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성 없다, 하지만… 웃음은 있다

‘깨는’ 발명품 진도구의 세계



▲ '휴지걸이 모자'와 '얼굴 일체형 마스크', '보행용 빨래건조대' 등 진도구를 착용한 채 서울 테헤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한국진도구협회는 "얼굴 일체형 마스크가 평범한 흰색 마스크보다 덜 눈에 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훨씬 더 눈에 띄었다. 보행용 빨래 건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델 정다정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진도구를 착용하니 전혀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진도구(珍道具)='진기한 도구'의 준말. 오로지 한 가지 문제만을 해결하거나, 하나의 기능만을 가진 창의적인 물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문제 서너개를 유발하는 도구. 단 실용성이나 상품성은 전혀 없다.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묻게 된다. 정신이 나갔구만. 그런데 문제는 자꾸 보게 된다는 것이다. 웃음이 ‘퍽’하고 터진다. 터지는 건 웃음 만이 아니다. ‘이런 황당한 물건도 있는데, 뭔 안되겠어?’란 생각이 들면서, 자유로운 발상을 옭죄던 고정관념이란 틀도 터져 열리는 기분이다.

한국진도구협회가 최근 펴낸 ‘진(珍)도구적(的) 발상’이란 책을 펼쳤을 때 일어나는 연쇄반응이다. 별의별 희한한 물건 224개가 담겨있다. 예를 들면 비즈니스맨을 위한 ‘여름용 와이셔츠’. 등판이 없어 여름에 입으면 시원하다. 단, 재킷을 벗었을 때 자칫 변태로 보일 수 있어 민망하다는 단점이 있다. 김지경(35) 한국진도구협회 회장은 “‘단,…’ ‘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진정한 진도구라 부를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진도구(珍道具). ‘진기한 도구’의 준말이자, ‘진정한 도(道)를 구하는 도구’를 뜻하기도 한다. 진도구란 말은 일본 가와카미 겐지(川上賢司·57)씨가 처음 만들어 썼다. 일본진도구학회 회장이다. 가와카미씨는 원래 제대로 된 발명가였다. 여기서 제대로 된 발명가란 ‘남에게 돈 받고 팔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을 고안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그가 내는 아이디어마다 “비실용적이다” “그걸 누가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때 누군가 “재미있네. 그냥 하면 어때”라고 위로를 던졌다.

작은 위로가 가와카미씨에게 큰 힘이 됐다. ‘실용성이나 상품성은 전혀 없지만 오로지 한 가지 문제만을 해결하거나, 하나의 기능만을 가진 창의적인 물건’이라는 진도구의 정의를 내렸다. 1987년부터 한 통신판매잡지에 자신이 개발한 진도구를 하나씩 연재하기 시작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진도구 아이디어를 보내왔고, 진도구학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일본진도구학회는 현재 준회원 5만여 명과 정회원 1만3000여 명으로 구성된다. 준회원은 아이디어를 협회로 보내온 사람들, 아이디어가 협회에 채택돼 진도구로 실현된 아이디어를 보낸 사람들이다.

한국진도구협회는 지난 6월 결성됐다. 회장 김지경(35)씨는 8년 동안 일본 유학을 거쳐 광고와 드라마 영화 제작일을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1월, KTF ‘쇼’ 런칭 광고에 등장시킬 재미난 물건을 찾기 위해 일본을 뒤지다가 진도구를 알게됐다. ‘발명이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란 선입견을 깬다는 생각, ‘이렇게 하면 부끄럽겠지’란 생각에 의해 막힌 창의성을 뚫어주고 고양시킨다는 진도구 철학에 매료됐다.

가와카미씨에게 연락해 책을 출간하고 한국진도구협회를 인증받았다. 김지경 회장은 “한국어로 ‘학회’라고 하니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들어 ‘협회’라고 했을 뿐이지 일본진도구학회와 연결된 단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회원은 100여 명. 10월 1일 협회 인터넷 홈페이지(www.chin dogukorea.com)를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고 회원을 모집한다. 10월 13일에는 신촌과 홍대앞, 명동, 강남역, 코엑스, 분당 서현에서 홍보 퍼포먼스도 벌인다. 김지경 회장은 “퍼포먼스라고 대단한 게 아니라, 개그맨 지망생 셋이서 진도구 착용하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걸을 것”이라고 했다.

김지경 회장은 “상품화해서 파는 물건도 아니고(상품화하면 큰일 날 물건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특허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 정말 현실에 찌들린 현대인을 위해 단지 진도구적 발상을 서로 공유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도구적 발상, 그리고 진도구의 넓고 깊은 세계를 맛보기로 보여드린다.



콘택트렌즈 분실 방지 보안경


운동이나 목욕할 때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려 고생했다면 사용해본다. 직경 5.5㎝ 금속 그물망을 사용한 보안경이다. 콘택트렌즈가 떨어져도 그물망에 걸려, 금새 다시 끼울 수 있어 편리하다. 물안경처럼 착용한다. 정다정씨는 “생각보다 잘 보인다”면서 “얼굴에 살이 많으면 눌리겠다”고 했다. 햇볕이 강하면 눈가가 그물모양으로 탄다.



휴지걸이 모자


머리에 두루마리 휴지가 ‘세팅’돼 있다. 눈물, 콧물 가리지 않고 바로 휴지를 풀어서 닦을 수 있다. 약간 창피하다는 점만 꾹 참으면 너무나 편리하다. 정다정씨는 “착용감이 생각보다 좋다”면서 “거울이 45도 각도로 달려 있다면 더욱 편리하겠다”고 덧붙였다. 단, “휴지 좀 쓸게요”라는 공짜족의 습격이 예상된다.



(모델=정다정)




조선일보
글=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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