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학 트랜드는 일기 아니면 편지가 아닌가 싶다. 

작년 말, 우연히 서핑을 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타이프 라이터를 (거짓말 조금 보태서)미치도록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표지가 참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한대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조놈의 타자기가 우리나라에서 예전엔 비서들이 많이 썼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선 작가들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왠지 지적 산물 같아 보이지 않는가? 물론 요즘 미끈하게 잘 빠진 노트북에 비하면 한참 뒤쳐지긴 하지만 아날로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물건처럼 탐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설명에 의하면, 작가가 길 위에서 만난 이방인들과 유랑의 기록 쓴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일기체로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작년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고 지난 2000년에 나왔다고 절판이 됐고, 이번에 다시 나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석원의보통의 존재 가 나와 한동안 눈길을 글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잘 알려진 존 파울즈의 일기집이 나왔는데 어떨지 몹시 궁금해진다.  

사실 일기란 상당히 개인적인 글로써 보는 사람의 관음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던 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충 허리쯤 올라오는 일기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또한 나는 한때 무엇인가를 쌓아 놓는다는 것이 싫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그게 없어진 것 같은데 예전의 B드라이브 디스켓에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그 디스켓은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 썼던 B드라이브가 있는 컴퓨터가 없어진지 오래라 저장된 일기를 아마도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것도 같다. 하긴, 일기를 썼다고 해서 훗날 다시 보게 되는 경우는 없다.  

오래 전, 정말 일기를 꺼내 본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20대적에 10대 일기를 꺼내 본 것인데, 몇장 읽다 덥고 말았다. 어쩌면 그렇게 글씨를 못 썼던지. 그리고 왜 그리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때 내가 왜 일기를 쓰고 있을까에 회의적이기도 했다. 사실 글이란 게 정신적 정화 작용도 해 글을 쓰면 흩어졌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곤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고 점검도 하고. 하지만 난 요즘 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 게으른 것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블로그를 하게 되면서 따로 일기를 쓴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에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아니다. 일기는 독백을 하지만 블로그에서는 독백과 방백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다. 즉 독백을 하는 것 같다가도 방백을 하고, 방백을 하는 듯 하면서 독백을 한다. 하지만 진짜 속 얘기는 블로그에다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다. 그렇다면 일기를 계속 써야할 것도 같은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문제는 게으름이고, 무엇인가 일기쓰는 행위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이대로 앞으로 일기를 계속 쓸 수 없다면 자서전을 쓰게 될 것 같다. 마침 자서전 쓰는 법에 관한 책도 나와 있으니.  

        

그래도, 지금 내가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싶다면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아닐까 싶다. 알려진대로 실비아 플라스는 한때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였으며, 그녀의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다. 가스 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넣고 자살을 했다니 말이다.  

처음 이책이 나왔을 때 읽을 자신이 없었다. 왠지 자살한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저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책은 판도라의 상자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난 아직도 이 상자를 열어보지는 못했고, 언제 열어 볼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우리의 영원한 일기는 안네 프랭크의 일기는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이책을 읽지 않았으면 일기를 읽었다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책을 두번 이상 거듭해 읽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중학교 때 이책을 읽었다. 그때의 감동과 안도감이란...! 나도 드디어 읽었다!는 것이긴 한데 그때 이후로 나는 이책을 재독할 마음은 지금까지 들지 않는다. 물론 다른 책들도 내가 재독하는 경우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책은 한번쯤 더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이 있다. 하지만 이책은 항상 그 대상에서 빠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안 읽었다면, <죽기 전에는 꼭 한번은 읽어줘야 할 책 목록>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 책이 이책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라고 떠들면서, 왜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난중일기><백범일지>같은 건 왜 읽어 볼 생각은 안하는지 모르겠다. 

 

 

 그 밖에, 

  이런 책들도 읽어주면 좋을 것도 같다. 부제로, 목적이 이끄는 일기쯤이 되려나?  

 

사실 일기란 비공개를 원칙으로 사적인 것일 것 같지만 꼭 그러치만도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그 첫날(그날이 몇년 몇월 몇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난 분명히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이다. '훗날 내 후손이 이 일기를 읽어 준다면...' 그래서 허리까지 찬 일기장들을 아직도 태워버릴 용기를 갖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책이 대체로 작고 얇기도 하지만 그렇게 치고는 상당히 잘 만든 책은 아닐까 싶다. 반정도 읽었는데 다 읽고나도 별 네개 이상 주는데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왜, 이걸 읽고 있는데 자꾸 옛 생각이 나는 걸까?   

