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 판사가 쓴 극을은 의구심 반, 질투 반으로 보고 있었다. 난 아직 문유석의 책을 읽어 본 것이 없지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이젠 극본까지 썼으니 그는 악마가 맞는 것 같긴하다.


내가 먼저 이 드라마에서 눈에 들어 온 건 대통령의 이미지다. 자국의 영화건 외국의 영화건 지간에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체로 점잖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아니면 자나칠 정도로 똑똑하거나 어쨌든 굳이 나쁜 이미지로 그리진 않는다. 그게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단역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대통령은 파격적이게도 찌질이로 나온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가 목소리가 진짜 찌질하다. 이런 대통령은 보다가도 처음 본다. 찌질하다 못해 약간 사이코 같기도 하고.


이쯤되면 아무래도 작가의 사상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뭐지...? 현직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가? 아니 그 보단 원래 사법 개혁이란 미명하에 법조인들과 대통령이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니 그걸 이런 식으로 냉소라도 하겠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애초에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을 했던 건 주인공을 맡은 지성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니까. 관건은 판사 역을 맡은 지성을 얼마나 악마 같이 나오는가인데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는 초반의 기선제압이 관건인만큼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괜찮겠나 싶은 의구심이 반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작가는 끝까지 작가여야 하는데 작가가 너무 유명해서일까 주인공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작가가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인공 강요한은 어느 순간 악마가 아닌 정의의 사도로 바뀌어 있다. 물론 여기서의 악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악마가 아니다. 그냥 악랄함의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변신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난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가 악마가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는 싯점은 또 다른 주인공 가온이 사고로 강요한(지성 분)의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가온은 강요한을 끊임없이 의심했는데 강요한의 집에 머물면서 점점 강요한을 신뢰하게 되거나 혹은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되면서 이상한 성 같은 강요한의 집은 차츰 천국이 되어간다. 그때부터 드라마는 급격히 힘을 잃고 그렇고 그런 범작이 되어버린다. 요즘의 드라마가 16회분이라는 것을 상정할 때 (한 20년 전에는 18회 20회를 했다. 그것에 비하면 짧아지긴 했지만 지금은 16회분도 길어 보인다. 14나 12회로 줄여도 좋을 것 같은데 제작비를 생각하면 제작측으론 다소 아까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런 드라마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적대자가 있어 팽팽한 접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웬지 너무 일찍 그 장막을 거두어 들인다. 가온도 생각 보다 일찍 강요한의 편이 되고 그의 조카도 뭔지 원수지간인데 가온의 출연으로 의기투합하게 되고, 쓸만한 적대자로 보였던 최경희 법무부 장관도 지난 주 자살로 종결해 버린다. 최경희 법무부 장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것도 작가의 뭔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가 간파된다.


이제 종반을 치닫는 싯점에서 강요한이 유일하게 남은 적대자는 과거 강요한이 어릴 때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정선아다.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사회적 책임 제단' 대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인생 유전은 보여주지 않고 그저 단순히 전 대표를 간단하게 죽임으로 그 자리를 이어 받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아무리 디스토피아(말이 디스토피아지 드라마는 그저 만화 같다.)를 그린다곤 하지만 캐릭터가 너무 얄팍하다.   


아무튼 둘이 뭔가 팽팽한 긴장감을 주긴 하지만 정선아는 강요한에 필적할만한 악녀가 아니다. 그것을 가장했을뿐 하녀라는 말에 부르르 떠는 걸 보면 나약하고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도 쓸 줄 모르는 텅빈 뇌를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 정선아를 강요한이 퇴폐시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여자 아닌가. 지금까지 작가는 여자를 여자답게 그린 게 없다. 드라마 시청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문유석 작가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마무리지을건지 궁금하다기 보단 걱정된다. 


모르긴 해도 드라마는 영화 <베트맨> 시리즈를 많이 참고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는 꿈동산을 만들어 좋으면 안 된다. 강요한의 환경은 시종일관 지옥이어야 한다. 그 지옥을 끊임없이 헤치고 헤쳐가야 시청자들이 몰입해 보면서 주인공에게 갈수록 신뢰와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때가 없어 보인다. 지성은 무슨 역을 맡아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차경희 역의 장영남의 연기도 훌륭하다. 고로 내 말은 문유석은 판사 일 열심히 하면서 간간히 책 내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글도 그렇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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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8-11 1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판사님도 아니고 전업작가님이시래요.
그리고 드라마 첫 작품도 아니랍니다 👍

그레이스 2021-08-11 13:52   좋아요 1 | URL
미스함무라비
재밌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사이사이 법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고
좌배석 우배석 ... 이런거 당시 책 처음 나왔을때 읽고 알았어요^^
드라마도 재밌었구요

stella.K 2021-08-11 20:07   좋아요 1 | URL
엇, 언제 또 전업작가로? 근데 아직도 현직 부장 판사로 직함이 뜨길래...
맞아요. 첫 작품이 아니죠.
<미스 함무라비> 저도 드라마를 보려고 했는데 몇회 보다가 말았어요.
끝까지 안 본 걸 보면 재미가 딱히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인가 봅니다.

페크pek0501 2021-08-1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을 지난 2월에 구매했는데 아직 들춰보지 못했어요. ㅋ
읽다 만 책이 하나 늘어나는 게 싫어서 현재 읽고 있는 책들에 집중하려고요.
저까지 구매할 정도로 유명한 저자가 된 듯합니다. ^^**

stella.K 2021-08-12 19: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람 책은 언제고 한 권을 사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근데 극본은 좀 과유불급은 아닌가 싶어요.
전 요즘 도진기의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