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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OUT 유럽예술문화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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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를 테이크 아웃이라니 제목이 신박하다. 책으로 여행을 떠나 보고 기회가 주어져 직접 그곳을 여행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처음 떠난 유럽 여행에서 맛 본 에스프레소가 생각난다.

 

헨델을 존경한 바흐는 그를 만나기 위하여 두 번이나 애를 썼지만 두 번 다 만남은 무산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병을 앓고 같은 사인으로 죽었다. 둘 모두가 백내장 때문이었는데 시술을 집도한 의사가 동일인이었다. 돌팔이 의사 테일러가 문제의 그 사람이다. 그 사람만 없었다면 노년의 바흐와 헨델이 만든 원숙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색스폰은 벨기에 사람 아돌프 색스가 1846년 발명한 악기다. 색소폰을 잡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제대로 연주하고픈 버킷 리스트 곡이다. 목관악기 중 플루트만이 유일하게 리드를 사용하지 않고 입술 바람을 그대로 홀에 밀어 넣는 구조이기에 그렇다. 색소폰에 얽힌 저자의 에피소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절반에서 멈추었을까? 당시 악성으로 추앙받는 베토벤이 4악장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 시대에 다소 쌩뚱맞게 2악장만으로 구성된 교향곡이 있다.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은 그렇게 2악장으로만 끝나 미완성 교향곡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베토벤 사망 후 슈베르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죽어가며 베토벤 이름을 부를 정도로 베토벤 바라기였다. 죽어서는 비엔나 중앙 묘지의 베토벤 바로 옆에 묻히는 영예를 안았다.

 

사후 가장 비싼 그림은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살바토르 문디>라는 작품이다. 2017년 뉴욕 경매에서 45,030만 달러에 거래가 되었다. 라틴어로 세계의 구원자란 뜻으로 예수를 가리킨다. 예술품이 돈으로 묶이는 것은 예술 본연적인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 같아 찜찜하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에술품을 감상하고 행복해진다면 의미 또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렌체 두오모라 불리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지붕인 두오모는 건축 시 세계 최대의 난제였다. 난제의 시작은 성당의 단을 크게 만들어 당시로선 그 천정을 우아하게 메꿀 두오모를 제작할 기술이 없었다. 1296년 착공한 성당은 다른 공사는 마쳤지만 두오모는 없이 뻥 뚫린 채로 50년 넘게 방치되어 왔다. 코시모 메디치는 두오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를 찾았다. 16년 만에 완성했는데 코시모와 브루넬레스키의 합작으로 오늘날까지 거대하고 멋진 피렌체의 렌드마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과천에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소개한다. 유족은 그의 이름으로 평생 그가 수집한 23천여 점의 미술품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 박물관 등에 조건 없이 기증을 하였다. 2027년 서울시 송현동, 그의 모든 미술품이 전시될 이건희 미술관(기증관)’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 앞의 생>의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라 불리는 작가의 엄마가 대단하다. 멘델스존은 6개월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햇살 좋은 그곳의 풍경과 예술, 사람들에게 흠뻑 빠져 회화적인 그 인상을 음악으로 남겼다. 괴테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그 감상을 본업인 글로 남겼는데 <파우스트><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셰익스피어는 간 적이 없다고 하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10편의 작품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것이다. 리처드 폴 로가 댜큐아도 같은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을 출간한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사실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갔다면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문이 될 것이다. 누군가 유럽 여행을 처음으로 간다고 하면 그 방문지 중 십중팔구까진 아니더라도 이탈리아의 로마가 들어 있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탈리아 기행]을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못 읽고 있는데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달콤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이 책은 저자의 ‘TAKEOUT’ 시리즈 첫 책이다. TAKEOUT 유럽역사문명, TAKEOUT 일본근대사(가제) 등이 나온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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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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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림 읽어주는 수녀장요세파 저자가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다. 미술관의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똑같은 그림이라도 안내자가 곁에 있을 때 감상이 풍요로워진다. 여행에서 본 그림들을 책에서 읽으니 무척 반가웠다. 저자의 창을 두드리는 것은 바로 그림들이다.

