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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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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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박성욱 지음 / 파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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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수십 년간 치유의 현장과 학생들과 맺은 관계, 사회에서 만난 다양한 인연들과 이루어진 생생한 경험들을 담아냈다. 저자는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번은 매듭지어야 할 나이가 되었고, 한의사이자 교육자로서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우리가 거치는 학습과 사회화는 세상의 틀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과정이며, 지식의 축적을 넘어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형태의 인간으로 단련되는 길들여짐이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설파했듯 타인의 인정을 좇는 삶은 종의 목줄에 묶인 삶과 다름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에, 어울림들 속에서 세상을 경험하며 다양한 것을 보태어 삶의 형상과 기반을 갖추어간다.

 

우리가 성과에 목매는 근본적 이유는 온전한 자아실현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상대적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칭찬은 강한 동기부여 요소이지만,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소유와 성과가 경험의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삶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삶은 멈춤도 끊어짐도 없다. 주인이 바뀌지도 않는다. 현재를 거듭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도, 현재도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인생과 현재를 책임지는 것도 주체가 되는 것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운명이 타고난 명을 따라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운명의 방향을 바꿔놓을 인연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 인연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좌절의 순간에 펼쳐 든 한 권의 책이나 한 줄의 경구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고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에 집중하고, 삶의 미세한 징후인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대응하는 자각이 필요하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에서의 역할이나 지위, 성공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상관이 없다. 세상과 삶을 살아가는 자기의 존재성과 의지와 적절함과 바름을 결정하는 순리가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닮고자 하면 대인이 될 수 없고, 자연을 본뜨고자 하면 대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살아감이 홀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치 우주가 별들을 품듯, 지구가 만물을 담듯 다른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상태가 큰 사람이다.p285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기의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살아있음이 작은 황홀함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되고, 세상과 삶을 연결을 회복하는 도구로 쓸 수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시스템을 벗어나 홀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집단은 단절을 시도하고, 소외된 계층은 다른 방식으로 단절을 선택한다. 현실 속에서의 단절은 SNS나 유튜브와 같이 단절된 상태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자연에서 너무 멀어졌고 천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성공이라 믿는다.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였다. 이미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더 빼앗긴다. 가난한 이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고, 안락함을 위해 타인의 삶을 희생시킨다.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난 인간 세상의 부적절한 모습이다. 자연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은 죽은 상태와 다르지 않으니 자연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움을 흉내 내는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 한다.

 

일상의 수양법으로 명상, 필사, 차 마시기, 산책이 있다. 산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유이고, 삶에 대한 자율성이며, 인생으로서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자기의 자유에 의한 삶과 인생에 대한 사색이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정돈이다. 세상이라는 자기 밖의 길을 걸으면서도 인생이라는 자기 안의 길을 동시에 걸어갈 때, 우리는 단순한 존재를 넘어 진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지혜를 온몸으로 살아낸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인생의 지침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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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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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63세 주인공이 만약 한 번 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까? 내 인생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조리 배제해보고 산다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다.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한번쯤 생각을 하게 되는 신박하고 현실 판타지 소설이다.

 

63세의 기타조노 마사미는 구단의 오타니 쇼헤이가 고등학생 때부터 만다라차트에 인생의 목표를 정해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 나도 외길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말하니 페미니스트 같은 소릴하냐며 남편은 핀잔을 주며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면 같은 취미를 즐기며 여행 다니는 노후를 보내고 싶었는데 한낱 꿈이었나보다. 기타조노는 장을 보려고 메모하면서 외길 인생을 두 줄로 지우고 다시 쓰는데 타임슬립해서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타임슬립 3개월 후, 중학교 3년 내내 혼자 좋아했던 아마가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여학생에게 인기가 높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절세미인과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마가세도 타임슬립하여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로웠다며 교환일기를 나누고 협력하자고 말한다. 같은 시대에서 타임슬립해 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은 없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중학생으로 와 있었다. 지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주어진 2회차 인생이니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중학생으로 살려니 스트레스 쌓이지만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중이다. 라디오를 들으면 여성 외모를 중시하고 남성 우위 노래 가사가 마음에 안들어 항의문을 쓰기도 한다. 그 시대에는 여자를 크리스마스 케이크라고 말했다. 현재 시대의 젠더 갭을 개선하려면 이 시대부터 바로잡아야지 하는 마음에서다.

