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 부의 절대 법칙을 탄생시킨 유럽의 결정적 순간 29,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강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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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꿔놨다.

3년 전 이맘때 정부의 발표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사태를 전시상황에 비유하며 꼭 이길 것이라며 비장미마저 느껴지게 했다. 나라들마다 국경을 봉쇄하고, 날마다 몇 명의 감염자가 나왔는지를 세고,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에 대한 저항을 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보다 그 이후가 훨씬 더 어려울 거라고 예측했다. 그 예측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아 지금은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드니 이번엔 고물가에 그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고 난리도 아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또 당분간 지속될 거라고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다.


전쟁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전쟁보다 무서운 게 전염병이란 걸 이번에 철저하게 깨닫는다. 전쟁을 조기 종결시켰던 게 패스트였으니. 하지만 어찌 보면 전염병이 진짜 나는 놈은 아니었다. 그건 경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난 경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왜 코로나 상황이 벗어날 만 하자 지금의 경제 상황을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난 고물가인데 왜 금리를 자꾸만 올리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경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 개기가 됐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재밌긴 한데 내가 알고 싶은 것엔 역부족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책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경제의 역사나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또한 나 같이 무조건 경제학 울렁증이 있는 사람에게 구미가 당길만 하다. 비록 유럽 경제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새삼 학창 시절 이후 내가 언제 이런 세계사 공부를 해 봤던가 살짝 반성도 되면서 나름 즐겁게 읽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세계사를 어떻게 공부할지 궁금하다.) 


사실 역사란 다각적인 각도에서 봐야 한다. 지리, 문화, 정치, 경제 등 유기적으로 봐야 하는데 경제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할 말이 많구나 싶었다. 게다가 그림으로 배운다는 부제처럼 매 장마다 당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삽화처럼 들어가 있다. 그림으로만 봤을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경제사의 흐름과 함께 보니 그림이 더욱 의미 있어지며 과연 유명 화가의 그림도 결국 시대의 산물이구나 싶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우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세시대 페스트일 것이다. 물론 페스트가 중세시대 처음 출연한 것은 아니다. 전염병의 역사가 언제 처음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페스트의 첫 출연은 고대 로마라고 한다. 그리고 2차 출연은 1346년에서 1353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3년도 버거운데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으니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더구나 마땅한 치료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시기에 또 여러 가지 파생된 문제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신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 '면벌부'가 성행했었다고 하니 또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는 어땠을까.  


어쨌든 페스트는 중세 시대를 지배하던 헤게모니에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사람의 몸값이 치솟았고, 노동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노동력이 곧 자본이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하층민들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당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귀족과 영주의 간섭과 횡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길드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 분야의 독과점 형태와 이익집단으로 변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래도 이 시기만큼 노동을 인정해 주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같은 전염병의 시대를 거치지만 노동의 가치는 페스트의 시대만큼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 그건 비대면으로 인한 자동화 시스템의 확대, 나날이 정교해지는 AI의 등장으로 사람이 설 자리가 오히려 더 줄어들고 더 이상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보지 않는 시대를 맞았다. 과연 역사에서 배우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역사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해 새로운 비전과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하건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전염병이 모든 사람에게 나쁘게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힘든 시기 속에서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혜를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란 한마디로 돈의 흐름과 향방을 쫓는 분야이긴 하지만 인간이 잘 살기 위한 노력과 모험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실 우리는 역대로 돈에 대한 애증을 퍼부으며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사는 또한 바로 그런 걸 쫓는 분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돈에 누가 웃고 웃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상 이것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줬던 건 메디치 가문은 아니었을까 한다. 너무나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긴 한데,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특별히 기억해 볼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녀는 사망 직전 소유한 예술품을 피렌체에 기증한다. 단 조건이 있다. 모든 기증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피렌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후에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피렌체를 한 해 관광 수입으로 먹여 살린다. 그야말로 돈이란 이렇게 쓰고, 이렇게 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저 돈을 벌면 무조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쓰려고 하지 않던가. 요는 모든 사람이 메디치 가문 같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를 벌던 정승 같이 쓰자는 말이다. 돈을 남기기보다 정승 같이 쓰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재밌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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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넵 조만간 일독하겠습니다. ㅎㅎ 우피치 미술관인가 하여튼 저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의 동상을 봤었어요.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그녀 덕분에 오늘날의 피렌체가 있지않나싶더라구요. 로렌초 데 메디치 이후에 메디치가는 뭐 영 아닌 후손들로 인하여 망해먹었지만 말이죠.