 

예수님 이콘은 아케로비타라고 불리는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유는 채찍질과 매질을 당한 후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베로니카 여인이 울며 따라가다 자신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렸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얼굴이 남았기 때문이다. 보통 예수님의 목을 그리지 않는 이유도 이런 전승 때문이다.

 

예수를 넘기러 온 유다는 예수를 온몸으로 안으며 입맞춤하려고 한다. 예수의 눈을 거의 부릅뜬 눈으로 응시한다. 예수는 오히려 어떤 행동도 할 의지가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있다. 배반할 때 사람은 보통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마련이고, 그것을 덮으려고 오히려 자신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끌어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유다라는 인물과 <토마스의 의심>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토마스가 같은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석창우 화백의 그림과의 첫 대면, 설명이 필요없이 그대로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이다. 화백의 삶을 알게 되면서 깊이 깨닫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두 팔이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고 또 놀랐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의수에 갈고리를 달고 그 갈고리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22,000볼트 전기 감전으로 12번 수술 후 두 팔을 잃게 되었을 때, 이분의 아내는 이렇게 되었으니 살림은 내게 맡기고 당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라고 했단다. 대단한 두 부부 이야기다.





마티스는 말년에 시력이 손상되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색종이로 오려 붙여 작품을 완성했다. 신체의 비율이 영 맞지 않는데도 이상하지 않고 날아오르는 듯, 떨어지는 듯 참 자유롭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대부분 그림은 일상의 평범한 것을 소재로 하고 대상도 낮은 신분의 서민들이다. 그림 창문 하나가 깨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깨진 창문으로 빛이 더 선명하게 쏟아져 들어오며 깨진 창문도 한 역할을 한다.

 

<울고 있는 노인>이라는 제목의 고흐 그림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노인, 남은 것, 곁에 남은 사람 하나 없이 혹은 버림받고 요양시설에서 타인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한 노인의 절절한 울음이 그림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고흐는 생명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모든 것을 잃고, 상처 속에 우는 노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불꽃을 발견한 것이다.

 

고야는 스페인의 유명한 궁정화가였다. 도금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야심만만한 인물로 최고의 궁정화가다. 40세가 되었을 때 앓은 병으로 소리를 잃어버리자 또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묶여 있는 노예>라는 제목으로 미켈란젤로의 중반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미완성이라고 보는 작품인데 사실 젊은 석수 3명이 3시간에 걸쳐 해낼 양을 혼자서 단 15분 만에 단단한 돌을 자신이 원하는 형상대로 쪼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리아 레핀의 작품은 저자가 처음 그림을 접했을 때의 막막함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림의 4분의 1은 차지할 듯한 황토 바닥 공간은 인간이 그어놓은 차별의 영역이다. 실제 현실에서 종교가 하느님 사랑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악역만은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게 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먼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고흐의 그림 중 드물게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인데 침대에 들어가 누워 쉬고 싶은 느낌이 든다.

 

