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습관이란 보통 부조리한 측면과 관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찬란한 행동은 대개 간헐적으로 하는 법이다. - P73
편집증적인 사람이 스스로에게 온갖 쾌락을 금하고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미친 삶,이런 삶은 가장 변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십 년마다, 만약호기심이 있다면, 삶을 즐길 시각에는 잠을 자고, 거리에서살해당할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시각에는 외출하고,항상 감기에 걸릴까 봐 조심하면서도 더운 날 찬 음료를 마시는 불행한 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삶을 제대로바꾸기 위해서는 단 하루 작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삶은 보통 에너지가 결핍된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악덕은 이 단조로운 삶의 또다른 양상으로, 작은 의지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덜 비참해질것이다. - P73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 P37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들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 P39
정체성의 정치가 문제적인 것은, 사회적 범주와 사회적 그룹들을 동질화, 자연화하여,경계의 이동과 내부의 권력 차이와 이해 갈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 P41
여성주의는 성별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다른 사회적 모순과 성차별의 관계에 주목한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그 어느 정치학보다도 다른 사회적 차별에 매우 민감하며,다양한 피억압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연대와 제휴의 정치이다. - P41
인간의고통, 사회적 불평등은 계급, 민족 등 어느 한 가지 사회적 요인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하다. 계급이든, 민족이든, 젠더 모순이든 모두다른 사회 문제와 관련성 속에서 작동한다. - P42
유사 이래 모든 문학, 예술 작품의 지은이들은 실연당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를 버렸도다!" 이런 작품은 없다. 대부분의 예술은"그가 나를 떠났구나."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것의구조와 원인, 역사를 규명하려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 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 P43
이처럼 얇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 (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 P45
고통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권태다. - P47
지그문트 프로이트,카를 마르크스,자크 라캉,피에르 부르디외,주디스 버틀러 - P53
여성주의는 남성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유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제까지"여성주의는 편파적이고 나는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다가, 자신의사고 역시 편파적이며 더구나 강자의 경험을 보편과 객관으로 믿어 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P53
사실, 여성주의는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아니,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무전제의 전제에서 출발하지도 않고, 그 어떤 전제도 없는 청중들을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런 청중은 없기때문이다.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 1932~, 서구 전통 철학의‘남근이성중심주의‘ 사유를 비판하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철학자)의 말대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P54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 P17
특히, 논쟁이나 글쓰기, 말하기에 관심 있는 이라면 페미니즘을공부하길 권한다. 논쟁은 승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지식)과 그러한 입장이 형성된 과정을 교환하는 것이다지식 형성 과정을 상호 교환하면 논쟁은 그 자체로 공부가 되지만,경험하다시피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를 포기(?)하고논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상대방의 앎의 경로, 즉 상대방 논리의전제를 파악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배 담론 내부에서 지식을 획득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페미니즘은 지식의 형성 과정, 권력의 작동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학문이자 실천이다. - P18
젠더를 인식론으로 접근하면, 젠더는 ‘여성 문제 (question)‘가 아니라 ‘남성 문제(problem)‘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백인 남성이 써온 모든 역사는 학습과 숭배가 아니라 비판과 문제 제기의 대상이될 것이다. 모든 주류의 상징으로서 ‘남성‘은 인식 주체에서 인식대상으로 강등되고, 그들의 경험과 언어는 기원, 본질, 보편자의 지위를 잃고 특수화, 사소화, 타자화될 것이다. 여성보다 두 배 많은노동을 하면서도 2분의 1의 임금을 받을 것이며, 여성들의 섹스 상대로 사고 팔리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집에서 두들겨 맞고, 전시나평시에 수시로 집단 강간당할 것이다. 놀라지 말자, 이는 그 누구도바라는 세상이 아니고, 실현 불가능한 ‘공상 과학‘이다. 단지, 젠더가 이슈가 아니라 인식론으로 인식되어 혁명의 ‘이론적 지침‘이 될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를 잠시 상상해본 것이다. - P20
우리는 현실에서도피하거나 현실 반대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다른(alternative) 현실을 살 수 있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3
감사는 예절이나 긍정적 태도,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라 세상에대한 접근 방식이다. 비판 의식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감사, 겸손한 마음에서 출발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 P27
아는 것은 상처 받는 것 - P29
어떤 사람에게 절절한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 P29
가부장제(인종주의, 계급 차별……)는 일종의 색안경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육안이 되어버린 그 색안경을 벗어야, 여성의 현실이 보인다. - P30
아직도 여성주의를 아는 것 자체로 비난받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지식은 아는 것이 힘이지만,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이다. 두 경우모두 지식이 특정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위계화되어 있음을보여준다. - P31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사람을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 P32
남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일치하지만, 여성의 삶과 기존 언어는불일치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된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 P32
모든 이항 대립 논리는 거의 필연적으로 성별적으로 작동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듯이 낮과 밤은 순환하고 연결되며 상호 의존하는 것인데도, 가부장제 사유 체계는 그것을 대립으로 받아들인다.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한 해질녘 황혼과 동트는 여명이아름다운 것은 경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이동하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뜻한다. 대립은 서로를 소멸시킬 뿐이다. - P33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 P36
저무는 해가 추억을 통해 과거의 상쾌한 분위기 속으로 나를 다시 빠져들게 하면서 오르페우스가 이 지상에는 낯선, 그미묘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와 같은 감미로움을 느끼며, 나는 샹젤리제의 대기를 호흡했다. - P48
우리가 흔히농담으로 하는 말들은 대개는 그 농담과는 반대로, 우리가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지만 어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으며, 더 나아가 우리와 얘기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농담하는 걸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은밀한 기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50
나는 흐릿한 안개가 드리워진 진줏빛 회색의 오후 끝자락처럼, 거기서 발산되는 분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가 입은 실내복이 노란색과 빨간색 불꽃이 그려진중국식 가운이었을 경우, 나는 불붙은 석양을 감상하듯 그 옷을 바라보곤 했다. 이런 옷차림은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평범한 장식이 아니라, 그날의 날씨나 어떤 시각에 고유한빛처럼 주어진 시적 현실이었다.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