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케우치 히데키
출연: 아야세 하루카, 사카구치 켄타로
이 영화는 어찌보면 인간이 갖는
판타지를 제대로 건드려 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서 판타지이기도 하겠지만. 영화의 도입 부분이 얼핏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 속의 영화 주인공 미유키 공주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것을 볼
때 영화는 세월과 함께 옛 기억을 재소환하는데 최적화된 물건은 아닌가 싶다.
영화는 어느 영화사의 말단 직원인
켄지가 자신이 사랑한 흑백 고전 영화속의 주인공 미유키 공주를 평생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영화속 미유키 공주가 어느 날 영화속을 탈출하여 켄지가
사는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판타지고, 상상의 나래를 조금만 펼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또한 영화 감독이 꿈인 켄지는 미유키 공주와 있었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기도
한다.
이 영화는 스토리가 나름 영리하기도
하다. 켄지는 평생 영화 감독의 꿈을 이루지도 않았거니와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못한 채 오직 미유키 공주의 하인이요 연인으로 늙고 죽어간다.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속 미유키 공주를 사랑하니 굳이 그 꿈을 이룰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유키 공주를 사랑하는 한 그꿈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일뿐이다. 그건 어찌보면 현실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사랑하면 시간이나 현재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영화는 영화로서 한번
탄생하면 다소 빛이 바랄지 모르지만 시간을 초월한 물건이 된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산화되는 건 관객인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어느 시기에 본 영화가 생각나서 다시 소환해 본다는 건 건방진 생각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 번 본 영화는 무의식에 저장해 있다가 어느 날 그
영화가 무의식을 뚫고나와 보고 싶게 만들고 옛 추억을 생각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추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판타지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유키 공주가 영화에서 튀어 나온만큼 그녀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면 흑백으로 변해 다시
자신이 있던 영화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중에 둘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데 진짜 키스를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투명 유리 막을 사이에
두고 저렇게 간접 키스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체 사랑에 해당하는 조금의 스킨십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을까? 그게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할 수 있어도 인간은 체온을 가진 존재다. 사랑하면 만지고 싶고, 상대를
느끼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물론 그만큼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영화의 은유적 당부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관객인 우리가 영화를 기억하기 보단 영화가 우리를 기억해 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영화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유쾌한 물음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각자 달아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