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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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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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벳 -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Rajiv Shah 지음, 이시내 옮김 / 박영스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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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록펠러재단 회장인 라지브 샤가 게이츠 재단, 미국 국제개발처, 록펠러재단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전 지구를 무대로 빅벳이 실천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초록우산은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단의 사명과 활동을 더 깊이 성찰하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담대한 목표는 빅벳을 통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라지브 샤 박사는 25년 동안 여러 팀과 협력하여 약 10억 명의 아동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긴급 대응을 이끌었으며, 팬데믹 절정기에는 코로나19 검사를 획기적으로 확대했다. “한 아이를 예방접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질문과 함께, 단순한 문제의 개선이 아닌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빅벳을 향한 배움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빅벳이란 어떤 공동체나 이 세계에서 긴급한 하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집중된 노력이다. 빅벳은 겉보기에는 심오하고 달성할 수 없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이 달성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도 시야를 전국으로 돌려보면, 빅벳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자립준비청년, 이주배경아동 문제를 빅벳적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동과 관련한 거대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의 지원, 기업의 기부, 개인의 기부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예방접종에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드는 이유는 저소득 국가들의 보건 시스템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UNICEF는 교육, 의료, 영양, 기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원을 통해 아이들을 돕고 있었다. 아동 예방접종이 기대만큼 진전이 없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금을 대폭 늘려야 하고 전 세계 아이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혁해야 했다.

 

빅벳을 하려면 규모가 크고 가끔은 다소 정신없는 팀에 합류하거나, 그런 팀을 만들거나, 혹은 관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티 지진 발생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미군의 구호 활동만으로도 4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고 집중 치료를 위해 수백 건의 응급 이송을 수행했다.

 

우리의 빅벳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사람을 모으려고 했다. 이를 위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력하며, 소통했다. 정부 차원의 접근에 더해, 50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와 140개 나라가 이 구호 활동에 참여했다. 진정한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해결에 참여하고자 나선다. 어떤 종류든 인류를 위한 빅벳으로 나서게 하는 핵심적인 도구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충분한 영양 섭취가 어려운 이유는, 부유한 국가는 음식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세계 최빈곤층 8억 명은 생계와 생존을 위해 자기 농장에서 생산한 음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벳의 한국어판을 발간한 곳은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면 초록우산의 이름을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초록우산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내용으로 초록우산 그린리더클럽 캠페인도 진행중인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래 링크를 통해 내용을 자세히 봐도 좋을 것 같다. 초록우산 그린리더클럽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깊이 있는 나눔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특별한 중·고액 후원자 모임이다.

 

https://www.childfund.or.kr/camp/cpView20001135_main.do?acd=LH1401&bncd=255014004

 

소말리아 인구의 거의 절반인 약 37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그중 75만 명은 기아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저체중이거나 사망하는 아이들을 보고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면 당연히 누릴 수 있었을 삶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들이 저자를 괴롭힌다고 하였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던 때, 빅벳이 점차 실현되어 가고 있을 때 어느 순간부터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소유권이나 통제가 아니라 영향력이다. 그것을 놓아줄 줄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에너지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한 빅벳에 거의 10년을 투자하게 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거대한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빅벳을 자기것으로 느끼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열정을 쏟아내도록 설득해야 했다.

 

빅벳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다. 기후 변화라는 실존적 위협에 대응하고, 그 대응을 불평등이 아닌 기회의 수단으로 삼는 데에도 필수적일 것이다. 빅벳적 사고는 혁명적이다. 우리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가능성만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힘을 발견할 것이고, 모든 빅벳은 자신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Copyright 2023 by The Rockefeller Foundation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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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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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젊음에 바치는 영원한 고전 전혜린의 번역으로 만나는 유일한 [데미안]은 전혜린 타계 60주기 기념 복원본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두 개의 세계에서 방황하던 에밀 싱클레어가 신비로운 인물 데미안을 만남으로써 성장통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열 살때 체험으로 시작되었다. 인생 목표가 부모님처럼 밝고 깨끗하고 예절이 깃들어 있는 삶이었다. 세 살 더 먹은 프란츠 크로머의 무리 속에 끼고 싶어 영웅담으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꾸며내다 돈을 가 협박을 당한다. 어머니 몰래 저금통을 찢어내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어두운 세계로 한 발작 내딛는 것이다.

 

상급반에 전학해온 막스 데미안이 먼저 말을 걸어왔고 상급반과 합석해서 들었던 카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카인의 이마 위에 낙인은 우표의 소인과 같이 실질로 있는 것은 아니고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했고 그는 낙인의 표지를 가지고 있었던거라고 설명했다.

 

꿈속에도 나타나 괴롭히는 크로머를 데미안이 해결해 주었다. 그에게 감사와 부끄러움, 놀람과 불안, 애착과 내적 반항이 뒤엉킨 채, 고통스런 감정이 남아 있었다. 데미안은 여행을 떠났고 싱클레어는 상급학교로 가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고 데미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기도 했다.

