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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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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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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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어령 선생의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세 번째 시간으로 얼굴을 이야기한다. 생전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얼굴에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다고 하셨다. 최소 2만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내가 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 얼굴이라고 말한다.

 

광복 이래 7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모습 중 얼굴이 많이 바뀌었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데 약 11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6년부터 촬영 수집한 한국인의 약 3000명분의 얼굴 사진이다. 3차 곡면인 얼굴의 형상을 지도책에 나오는 등고선 모양으로 그어 보관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특성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이다. 신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호에서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이다.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코와 눈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된다.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닮길 원해 쌍꺼풀 성형도 하고 코도 세운다. 그러나 바이칼호에 비친 한국인의 얼굴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인류 역경의 서사라고 한다. 이름은 내가 부르라 붙여진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부르라 붙여 진 것이듯, 얼굴 역시 내가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보라고 있는 것이다.





미인대회에서 꼽는 미인의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예전에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찾았다면 한국전쟁을 거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서구 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미인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게 되었다. 서양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미의식이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문인 정철 선생은 여성의 화장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남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여성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보수적인 한국 남성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보입니다. 만주 벌판으로 간도로 쫓겨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입니다. ‘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입니다. -책표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얼굴박물관에서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이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면 비슷한 얼굴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것 같았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가면 길가에 두 개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있다. 여상은 상원주장군이고, 길 맞은편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남상인 하원당장군이다. 할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심통이 났고 할머니는 무심히 외면하려는 듯 꺼벙하게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 많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감정을 담기는 어렵다. 가면을 쓴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언제든 쓰고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화장과 성형은 일종의 가면이다. 외면을 감추기 위한 것인데 가면을 쓴다고 외면의 근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면이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원래 내 얼굴은 남이 보기 위한 것이지만 사진 역시 지금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심지어 우주선 안에서도 셀카를 찍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성형수술이 신몽골로이드의 얼굴을 버리고 서양인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던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벗어나 몇천 년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내 문화와 내 역사, 내 유전자들이 종합되어 형성된 우리의 얼굴이 지금은 아시아의 미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여배우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고 내가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있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은 눈동자라고 한다. 색을 넣은 서클렌즈 덕분에 검은 눈동자를 버리고 파란색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도 눈빛만큼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저자는 이야기꾼이 맞다. 60년을 이어온 이어령 한국문화 대탐사를 재미있게 읽었고 이번 책도 여전히 감동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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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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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클레어 키건이다. 어느 여름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겪는 다정한 돌봄과 사랑을 느끼는 소설이다. 2023년 책을 원작으로 영화 [말없는 소녀]로 국내 개봉을 하였다.

 

책은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가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낯선 친척 부부의 집에 맡겨져 여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집으로 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으로 차를 달린다. 소녀는 종일 킨셀라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상하기 쉬운 식품들을 몇 달이나 넣어놔도 썩지 않는 냉동고가 있다.

 

위타빅스를 다섯 개 먹는다. 침대에 눕히고 머리핀으로 귀지를 파주면서 엄마가 귀 청소 안해주니 묻는다.아저씨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참새가 앉아서 날개를 가다듬는 창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리라는 동네에 데려갈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안타까워 하신다. 옷을 사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아는 사람을 만났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빤히 보면서 누구냐고 묻는다. 곧 개학이라 아이가 가고 나면 보고 싶을 거라고 했다.

 

동네에 초상이 났는데 소녀를 집에 혼자 나둘수가 없어 같이 가기로 한다. 아저씨 무릎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죽은 남자를 보며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란다. 밀드러드 아주머니는 소녀를 잠시 데리고 있겠다고 먼저 나갔다. 아줌마를 통해 킨셀라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소녀가 그동안 입었던 옷이 부부의 죽은 아들 옷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아저씨가 말한다. 아주머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지만 가끔은 실망도 한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산책을 갔던 밤에 아저씨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는 무심한 아빠와는 다르게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주는 어른을 만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관심과 배려로 소녀는 행복함을 느낀다. 소녀는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 남동생이 태어났고 주말에 데려다 달라고 썼단다. 개학이 되면 옷도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영영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소녀가 감기에 걸려 온 것을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물어도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영화 말없는 소녀를 보고 책을 읽고 마지막 장면이 오래 남는다. 집으로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힘껏 달려가 안긴 채 자신을 데리러 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말처럼 들렸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단식 투쟁 소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1년의 아일랜드는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소녀의 시선으로 본 어른들의 삶을 통해 킨셀라 부부의 슬픔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나누어 준 사랑과 진심은 어린 소녀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100쪽 분량으로 얇지만 맑고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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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있는 서가 - 아줌마 삶을 견디기 위한 책읽기
정은정 지음 / 파롤앤(PAROLE&)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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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줌마 삶을 견디기 위한 작은 시도들책의 힘을 빌려 나의 삶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저자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책들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발견한다.

