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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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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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 - 노천명 전 시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1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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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현대시의 가장 아픈 상처 노천명 문학의 종결판이다. 노천명 묘 시비에는 [고별]시 끝 부분만 새겨져 있다. 친일시인이라는 시민사회 형벌 탓에 어떠한 안내판 하나도 없다. [사슴의 노래]에는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4편의 시집으로 엮였고, 마지막 장에는 처음 공개하는 시로 구성되었다.

 

1시집 [산호림]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1938년에 시인이 스스로 만든 자가본으로 발간하였다. 대표작 [사슴]을 비롯하여 4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최재서는 산호림을 읽고 노천명을자제의 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하였고, 모윤숙도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다.“작품들은 유년을 회상하면서 향수의 감정을 드러낸 경우(중략) 그리고 사랑과 고독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시집에는 절제되지 못한 감상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기도 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감성으로 자아를 응시하고 우리의 토속적인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시집 [창변]8.15 해방을 코앞에 둔 19452월 매일신보사가 발행하였다. 이 시집에는 다수의 친일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노천명 전 시집]에 삭제하지 않고 모두 공개하였다. 이제 이런 흠결마저도 노천명 문학의 한 부분으로 수용해야 한다. 노천명 시인의 친일 시만 수록한 것은 아니다.‘기댈 데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창변]을 비롯해서 어릴 적 고향을 향토적 서정 속에 풋풋하게 표현한 가품들이 수록되었다.

 

3시집 [별을 쳐다보며]1953330일 부산 피난지에 임시 주소를 둔 희망출판사 발행이다. 표제 시 포함 전36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한국전쟁 기간 중 부역 혐의로 투옥되어 치른 수난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옥중 시편들과 함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을 담았다고 시인은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별을쳐다보며/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p115)

 

4시집 [사슴의 노래]1957616일 노천명 시인이 작고한 후 1년이 되는 1958615일 한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조카 최용정이 흩어져 있던 유고와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특히 [나에게 레몬을]은 거의 임종 직전에 씌어진 시다. 이 시에서 노천명은 평생 숙명처럼 젊어지고 있었던 고독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허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슴의 노래/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달도 없어 주/눈이 나려라. 비도 퍼부어라/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나은/슬퍼 좋다/하늘에 불이 났다/하늘에 불이 났다(p193)

 

나에게 레몬을/말도 안 나오고/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고/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어른거리는데/좋은 말 해줄 친척도 안 보이고!/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없음 향취 있는 아무 거고/곧 질식하게 생겼소(p216)

 

노천명 전 시집에는 32편의 미정리 작품을 시인이 생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과 사후에 유족(조카)이 펴낸 한 권의 시집, 그리고 [노천명 시 전집] 등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 29편과 노천명 시인이 번역한 시 3편 등이다.

 

그동안은 노천명 시인이 발표한 친일 시를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사슴]의 고고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발표한 작품들인데, 조선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거나 조선인 출신으로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 병사들을 칭송하거나 전쟁 지원을 권하는 내용들이다.

 

[사슴의 노래] 전 시집을 읽고 나니 암울한 시대를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의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느껴진다. 소박한 서정성이 어우러진 노천명 전 시집을 깊어 가는 가을에 한 편씩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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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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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는 소년의 키가 100미터에서 170센티미터가 될 때까지 성장 하는 동안 소년 기억속에 비친 좀머 씨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들어 있어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 타기를 무척 좋아하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좀머 씨>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 중 좀머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언제나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항상 호두나무 지팡이를 들고 배낭을 메고 다녔다.배낭에는 빵 한쪽과 우비가 들어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혼자말로 중얼거리곤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소리를 나는 딱 한 번 들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7월 어느 일요일 빗줄기가 우박으로 변했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날씨에도 좀머 아저씨는 걷고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데 그렇게 걷다가 죽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그 말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걷기만 했다. 어머니는 <좀머 씨는 폐소 공포증 환자야>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좀머 씨는 항상 경련을 일으키는데 자기가 떠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걷는 거였다.

 

우리 반에 카롤리나라는 여자아이를 좋아하였다. 부끄러워서 꿈에서만 그애와 놀기도 한다. 어느 날 함께 가기로 되어 비밀길도 알려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서 나뭇가지 위에 숨겨 두고 그날만 기다렸던 나는 약속이 취소되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때 움직이는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작기는 했지만 좀머 아저씨의 다리 세 개를 찾아냈다. 그로부터 1년 후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피아노 선생님이 윗마을에 사는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어서 걸어 가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자전거로는 13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배운 이후 1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어머니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속도도 내지 못하고 금방 지쳤다. 선생님은 성격이 엄격하여 숙제를 시원찮게 해왔다거나 다른 건반을 눌렀다든가 하면, 삿대질을 하고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야단을 맞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땀도 나고 제대로 연주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피아노 건반 위에 떨어진 선생님의 코딱지 때문에 엉뚱한 건반을 눌러 버려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다.

