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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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이나 경제 이론을 보면, 덜 똑똑한 사람은 자기 몸을 써서 일을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분담 내지는 위임하므로 자신은 관리만 한다는 그런 얘기가 있다. 또, 20%는 관리를 하고, 80%는 노동을 한다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그럴 듯하고, 합리적여 보이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경영이나 경제 이론은 거의 대부분 승자독식의,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층의 논리로 무장된 것들이 더 많지 않은가? 즉, 우파적 지식들.  세상엔 저렇게 많은 전태일이 살기위해 버둥거리고 있는데 그런거 보면 참 신선놀음 같다. 과연 전태일의 후예를 위한 이론은 없는 것인가?  

이 책은 특이하게도 네 개의 출판사(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 영희)와 손아람외 5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오늘 날의 노동 현실에 대해서 쓴 책이다. 먼저, 손아람은 오늘을 살고 있는 전태일의 후예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물론 책에선 공식적으로 후예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디의 전태일. 하며 마치 40년 전 죽은 전태일이 살아돌아 온 양 친근감(?) 있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전태일의 후예가 더 맞는 것 같다. 전태일이라면 왠지 복제된 것 같고, 왠지 그들도 어느 노동판에서 분신해야 하는 불길한 운명을 답습하게 될 것만 같아서 말이지.). 그가 만난 전태일의 후예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 흔하다(?)는 sky대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류는 아니어도 2류나 3류 기업체를 다니는 회사원도 아니다. 다 아르바이트 아니면 비고용 근로자이다. 그 중 소규모 기업체의 사장님 한 분이 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늘 날의 노동 현실에 대해 이론이 아닌 피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 특히,  손아람이 만난 4사람은 피고용인으로서 고용인과 고용 현실에 대해서 말했다면, 유일하게 그 사장님은 고용인으로서 본, 피고용인의 근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점이 유독 눈에 띈다.  말하자면 같은 가족 문제를 봐도 시어머니가 보는 입장이 다르고, 며느리가 보는 입장이 다르다. 그런데 제3자가 볼 때 그 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감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어야 할지, 동시에 난감하다.  손아람이 만났던 유일한 고용주였던 인천의 전태일의 말을 인용해 보면 20대 사람이 다르고, 30대, 40대의 사람이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노동'이란 건 인간의 생애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개혁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노동은 사회와 밀접히 관련이 있다. 노동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옛날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시대만 같겠는가? 과연 인간답게 살 권리 때문에 분신할 사람이 또 나오겠는가? 그래도 노동의 문제는 더 첨예해진 것도 같다. 예전엔 절대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해야 했지만, 오늘 날은 노동이 얼마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가에 대한 이해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도 해마다 11월이 되면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노동은 단순히 먹고 살기위한 것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싸웠으니까. 하지만 노동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 또는 노사의 이해 관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화 제도와도 맞물려 있는 것이다. 알겠지만, 사회란 힘있는 자가 지배하게끔 되어있다. 그들에 의해 지배되고 관리되는 비합리적 모순 때문에 노동의 문제는 항상 비등점을 향해 끊고 있는 99도다. 언제 중산층에서 하류 계급이 될지 모르며, 고용인에서 피고용이 될지 모른다. 특히 이런 것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고유의 정서가 부합이 되면서 이 '노동'이란 말이 얼마나 사람의 의식을 후벼놓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책의 말미에 가면 '노동'의 정의에 대해 콕콕 집어주고 있는데, 그건 확실히 그것을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 줘서 좋다. '노동'이란 말은 다른 말로 '근로'란 말로도 쓰이고 있는데, 이를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얼마나 핏대를 세웠는지 알게되면 놀랍다(뭐 그 정도 가지고 정색을!) 노동이나 근로나 도찐개찐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이 원래 노동이란 게 없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어있어, 양반은 배를 곯아 죽을지언정 일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시해 온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은,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고 김용기 장로는 게으름은 죄라고 생각해 누워있는 돌 조차도 바로 세워 놓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어디 가서 양반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하다못해, 고용인, 관리인들도 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을 처음 시작한 저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옳은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는 노동이 노동으로 정당하게 취급 받지 못하고 그것이 사람을 보고, 점수 매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스펙'의 문제로.  

