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러드는 한 마디로 혼자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다.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짐승이라고 해야 할지부터 헷갈릴 정도로 원초적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그는 늘 라이플을 들고 다니고 먹고 마시고 마주치는 존재들과 말을 섞지만 일단 말을 많이 하지도 않을 뿐더러 고통도 그리 심하게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어릴 때 그의 엄마는 일찍이 도망가고 아빠는 목을 매달아 죽었는데 벨러드는 그 끔찍한 결과물을 어린 나이에 눈에 담아야 했다. 그 대목에서 이미 이 소설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야말로 프로파일의 도입부가 아닌가! 하지만 밸러드는 독자를 비웃듯 예상도 경계도 훌쩍 뛰어넘는다. 


들에서 빛 하나가 타닥타닥하며 떠오르더니 파란 꼬리가 달린 로켓이 큰개자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로켓은 하늘을 향해 젖혀진 그들의 얼굴 위 높은 곳에서 터졌고, 불이 붙은 글리세린 비말들이 밤을 가로질러 확 퍼지다가 느슨하게 풀리는 뜨거운 빛 띠들이 되어 하늘을 따라 자취를 남기면서 내려오다 곧 타버리고 무無로 돌아갔다.  - P8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더 로드'를 영화로 봤었는데 그 두 작품 모두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뭔가 묘하게 독특하고 기분 나빠지는 분위기. 그럼에도 끝까지 집중했던 작품들이었는데 '신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241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쉽게 읽히지 않고 쉽게 받아들여 지지도 않는다. 이 끔찍한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테네시주 서비어빌이란 곳의 부랑자? 밸러드는 징역을 살고 나온 뒤 27의 나이에 지내던 곳에서도 쫒겨났다. 마치 세상에 버려진 밸러드처럼 낡아 뼈대만 남은 오두막에서 겨우 몸을 뉘었지만 그마저도 불이 나버려 재만 남고 사라진다. 이제 산으로 올라가 축축한 동굴을 거처로 삼은 그는 경계밖으로 쫒겨난 짐승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저녁 불 옆의 요에 누워 있던 밸러드는 작은 굴의 어둠으로부터 박쥐들이 나와 하데스에서솟아오르는 영혼들처럼 재와 연기 속에서 날개를 거칠게 퍼덕이며 머리 위의 구멍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박쥐들이 사라진 곳에는 차가운 별무리가 연기 구멍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뻗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살피며 저것들은, 또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생각했다.- P173


그에 관해 떠도는 소문들이 이 사람 입에서 저사람 입으로 한 번씩 페이지를 장식한다. 누군가의 입에 끔찍한 이야기로 오르내리는 인간. 그가 바로 밸러드다. 이 대목에서는 언뜻 조셉 콘래드가 떠오른다. 어두운 밤, 목소리를 낯춰 전달하게 되는 정상과 빛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의 속삭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야생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그런 시인처럼. 덤덤하고 무심하게 코맥 매카시는 밸러드를 표현하고 있다. 때때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리게 되는 시적인 묘사로 차가운 잿빛에 마력을 더한다. 드물게 헛웃음을 유발하는 순간들은 덤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끔씩 "오 맙소사"를 연발했다. 얼어붙은 밤 하늘에 대고 욕지기를 퍼붓는 이 남자는 영화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와도 닮았다. 매카시는 짧막한 사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 몇 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범죄를 범인의 곁에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는 구덩이에서 걸어나와 밝아진 날을 보면서 너무 지쳐 흐느낄 뻔했다. 죽어 전설이 된 그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숲은 서리꽃 화환을 두르고 있었으며 잡초가 하얀 수정 환상들로부터 동굴 바닥의 돌 레이스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그는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는 악마가 아니라 가끔 제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오래전에 벗어던진 자아였다.  - P192

  성서의 '광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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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04 18:2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바르뎀이 저는 너무 혐오스럽고 오싹했는데 , 벨라드도 비슷한 유형의 인물인가봐요. 미미님이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그 범죄가 궁금해집니다 ~

