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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7월
평점 :
[어리석은 장미]는 뱀파이어, 어린 시절부터 그 존재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느껴 온 저자는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여행 에세이를 쓰기 위해 방문한 일본 혼슈 중서부에 위치한 기후현 구조하치만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은 이와쿠라에서 매년 우주로 떠나는 허주의 승선원을 선발하는 캠프가 열리고, 열네 살 다카다 나치는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4년 만에 이와쿠라를 방문한다. 울창한 산의 경사면에 거대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허주(虛舟)님’이라고 했다. ‘허주 승선원’들의 신이 여기 계시는 것이고 경배를 드리지 않으면 캠프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치의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먼 친척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캠프에 관한 예비지식이 없었다. 이와쿠라에서 여관을 경영하는 엄마의 사촌 히사오 이모와 사촌 후카시를 만났다. 캠프가 열리는 동안 머물러야 한다. 성에 가는 건 처음인데 장미 덤불이 경사면에 가득하고 독한 장미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 달콤하고 흉악한 향기가 위 속에서 역류하는 듯했다. 피를 토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변질이 빠르다고 했다.
캔 따개 같은 금속 덩어리를 ‘통로’라고 하는데 팔 한가운데를 찔러 피먹임을 한다. 식사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남의 피를 먹지 않는 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후카시는 팔을 내밀며 피를 먹으라고 말했다. 나치는 허주 승선원이 되기도 싫고 남의 피도 거부하고 있었다.
똑똑한 장미는 피어나서, 시들고, 어김없이 져 버리는 꽃이야. 그래서 현명한 거야. 하지만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아. 피어난 채 영원히지지 않고, 말라 죽지도 않아. 그래서 어리석은 장미라고 하는 거지.p58
최초의 배가 추락했다고 하는 나비 계곡에 가면 변질이 빨라진다. 나치 엄마 나쓰 씨도 허주 승선원이었다. 커다란 바위 그늘에서 엄마가 발견되었고 아빠 고시로 다다유키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 버렸다. 엄마의 가슴에 은 말뚝이 꽂혀 있었는데 아빠의 지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하고 행방불명이 된 것은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었다.
나치는 어머니와 같은 체질로 변화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할 수 없었고, 실제 허주 승선원이라고 하는 도와라는 여자를 만난다. 아무리 쓸쓸하고 괴로워도 배를 타고 멀리로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이 지구에서 태어난 자의 사명이다. 이와쿠라는 멸망하고 우리도 멸망한다고 말했다.
멧돼지의 잘린 머리통이 시로타 집 문기둥 꼭대기에 놓여 있었다. 메아리가 한 짓이라고 수군대었다. 미카미 유이는 타인의 피를 빠는 게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아빠가 나치를 쫓아와 너도 죽여야 한다는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캠프에서 마나베 선생은 통로는 피를 받을 때 사용하는 것인데 중요하게 소중히 다뤄야 하고 한 번 쓸 때마다 반드시 열탕소독을 하고 반드시 동네 사람, 건강한 사람을 고를 것, 동성보다 이성에게 받는 편이 효과가 더 좋다 등등 자세한 주의가 이어졌다.
대체 누가 자기 아이를 허주 승선원으로 만들고 싶을까. 이리로 보낸다는 건 자식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인데 ‘돈’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는 가끔 자신이 지구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피먹임을 당하면 건강해진다는 소문이 있었고 건강도 안 좋은 높은 사람 ‘대신’이 거액을 지불하고 권리를 사기도 하였다. 대신은 심부전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되었지만 메아리가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도와는 메아리가 한 명이 아니라고 했다. 캠프를 여는 이유는 허주 승선원을 배출하기 위해, 허주 승선원을 늘리기 위해, 이것은 국가의 계획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치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끝이 시작되지. 도와의 말이 공포를 느꼈음이 분명했다. 땅울림, 진동도 아니었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다가오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나치는 이곳 이와쿠라에 온 후로 계속 생각했던 일, 저항하던 일, 쭉 고민하며 거부했던 일, 망설이고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했던 일을 하려고 한다. 도와는 차례차례 순서대로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치는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저자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고, [어리석은 장미]는 14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무더운 여름,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