한 사람의 생을 훑어보는 일은 그가 누구든, 어떤 삶을 살았든 언제나 장엄함이 동반된다. 틴토레토라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의 2점의 자화상이다. 하나는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다른 하나는 황혼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노년이다. <마지막 길>도 함께라면 덜 적막할 것 같다고 말한다.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유명한 <천지창조>, 제단 위에 그린 <최후의 심판>을 책에서 만나보니 미켈란젤로의 열정과 노고에 대해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에게 그림 읽기는 기도행위와 일치하고 구도자의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창을 두드리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해주는 치유와 위로의 그림 읽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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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오륜서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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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변곡점 오십에는 후반기를 준비하며 인생관을 정립해야 한다. 저자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 주목했다. 무사시는 일본 전국시대 말기인 1582년에 태어나 도쿠가와 막부 초기 1645년에 64세로 생을 마감한 불패의 검객이다. 성장기의 수련 과정, 청년기의 실전 경험, 장년기의 은둔에 이어 만년에 자신의 검술 비법, 승부관, 인생관을 집약한 [오륜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책에는 1부 땅의 장, 2부 물의 장, 3부 불의 장, 4부 바람의 장, 5부 하늘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오십에 꼭 기억해야 할 오륜서의 35가지 말이 담겨 있다. 부록에는 [오륜서], [병법 35개조], [독행도]가 수록되었다. [오륜서]를 관통하는 인생관, 승부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교훈이다. 소재는 상대를 먼저 베는 검법이지만, 핵심 주제는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실전에서 승리하고 궁극적으로 높은 경지의 정신 세계로 나아가는 인생 철학이다.

 

무사는 일대일로 싸우든, 군사를 이끌고 싸우든 반드시 승리를 목표로 삼는다. 그는 주군과 자신을 위해 싸우고 승리함으로써 명예를 얻는다. 요컨대 병법의 도는 곧 승리의 도라고 할 수 있다.p22

 

무사시는 병법의 도를 꾸준히 수련하면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비록 무사가 아닐지라도 꾸준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배우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인 적재적소의 안목은 주어진 목표 달성에 적합한 사람을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품성과 능력을 정확하게 보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 역학관계도 이해하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팀을 구성해 이끌어가는 능력이 중요하다.

 

동양철학자 조용헌은 인생을 살면서 운이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다. 좋을 때는 밖에 나가서 도움이 되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나쁠 때는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운이 나쁠 때는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수양하라.”라고 조언한다.

 

검을 휘두를 때는 되도록 마음을 크고 넓게 가지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 다만 상대방을 확실히 쓰러뜨리고자 할 때는 오로지 상대방을 쓰러뜨리겠다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듯 싸움을 할 때는 상황에 따라 마음을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책만 많이 읽고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황된 경우가 많고 남이 한 이야기를 변주해 자신의 생각인 양 말한다. 반면 경험만 있고 책으로 얻은 지식이 없으면 협소한 생각에 갇혀 아집에 빠지기 쉽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선조의 말씀을 깊이 새겨 병법의 도를 깨우치는 게 무사의 소임임을 깨닫고 느긋하게 정진하라. 바위 같은 마음이란 흔들림 없이 강하고 굳센 마음이다. 무사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이 강인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사시는 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대방을 쓰러뜨리긴 쉽다. 그러므로 싸움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적절한 방법을 강구해 승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

 

빠른 때를 알고 늦은 때를 알며, 피해야 하는 때와 피할 수 없는 때를 알아야 한다. ‘때를 아는 마음이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는 통찰력을 의미하며, ‘직통(直通)의 마음이라고 한다.-병법 35개조 ‘35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라는 격언을 자주 접했다. 기원전 3세기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며 어려움을 겪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라고 질문하자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는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은 변하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기본이 있다. 석기시대의 돌멩이가 21세기에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해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오륜서]의 핵심은 현실 경험에 기반한 자신감과 평정심이 승리의 원동력이라는 경험적 교훈이다. 무사시가 평생을 추구한 검도의 지향점은 하늘이었다.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이 있으며, 물길이 막히면 기다렸다가 넘어가는 인내심이 있다. [오십에 읽는 오륜서]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해 나가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머리맡에 두고 두고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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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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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독자가 사랑한 [덕혜옹주] 작가가 또 다른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펴냈다. [잃어버린 집]은 덕혜옹주의 오빠이자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그의 아들 이구의 아픈 생을 담았다. 덕혜옹주 영화를 보고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설은 조선의 황세자 이은과 일본 나시모토 왕녀 마사코는 정략결혼을 하였다. 천황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고 영왕과의 결혼은 두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 마사코가 본 이은은 군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눈빛이 따뜻한 외로운 청년이었다.

