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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음, 김민정 옮김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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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그늘 속에 방치됐던 본처 주안의 비통하고 적막한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 차오리화는 평생 루쉰의 그늘에 가려져 살아야 했던 주안의 내밀한 삶, 그녀의 쓸쓸한 결혼생활을 시종 담담하면서도 세세하게 풀어냈다.

 

주안은 저우 씨 집안에 시집간 후 3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시어머니를 모셨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 외에 집안일을 돌보아야 했다. 주안은 구시대의 평범한 인물인 그녀가 신문화운동의 선봉적인 인물이었던 루쉰 집안에 시집을 갔기에 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메일과 독자들의 피드백을 꾸준히 받았고 여성의 입장에 서서 주안이라는 구식 여성에게 깊은 동정을 보내며 탄식하고 안타까워했다. 가정주부였던 주안은 루쉰의 사후에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하니 적막한 세상 고독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루쉰의 혼사는 어머니 루뤠이가 책임지고 도맡았다. 당시 주안의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루뤠이는 주안이 온순하고 예의가 바라서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주가 사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양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쉰 집안의 조건은 형편없었으며, 루쉰은 막다른 지경에 이르러 난징으로 신학문을 공부하러 간 것으로 보였다.

 

사오싱에는 예로부터 딸은 스물여섯을 넘겨서까지 데리고 있지 않는다라는 규율이 있었는데, 주안은 이미 28세가 되어버렸다. 루 부인의 회고에 따르면, 루쉰은 일본에서 편지를 써서 주 씨 집안 처녀에게 전족을 풀라고 요구했다. 주안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야 하는 것은 좋은데,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전족을 풀어야 하고, 둘은 학당에 다녀야 한다. 주 씨 집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살아서 부부 같지 않았다. 사실 주안이 생과부와 다를 바 없이 지내는 나날도 분명 힘들었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는 그녀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 마음속 번민을 해소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몇몇 지인들의 회상에서 주안이 베이징에 있을 때 한가해지면 말없이 혼자서 물담배를 피우곤 했음을 알 수 있다.

 

루쉰은 쑨푸위안에게 사석에서 구식 부인에 대해 자주 불평했던 것 같다. 주안의 요리 솜씨는 상당히 훌륭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도 주안은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주안은 남편을 잘 섬기고 시어머니께 효도하면 언젠가는 상대방이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주안의 생각과는 달리 루쉰은 쉬광핑과 함께 떠났다. 두 사람이 상하이에서 동거한다는 사실도 둘째 마님이 알려주었다. 베이징에서 주안의 곁에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아무도 마음속 번민을 풀어줄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6, 루쉰은 상하이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지킨 사람은 쉬광핑, 저우젠런과 일본 간 호부뿐이었다. 루쉰의 죽음은 고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오랜 세월 외부와 거의 단절된 세상에서 살아온 주안의 슬픈 표정은 조문객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문에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루쉰이 사망한 해에 쉬광핑은 서른여덟이었고 아들 하이잉은 일곱 살이었다.

 

루뤠이는 죽기 전에 자신에게 매달 주던 용돈을 자신이 죽은 후에도 평생 자신을 모신 며느리에게 계속 지급하라고 저우쭤런에게 신신당부했다. 주안에게도 그녀의 돈이니 꼭 받으라고 당부했다. 가끔은 쉬광핑이 주안에게 생활비를 부쳐주었는데 두 차례에 걸쳐 보내주신 60만 원은 진작에 받아서 쌀과 밀가루, 석탄 사는데 썼네. 나는 돈을 벌 능력이 없으니 최대한 아껴 써야지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년이 흘러 루쉰이 떠난 지 10주기가 되었을 때, 백발이 성성한 두 여인은 라일락 나무가 하늘거리는 정원에서 재회했다. 감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들의 최후의 만남이었다.루쉰 부인 주안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기자는 다음과 같이 그녀의 일생을 탄식했다. “주 부인은 쓸쓸하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쓸쓸한 세상에 이렇게 쓸쓸한 사람이 하나 사라졌다.”

 

루쉰은 중국의 위대한 문호이자 사상가, 문화 투사, 청년들의 스승이라고 존경을 받으며 살았으면서 구식 여성이고 배움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었던 부인 주안의 일생이 너무 비참하고 암담했을 것을 생각하니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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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 끌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글쓰기 기술
도제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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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끌렸다. 내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 편의 에세이를 써보려 할 땐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하다.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쓰는 건 늘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현직 편집자이자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하였고 에세이 쓰기의 방법과 노하우를 담았다.

