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끝에 달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 읽기를 익힌 고집스럽고 내구력 있는 소수가 오랫동안 그러했듯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으리라 믿는다. 종이든 화면이든, 찾을 수 있다면어떻게든 읽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그 경험을공유하고 싶어 하기에, 그리고 아무리 막연하다 해도 그 공유가 중요하다고 느끼기에, 어떻게 해서든 책이 다음 세대에도 존재하도록만들고야 말 것이다. - P183
나는 실제로 할머니지만, 나에게 ‘누군가의 할머니‘라는 묘비는 주지 말라. 나에게 묘비가 있다면, 내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도 작가의 성별이 아니라 글의 우수함과 작품의 가치로 판단받는 책들에 내 이름이 박혀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 P170
시도하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은 아니지만, SF를 읽은 적이 없다면 SF를 쓸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을 읽은 적이 없어도SF를 잘 쓸 수 없기도 하다. 장르는 윤택한 방언과 같아, 그 언어를쓰면 어떤 것들을 특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편 문학 언어와의 연결을 포기해 버린다면 내집단에게만의미가 있는 은어가 되어 버린다. 장르를 완전히 벗어난 곳에서 유용한 본보기들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전복적이었던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 P171
소설 『플러시 Flush」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개의 마음속으로들어가는데, 말하자면 비인간의 뇌이자 외계의 정신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대단히 SF적이다. 다시 한 번, 그 책에서 내가 배운 것은정확하고 선명하고 고도로 선별된 세부 사항이 가진 힘이었다. 울프가 글을 쓰느라 앉은 추레한 안락의자 옆에서 자고 있는 개를 내려다보며 ‘무슨 꿈을 꾸고 있니?‘라고 생각하고 귀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바람 냄새를 맡으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개의 세상에서, 산에 나가서 토끼를 쫓고 있는 개………. - P172
화면으로 읽기는 종이로 읽기와 확실히 다르다. 다만 우리는아직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차이가 상당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종류의 읽기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거나,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 P177
우리가 왜 모 아니면 도를 택해야 하나? 그건 필요도 없고 파괴적일 때도 많은 방식이다. 컴퓨터는 2진법이라도, 우리는 아니다. - P183
문학 소설을 장르소설과 대립시킬 때의 문제점은, 소설 종류의 합리적인 차이를 말하는 척하면서 비합리적인 가치 판단을숨긴다는 겁니다. 문학이 우월하고, 장르가 열등하다고 말이죠. 이건 편견에 불과해요. 우리는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지적인 토론을 해야 합니다. 많은 영문학과가 다가오는 우주선을 다 쏘아 떨어뜨려서 담쟁이 우거진 상아탑을 지키려는 시도를 그만뒀습니다.많은 비평가가 많은 문학이 근대 리얼리즘의 성스러운 숲 바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문학과 장르의 대립은 남았고, 그게 남아 있는 한 잘못된 단정적 가치 판단도들러붙어 있을 겁니다. - P186
마지막 문장을 읽고 소름이 쫙 끼쳤다.아주 오랜만에 하루동안 다 읽은 책.처음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조금 떠올랐다. 하지만 덮는 순간 드는 생각은 이건 전혀 다른 아주 독창적인 소설이라는 것.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그랬다. (39금;)
인간의 영향력을 아주 많이 신뢰하는 나로서는, 꽃처럼바닥까지 피어나는 몇몇 라르고의 개화 속에서, 빠르게 연주하는 알레그로(allegro)뿐 아니라 비할 데 없이 경쾌한(allègre)피날레의 더욱 큰 만족감 속에서, 라 몰레의 부재가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어 악기조차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는 걸 느낄 수있었습니다. - P145
오직 우리에게만 보이는그 빛깔을 우리는 결코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없으며, 그래서그들이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는 이런 지나간 물건들에 대해,우리는 그것이 그들이 보아 왔던 것과 전혀 닮지 않으며, 또우리 자신도 어떤 감동 없이는 바라볼 수 없다고, 마음속에 꺼진 등불의 그림자나 더 이상 꽃피지 않을 소사나무의 향기가얼마 동안 존속하는 것도 바로 우리 사유의 존재에 달렸다고생각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ㅡ관념론의 원칙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라고 말한다. - P161
내 다정한 친구, 라 무세,아! 제기랄! 이 무슨 날씨라는 말인가!란데리레트!우린 비로 멸망할 걸세.그러자 라 무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오.우리의 생명은 안전하다네.소돔의 족속이니까,우린 불길로만 멸망할 걸세.란데리리! - P196
편견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존재하며, 편향은 생략을 통해 드러난다.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