 

고종이 승하하시고 약혼하고 4년 만에 결혼이 이루어졌다. 마사코는 조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조선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풍습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왕자를 낳았고 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조선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되었다. 이왕가의 혈통을 끊으려는 음모이거나 이은과 혼사가 오갔던 민갑완 측의 원한이 아닐까 소문이 돌았다. 마사코는 가기 싫었던 조선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은 가슴속에만 잠재워야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을 겪었다. 일본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조선인의 숫자가 늘어났다. 이은의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두 번이나 청년을 숨겨주기도 하였다. 다이쇼 천황이 죽자 쇼와시대가 열렸지만 조선은 그렇지 못했기에 이은은 일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마사코는 이탈리아가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여행은 일본 생활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했지만 감시의 눈길은 여전했다. 이은의 머릿속은 온통 조선 독립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진 왕자를 잃은 후 10년 만에 이구가 태어났다. 이구는 아카사카 저택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어릴 때 아버지는 집에서 가장 크고 넓은 방을 수리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은은 열한 살 나이에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본으로 왔던 것처럼 구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후회 없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책임과 의지를 가지고 네 뜻을 펼쳐라고 했다.

 

세상은 늘 풍파로 출렁거렸다. 한국전쟁이 나서 덕혜옹주가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었고 사촌 형 이우는 원자 폭탄에 맞아 죽었다. 일본도 이은을 버렸다. 패전 이후 화족 제도를 없애고 재산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가. 이 대통령은 도쿄에 있는 이은의 저택이 국유이므로 반환하라고 독촉했지만, 아카사카 저택은 사유 재산이므로 몰수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이은은 결국 아카사카 저택을 헐값으로 팔게 되었다. 지킬 수 없는 것은 조국만이 아니었고, 저택도 지켜낼 수 없었던 집. ‘사라진 집’. ‘잃어버린 집이었다.

 

유은애와 오정수는 같이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은애가 이구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구는 미국에서 줄리아 멀록을 만난다. 식사를 같이 하고 건축과 예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우리 가족은 이미 다국적이다. 줄리아도 우크라이나 여자이고, 어머니도 일본 여자다. 1963년 처음으로 방문한 조국은 그들를 환영했다. 줄리아는 낙선재에서 천진스럽게 말을 했다. 나는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구는 교수로 부임했으며 종친의 역할과 건축 관련 사업 등으로 바빴다. 줄리아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대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종친들은 줄리아와의 이별을 종용했다. 외로운 외국 생활에서 빛을 준 여인을 내치다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줄리아는 옷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은숙이라는 아이를 입양했다. 이구와의 사이는 벌어졌고 줄리아는 떠나기로 했다. 줄리아와 이혼 후 아리타 키누코와 재혼하였다. 마사코의 앞에만 나타나는 아리사의 존재는 신비롭다. 사랑은 상처도 껴안는다고 했다.

 

영친왕 이은과 마사코 부부가 거주하던 아카사카 저택이 궁금했는데 현재는 호텔로 바뀌었다. 이구는 아카사카 저택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한 방에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죽었지만, 낙선재 마루에 빈청이 차려졌다. 대한제국 황족에 대한 예의상 그렇게 했으리라.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 마음이 씁쓸하다.

 