 

저자는 글이란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법서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랐단다. 좋은 에세이의 특징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것을 자신의 글에 반영하도록 돕는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장 마다 주제에 맞게 직접 써보는 실습란이 있고, 다 읽고 따라서 쓰고 나면 한 편의 에세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숲속 오두막에서 살면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 저자의 이야기에 사회과학적 관점을 더한 에세이다. 경수필이 가벼운 소재를 다룬다고 해서 메시지가 가볍지 않은 법이다. 독자는 저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해 읽을 따름이지, 무엇이 더 고급 문학이다 아니다 할 수는 없다.

 

저자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받은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솔직하게 써도 괜찮으냐는 거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대로,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공중에 내보인 셈이다. 좋은 에세이의 관건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멋스러운 말로 하자면 진솔함이다. 솔직하다는 건 자기 이야기를 용기 있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에세이란 바로 그것을 꺼내서 타인에게 공개하는 글인 것처럼 솔직한 글이 호소되는 이유는 아마도 에세이스트 이반지하의 말대로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있게 몰입하면 그것은 보편에 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솔한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서 한도 끝도 없이 솔직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독자가 궁금해하지 않을 내용까지 모두 끄집어내 글에 반영하면 주제를 약화하기도 하고, 지루해지고, 호감을 잃는 포인트가 된다. 그러니까 지나친 솔직함은 무리를 일으킬 수도 있다. 글을 타인에게 공개할 경우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솔직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을 사람에 비유하면 표지는 옷이나 머리 모양, 메이크업 같은 외양이 될 테고, 안에 실린 내용은 생각이 될 테고, 제목은 이름이 될 것이다. 만약 그 글이 책에 담기지 않고 한 편의 글뿐이라면 제목은 더욱 중요해진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일까? 사용 어휘가 풍성하고, 문장 연결에 리듬감이 있으며, 참신한 비유가 있어 글의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가닿는다는 뜻이다. 독자는 여러곳에 밑줄을 치고, 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글을 기억한다.

 

글에서 첫 문장이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첫 문장과 첫 문단이 중요할 텐데 급한 성격 못 버리고 어서 본론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했다. 다만 처음부터 첫 문장과 첫 문단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첫 문장과 첫 문단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면, 시작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끝 문장을 인상적으로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이 쓰이는 방식에는 수미상관이 있다. 첫 문장과 호응하는 문장을 넣어서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타인의 평이란 글쓴이 입장에서는 야누스 같은 존재이다. 한쪽에는 기대심이 다른 한쪽에는 긴장감이나 반감이 드리워 있다. 내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그래도 나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글을 쓰면서 확신을 얻은 포인트가 있다면, 설령 그에 대해 안 좋은 지적을 받아도 고수하는 지은이만의 뚝심이 필요하다.

 

아직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에게 가장 손쉬운 글쓰기는 일기이다. 처음에는 단순 사실 나열도 괜찮다.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런 기분이었다 정도로만 써도 괜찮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어느 날은 그날의 일을 좀 더 상세히 기록하게 되고, 거기에 감정을 싣게 되고, 결국 자신의 생각까지 정리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즐거웠다. 작법서, 특히 에세이 작법서를 쓰리라곤 예상해본 적이 없기에 뭔가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 좋은 에세이도 많아서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하는 끝말이 신선하고 좋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날까지 열심히 독서하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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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 오승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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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저자 나카야마 유지로는 실제로 생명을 다루는 외과 의사로서 생생한 의료 현장의 묘사들은 의사가 사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몸소 실천하는 의사가 쓴 감동적인 의료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2011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장소에서 불과 20Km 떨어진 다카노 병원에서 병원장으로 근무하며 지역 주민의 의료를 책임진다.

 

소설의 주인공 25세 아메노 류지는 외과 인턴으로 신참내기 의사다. 오늘도 집에는 못 들어간다. 아니 안 들어 간다 할 정도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부모님은 고구마 튀김집을 운영하고 있고, 어릴 적 사소한 알레르기로 형을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류지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는 왜 이리 무능할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무기력감을 느끼며 오늘도 류지는 눈물을 흘린다. 일가족이 고속도로 정면충돌로 다쳐 병원에 도착했다. 다섯 살 다쿠마는 입에 관을 삽입할 정도로 크게 다쳤고, 아빠는 다친 데가 없지만 엄마는 쇄골 및 하지 골절로, 오늘 긴급 수술할 예정이다. 류지는 다쿠마를 수술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형이 보였고 요란하게 쓰러졌다. 어릴 적 잃어버린 형만 같아 아이를 꼭 살리고 싶었다.

 

94세 환자는 고령에 치매 증상이 있고 노인성 난청에다 6개월 전부터 잘 먹지 못했다. 수술을 하면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텐데, 치매여서 대화도 안 통하는데 본인이 행복한지 아닌지 스스로 알 수 없는데 수술이 가능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낮 시간에 외래는 사람이 붐비니까 응급 환자를 위한 공간인 응급 외래에 사람들이 많이 온다.