 

오타니 선수처럼 외길 인생을 걷고 싶으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장래에는 여성을 위한 건축을 하고자 건축학과를 지망한다. 부모님과 담임은 여자가 건축학과를 하며 놀란다. 아마가세는 이전에는 은행원이었지만 의과대에 진학을 하여 의사 시급이 높으니 한 해는 돈을 벌고 일년 동안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지만, 결혼할 거면 기타조노 같은 여자가 좋겠다고 한다. 자신은 가족을 위해서 일만 하는 노예 인생이었다, 기타조노는 내가 못 생겼다고 깔보는 건가 싶지만 결혼하고 싶은 상대라고 말하니 기분은 좋았다. 두 사람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연락처를 주고 받는다. 예순세 살 초로의 남녀 모습으로 리쿠기엔 부근을 산책하고 싶다.

 

건축학과에 들어가니 여자는 두 명밖에 없었다. 아케타는 2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호스티스로 일했다고 한다. 케이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사장의 성추행을 참기 어려워 그만두었다. 취업에도 남녀 차별을 겪는다. 여자는 본가에서 출퇴근하는 자에 한한다고 쓰였다. 건축 관련 일이라면 남녀가 관계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직원을 채용할 때 회사 남자 직원들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를 본다니 어이 없는 발상이다.

 

젊을 때는 사람의 일생이 길게 느껴졌지만 60대가 되어 되돌아보면 짧은 세월에 놀라고 후회의 감정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이 어려운 것을 실감하였고 어패럴 회사를 지원해도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을 거북해 하였다. 취업과에 상담하러 갔는데 미인인 학생의 상담을 먼저 받아주는 외모지상주의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건축과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직업으로 전환할까 생각도 했지만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며느리감으로 잘 대해준 것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다. 3년이나 아르바이트를 했으면서 60대가 된 지금도 사람 보는 눈이 통 없는 것이다.

 

타임슬립하여 중학생으로 돌아간 기타조노, 결혼은 신경 쓰지 않고 꿈을 향해 살겠다고 다짐하며 건축학을 전공하고 열심히 사는 삶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몇십 년전 남존여비가 강한 일본에서 여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인생을 몇 번 다시 산다고 해도 별 차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는다.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든든한 아마가세가 있어 앞으로 인생도 잘 풀리지 않을까.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2회차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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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 암 병동 간호사가 기록한 삶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
문경희 지음 / 파람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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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가 뇌종양 진단을 받으며 길 잃고 벼랑 끝에 서 있던 간호사의 손을 말기 환자들이 잡아 준 이야기다. 그들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끝까지 살아내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세바시)’강연도 찾아서 봤는데 애정과 사랑이 넘치는 와우간호사님 너무 멋지십니다.

 

앞으로 꾸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합니다.”

저자에게 뇌종양 진단은 고통이었다. 시한부 환자들을 돌보고 웃음과 울음의 치유력을 설파하던 강사였는데 본인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때, 네 살 딸의 호흡이 약해지는데 선생님이 불러주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니 녹음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간호했던 환자 보호자의 전화를 받는다. 울음을 삼키며 노래를 불러 보냈고, 선생님 노래 들으며 딸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노래를 부르던 순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고 와우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환자들의 남은 시간 속에 와우!’같은 따뜻한 추억을 남기겠다고 그날 이후 다짐했다고 한다.

 

베테랑 간호사지만 암 병동에서 응급 상황은 예측 불가다. 멀쩡히 걷던 환자가 이송된 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고, 네 살 딸을 둔 유방암 환자의 임종 앞에서 당황할 때 차분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병실을 정리하던 선배 간호사가 거대해 보였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직접 끓인 야채죽을 건네며 위로하는 환자도 있고, 일상의 감사가 무뎌질 때마다 환자에게 받은 실내화를 신어본다.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할 때, 제일 걱정되는 것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든 간병인이든 대소변을 침상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척 힘든데 나의 고관절 수술 후 힘들었던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병실에서 찬양대를 만들어 환자의 손을 잡고 찬양을 부르니 통증도 가시고 못 걷던 사람이 산책도 하는 소식을 들려준다. 매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기적은 온다고 하였다. 저자는 무릎 수술로 절뚝거리며 병동 일을 하면서 환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소망을 나누는 간호사로 거듭났다. 뇌종양을 통과하며 깨달은 것은 세상에 쓸모없는 고난은 없으며, 아무리 쓰디쓴 고통에도 다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무릎 수술을 하고 다리에 통깁스를 하고 변기 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그 고난은 아픈 방식의 수업료를 요구했지만, 환자의 숨소리 하나에도 떨리는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는 진짜 간호사의 심장을 얻었다.

 

난소암 치료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보고 아내가 외로울거 같아 남편도 함께 삭발을 한 남편의 사랑은 감동이다. 위암이 두 세번 재발한 그녀가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고 간호사가 되어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하였다. 4년제 간호대학을 나와 자신이 암을 완치했던 병원에 간호사가 되어 첫 출근을 했고. 삶은 그렇게 또 다른 기적을 잉태하고 있구나 감탄했다.