나는 말 보다 글의 힘을 더 믿는 사람이다. 사춘기 시절, 엄마와 아버지는 싸움이 잦았다. 지금 같으면 그걸 몇배 이해했을 것이다. 성이 다른 사람끼리 사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한번에 맞기를 바랄까? 그런데 보는 나는 참 많이 괴로웠다. 아버지와 엄마가 행복하지 못한 게 마치 내 책임 같아서 나는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보내 드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약발이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이 이렇게 컸구나 기득도 하고, 다 큰 자식한테 그런 편지를 받으니 무안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넓은 마음으로 자식의 마음을 받아 드리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점점 약발을 잃었다. 자꾸 자식으로부터 당신의 잘못을 지적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셨을 것이다. 난 그후 아버지한테 편지 같은 것은 쓰지 않았다. 역시 부부의 문제는 둘이 풀어야 하는 것이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또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짝을 정말로 좋아했다. 물론 한때 싸우고 화를 낸적도 있지만, 그 아인 정말 똑똑하기도 하고, 글씨도 잘 썼으며, 예쁘기도 했고, 상냥하기도 했다. 고맘 때 친구끼리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는데 나 역시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을 한동안 즐겼다. 그 친구는 꼭 편지 말미에 -너의 둘도 없는 친구, OO-라는 말로 맺음을 하곤 했는데, 난 한참 동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잉? 이게 무슨 말이지?' 물론 오늘날로 치자면 자신을 나타내는 문장 같은 것인데 이해를 못했다기 보단 뜬금없어 보어도 보엿고, 건방져도 보였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얘도 나를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나에겐 이 친구 밖엔 친구가 없는 것일까? 편지를 받을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그 친구와의 편지 교환은 제법 오래 갔던 것도 같다. 중학교 입학 초 정도까지 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다. 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교복을 입은 그 친구의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내릴 수는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편지를 썼다. 뭐 이를테면, '그때 너를 우연히 봤는데 버스를 내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주저리 주저리......'썼겠지.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쉬우면 한 번이라도 약속을 정해서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편지라는 매개체가 있어서 그런지 우린 서로 언제고 한 번 보자고 해 놓고 계속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 번은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꼭 편지를 보낼 때나 답장을 보내지 먼저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편지를 안했다. 그랬더니 정말 편지가 없었다. 나는 아쉽지만 그 친구에 대한 우정을 거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언제까지나 답장을 쓰는 번거로움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자발적이지 않으면 의무감으로 뭔가를 하는 건 나 또한 원치 않으니. 그래서 우리는 결국 멀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내 마음엔 언제나 오래도록 편지를 주고 받을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것은 지금도 앙금처럼 남아 있다.    

오래도록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반 고흐. 나도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다.(판형은 이게 아니다) 그때 읽으면서 둘의 형제애를 얼마나 부러워 했던지. 그런 것으로 봐서 어쩌면 인간 심리 저 밑바닥엔 편지를 언제든지 주고 받을 수 있는 소울 메이트를 진정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친구 이후 한동안 그런 친구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보다 네살 위인 언니가 재수 끝에 대학엘 들어가고, 교회 대학부에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론 서너명 됐던 것으로 아는데, 희안하게도 언니는 내 친구를 몰라도, 난 언니 친구들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남자친구를 모를까? 당시 나는 여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라곤 아버지와 오빠, 동생이 다였고, 설혹 또래 남자 아이를 안다고 해도 오빠뻘 남자를 아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향기'란 이런 거구나. 그 오빠들만 보면 설레는 뭔가가 있었다.  