이 책이 좀 아쉬운 건, 너무 젊은 사람의 목소리로 편향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글쎄, 우리나라에서 '근로'가  필요한 세대가 꼭 젊은 사람만인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늙었다는 것 외엔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할 일이 없는 노년은? 잉여 취급 받는 여성이나 장애자는? 그들도 일하고 싶어한다. 그런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젊은 사람에게만 고정해서 오늘 날의 노동 현실을 말하게 한건 좀 아쉽다. 오히려 나이 먹은 사람이 들으면 그냥 젊은 사람의 볼멘 소리 같다.  오늘 날의 젊은이들은 옛날에 비해 얼마나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는가? 그래도 말 하나는 야물딱지게 한다. '너 아니면 일할 사람은 많다'라는 말대신 '여기가 아니어도 일 할 곳은 많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135p)  맞는 말이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 말에 허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자기에게 맞는 곳에서 일하지 않고, 무조건 남이 보기에 좋은데로만 자꾸 가려고 하면 어쩔건데? 오늘의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저 말이 진실이란 걸 증명해 보이려면 스스로가 '스펙'의 거미줄에 자신을 옭아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노동이 보다 대우 받으려면 1등에서 꼴등까지 사람을 줄 세우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세상에 영어 잘하는 사람이 글로벌 인재라고 누가 속단하랴? 사람 마다 자기 잘하는 게 따로 있는데 그 하나 하나에 대해 인정 받을 수 없다면 그러고도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는가? 알겠지만, 유럽의 선진국들은 어린 나이에 사람의 적성을 고려해서 기술자로, 학자로, 운동선수로 일찌감치 길을 열어준다는데, 신성한 학문을 스펙과 신변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 졸업장 도용하고, 학벌 변조하고 난리 브루스가 아닌가? 이런 나라에서 노동이 신성해지는 건 아직 좀 먼 것 같다. 무엇보다 주부의 가사 노동과 장애인의 복지는 정말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도 전태일인가? 일하는 전태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전태일. 우리가 인간으로 한국땅에 살고 있는한 이 질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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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전태일 기일을 맞아,전태일 여동생 분이 나와 인터뷰 하는 걸 들었어요.
어디 외국에 나가 아주 공부도 많이 하고 들어왔는데,다시 동대문 시장으로 돌아왔대요.
수다공방이었나?뭐,그런 걸 운영하고 계신다죠~
그렇게 전태일을 이어가고 있는 동생분을 보면서,
혹...태생이나 유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별로 안 웃기는 조크였어요~^^)

stella.K 2010-11-17 10:58   좋아요 0 | URL
대단하군요. 아마도 오빠를 잊지 못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네요.
짠하네요.

2010-11-16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1-1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가장 아쉬운 것은,
왜 우리나라에서의 일이란 모 아니면 도 냐는 거예요.
all or nothing. 몸바쳐 하든지 아예 하지 말든지.
주부들에게는 힘든 말이죠. 그리고, 요즘 또 깜짝 놀란게..
엄청난 시급의 차이랄까요. 상위 계층의 월급과, 중하위 계층(예로, 보육 교사)의
월급 차이가 그리 큰 줄 몰랐습니다.

stella.K 2010-11-17 13: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린 좀 세상을 넓게 볼 필요가 있는데 그게 왜
안되는 걸까요?
어떤 식으로든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빈부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되요.ㅠ

도란도란 2010-11-1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스텔라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스텔라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cyrus 2010-11-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규직, 노동과 관련된 주제의 책이 관심이 가는데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읽고 싶은 이유가 출판사를 평소에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요. 스텔라님도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지인으로부터 알게된 사실인데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지원해주는 책 카페가 서울 어딘가에(?)문열었다는구요.
사실 제가 대구 출신이라 서울 어느 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색창에 '후마니타스 책다방' 이라 검색하시면 책 다방 온라인 카페가 나올겁니다.
그 곳에서 책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독서 토론 모임 장소로도
제격이고요. 저도 언젠가 서울에 상경하면 한 번 들리고 싶은 1순위 장소랍니다.^^

stella.K 2010-11-22 13:08   좋아요 0 | URL
아, 그럼 시루스님 대구에 사시는군요.
위치가 합정동이네요. 그쪽이 원래 출판사가 밀집해있는 곳이거든요.
저도 기회되면 한 번 들려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감은빛 2010-11-25 01:52   좋아요 0 | URL
합정역에서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몇 번 출구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입니다.
출판사 건물 1층에 있습니다.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네요.
이것도 유행인가봐요.

stella.K 2010-11-25 12:10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델 잘 안 가서 그렇지 모르긴해도 반길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은빛 2010-11-2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몇 번 읽다보니 스텔라님 서평은 늘 어떤 패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역시 스텔라님! 하고 감탄해봅니다. ^^

stella.K 2010-11-25 12:09   좋아요 0 | URL
헉, 어떤 패턴이요?
전 그저 생각나는대로 써서 제 패턴이 뭔지 모르겠어요.ㅠ
읽어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