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간 장마중 가뭄이랬다고 마른 장마가 계속 되더니 올해는 장마 값을 톡톡히 한다. 정말 비에 갇힌 느낌이다. 이런 날씨가 12일까지 갈거라고 하던데 이런 긴 장마는 지난 1987년의 기록을 깬 거라나 뭐라나. 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12일까지는 안 가길 바랄뿐이다.

 

어제는 일찍 자려고 했는데 tv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립없니 나타난다 홍반장>을 한다기에 안 볼 수가 없어서 봤다. 김주혁만 살아 있었어도 안 보거나 조금 보다가 말았을텐데 괜히 안 보면 서운할 것 같아 봤다. 

 

 

사실 그는 살아생전엔 딱히 좋아했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너무 일찍 죽었고 허망하게 죽었다. 죽고나니 생각나는 배우가 됐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제법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아직 그의 추도일이 되려면 몇달 남았는데 tv에선 왜 방송을 하는 건가 의아스러웠다. 별 생각없이 방송한 것 같다. 내가 너무 민감했나?

 

사실 이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본 건 아니다.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난다. 그땐 처음 봐서 그런가 그냥 재밌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일까 영화가 좀 별로란 생각이 든다. 뭐 촌스러운 건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는 결코 여성을 위하거나 배려한 작품이 아니다. 보고 있으면 은근 화가난다. 김주혁이 맡았던 홍반장을 위해 상대 배역인 윤혜진(엄정화)을 바보로 만드는 참 허접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을 이루려면 상대의 눈에 많이 띄라는 법칙이 있긴 하다. 영화는 이 법칙을 노골적으로 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 의사라면 나름 똑똑할 텐데 여기선 뭐하나 재대로 하는 것이 없는 멍청한 의사로 나온다. 그래서 위험할 때마다 홍반장이나와 해결해 주고 거기서 사랑을 느낀다는 컨셉인데 왜 여자는 도움 받기를 좋아하는 나약한 존재라고 19세기적 사고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준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지 사랑을 느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면 사랑할 거라고 착각하는가 보다.

 

더구나 홍반장도 그렇다. 그렇게 많이 여자를 도와줬는데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바보거나 고자이거나. 난 여자의 생김이나 재산과 학력 유무와 상관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하다면 그건 영웅심으로 똘똘뭉쳤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자는 더 못 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들어 혜진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뒷차에 받힌다. 그리 크게 흠이 난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만 받으려고 했는데 영화적 재미를 위해설까? 받힌 차가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양아치짓을 한다. 여자는 관용을 베풀려는 거였는데 그런 양아치가 도로 위를 질주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만만하게 나와선 안 되는 거였다. 또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관용을 베풀면 오해 받는다. 날 좋아하나 하고. 아무튼 그럴 땐 법대로 하지고 하곤 경찰이라도 불러댔어야 했다. 물론 그러면 여자가 빡빡하게 군다고 또 뭐라고 그러겠지. 우리나라 법체계가 여자에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해도 욕 먹고 저렇게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라면 여자는 무조건 처음부터 말랑말랑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치과 간호사는 홍반장에 대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데 어디서 듣고 썰을 푸는지도 명확치 않을뿐만 아니라 혜진은 그걸 꽤나 관심있게 듣고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대한 관심 보단 속되게 보인다. 더구나 홍반장네에서 술을 마시고 거기서 잠을 잔게 그렇게도 대단한 것이어야 하는 건지. 어떤 영화는 전혀 세월을 안타고 10년, 20년 뒤에 봐도 여전히 좋다고 감탄하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 평점도 좋고 칭찬일색이던데 문제 의식을 가지고 봐야지 무조건 좋은 게 좋다는 식은 좀....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감독이 썼을지도 모르지) 전혀 여물지도 않고 로맨틱 코미디라면 여성 관객을 겨냥했을텐데 도무지 어느 한 장면도 여성스러운 가치가 빛났던 장면이 없다. 세상은 나쁜 놈이 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여자를 구하는 건 남자 밖에 없다는 걸 애써 주입하려고 했다. 이런 허접한 영화는 정말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김주혁을 생각해 끝까지 봐주려고 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웬 공익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이 영화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영화였나 보다 예전에도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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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8-04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왜요. 댓글이란 게 원래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하는 건데요.
늘 제 서재에 무플이 안 되도록 항상 앞장 서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ㅎ

<새>를 했었군요. 원래 명작도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다잖아요.
운이 좋으셨네요. 그러고 보니 <새>도 그렇지만 히치콕의 영화를 본지가
꽤 되네요. 사춘기 때 <사이코> 보고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히치콕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 같아요.

비둘기 모여 있으면 좀 으시시하긴 하죠? 색깔도 그렇고.ㅋ

레삭매냐 2020-08-0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정말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제 영화 그리고 음악은 다 오래 전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되었네요.

대신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
으니, 감지덕지해야 할까요.

짚어주신 대로 인연이 없는 영화가
있더라구요. 아마 의지박약이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영화는 내리 달려야
하니깐요. 책은 뭐 읽다 말다를 거듭
해도 상관 없지만.

stella.K 2020-08-04 18:06   좋아요 1 | URL
의지박약...? 제가요...?
흥! 왕삐짐입니다. ㅋㅋ
그렇긴 하죠. 영화는 내리 달리는 맛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영화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가 그렇게 많아도 한 큐에 보기는 참 쉽지 않더군요.
책도 그렇긴 하지만 어쩌다 뇌에 청량감을 부여하는 책 만나면
영화나 음악은 잠시 꺼둬도 되죠.^^

레삭매냐 2020-08-04 15:21   좋아요 1 | URL
아니 무신 말쌈을...

ㅎㅎ 의지박약의 화신인 저
자신에 대한 자백인 것을 !!!

이래서 주어를 정확하게 써야
하는 거군요 ~

moonnight 2020-08-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영화 앞에 좀 보다가 짜증나서 껐던 기억 나요 -_-

stella.K 2020-08-04 14: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특히 이번에 보니까 엄정화를 완전 똑똑한 바보로
만들어 놨더군요. 열 받았어요.
모르긴 해도 감독이 가부장을 못 벗어난 사람은 아닌가 해요.

transient-guest 2020-08-07 0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당시에 이런 류의 코미디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영화는 발전도 엄청나게 했지만 시기별로 비슷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홍반장도 당시에 꽤 화제였는데 사실 그저 그랬어요.

stella.K 2020-08-07 14:05   좋아요 1 | URL
그랬나요? 암튼 이 영화 정말 빡쳤어요.
그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보이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