그중 C오빠가 있었다. 공부도 잘해 당시 우리 언니로선 바라볼 수도 없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외모는 좀 왜소하긴 해도 성격이 좋아 내 바로 위의 오빠와 나를 금방 사로 잡았다. 그 사로잡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편지였다.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 오빠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것이아닌가? 그것도 그냥 언니를 통해 주는 것도 아니고 우표 붙인 편지를. 나도 편지질을 해 보긴 하지만 이게 어디 보통 정성인가? 그렇지 않아도 조금만 틈이 있으면 편지를 주고 받는 상대가 있게 되길 바랐던 나는 그때부터 그 오빠와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떻게 길게 쓰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도 잠깐.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 오빠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그냥 아는 오빠 이상의 인상을 친구의 동생에게 준 것은 아닐까, 주춤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자신이 그렇게 편지를 했던 것도 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단다. 그러면 그렇지. 그럴수도 있겠다는 의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의도를 알고는 나 역시도 그렇게 목적이 있는 친절이라면 사양하겠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그 오빠의 편지는 기다리지 않았고, 그 오빠 역시 더 이상 집에 놀러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 것으로 봐서 언니하고도 멀어지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때 그 오빠와 주고 받았던 편지와 다른 사람들과도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어쩌면,(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다음 이사 때)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것 같다.  

오래 전,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 때 내가 맡은 아이들과 공개 일기장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지금처럼 인터넷 사이트가 발달되고 카페와 블로그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의 일이다. 그 시절 카페가 있었더라면 우린 거의 실시간으로 여러 생각들과 정보들을 공유했을 것이다. 거의 열몇 명에 가까웠으니 두권을 돌린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주씩 가지고 있는다고 해도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 까지는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기며, 편지인 동시에, 낙서장 같은 것이었다. 팀 활동을 하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써 보자는 거였는데 별 내용은 없어도 나름 그것을 읽는 기쁨은 꽤 컸다.  

그래도 역시 편지는 동성끼리 주고 받는 것 보다 이성끼리 주고 받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가끔 결혼을 전제로한 남녀가 연애기간 동안 편지를 몇백 통을 받았다고 하면 어찌나 부럽던지. 그것을 변함없이 결혼 후에도 할 수만 있다면 부부문제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편지도 성실해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말 보다 글이 더 힘이 있어 보이는데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많이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일까? 

앞서 말한 <정조의 비밀편지>의 보면, 어찰을 쓰지 않은 임금은 없었지만 정조만큼 어찰을 잘 활용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편지 하나만 잘 써도 로맨티스트, 멋있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텐데 편지를 보낼 사람도 마음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  

                      

최근 이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 절판이었다가 새로 재출간 되었다. 이 책 역시 편지글로 쓰여졌다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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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2-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이 글도 마치 일기장을 훔쳐 보는 기분으로 읽혀지는데요.

stella.K 2010-02-21 20:01   좋아요 0 | URL
오호! 빨리도 읽으셨네요. 그렇습니까? 흐흐.

Forgettable. 2010-02-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alla님, 안녕하세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일기글이나 편지글 읽는걸 즐기는데 이 페이퍼 참 좋으네요.
전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를 몇달 째 읽고 있는데요, 이게 지겨워서가 아니라 자꾸 책장이 넘어가는게 너무 아까워서 자꾸 책을 덮게 되더라구요^^

stella.K 2010-02-21 21:58   좋아요 0 | URL
포게터블님, 반가워요.
사실 저 파울즈의 책과 <정조의 비밀편지> 때문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짧지 않은 글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2010-02-2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2-22 11:02   좋아요 0 | URL
<정조의 비밀편지>강연회가 토욜에 있군요.
가고 싶기는 한데 지금으로선 약속해 드릴 수는 없고,
나중에 가게 되면 살짝 연락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야클 2010-02-2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또는 일부러)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이 꼭 있을것 같아서 저는 일기를 안씁니다만. ^^

stella.K 2010-02-22 11:03   좋아요 0 | URL
그럴 줄 알았습니다.ㅎㅎㅎ

2010-02-22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2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2-23 00:16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실비아 플라스 영화 권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언젠가 리뷰도 썼구요.
전 영화가 훨씬 좋았어요. 기네스 펠트로가 실비아에요.^^

2010-02-2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2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10-02-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우연히 시골 책장에서 고딩때 짤막하게 썼던 일기장을 발견하고 과거를 찾은 듯한 느낌에 설레였던 적이 있습니다. 일기를 쓴다는 것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더라구요^*^

stella.K 2010-02-23 16: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일기란 게 참 묘한데가 있어요. 뭐라 설명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