 

뇌종양 치료 과정을 거치며 무릎 연골판 조직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 간호사로 살았지만 직접 환자가 되어 아파보고 불편을 겪고 나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통깁스를 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고 돌봄이 무엇인지 동료 간호사님을 통해 배웠다. 같은 처지의 환우들과 함께 지내며 병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함께 기도를 올렸다.

 

병원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의 사회를 보는 저자는 문학의 밤 행사를 준비하며 펜을 들었다. 안녕하지 않은 긴 밤을 보내고도 아침이면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그들의 안녕하세요한 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닌 오늘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다짐이었다.

 

저자는 나를 살린 것은 결국, 내가 살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님의 진심과 정성이 느껴졌다. 요즘 마음이 힘들었는데, 이 책은 끝까지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큰 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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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
백형찬 지음 / 파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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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법정 스님이 사랑한 풀, , 나무, , 음악, 그림, 소소한 생활소품까지 설명을 곁들였다.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법정스님의 글에 매료되었고 가톨릭 신자이지만 순천 송광사에서 열린 출가 45일 수련을 통해 스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스님은 사람이나 동물보다 나무와 꽃을 더 가까이 두었다. 식물들의 세계를 유심히 살폈다. 각자의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면서도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다. 스님은 꽃밭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꽃들은 저마다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제각각이지만, 그 다름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고, 어느 것도 서로 닮으려 애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난초를 돌보다 집착이라는 것을 알고 친구에게 건네주면서 해방감이 밀려왔고 그날 이후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리기를 마음속에 새기며 무소유의 참뜻을 체득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갖는 것이다.”

 

눈 내리는 겨울, 헌식대에 산속 짐승들에게 먹을 것을 올려두기도 하는데 토끼, 노루의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어느 해, 산토끼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광에서 고구마를 꺼내 먹이고, 따뜻한 방 안에서 하룻밤을 재워 보냈다.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주할 때마다 사는 일이 고맙고 기쁘게 느껴진다고 했다. 행복의 조건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맑고 향기로운 일상의 한순간, 그 빛을 알아보는 마음에 있을 뿐이다, 차 한잔이 그것을 일깨워 준다.

 

스님은 생애를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좋은 책 한 권에 온전히 몰입해 있던 바로 그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좋은 책을 대하는 일은, 마음이 맞는 친구와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과도 같았다.

 

산으로 출가할 때 가장 끊기 어려웠던 것은 애지중지하던 책에 대한 미련을 끊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왕자]를 스무 번은 더 읽었다고 했다. 시집 한 권을 어렵게 빌려 오면 밤을 새워가며 공책에 베껴 쓰고, 외우고, 또 읽어내려갔다.

 

스님은 산에 들어와 살면서 참 많이 걸었다. 미륵산에서 통영 시내까지 걸망을 메고 왕복 30리 길을 오르내렸고,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장을 보기 위해 구례장까지는 왕복 80리를 걸었다. 통도사 시절에는 밀양 표충사까지 굽이진 산길을 따라 걸었다.

 

산에 오래 살다 보면 청각이 예민해지는데 한밤중에 기러기 떼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곤 했다. 스님 곁에는 늘 세 가지가 함께 있었는데 바로 차와 책과 음악이었다. 스님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마음이 녹슬지 않도록 늘 곁에서 거들어준 고마운 벗들이었다.

 

스님은 길을 떠나는 일을 언제나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으로 여겼다. 안거가 끝나고 해제가 되는 바로 그날, 짐을 꾸려 곧장 길을 떠났다. 첫차를 타기 위해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로 나서는 것이 해제의 일미라고 불렀다.

 

지인들에게 글을 적어 보내기도 하는데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속에 걸리는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적음의 도리를 적었다는 글이 인상적이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쥐고 살지 않는 삶의 태도였다. 그 판자 글씨는 일월암 흙집 창 위에 걸려 있었고, 오가는 이들에게 소리 없이 그 뜻을 전해주었다.

 

삶에는 리듬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때로는 높이 솟아 오를줄도 알고, 때로는 깊이 가라앉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어울릴 때는 분명히 어울리되, 다시 자기 안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균형이 잡힌다고 보았다.

 

스님은 음식을 매우 간단하게 먹었다. 음식만 좋다고 해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강인한 정신력, 투철한 삶의 질서, 알맞은 운동, 적당한 휴식, 자연과의 친화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건강한 삶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수첩을 한 권 샀고 주소란에 지인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옮겨 적었다. 해가 바뀔수록 연락처들을 줄여나갔다. 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였고 삶을 정돈하기 위해 수십 권의 수첩을 불태워 버렸다.

 

이 책은 산골에서 소박한 삶 속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혼자 사는 즐거움, 소유하지 않음으로 얻는 충만, 단순한 일상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행복이 샘솟는다. 영혼의 휴식처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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