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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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몇 번째 책인지 모르겠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자 역시 빠지지 않는 장서가 겸 독서가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첫 책을 낸 이후 매년 한 권 내지 두 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 가히 전방위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음번엔 무슨 책을 낼까 항상 궁금해진다.


그래도 저자가 다루는 주제 중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건 역시 책에 관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한 권의 소설과 그와 관련된 인문학 책을 하나로 엮은 리뷰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받고 좀 놀랐던 건 저자가 언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전방위적 독서가인 만큼 소설이라고 안 읽었겠는가만 남자들은 보통 소설은 잘 안 읽지 않나? 나만 하더라도 독서의 시작은 소설이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은 소설보단 에세이나 대중을 겨냥한 인문학서를 읽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건 뛰어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했다. 나는 저자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나이 들면 총기가 떨어지는지 소설 읽기가 좀 자신없어 진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자꾸 의심하게 되고, 읽었던 걸 다시 뒤적이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니 자꾸 선택에서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설에 더 매달려야 한다는 걸 안다.


멋모르던 시절엔 소설 읽기에 대해 회의를 한 적도 있다. 한 번 읽고 말 걸 뭐하러 읽는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문학을 알면 소설 읽기도 깊어진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인문학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 잘 몰랐던 것을 인문학에서 해답을 얻거나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더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자의 책들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핵심을 전달해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개인적으론 '개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했을까'란 글이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먼저 아키야마 마쓰코의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갓>란 작품을 소개했는데(이 책은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울 메이트>와 비슷해 보인다), 우린 흔히 개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런 말이 전해졌는지 그 출처를 알지 못했는데 여기서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무지개다리'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시에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앞부분만 잠시 살펴보면,


천국 바로 앞에 걸린 '무지개다리'

이 땅에 있는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였던 동물들은,

멀리 여행을 떠난 뒤, 이 다리로 향합니다.

다리 건너에는 초원과 언덕이 펼쳐져 있어,

누군가에게 있어 특별한 '파트너'였던 동물들은,

같이 뛰고 장난도 치며 놀고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듬뿍, 햇살이 내리쬐면,

모두가 모여 따뜻하게 누워 쉽니다. (207p~ )


내가 유독 이 챕터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개를 오래도록 키웠었고 다롱이를 무지개다리로 보낸지 이제 1년이 되어오는 시점(정확히는 이달 15일이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녀석만 생각하면 코끝이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녀석은 정말 무지개다리 건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시를 지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상의 시인이 있었다니 새삼 위로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개와 친해졌는가를 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개를 키워왔으면서 한 번도 이것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아는 건 늑대가 조상이란 정도? 지면상 길게 쓸 수는 없고, 저자는 콘라트 로렌츠가 쓴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란 책을 소개하면서, 개의 조상은 자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읭? 그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나무위키를 보니, 자칼은 여우와 늑대를 섞어놓은 승냥이과 동물이란다. 그렇다면 이 개라는 동물은 그 조상이 한 가지로만 특정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잡종'이겠다 싶다.


이 책에 의하면, 개와 사람이 친해지는 데는 생각 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옛날 (거의 선사시대를 의미하지 않나) 인간이 고기 한 점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 어느 날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는데 누군가 정신이 나갔는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개에게 무의식적으로 한 점을 던져줬단다. 그것은 인간이 개에게 고기를 줄 줄 몰라서가 아니다. 한 놈에게 그걸 던져주면 더 많은 녀석을 불러들여 어떠한 통제 불능의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또한 사람 먹기도 부족한 것을 짐승에게까지 주냐며 공분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사람은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먹다 남은 고기나 뼈를 개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호해 줬고, 공생관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놀랍잖나? 


그런데 개인적으론, 뭔가 책 제목이 좀 불만스럽다. 무엇보다 제목이 좀 얄밉지 않나? (저자에겐 좀 미안하지만 웃자고 하는 말이다. 용서하시길.ㅠ) 솔직히 나이 4, 50이 되어도 책을 못 읽거나 안 읽는 사람도 많을 텐데 뭔가 모를 괴리감 같은 게 느껴질 것 같다. (이런 경우 저자의 의도보단 출판사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독서 세대론을 부각시킨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마흔에 읽는 동양 철학 시리즈 같은 거 말이다. 그건 정말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왠지 마흔둥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마흔이 아직 안 됐거나 50줄 타기 시작한 사람은 별로 손이 안 갈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일부를 제외하곤 책을 잘 안 읽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40줄 타기 시작하면 노안이 오기 시작한다. 40대 인구가 타인구에 비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고. 물론 불혹이라고 해서 나이에 대한 자각이 책으로 이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무튼 그래서 또 쉰둥이들을 위한 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40에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50에 읽을 리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 책은 오십에 책을 읽기로 하고 그 나이를 두 번 그러니까 100세가 돼야 한 번 읽을 것 같다. 더구나 제목이 그래서 나는 저자가 독서 노하우나 독서론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다른 제목이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움이 든다. (살짝 치곤 너무 적나라했나? >.<;;)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고, 늦은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하지만 유독 독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서 습관은 한 해라도 젊었을 때 들이고, 책은 조금이라도 눈이 좋을 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력이나 집중력도 예전만 같지 않다. 오십은 오히려 독서를 잘 해왔던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책에서 멀어지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실제로 난 얼마 전 한 달 정도 책을 안 읽은 적이 있다. 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 읽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내가 나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는데 얼마나 편하던지.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전, 알고 지내는 번역가 한 분이 자신은 요즘 책도 안 읽고 리뷰도 안 쓰는데 그게 너무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는데 정말 이해가 갔다. 지지난 달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았고, 나도 다시 붙들긴 했지만 한때 있을 수 있는 독서 사춘(추)기 쯤으로 해두자. 그리고 다시 붙드는 데는 이 책의 공이 컸다.