 

류지는 선배인 사토 선생이 환자 배 안에 손가락을 넣는 것을 보고 존경심이 생기나보다 류지한테 봉합을 해보라고 한다. 내 실수 때문에 환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 정성을 다한다. 류지와 나이가 같은 동갑인 환자가 입원했다. 대장암 말기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의대에 떨어졌고 재수를 할 수 없어 공학부로 진학했다는 말을 듣는다. 동갑인데 암에 걸리고 폐렴으로 죽어가는 남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병원 동기 가와무라의 주선으로 미팅을 나간 자리에서 하루카의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이와이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부모님과 형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빠는 너는 항상 형 유이치만 생각했고 공부도 잘해서 의대를 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어치의 슬픔을 한꺼번에 토해내듯이 울었다. 류지는 형의 무덤에 가서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그 아이를 보면서 느꼈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면서 반드시 훌륭한 의사가 될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류지가 내적 트라우마를 환자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면서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인턴 초기에 겪는 고충과 고뇌들을 잘 다루고 있다. 환자는 의사를 통해 몸의 질병을 치료받지만 반대로 의사 또한 환자들이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치유 받기도 한다는 점이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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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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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는 도리스 레싱이 1967, 1989, 2000년에 발표한 글을 한 권으로 엮은 산문집이다. 현대의 사상, 제도, 관습, 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이다.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써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멋진 말이 마음속에 아로 새겨진다.

 

나는 동물을 키우지는 않았지만 동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도리스 레싱은 고양이에 대해 진심이구나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는 유년을 보낸 아프리카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치열한 야생에 직면해 있다. 그의 집에 있는 고양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레싱의 아버지는 고양이들을 방에 몰아넣고 총을 쏜다. 레싱은 이때의 충격 때문에 이십오 년이 지나서야 다시 고양이를 기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다.

 

지금 나무에 늘어져 있는 고양이는 지난 열두 시간 이내에 닭 한 마리를 잡아먹은 모양이었다. 나무 아래 땅바닥에 하얀 깃털과 살점이 흩어져 있고, 살점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우리는 야생 고양이를 싫어했다. 녀석들도 우리를 싫어해서 침을 뱉고, 발톱을 내보이고, 쉭쉭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이놈은 야생 고양이였다. 총을 쏘았다.

 

자연의 무분별한 번식과 분별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던 어머니가 손을 놓아버리자 집 안에, 헛간에, 집 주위 덤불에 고양이가 우글거리게 되었다.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당신이 가장 귀여워하는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수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 자란 고양이를 가장 잔인하지 않게 죽이는 방법은 클로포포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연은 모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자연 상태에서 암고양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새끼를 배는가? 일 년에 네댓 번씩, 한 번에 여섯 마리씩 새끼를 낳는가? 고양이는 쥐와 새를 잡아먹는 사냥꾼일 뿐만 아니라, 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 출산 과정은 너무 힘들고 경이롭다고나 할까. 근육이 수축하면서 새끼가 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반쯤 정신이 나간 어미 고양이가 곧바로 방향을 돌려 새끼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새끼는 죽었고 나머지 새끼 네 마리가 무사히 태어난 뒤 비교해보니, 죽은 고양이가 가장 크고 가장 튼튼했다.

 

고양이의 첫 번째 새끼가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혹적인 경험이다. 어미의 몸에서 나온 새끼는 어미의 엉덩이 근처에 누워 있다. 어미는 어딘가에 갇혀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짐승의 반사작용처럼, 자기 몸과 연결되어 있는 생명체를 바라본다. 우리 고양이만큼 새끼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어미 고양이는 본 적이 없었다. 녀석은 새끼를 보고, 나를 보고, 몸을 조금 움직였다. 이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돈과 시간을 개에게 쏟고 있는 여자가 있다.

 

개의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과식이 문제였다. 수의사들은 개에게 케이크, , 달콤한 과자 등을 주면 안된다고 말했다. 저자와 제일 오래 살았던 고양이는 부치킨이다. 부치킨은 열네 살 때 건강하더니 녀석의 어깨에 혹이 생겼다. 어깨뼈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앞다리 전체, 어깨까지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충격에 빠졌다. 다리가 세 개뿐인 고양이가 된다고? 병원에서는 다리가 세 개가 되더라도 녀석이 아무 이상 없이 잘 적응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수술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어쨌든 녀석에게는 이제 다리가 세 개 뿐이었다. 수술하던 날 아침에 녀석은 햇빛 속에서 내 침대에 몸을 쭉 펴고 누워 있었다. 우아한 한쪽 앞발을 다른 앞발 위에 무심히 포갠 채로, 나는 곧 없어질 다리를 쓰다듬어주고, 내 손가락을 잡으려고 동그랗게 오므라든 앞발도 어루만졌다.p250