미미 2021-11-04 18:29   좋아요 8 | URL
아아 이건 ‘19금‘이나 ‘청불‘로도 부족하고 ‘혐오주의‘딱지를 붙여야할 그런 대목들이 있어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하네요.(⑅σ̑ᴗσ̑)ೖ♡

페넬로페 2021-11-04 18: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밸러드가 어떤 존재일지 상상이 가네요.
경계밖으로 내몰리는 사람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같기도 합니다. 실제 사건이 어떤건지도 궁금합니다. 아마 끔찍할 듯 해요^^

미미 2021-11-04 18:52   좋아요 6 | URL
여기 일부러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쓰지 않았어요. 끔찍하기도 하고 그 단어들로 이 작품이 규정되어버릴 우려가 있을듯 해서요. 소설에서 이런 범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은하는데 달갑지 않은건 분명합니다(✿ >︡ . <︠ )♡

coolcat329 2021-11-04 19: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길지 않은 소설이 쉽게 읽히지도 않고 공감도 안된다니 괴로운 독서였겠어요.ㅠ
그래도 얼마나 끔찍한 인물일지 궁금하네요.

미미 2021-11-04 19:44   좋아요 5 | URL
그럼에도 시적인 묘사가 무척 매력적이고 강렬해서(몇몇곳은 읽고 또 읽음)별 5개를 줘야할지 잠시 망설였어요. 서술 방식 자체가 좀 독특해요 추천하기는 범죄요소땜 망설여지는데 이인간이 그래서 어찌될까 끝까지 보게 됩니다. 실험적인 작품에 도전하고 싶으시면..
( ´・֊・` )フッ♡

Falstaff 2021-11-04 19:4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몰라요, 몰라.
전 하여튼 매카시, 이제 손절입니다.

미미 2021-11-04 20:00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핏빛 자오선>이랑 <카운슬러>두 권은 읽어보려고요.(๑>ᴗ<๑)♡

새파랑 2021-11-04 19: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인간인지 짐승인지 고민이 되는 책이군요. 최신 트렌드 인가봐요 ^^ 간만에 듣는 러브 허츠~!!

미미 2021-11-04 20:03   좋아요 6 | URL
자꾸 어둠의 자식들에 손이 가네요ㅎㅎㅎ이것참! 가사나 멜로디가 이 인물에게 딱인듯해요(∩_∩)♡

붕붕툐툐 2021-11-04 21: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제2의 성 이후에 완전 소설 달리시네용? 그것도 좀 어두운 소설?ㅎㅎ 미미님이 페이지가 안 넘어가신다니 읽기는 좀 힘들거 같은데 너무 궁금하긴 하네용~

미미 2021-11-04 21:47   좋아요 3 | URL
(뜨끔)그러게요ㅋ자꾸 극단적인 인물들에 손이가서 저도 지금 제가 왜이러나 고민?하는 중입니다ㅋㅋㅋㅋ다음은 꼭 평범한 작품으로!ʕ; •`ᴥ•´ʔ♡공쟝쟝님 말씀대로 <제2의성>글이 작아서 다른 책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1-11-04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더 로드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었군요?
음....미미님의 리뷰를 읽어 보니 더 급 땡기네요?ㅋㅋㅋ
저번엔 잠자냥님 서재에서 읽어 보고 한 번 읽어봐야지~싶었는데....두 분은 독서취향이 비슷하신가 봅니다~^^
이래서 제겐 읽어야 할 책들이 또 늘어나게 되구요ㅋㅋㅋ

미미 2021-11-04 21:55   좋아요 4 | URL
나무님~♡ 이 책은 아주 끔찍한 범죄가 담겨 있어서 자신있게 추천드리진 못하겠어요ㅋㅋㅋㅋ힌트 드리자면 성범죄입니다ㅠ잠자냥님 리뷰보고 따라 읽었는데 약간 그부분에서 저는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개인적으로는 시적인 묘사들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꼭 재독해야지싶은 작품이긴합니다ㅋㅋㅋʚ(ȉˬȉ⁎)ɞ˒˒♡

