저자는 나이가 어림에도 사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책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워낙에 출판 환경이 좋아져일까? 대부분은 딱 그만큼의 사유와 언어구사만을 보여주는 저자들이 있다.
<괜찮나요, 당신?>은 30대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루어 가는가를 이야기로 풀어간 처세에 관한 책이다. 이런 책은 그전에도 많이 나왔고, 현재 이책은 공전의 히트를 쳐서 일약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실제로 읽어보면 나름 그렇구나 하며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없지 않다. 특히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하고 너무나 흡사해 놀랍기도 하고 찔리는 느낌도 받았다. 주인공이 단 것을 좋아하고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을 빼면, 처지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이 과연 어떤 식으로 꿈을 이루어가는가를 보고 싶었다. 이야기는 나름 예쁘게 포장되어서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꿈과 점점 멀어지고 세월에 내 인생을 저당잡혀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할 때가 있다. 아마 그래서도 나는 그 쓸쓸한 연말에 그 책을 붙들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시작해 보는 거야. 그런 응원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그대, 아직도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는가?
사실 책은 그저 그랬다. 30 이전이거나 딱 30의 기로에 선 독자가 읽었다면 나름 좋았을런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30을 한참 전에 보내버린 내가 읽기엔 뭔가 모르게 뻔한 것이 보여 김이 빠졌다고나 할까? 특히 이 책은 주인공이 원하던 작가의 꿈도 이루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도 하게 된다는 동화적 도식을 담고 있어서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다. 요즘의 동화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동화를 그다지 안 좋아한다. 특히 공주와 왕자가 만나서 사랑을 이루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든 백설공주식의 또는 신데렐라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랑을 이루기만했지 그 이후 그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둘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과연 그렇게 결혼해서 정말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단지 이런 건 짐작해 볼 수 있다. 성공하면 결혼도 잘하는가 보다 하는. 과연 그럴까? 물론 성공하면 좋은 결혼에로의 보장은 있는 것 같다. 이 책도 은연중 그런 것들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과정은 생략한 채 무조건 성공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난 그것도 정말 사랑일까? 의심해 본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조건 대 조건의 결합은 다른 모양은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사랑은 그 사람이 성공을 했건 하지 않았건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면 그대 아직도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냐고 딴지 걸어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설혹 그렇게 신데렐라가 되면 그 다음은 어쩔건데?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는 그런다. 꿈만 꾸면 뭐하냐고. 꿈만 꾸지 말고 뭔가를 이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그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꿈은 뭐냐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만이 꿈을 꿀 수 있다. 동물이 꿈을 꾸는 것을 보았는가?
이야기에 딴지걸다
작년 말, 나는 이지성 작가의 강연회를 다녀왔다. 그의 최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의 인생스토리를 듣는 것도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집안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나고, 자신은 성남의 화장실이 안채와 분리되어 있는 어느 한 평반짜리 방을 얻어 살게 되었을 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처음엔 막막했다고 한다. 아버지 대신 갚아야할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너무 막연했다. 그때 그는 자기계발서를 붙들었고, 거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세상을 살게되길 원치 않아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해 일련의 책들을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렸고, 그래서 받은 인세로 일시에 빚을 다 갚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은 꼭 기쁘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허탈함이 밀려오더라는 것이다. (마치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그것에서 호전을 보일 때 더 많은 자살을 시도하는 것과 같은 거였으리라.)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왜 성공하고 자살을 하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거기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는 몇 가지의 꿈을 꾼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뭔가를 이루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 오히려 허탈해진다. 그리고 난 이런 이야기가 더 사실적으로 와 닿고 공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앞의 책이 딱 그만큼의 나이가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도그럴 것이 내가 알기론 이지성 작가는 30이 훨씬 넘은 걸로 알고 있다(차라리 40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지). 확실히 인생의 내공이 달라서 30 넘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다. 이렇게 나는 딴지걸어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성공해서 사랑을 이룰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이루지 못했다면 꿈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성공하면 사랑도 더불어 이룰 것이라는 도식적인 이야기는 그만 안녕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은 꼭 30안에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30 이후에도 올 수 있고, 50,60에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나이와 상관없이 열어놓은 마음에 오는 것이겠지. 이렇게 스토리텔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수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