 

녀석은 나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쁠 때, 집 안이나 정원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 써야 하는 글을 생각할 때는 녀석과 나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고양이를 사랑한 도리스 레싱은 그동안 길렀던 고양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애틋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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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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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댄스]는 퓰리처상 수상작[종이시계],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 [푸른 실타래]의 작가 앤 타일러의 신작 소설이다. 저자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미국 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미국 문단에서 찬사를 받는 작품으로 주인공 윌라 드레이크가 자아를 발견하고 두 번째 인생의 기회를 찾아가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윌라는 인생을 바꿀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196711살 때 아빠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엄마가 사라졌다. 1977년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아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던 젊은날이 있었고, 2017년 낯선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바로 그때 그녀의 모든 것이 바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윌라가 열한 살, 여섯 살 동생 일레인과 엄마를 기다렸다. 혼자서 시간에 맞춰 등교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스쿨버스를 놓칠까봐 불안했다. 대학 3학년 봄, 남자친구 데릭은 윌라 부모님을 만나서 결혼을 승낙해달고 한다. 브로건 박사님과의 연구를 포기하라는 제안이 엄청난 요구인지 모르고 있었지만 데릭과 결혼하기 위해 모든 걸 다 던져버리는 모험을 감행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면 솔깃해지기도 했다.

 

1997, 윌라와 데릭은 코로나도에서 열리는 수영장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윌라는 파티에 가느니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열여섯 살 이안은 1년간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고 집안에 신경 쓸 문제가 있었다. 차 안에서 이안이 게으른 건 아니지만 데릭과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데릭은 그들 앞에 가고 있는 스포츠카를 향해 경적을 울렸고, 윌라가 보기엔 그 차는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승부욕에 추월을 하다가 사고를 내면서 데릭이 사망하게 되었다. 션과 이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윌라는 점차 일상적인 슬픔에 익숙해졌고 아픔은 무뎌졌지만 지속적이고 묵직한 통증이 이어졌고, 늘 주변에 존재하는 부재감을 느꼈다. 션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안은 학교를 쉬겠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2017, 윌라의 나이 예순이었다. 7월 중순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드니즈가 총에 맞았다고 이웃에 사는 칼리 몽고메리라는 여자의 전화였다. 드니즈의 딸 아홉 살 셰릴과 에어플레인 강아지가 있는데 돌봐달라고 하였다. 윌라는 재혼한 남편 피터와 함께 가게 되었다. 아들 션이 드니즈와 살다가 집을 나가버렸고, 션이 떠나자 셰릴을 달래려고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다. 드니즈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 서 있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용의자는 잡히지 않았다.

 

윌라는 며칠만 있으려다가 오래 머무르게 된다. 션이 할의 부인 엘리사와 집을 나갔고 살림을 차린 것을 알게 된다. 돌카스 로드에는 셰릴의 친구는 없고, 열다섯 살 얼랜드만 빼고 모두 어른들만 있다. 피터는 이 도시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했고, 뜨거운 열기도 끈적한 습기도 말투도 끔직하다고 했다. 윌라는 며칠 동안만 드니즈를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벤이라는 의사가 있어서 가끔 돌봐준다고 한다.

 

셰릴은 패티와 로리 자매와 잘 어울렸다. 패티가 정면을 향해 서서 두 팔을 양쪽으로 쭉 펴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패티 뒤에 서 있었다. 로리와 셰릴의 몸은 보이지 않고 패티처럼 팔을 쭉 뻗고 있어서 패티의 팔이 여섯 개인 것처럼 보이는데 팔 여섯 개가 뻣뻣하게 멈췄다 움직이며 둥글게 원을 그렸다. 이것을 클락댄스라고 하였다.

 

드니즈를 쏜 사람이 얼랜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발적인 사고였기에 서 조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을까봐 조용히 해결하려고 하였지만 패티의 엄마에 의해 드니즈도 알게 되었고, 윌리와 셰릴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에 화를 냈다. 윌라는 하루빨리 손주를 품에 안고 할머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윌라는 셰릴이 친할머니 같이 따르는 것을 보고 새로운 인생에서 어딘가에 방을 빌릴 생각이고, 벤이 자원봉사를 하는 교회에 나가서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거나 셰릴의 학교 친구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칠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였다.

 

[클락댄스]는 노년에 들어선 주인공 윌라가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괴짜 이웃들과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도 하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즐겁고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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