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도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전날 나름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막상 떠나면 빠트린 것이 보인다. 이를테면, 얉은 책 한 권, 안경, 헤어밴드, 헤어젤, 썬글라스 등이다.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1박2일의 여행을 너무 우습게 본 탓이다. 금방 훅 지나가겠지 했다. 2박3일만 됐어도 저 물건들을 다 챙겼을까? 


언니가 차를 렌트할 거라고 해서 썬글라스가 뭐 필요한가 싶었다. 마스크 끼고 썬글라스 끼는 게 어색해 난 벌써 2년째 아주 햇볕이 강렬한 날이 아니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히 난 집이 아닌 곳에서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헤어젤 역시 포기했다. 토요일 밤에나 집에 도착하고 다음 날은 교회를 가야하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잠이 줄었으니 새벽에 일어나 감자했다. 그렇다고 내가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으로 다음 날 주일이라고 교회를 갈만큼 그렇게 신앙이 출중한 건 아니다. 그룹 성경공부만 아니면 난 당연히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멤버 중 하나가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이런 경우 그 가족들도 이틀 동안 집에서 나오면 안 된단다. 그러므로 성경공부에 참석할 수 없다는 말씀. 그러자 다른 멤버들 역시 도미노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로 참석이 어렵다고 하고. 잘 됐다 싶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이찍 알면 좋았을 걸. 머리 다 감고 알 건 뭐란 말인가.          

 

책은 가방에 넣었다 뺐다. 얼마나 보겠다고 가져가나 싶어서. 잠자리 뜨면 잠을 잘 못 자는데다 그나마 요즘은 잠이 줄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챙겼어야 했다. 여장을 푼 숙소에 TV가 있으니 잠이 안 오면 영화 한 편 보다 자면 좋겠지만 그 방엔 언니와 엄마가 이미 점령해 버렸다. 옆에 꼽사리 끼어 잘 수도 있지만 엄마가 코를 골고자는지라 포기하고 난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잤는데 아무리 자도 눈 뜨면 새벽 1시고, 또 눈 뜨니 3시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스마트폰을 가져 가긴 했지만 그것을 보는 것도 한계는 있다. 이럴 때 책을 봤더라면 좋았을 걸. 하루가 이렇게 긴 줄 누가 알았으랴. 


전날 우리가 돌아다녔던 이곳저곳을 떠올려 본다. 문득 밀도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날이 그날 같다면 밀도 있는 삶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이 밀도 있는 삶이 아닐까. 아니면 일상을 떠나 낮선 곳으로의 여행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하라고 했는가 보다. 

             

            


저녁을 먹기위해 숙소를 나왔는데 마침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컷 찍어봤는데 분위기는 별로다. 새들은 어찌나 짹짹거리던지. 산발적으로 무리져 날기도 했는데 확실히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렸을 때 나의 외할머니는 그러셨다. 새들이 저녁 때 저렇게 소리를 내는 건 잠자리를 찾느라 그러는 거라고. 그렇다면 새들끼리도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쟁탈전을 벌이는 걸까. 그렇게 무리져 나는 것도 시끄러우니 우린 맨 나중에 아무데나 자리를 얻겠다고 그러는 걸까. 아니면 자기 전에 운동이라도 하고 자겠다는 걸까. 또 모를 일이다. 오늘 하룻동안 하늘을 날면서 본 사람들에 대해 대해 지네들끼리 쑥덕공론을 벌이는 건지지도.

무엇이 됐든 그곳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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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10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스크에 선글 참 답답해서 진짜 아흐..
그런데 선글 꼭 끼셔야 해요. 백내장에 제일 안 좋은 게 자외선.
선글은 꼭 끼라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에효

stella.K 2021-11-10 21:30   좋아요 0 | URL
알고 있죠. 왜 그런 사람있잖아요. 여행할 때 짐을 최소한으로하는 여행 고수들. 그거 흉내 내려다... 😫

프레이야 2021-11-10 22:00   좋아요 1 | URL
저 백내장 수술 했잖아요 ㅎㅎ 올봄에요. 님 제 서재에 친일인명사전 올려 놓았어요.

책읽는나무 2021-11-10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운치 있는데요??
구름 모양도 이쁘네요.
여행 가게 되면 꼼꼼히 챙긴다고 해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꼭 빠뜨리는 게 한 두가지씩 나오죠!!!ㅜㅜ
저는 빗을 안들고 가기도 했고,양말을 빠뜨리기도 했고,스킨 로션을...헤어젤을...잠옷 바지를...매번 다양하게 빠뜨려서 셀 수도 없네요ㅋㅋㅋ
그래서 그곳에서 사다가 대체하느라...ㅜㅜ
책은 대체할 수 없으니 꼭 챙겨가긴 하는데 대부분 읽을 시간이 없어 앞부분만 겨우 읽고 가져오곤 하죠..어떤 때는 아예 책도 못펼친 날도 많아 왜 들고 왔지?할 때도 있었구요.

이웃 언니가 몇 년 전 라식 수술을 했던데 그 언니도 늘 썬글라스 챙겨서 쓰려고 노력하더라구요.썬글이 중요한가 보더라구요? 썬글은 꼭 챙기세요^^

stella.K 2021-11-11 10:06   좋아요 0 | URL
ㅎㅎ 다 그런 거죠? 저도 다 읽을 생각은 안 하는데 그래도 없으니까 허전하더라구요.ㅋ 사진은 나름 많이 찍었는데 건질게 별로 없더군요. 그도 많이 찍어봐야 는다는데ᆢ😥

니르바나 2021-11-11 0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사진 좋습니다.
여행가시니 외할머니의 옛말씀도 소환되고
여러모로 추억이 돋는 귀중한 시간이 되셨네요.
아무리 책을 좋아하셔도 책 빼고 가신 것 잘 하신 일입니다.
자연이라는 책을 보셔야 되니까요.
감동으로 치면 자연책이 훨씬 윗길이지요.^^

stella.K 2021-11-11 10:14   좋아요 1 | URL
아유,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새가 떼로 짖어데니까 그 순간 잊고 있었던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렇죠. 자연만한 책이없죠. 좀 힘들어서 그렇지 여행은 아주 좋았습니다. 나중에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희선 2021-11-11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서는 다른 거 안 해도 시간 빨리 가는데, 다른 데 가면 시간 잘 안 가지요 낯선 곳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집은 익숙하고 익숙한 걸 하잖아요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다른 걸 하면 시간이 조금 천천히 갈지도... 잠시라도 다른 곳에 갔다 오셔서 기분이 다르실 듯합니다 짧았다 해도 괜찮았지요 해지는 하늘도 멋지네요 구름 나무...


희선

stella.K 2021-11-11 10: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시간이 잘 안 가는 느낌이없는데 그게 또 좋더라구요. 집에선 그날이 그날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