 

김나지움 기숙사에 생활하면서 소문이 좋지 않은 알폰스 벡과 술집에 앉아 술을 마셨다. 술에 익숙지 않은 싱클레어는 아무 말이나 떠벌리기도 하였다. 연애 경험에 대해 고백하라고 하였지만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야기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음악과 시를 사랑했던 싱클레어는 방종과 향락에 빠져 들어갔다. 사감 선생님의 편지로 경고를 받고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놀랐다. 어느 날 좋아하는 타입에 소녀를 만났고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만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밤거리 방황을 멀리하고 독서를 하고 산책을 즐겼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소녀의 얼굴이기보다 소년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림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였고 연령이 없었고 의지가 강하고 몽상적이고 응결된 듯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닮은 것 같지만 확실치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바로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방학동안 잠깐 만난 데미안이 자신은 어느 대학에서 공부를 할 것과 어머니와 함께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전보다 훨씬 학교 공부를 하였고 데미안에게 새 그림을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p158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서 아프락사스에 관해 들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으로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신은 아프락사스이고 신이면서도 악마이고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자기 속에 가지고 있다.

 

어머니를 안으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아니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모습이고 키가 크고 힘 있게 생겼으며 그 모습은 막스 데미안과 비슷했고, 내가 그린 그림과도 비슷했다. 데미안과 그림의 새와 함께 살았다. 모두가 아프락사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보는 순간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 속에 사람이었다. 에바 부인에 대한 사랑은 생활의 유일한 내용으로 생각되었고 영혼의 힘을 집중시키려고 했다.

 

데미안은 두 번째 읽어보는데 쉽지 않은 작품이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잘 나타내주는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싱클레어가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서 방황할 때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세상에는 악마 같은 존재도 있지만 선한 존재의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데미안]은 말한다.

 

큰 전쟁이 시작되었고 소집 영장이 나왔다. 점령했던 어느 농가에서 보초를 서다 총탄에 맞아 쓰러졌는데 거대한 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별을 머리에 지니고 있었고 산처럼 컸으며 에바 부인과 비슷했다. 들것에 실려 간 곳에서 데미안을 만난다.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와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본다. 데미안은 그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전혜린 작가는 데미안을 빌려간 친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친구는 죽는 순간까지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왜 우리는 데미안을 읽고 또 읽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읽어야만 했는가? 데미안은 유년기의 향수 같은 맛, 서럽고 감미로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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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멈추기 전에 - 서울대학교병원 뇌신경학자의 뇌졸중을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이승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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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멈추기 전에]tvN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튜브 언더스탠딩화제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문의 이승훈 교수는 뇌졸중을 많은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지만 사실 가장 예방이 쉬운 병이라고 단언하며 뇌졸중을 없애겠다는 진심을 담아 책을 썼다.

 

책은 4개의 장을 통해 독자가 뇌졸중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방치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심장 리듬을 되찾고 4단계 단계별 전략으로 백년 가는 뇌를 만들라고 한다.

 

뇌졸중은 크게 허혈성 뇌졸중(뇌경색)과 혈성 뇌졸중(뇌출혈)로 구별된다.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점만 제하면 이 둘은 실제로 상당히 다른 질환이다. 뇌졸중 전문가 입장에서 이 질환처럼 쉽게 예방할 수 있고, 평소에 아주 조금의 노력을 기울이면 장년기, 노년기의 뇌졸중은 거의 100% 예방 가능하다고 한다.

 

전 세계 공통으로 프로세스를 시행하는 이유는, 뇌졸중이 뇌를 급성으로 침범하는 질환이면서, ‘시간이 곧 뇌이기 때문이다. 뇌 신경세포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약한 세포다. 뇌 신경세포는 혈류가 단 1분만 중단되어도 죽기 시작하며, 성인의 경우 죽은 뇌세포는 거의 절대적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뇌경색은 뇌혈관에 동맥경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일어날 수 있다. 심인성 색전의 뇌경색 증상은 뇌졸중 중에서 가장 무서운편에 속하지만 혈전이 크기만 클 뿐 잘 용해되고 치료가 잘 되는 편이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많은 보람을 느끼는 뇌졸중이다.

 

뇌출혈은 뇌실질출혈과 지주막하출혈로 나눌 수 있다. 지주막하출혈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다며 저자는 이종욱 박사의 예를 들기도 하였다. 뇌졸중 중에서 뇌출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남짓인데, 이중 뇌실질출혈이 60%, 지주막하출혈이 40% 정도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음주, 그리고 비만, 노화, 심방세동 등 뇌졸중의 위험 요인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고혈압에서 가장 취약한 장기는 가장 중요한 뇌다. 가장 큰 원인은 뇌의 조직압이다. 다른 장기들은 세포 자체가 튼튼해서 이를 통과하는 혈관도 지지를 받게 된다.