 

선생님의 꺼져 버리라는 말을 듣고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작별을 하기 위해 자살을 하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 소리가 났고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있었다.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것을 살피더니 기이한 모습을 하고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5~6년쯤 지난 후 좀머 씨가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여느 때처럼 목격하게 된다.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소식은 2주일이 걸렸고 2주일이 더 지나 리들 아줌마가 실종 신고를 냈다. 나는 왜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을까.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봐서 좀머 씨는 전쟁 등 참혹한 경험 때문에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피해 다니는 도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좀머 씨의 삶과 죽음을 보며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면 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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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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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이 책의 저자이며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교수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문화 잡지 대표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로 대학살이 일어나는 끔찍한 공간에서 여덟 권의 책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소녀의 놀라운 이야기다. 디타 크라우스는 직접 들려준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지만 안토니오가 부지런히 다른 사료를 수집한 사실들도 많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디타의 자신의 경험과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합쳐져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생명 처리장인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밤낮으로 하덕에서 시체를 태우는 이곳에서 청소년 담당 체육 교사였던 프레디 허쉬는 가족캠프로 알려진 이 BIIb 캠프에서 막사를 마련해 아이들을 모아놓고 돌보면 그 부모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독일 관리당국을 설득했다. 다만 놀이 등의 보육활동은 허용되나 학습은 안 되는 것이었다.

 

역사상 독재자며 폭군들은 인종과 이념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 삼엄한 검열 속에 책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허쉬가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을 나치 대원은 모르고 있다. 디타는 열네 살이고 사서가 되었다. 프레디는 나치가 널 죽일 수도 있어. 내가 필요한 사람은 위험을 아는 사람이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다고 하였다. 여덟 권의 책은 망가지거나 낡은, 적갈색 곰팡이가 잔뜩 핀, 훼손되기까지 하였다. 지리학, 문학, 수학, 역사, 언어 전부 소중한 것들이었다. 디타는 목숨을 걸고 이 책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덟 권의 종이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있으면 이들은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다. 인간 책들은 반마다 순회하며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디타는 마지막 점호 전 책을 전부 원래 자리에 숨겨두어야 한다.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와 지리 수업을 한다. 슈바츠후버 지휘관과 멩겔레 박사 등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날마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디타의 아버지는 고열로 사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프레디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라는 소설이 어린 아가씨들에게 적절한 책은 아니라고 했다. 오타 켈러가 아이들에게 화산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다. 4천여 명에 달하는 9월 입소자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루디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프레디 허쉬를 만나러 가는데 그가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의사가 와서 약물 과다, 진정제 과다 복용으로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였다. 허쉬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캠프를 퍼져 나간다. 디타는 책을 어루만지며 프레디가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거란 생각에 기쁘다. 그럼에도 슬픔은 떨쳐지지 않는다. 프레디는 왜 포기한 걸까?

 

이날 밤 수천 개의 목소리가 다시는 영원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194438일 밤 BIIB 가족캠프에 있던 3,792의 수용자들은 가스실로 보내져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제3화장장에서 소각됐다. 탈출을 시도했던 러시아인들 네 명은 처형되었다. 루디와 동료는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나치 대원 빅토르는 레더러와 탈출을 하고 아우슈비츠로 다시 와서 체포되었다. 비르케나우에서 살아남은 디타와 어머니는 다시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54월 모녀는 마침내 해방을 맞았지만 안타깝게도 디타의 어머니는 되찾은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 하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어머니가 자유를 얻은 후에 마지막 숨을 거뒀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된다.

 

실제로 사서로 일했던 인물은 디타 크라우스, 교사로 나오는 오타 켈러는 오타 크라우스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강제수용소 안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베르토 망겔의 책 [밤의 도서관]에 약간 언급이 되어 있다. 저자는 가족캠프의 흔적을 찾고 또 따라가보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여행을 떠났다. 크라코바로 날아가 거기서 오시비엥침행 열차를 탔다. 평화로운 이 소도시의 광경만 봐선 근교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경험을 담은 책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책을 보호하고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은 디타는 영웅이다. 디타가 마지막까지 의문을 가지던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프레디 허쉬처럼 차분한 사람이 왜 수면제를 과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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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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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와 레누의 60년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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