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아웃이야” 경쟁사회 축소판… 비인간성 비꼬기도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9. 야구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미국 뉴요커의 감성을 대변하는 소설가 폴 오스터는 야구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뉴욕 자이언츠의 강타자 윌리 메이스에게 사인을 받을 기회를 잡았으나 마침 몸에 지닌 필기구가 없었다. 그후 오스터는 항상 연필을 갖고 다녔고, 결국 작가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야구 때문에 작가가 됐다. 어느날 야구장 외야석에서 시원하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 그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다.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도 야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야구가 시와 소설에서 직간접적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됐다.

      ‘평범한 야구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는 장편 ‘삼미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은 80년대 프로야구의 최하위 야구팀을 통해 경쟁사회의 세태를 비판하고, 낙오자들을 위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형상화했다. ‘임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신용 불량자가 수백만씩 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 소설은 개그 같은 말 솜씨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소설가 황석영)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 ▲ 세이프냐 아웃이냐. 냉엄한 경쟁 사회의 축소판인 야구는 오늘의 세태풍자소설에서 패자를 위한 이야기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조선일보 DB 사진



    • ‘고백하자면 저는 1루에서 상대 선수와 나누는 대화를 사랑했습니다’는 젊은 작가 김도언의 단편 ‘전무후무한 퍼스트 베이스맨’(계간 ‘세계의 문학’ 2007 여름호)도 프로야구를 통해 경쟁사회의 비인간성을 풍자한 소설이다. 21년 동안 프로야구팀에서 활약해 온 노장 1루수 ‘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선수를 인류애로서 돕는 것. 그것이 야구가 가르치는 휴머니즘’이라고 믿어왔다. ‘나’는 1루에 온 상대 선수들의 가정 형편을 꿰뚫게 된다. 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이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여동생들은 가출했다는 등등 상대방 선수의 고민을 들어주는 식이다. 마침내 ‘나’는 결단을 내린다. ‘저는 상대팀 선수 중에 기록이 시원치 않고 부진에 허덕이는 선수가 1루에 나오면, 우리팀의 수비 전략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투수의 주무기라든가, 다음에 던질 공의 구질, 특이한 버릇, 사인의 의미 같은 거 말이에요. 그리고 도루를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했어요.’

      이해경의 장편 ‘말하지 못 한 내 사랑은’에서 야구는 유희와 노동의 경계가 없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다. ‘저기 봐요, 야수들이 전부 건들거리고 있죠? 야구에 뜻이 없어 보이죠? 그런데 저러고들 있다가 투수가 와인드업이나 셋 포지션에 들어가면, 동시에 모두 허리를 싹 낮추면서 굽혀진 다리는 팽팽해지고…전 그 순간이 너무 좋아요. 최대한 릴랙스…그러다가 한순간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려….’

      2002 월드컵과 붉은 악마 열풍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설에서 축구가 야구에 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386세대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지금 한국 문학의 주류인 30~40대 작가들이 프로야구를 보면서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낸 세대이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5년 뒤 붉은 악마 세대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축구를 다룬 소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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