 

저자는 직장인으로 살아오다가 사서자격증을 따고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소설의 작가가 길에서 우연히 나자를 만나듯 도서관에서 책들과 사람들을 만났다. 희미하게 빛나던 그 모든 우연들을 감사히 모아 나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서울 태생인데 엄마의 고향 덕분에 오매하고 튀어나온 말 때문에 시아버지에게 타박을 들었다. 집을 나와 여수행 버스에 올랐고 밤차로 돌아온 새벽 역에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시아버지께 물어 볼 수 없었다. 그럴 기회는 이제 다시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그림을 그리며 혼자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시댁에서 주부로 살다 보니 늘어나는 책을 감당할 수 없어 파괴스캔을 하다가 오히려 책과 도서관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사서자격증을 따고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를 하게 된다. 글이 완성되어 출판되면 직접 책을 엮어 엄마에게 선물할 꿈으로 예술책 제본을 배우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소개했다.

 

시아버지가 한잔하시고 네가 좀 배웠다고 시댁 무시하고 그러면 죽을 줄 알아그 말이 서운해서였는지 무서웠는지 눈물이 났다. 그런데 칠십 대의 엄마는 오십 대 딸에게 물김치를 만들어 주마하고 시장 볼 것을 일러 준다. 수제비를 끓여 점심을 먹고 엄마와 물김치를 담그는 모녀 그림을 상상하니 부럽기 짝이 없다.

 

시어머니 미역국을 끓일 때와 엄마 미역국을 끓일 때 레시피는 각각 다르다. 엄마를 위해서는 참기름을 넣고 볶다 끓이고,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맑은 고깃국물을 우리는 데 정성을 들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역국은 생홍합이 들어간 미역국이다.

 

메이슨 커리가 쓴 [예술 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통해 해리엇 제이콥스의 [린다 브렌트 이야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을 알게 되었다. 해리엇 제이콥스에게 자유를 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윌리스 부인이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아한 희망에 대한 각주로 썼다. 그에 따르면 이런 믿음은 태곳적부터 있었다.’ 무슨 말이 이렇게 어려워. 이런 건 더 읽지 말까. 굳이 이런 말을 곱씹어 이해해야 하나. 그래도 도서관에서 일하고 그냥 도서관이 알고 싶은 나는 읽고 또 읽고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발표할 기회가 있어야 는다. 맞는 말 같다. 책을 읽어도 구입한 책은 빨리 읽지 못하거나 거의 손을 대지 않고 훗날 읽게 되는데 리뷰 작성을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라도 읽게 된다.

 

인간사라는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얽히고 꼬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러다 비로소 알았다. 내가 피곤하게 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는 걸.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읽는다. 책을 읽고 쓰는 일을 온종일 불린 병아리콩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가족들과 먹는 것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저자는 엄마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 자신도 치유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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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 마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처방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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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토미가 그동안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경험한 정서적 치료 방법과 트위터 글에서 엄선한 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들을 모았다. 저자는 이 책을 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깬 아침, 일이 힘들 때마다 언제든지 여러 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맨 처음 문장은 내려놓기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단 하나의 방법은 내려놓기이기도 하고, 내려둘 수 있는 것들은 많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은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다가올 일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불안해질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은 가고 싶어졌을 때 가는 게 좋다. ‘여유가 되면 가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때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상대와의 관계가 불안정해지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자.

 

진정한 바보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다, 돌아볼 줄 아는 당신은 결국 훨씬 멋있는 존재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날아다니자. 삶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 그대로 있어도,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않아도 어떠한 불안도 없이 안정적인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존감이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화를 내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자신의 의견을 부정당하는 것과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주의 해야 한다.(부정)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라는 자신의 결심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을 믿으려면 먼저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물이라는 것은 항상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선물은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준다. 삶의 고통과 죽음까지 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이라는 선물을 완전히 받을 수 있다.

 

먼 곳을 가지 않아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새로운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거나, 강아지를 차에 태우고 처음 가는 공원에서 산책이나 요가 체험 수업을 듣는 것도 좋다. 새로운 경험이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바로 근처에서 찾을 수 있다. 무작정 혼잡한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즐거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상담자에게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배신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를 확실히 검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배신에 도전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로 뛰어 들어가보자.

 

나이가 들면 외로움이 늘어난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 좋은 일들은 의식하지 않으면 잊힐 수 있으니, 기쁜 일을 항상 마음 한편에 쌓아두는 것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여성은 꿈이나 목표도 특별하게 구체적인 것이 없다. 그럼에도 빛내며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을 요청했다. 당신은 아직 그런 감정이나 순간을 느껴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감각을 열어두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싶은 것,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전까지는 꿈과 목표를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 보면 된다고 했다.

 

고독에서 오는 불안감은 타인을 돌보는 일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민은 수도 없이 다양하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고민은 어떤 면에서는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인간관계가 힘들다면 상대방의 존재를 아주 희미하게 인식하는 게 좋다.

 

분노라는 것은, 상대방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대하지 않으면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p23

 

우리가 어떻게 살아 있는가에 관해 생각하다보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 있고, 우리의 의식도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p227(깊은 생각)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진료 중 일상적인 대화에 보이는 이야기들과 저자의 경험이라고 한다. 인생은 언젠가는 끝난다자신의 마음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책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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