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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생 공부 - 잘 쓰기 위해 잘 살기로 했다
이은대 지음 / 바이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글쓰기에 관한 책은 보통 세 부류의 사람이 내는 것 같다. 문학 그것도 주로 소설가가가, 자기계발이나 성공학 분야에서 내거나 또는 신문 기자들이 내거나. 이 책은 두 번째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엔 워낙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다 읽을 수는 없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나도 한때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제법 읽었고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읽으려고 하는데, 내가 선호하는 쪽은 문학이나 기자들이 쓴 책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었다는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제목에 끌려서다. 그저 단순히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보단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어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구성이나 발상은 좋은데 나처럼 이 분야 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새롭게 관심을 갖는다면 읽을만하다. 글쓰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기존의 그것과는 색다른 측면이 있어 그 점은 좀 높이 사고 싶다. 즉 문장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삶의 관점에서 대입시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목차를 참조해서 보면 금방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게 나름 노련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저자는 글쓰기 강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르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경어체로 썼다. 한 쳅터씩 읽을 때마다 꼭 저자가 미지의 독자 아니 미래의 작가에게 편지로 조언을 해 주는 것 같다. 특히 매 꼭지 말미에 네댓 줄로 내용을 요약하기도 하는데, 꼭 제자에게 보약 달여 먹이는 스승의 느낌이 들어 저자는 가르치는데 진심이구나 싶다. 단지 (자기계발 책들이 그렇듯) 너무 나이스한 게 좀 아쉽달까.
앞서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낸다고 말했는데, 그 세 분야가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학은 진지하고, 주로 성공을 가지고는 말하지 않으며 은밀하고도 음습한 것을 쓰라고 독려하는 반면, 기자들은 특성상 진실과 객관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있다. 그리고 자기계발 쪽은 뭔가의 확신, 개조란 측면을 강조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저자도 문학책 꽤나 읽었나 보다. 그 분야는 주로 위로를 많이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긴 한때 문학이 그런 경향을 보였고, 지금도 그건 여전하다. 그게 또 어찌 보면 문학의 한 기능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런데 비해 자기계발 책들은 등짝을 후려치듯 단호함이 있어 선호하게 됐고 말한다. 과연 그렇기도 하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의 경험들을 재료 삼아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작가가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글 쓰기는 성공 가지고 말하기보단 실패 가지고 말해야 하는 게 작가의 숙명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마감'(154p~)이란 챕터에 눈이 머물렀다. <작가의 마감>이란 책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작가에게 마감이란 상당히 스트레스며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마감에 '책임지는 인생'이란 부제를 달아 놓기도 했다. 전에 나는 작가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게 원고료를 받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 마감에 있지 않나 싶다.
소싯적에 나도 작가가 돼보려고 이것저것 써놓은 게 좀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러니 공모는 고사하고 누구에게 내 작품을 읽어봐달라고 부탁도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교회에서 짧은 극본을 쓰게 됐고 이게 참 나를 여러모로 바꾸는 개기가 되었다. 물론 그 일은 힘들면 안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의 일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힘들어서 포기하는 일과 힘들어도 해내게 되는 일. 나는 포기가 빠른 인간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금방 손들고 나가떨어진다.
그런 내가 이 일만큼은 끝까지 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게 꼭 원고료가 주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전에 마감이 있어서다. 원고를 잘 쓰건 못 쓰건 주어진 분량을 주어진 시간내에 써 내야 한다. 글이 안 써질 땐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뛴다. 그런데 어느 때가 되면 내가 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희열? 뭐 그것도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난 내가 쓴 글을 마무리하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어느새 그 상황이 익숙해져 마감의 스릴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난 그 일을 그만둔 적이 있는데 안 하니까 처음 얼마간은 좋았지만 다시 그 일이 그리워졌다. 몇 년 전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메일로 글을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일을 겁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마감의 스릴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일은 나름 오래 했고, 내 보잘것없는 글을 구독해 주신 분들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의뢰받은 글은 어떻게든 쓰는데 혼자 쓰는 글은 여전히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가에게 마감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혼자 글을 쓰면 안 된다. 공저를 하든지 출판사의 독촉을 받든지, 함께 그룹을 만들어 공언하고 서로서로 이끌어주든지 해야 한다. 말의 힘을 믿어야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이 작가냐는 건 논란의 여지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책 한두 권 냈다고 해서 그게 과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스펙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에게까지 작가라고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또한 작가가 된다는 건 정말 평생을 걸어야 하는 일인데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해 줄 것처럼 너무 희망적으로 얘기해도 되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근래에 들어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많아졌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여전히 그리 많아진 것 같지는 않다. 이 균형을 어찌해할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쓰려면 읽어야 한다. 한쪽에서 이렇게 글쓰기를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읽는 인간도 늘어나려나. 무엇보다 난 평생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옛말이다. 사람은 죽기 전에 책을 남겨야 한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생각과 행동 사이 거리가 멀수록 평범하거나 실패하는 인생이고, 생각과 행동 사이 거리가 좁을수록, 즉 실행에 옳길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실행력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에 걸맞은 태도와 삶을 살도록 되어있다. 작가는 확실히 멋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