 

염분보다 더 중요한 고혈압의 원인은 비만이다. 살이 찌면, 혈액을 보내야 할 세포가 늘어나는 것이니 당연히 혈액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당뇨병은 전신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보니, 단순히 혈당조절이 문제가 아니라 심혈관질환, 신장병증, 망막증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당화혈색소는 단순히 과거 혈당 수치를 추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어서, 당뇨 치료의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 중이다. 고지혈증은 고혈압, 당뇨병과 함께 대사증후군의 일부로서 이러한 상태들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 뇌졸중, 심근경색, 사지혈관질환 등의 발생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상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뇌졸중의 위험 요인보다는 사실 폐암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흡연은 초기에 다양한 성분이 과도한 활성산소를 유발해 항산화 시스템을 고갈시키는데, 혈관 내피세포의 DNA를 손상시키고 세포의 재생 장애를 유발한다.

 

주변인이 뇌졸중일 때 주의할 점은 손을 따는 행위나 우황청심환을 먹이는 행위는 금지이고 당장 해야 하는 것은 119라고 하였다. 뇌졸중 입원 치료의 목적은, 재발을 방지하고, 뇌졸중의 악화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며,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향후 뇌졸중 재발 예방을 위한 최적의 내과적 치료 방침을 세우는 것과 함께, 증상 호전을 위한 재활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뇌졸중 재활치료는 소실된 신경 기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하면서, 손상된 신경세포 주위로 시냅스가소성이 발휘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대다수 약물치료는 환자의 악화와 재발을 막는 것이지 회복을 촉진하는 게 아니다. 뇌졸중 응급치료는 초기에 환자의 증상을 획기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재활치료는 급성기 이후 느리지만 지속적인 뇌졸중 회복을 돕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이 책은 의학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썼으니 두려워 말고 책장을 넘기길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이 어렵지 않은 이 책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결과 내가 보게 될 뇌졸중 환자의 씨가 마를 정도가 되면, 이 책을 쓴 보람을 비로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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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
최정표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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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KDI 원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저자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의 주요 미술관들을 탐방한 기록이다.

 

덴마크는 북쪽의 유럽 중 가장 남쪽에 있고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서유럽 작품,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작품, 현대작품, 판화와 드로잉, 옛날 석고상 등 26만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였다. 미술관의 시작은 16세기 왕의 수집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고품은 모두 덴마크의 오아 크리스티안 2세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카를스베르 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로 유명한 카를스베르 가문에서 만들었다. 카를 야콥센은 조각에 빠진 사람이었는데 고대 조각을 수집했고 미술관은 조각의 성지가 되었다.


현대 작품은 크고 난해하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은 이런 작품을 잘 소화하고 있다. 유달리 두 작품에 시선이 집중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다. 한센은 돈을 많이 벌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집 짓는 것과 예술품 수집이다. 예술품을 수집했고, 전시하기 위해 큰 저택을 지었다. 2년에 걸쳐 저택을 완공했고 지역 명칭을 따서 저택 이름을 오르드룹고르라고 명명했다. 오르드룹고르는 19세기 프랑스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은 한센이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것들이다.

 

노르웨이 편에서는 뭉크로 상징되는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을 둘러본다. 오슬로에는 뭉크미술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만, 노르웨이국립미술관도 뭉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관람객도 대부분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뭉크의 <절규><마돈나>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꼭 사진을 찍으려 하는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노르웨이는 피오르의 나라이고 피오르 관광의 출발점이 바로 베르겐이다. 베르겐은 1년에 300여 대의 크루즈 배가 정박하고 50만 명의 크루즈 승객이 베르겐을 찾는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만든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헨리크 입센 등이 베르겐 출신이다. 에드바르 뭉크는 20세기 전후의 노르웨이 화가로 노르웨이는 몰라도 뭉크는 알 정도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세계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 로슬린의 <면사포 여인>이다. 로슬린은 당대 유럽 최고의초상화 작가였다. 가를 라르손의 작품 <큰 자작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는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상 생활용품 등에 많이 패러디되어 사용되고 있다. 스톡홀름현대미술관은 입구의 정원에서부터 예술품을 감상 할 수 있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에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다.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보석과 명문이 새겨진 작품이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00점의 최고급 호화작품, 38000권의 희귀도서, 1만 점의 보석, 1만 점의 드로잉, 16000점의 코인과 메달을 수집했다. 수집품은 서유럽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러시아도 문화국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미술관에는 민간인의 기부와 기증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트레티야코프는 처음에는 자기 집에 미술관을 열었다. 10년 후 많은 그림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동생이 수집한 서유럽 작품까지 기증을 받아 러시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등극했다. 자택 미술관은 모스크바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모든 수집품을 자기 자택과 함께 모두 모스크바시에 기증했다. 모스크바시는 1893년에 이 미술관을 시립 미술관으로 만들어 공식적으로 개관했는데, 오늘날의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이다.

 

[백야의 미술관]은 미술관의 역사, 소장품, 전시 디테일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의 중요성, 미술관의 운영방식과 그 사회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미술관은 부자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설립도 어렵고 유지도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책을 통해 유럽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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