10대 초반부터 책을 읽어 왔고 여전히 좋아하지만 갈수록 독서보단 책이란 물성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틈을 다른 것이 메운다.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 교양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갈수록 눈도 나빠지고 버팀력도 떨어지는데 무엇으로 나의 독서를 세워 갈까 가끔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책을 선택하는 시야도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고. 그때 누군가는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서는 계속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느슨해지는 나의 그 알량한 독서에 도끼질이든 채찍질이든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는 현재를 즐길 줄 모른다. 50이면 금방 60 된다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독서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다. 그동안 계속 붙들고만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덥기도 하고, 제목이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위에서 말한 딴짓도 해야 하고 해서 쉬 쓰질 못했다. 그러던 중 문득 10대 시절 우리 옆집에 살던 노부부가 생각이 났다. 얼핏 보기에도 60대 중반은 넘어 보였는데 꽤 교양 있어 보였더랬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무슨 식자층으로 은퇴를 했다고 들은 것 같다. 난 그 노부부가 참 좋아 보였다. 막연히 지식인이어서가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고, 그때 난 늙을 때를 생각하기엔 너무 젊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늙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나 어렸을 땐 책 읽는 중년, 노년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늙을 땐 많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노년이 되었으면 한다. 또 그렇게 같이 늙어 갈 책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과는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그러기 위해 앞서한 푸념은 푸념으로 남기고 어제처럼 오늘도 책을 읽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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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8-10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문학과 인문학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독서였달까요? 조만간 저도 리뷰를 쓰야 하는데 지금 도서관 반납해야 하는 책이 너무 재밌어서 리뷰를 미루고 있네요. ㅎㅎ 제목은 저도 좀 불만이네요. 인문학과 문학을 잇는 뭔가 좀 더 근사한 제목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굳이 오십이란 나이를 강조할 필요하 전혀 없는 내용이었어요.

stella.K 2022-08-11 15:24   좋아요 1 | URL
이책의 저자님께서 점점 인기작가가 되가시나 봅니다.
리뷰나 제법 많이 쌓였더라구요.
바람돌이님 리뷰 쓰시면 엄청 나겠는데요? ㅎ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기란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출판사의 고민도 참 크겠어요. 제목이 반인데…

기억의집 2022-08-10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천운이죠. 저는 아직 눈이 괜찮아서 종이책 전자책 다 읽을 수 있는데 남편이나 언니가 잘 안 보여 안경을 만지작 거리며 눈을 위로 뜨면서 글자 볼 때마다 아 나도 이제 얼마 안 난았겠구나 싶어요. 저는 일했을 때도 꾸준히 읽었는데.. 일주일 이상 책을 안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어요. 로렌츠의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다 라는 책에서 친구자 빠졌어요. 저는 로렌츠의 책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요. 개의 조상이 늑대가 아니고 자칼이었던가요!!!

stella.K 2022-08-11 15:16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저도 비교적 노안이 늦게 온 편인데 안경 쓰기 시작하니까
정말 불편하더군요. 누워서 책을 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물론 정 불편하면 그렇게도 하지만 한 두 페이지나 읽을까요?ㅠ
눈을 잘 지켜주세요. 그래야 천운도 잘 지켜질수 있습니당~^^

희선 2022-08-11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개다리라는 말 누군가 쓴 시에 나왔군요 그 시가 있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네요 무지개다리, 말은 예쁜데 슬프기도 하네요 곧 15일이네요 다롱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서 지금도 생각나겠습니다 앞으로도 떠오르겠네요

요즘은 책 제목에 나이를 붙일 때가 많군요 예전부터 나왔군요 그렇게 하면 책이 잘 팔릴지도 모르죠 정말 이 책 제목은 출판사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 것 같네요 소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를 알 텐데, 그렇게 못 볼 때가 더 많습니다 여전히 이야기를 보는... 역사나 예술을 잘 알면 재미있는 소설도 있지요 그런 거 몰라도 소설은 재미있지만...


희선

stella.K 2022-08-16 13:42   좋아요 1 | URL
사람이 죽은 것만 같겠습니까만 사랑을 줬던 미물이라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소설은 쉽게 읽히는 것도 많지만 어려운 것도 많더라고요.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 것도 많고.
희선님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2-08-1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롱이가 떠난 지 일 년 되었군요 어제.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아직은. 더 많이 시간이 흐르면 좀 잊혀지려나요. ㅠ 요새 울집 냥이가 저한테 딱 붙어서 잠을 자요. 새벽에 깨서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생명이 짠해서.

stella.K 2022-08-16 13:51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뭐 처음 보다는 낫습니다. 작년 이맘 땐 정말 많이 슬프더라구요. 냥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덜 섭섭하답니다.
근데 다시 키우라고 그러면 못 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 노인은 로봇 강아지 키우고 그러나 봐요.ㅋ

프레이야 2022-08-16 14:54   좋아요 0 | URL
ㅎㅎ 털은 안 날리겠네요
감촉이 어떨지…

stella.K 2022-08-16 15:00   좋아요 0 | URL
그도 그렇지만 개집사 노릇 안 해도 되잖아요. 얼마나 손이 가는지. 그걸 좋다고 20년 가까이 했으니. 이젠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이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