서니데이 2021-11-04 2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하드고어할 분위기네요.
미미님, 잘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미미 2021-11-04 22:0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어떤 분은 미국 남부고딕 스타일이라고도 하던데 영화장르로는 말씀하신 하드보일드도 적절할것같고요 하드고어의 기미도 아주 조금은 있습니다.(솔직히 장르구분 잘 안되는 미미)서니데이님 덕분에 빵터짐요ㅋㅋ(๑˃̵ᴗ˂̵)♡ 굿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11-04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영목 번역은 꼭 챙겨보는데 고딕소설이라고 해서 주저하고 있어요^^
누보로망, 고딕소설은 안 맞는듯요;;

미미 2021-11-04 22:29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번역자가 정영목님이길래 반가웠어요! 고딕소설이라 고민되신다면 패스하시는 것도 나쁘지않을 듯합니다. 추천드리기가 참 힘든작품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읽어볼만 했지만 분명 호불호가 갈릴것같아요.(⭒•͈ 𓎺 •͈ )♡

그레이스 2021-11-04 22:34   좋아요 2 | URL
미미님 가이드 감사합니다 ~♡

기억의집 2021-11-04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카시의 신작인가요?? 저도 맥카시 작품 몇 권 읽었는데.. 이야기는 기억 안 나지만그 때 느낌이 와일드하면서도 드라이하다는 느낌은 남아 있어요. 꾸준히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지만 관심은 언제나 가요!!!

미미 2021-11-04 23:49   좋아요 1 | URL
1970년대 썼던 작품인데 이번에 국내에 번역,출간되었어요. 특히 좋았던 포인트가 몇 군데 있었는데 평이한 내용이라 글에 담지 못해서 아쉬워요. 네! 이 작품에도 와일드 하면서도 드라이한 느낌이 있는데 유독 그런 부분이 저도 기억에 남았어요. 끔찍한 범죄 장면이 있지만 읽어보셨고 관심있으시다면 도전해보세요(◍•ᴗ•◍)♡

기억의집 2021-11-04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맥카시는 언제나 총이 빠지지 않네요. 미미님 글 읽으면서 문득 자신의 뗄 수 없는 또 다른 팔인가 하는 생각이…

미미 2021-11-04 23:45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다른 작품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남부고딕소설이라 그런가봐요. 서부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린대요ㅎㅎ

잠자냥 2021-11-04 2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으 저는 아무래도 이 작가는 제 취향이 아닌 듯합니다. 사놓은 책은 마저 읽겠지만 그 후로는…… 암튼 그 장면(?) 사건(?)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은….

미미 2021-11-05 00:10   좋아요 1 | URL
아웅..저도 그 장면들이 힘들더라고요. 소설에서 이 범죄를 처음 읽은ㅠ 역시 영화보다 소설이 멘탈타격이 크구나 느꼈어요. 활자의 위력! 찾아보니 이런 사건에 관해 매카시가 접하고 나서 쓴 소설이더라구요. 그 사건의 핵심 요소였나봐요.거시기가;; 아웅참...
( ु⁎ᴗ_ᴗ⁎)ु♡

바람돌이 2021-11-05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맥 매카시 책 딱 한권 모두가 예쁜 말들 봤는데 말씀하시는 책들과 완전 다른 분위기에요. 저는 너무 좋아서 코맥 매카시 급관심가고 있는 작가인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국경 3부작 일단 읽어보고 다른 책들은 판단해봐야겠어요. ^^

미미 2021-11-05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작품이 첫 책인데 매운맛을 선택했나봐요ㅎㅎ바람돌이님의 국경 3부작 리뷰 기대할께요( ^o^)♡

독서괭 2021-11-05 0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카시 한권도 안 읽어본 사람인데… 혐오주의 수준이라 하시니 으윽 이 책은 손이 안 갈 것 같네요. 미미님 제2의성을 뛰어넘으시니 독서력이 더 업!!ㅎㅎ

미미 2021-11-05 09:22   좋아요 1 | URL
범죄에 관한 장면만요ㅎㅎ 나머지는 저는 볼만했고 시적인 요소가 특히 좋았고 웃긴 내용들도 좀 여기저기 있어요.ㅎㅎㅎ 제2의성~쵝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