stella.K 2022-12-01 15:40   좋아요 1 | URL
ㅎㅎ 어느 집이나 문제아들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대단한 가문임엔 틀림없죠.
그나저나 바람돌이 님도 재밌게 읽으셔야 할 텐데ᆢ저기 쓰기도 했지만 저같이 경제학 울렁증이나 세계사 공부한지 오랜 분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12-0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렌체 빈출 불가라니 피렌체사랑이 대단한 멋진 언니네요 ㅎㅎ페스트 보면 지금 우리 모습이랑 닮았단 생각 많이 들더라고요. ~

stella.K 2022-12-02 16:0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정말 똑똑하고 통 큰 언니죠?
피렌체 가 보지 못했지만 어찌보면 자신의 예술품 가지고
피렌체를 산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정말 영리해요.

결국 전염병 이길 장사 없는 거겠죠.

기억의집 2022-12-02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피렌체 가문은 대단한 가문 같아요. 이 가문덕에 지금 이탈리아가 평생 관광으로 먹고 살고 문화 대국으로 기억되고 있으니깐요!! 저는 예전엔 그냥 돈 많은 귀족 가문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홍사훈의 경제쇼 자주 듣는데, 이 분 참 매력있어요!! 금리가 높아지면 소비를 안 한대요. 소비가 줄어들면서 인플레가 잡힌다고 하네요. 전 유튭 끼고 살아서… ㅎㅎㅎ 한편으로는 이제 저물가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해요.동시에 저금리 시대도 오지 않을 거라고.. 지난 이십년 같은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는데.. 아무래도 금리 높으면 사는 게 버겁죠. 저는 그나마 대출 없어서 괜찮은데.. 대출 많이 받으신 분들 힘드실 것 같어요!!

stella.K 2022-12-02 16:12   좋아요 0 | URL
오, 기억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알겠어요.
그런 거였군요. 하지만 우린 지난 세월 동안 돈 갖다 쓰라고
빚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잖아요.
그래놓고 돈 줄을 죄어 놓으면 반발이 여간 아닐텐데요.
저도 작년에 은행 원금 상환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워요. 기억님은 참말로 모르는 게 없어요.ㅋ
저도 그런 방송도 좀 보고 경제 지식도 쌓고 그래야 하는데
엉뚱하게 경제사나 읽고. ㅋㅋ

yamoo 2022-12-0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제사와 문화사 책은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두깨가 있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매우 치밀하고 풍부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죠. 전쟁사도 재밌고, 전염병사도 재밌어요. 분야별 역사는 일반 세계사와는 다르게 디테일 면에서 매우 유익합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경제사는 그 중에서도 매우 주류적인 분야라 일독하면 좋죠. 어떤 책이라도 좋아요. 저는 주로 교과서 류의 책을 읽었는데, 일반 교양서와는 밀도 면에서 좀 다른 거 같아요. 물론 교과서라 지루하긴 하지만 정보는 많이 습득할 수 있어요. 어쨌거나 경제사류는 읽어 놓으면 무척 도움이 되는 분야입니다~~^^

stella.K 2022-12-05 19:56   좋아요 0 | URL
ㅎㅎ 야무님은 도대체 모르는 게 뭡니까?
정말 그야말로 척척 박사시군요.ㅋㅋ
이 책 경제사를 알기는 정말 좋더라구요.
경제 이론이 어렵지 역사가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렇군요. 교과서가 주는 밀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교 땐 교과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객관적 판단이 어려웠는데
졸업한지도 한참 됐는데 이제야 좀 알고 싶더라구요.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교육에 비판을 많이 받아서 그렇지
공부 자체는 세계 어디 내놔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히려 여타의 나라에선 배우고 싶어한다는 말도.
이런 거 지금 사춘기 아이들한테는 안 먹힐 거고 나이들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고맙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