줄리아는 아이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림이었다. 꿈에서도 그리운 낙선재는 그곳이 줄리아에게 감옥이었다 해도 행복했던 공간이었다. 그녀의 편지에는 당신(이구)이 늘 존경하고 그리워했던 르 코르뷔지에처럼 땅 위에 멋진 집을 짓자고 한다. 대한제국의 비극, 마사코에 이어 줄리아의 비애, 그들의 사랑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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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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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는 뱀파이어, 어린 시절부터 그 존재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느껴 온 저자는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여행 에세이를 쓰기 위해 방문한 일본 혼슈 중서부에 위치한 기후현 구조하치만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은 이와쿠라에서 매년 우주로 떠나는 허주의 승선원을 선발하는 캠프가 열리고, 열네 살 다카다 나치는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4년 만에 이와쿠라를 방문한다. 울창한 산의 경사면에 거대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허주(虛舟)이라고 했다. ‘허주 승선원들의 신이 여기 계시는 것이고 경배를 드리지 않으면 캠프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치의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먼 친척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캠프에 관한 예비지식이 없었다. 이와쿠라에서 여관을 경영하는 엄마의 사촌 히사오 이모와 사촌 후카시를 만났다. 캠프가 열리는 동안 머물러야 한다. 성에 가는 건 처음인데 장미 덤불이 경사면에 가득하고 독한 장미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 달콤하고 흉악한 향기가 위 속에서 역류하는 듯했다. 피를 토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변질이 빠르다고 했다.

 

캔 따개 같은 금속 덩어리를 통로라고 하는데 팔 한가운데를 찔러 피먹임을 한다. 식사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남의 피를 먹지 않는 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후카시는 팔을 내밀며 피를 먹으라고 말했다. 나치는 허주 승선원이 되기도 싫고 남의 피도 거부하고 있었다.

 

똑똑한 장미는 피어나서, 시들고, 어김없이 져 버리는 꽃이야. 그래서 현명한 거야. 하지만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아. 피어난 채 영원히지지 않고, 말라 죽지도 않아. 그래서 어리석은 장미라고 하는 거지.p58

 

최초의 배가 추락했다고 하는 나비 계곡에 가면 변질이 빨라진다. 나치 엄마 나쓰 씨도 허주 승선원이었다. 커다란 바위 그늘에서 엄마가 발견되었고 아빠 고시로 다다유키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 버렸다. 엄마의 가슴에 은 말뚝이 꽂혀 있었는데 아빠의 지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하고 행방불명이 된 것은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었다.

 

나치는 어머니와 같은 체질로 변화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할 수 없었고, 실제 허주 승선원이라고 하는 도와라는 여자를 만난다. 아무리 쓸쓸하고 괴로워도 배를 타고 멀리로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이 지구에서 태어난 자의 사명이다. 이와쿠라는 멸망하고 우리도 멸망한다고 말했다.

 

멧돼지의 잘린 머리통이 시로타 집 문기둥 꼭대기에 놓여 있었다. 메아리가 한 짓이라고 수군대었다. 미카미 유이는 타인의 피를 빠는 게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아빠가 나치를 쫓아와 너도 죽여야 한다는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캠프에서 마나베 선생은 통로는 피를 받을 때 사용하는 것인데 중요하게 소중히 다뤄야 하고 한 번 쓸 때마다 반드시 열탕소독을 하고 반드시 동네 사람, 건강한 사람을 고를 것, 동성보다 이성에게 받는 편이 효과가 더 좋다 등등 자세한 주의가 이어졌다.

 

대체 누가 자기 아이를 허주 승선원으로 만들고 싶을까. 이리로 보낸다는 건 자식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인데 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는 가끔 자신이 지구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피먹임을 당하면 건강해진다는 소문이 있었고 건강도 안 좋은 높은 사람 대신이 거액을 지불하고 권리를 사기도 하였다. 대신은 심부전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되었지만 메아리가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도와는 메아리가 한 명이 아니라고 했다. 캠프를 여는 이유는 허주 승선원을 배출하기 위해, 허주 승선원을 늘리기 위해, 이것은 국가의 계획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치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끝이 시작되지. 도와의 말이 공포를 느꼈음이 분명했다. 땅울림, 진동도 아니었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다가오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나치는 이곳 이와쿠라에 온 후로 계속 생각했던 일, 저항하던 일, 쭉 고민하며 거부했던 일, 망설이고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했던 일을 하려고 한다. 도와는 차례차례 순서대로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치는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저자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고, [어리석은 장미]14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무더운 여름,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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