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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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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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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가 아닌 온전한 나로 서기
정연희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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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 언젠가 친정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에게 나는 엄마처럼 안 살거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도 안난다. 결론은 내 인생을 돌아보니 엄마보다 더 못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여자의 일생이 순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 딸이 둘 있는데 큰 딸의 결혼식장에서 사부인은 예쁜 딸래미를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55년차 딸, 26년 차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 20여 년차 대학교수로 살면서 좌충우돌을 겪으며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는 저자가 딸 결혼을 세 달 남겨둔 때,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썼다.

 

인생엔 늘 엄마의 삶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다. 싫어하든 좋아하든 어느 구석엔가 숨어 있다가 모습을 나타낸다.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에도 나의 엄마가 늘 어른거렸고, 딸도 살아가며 나의 그림자를 수없이 만나리라 생각한다. [프롤로그]

 


시부모들은 며느리를 딸같이 여긴다고 하는데 과정도 없이 천륜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을 하였다. 사위가 아들이 될 수 없고,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은 주일에 두세 번 안부 전화를 당부하셨고, 임신을 하니 궁금함도 많고, 전화를 일처럼 했다니 그때는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세월이 흐른 뒤에 글로 풀었다. 시어머니는 시누이가 애를 낳고 산후조리를 해주면서 며느리가 출산하고 한 달 만에 시아버지 병 간호가 얼마나 힘든지 고생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날때면 친정부모님은 경비를 대든지 부담을 덜어주는데 시부모님은 그냥 갔으니 그것 또한 힘들었으리라. 시어머니도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며 강박과 불안을 안고 살았다 하면서도, 며느리에게 당신 아들과 집안의 평안을 위해 끝없이 설득하려 했다.

 

친정엄마는 가난한 집에 시집 와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시아게일을 받아 편물을 짜고 바느질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오빠와 남동생 비교 대상이 되면서 서러웠던 마음이 시어머니의 남아선호 사상에 자신의 딸이 설움을 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 힘든 과정을 감수하고 1년씩 유학을 떠날 때 마음이 편치 않았겠지만 용기를 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저자가 대단하고 부럽기까지 하였다. 엄마의 사과밭에 가면 엄마로부터 일을 배우고, 원두막에 앉아 사과로부터 배우며, 엄마의 순수한 노동을 하며 사과가 익어 가듯 저자도 영글어 갔다. 저자는 자신은 축복받은 아내고, 며느리다. 말의 무게를 행동으로 갚는 남편, 그런 멋진 아들을 둔 시부모님을 두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의 어여쁜 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나를 외면한다면, 나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100번이라도 그리하라 하겠다. 하루도 쉬지 않던 엄마가 내게 나의 행복을 허락한 것처럼 나도 기꺼이 그리하겠다.p133

 

이 책은 누구의 딸이거나, 아내이거나, 엄마이거나, 며느리이기 이전에 너는 처음부터 너였단다. 이런 메시지를 전해 줄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 책에는 엄마로서 내 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당하게 살아갈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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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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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인간 생명의 값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제목부터 끌렸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상대적 평가를 종종 목격한다. 가수나 유명 인사의 죽음과 사회적 지위가 낮고 친인척 하나 없는 노숙자의 죽음에 다르게 반응하듯이, 인명 소실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와 조치는 죽은 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책에는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를 설명하면서 9.11에 희생된 가상의 인물 네 명을 설정하였다. 2001911, 쌍둥이 타워를 향해 돌진하다 추락하는 비행기는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테러 공격으로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9.11 희생자 가족들 중에는 보상금으로 25만 달러를 받은 가족이 있는가 하면, 30배에 달하는 700만 달러를 받은 가족도 있다.

 

민사소송은 순전히 돈에 관한 것이다. 원고가 돈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돈이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도로 살려 낼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해도 민사소송은 무조건 돈에 관한 것이다.부당하게 옥고를 치른 경우를 들여다보면 사회가 한 시민의 자유를 부당하게 박탈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그 사람을 빼앗았으며 직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무참히 짓밟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형사재판은 정부와 피고의 싸움이다. 형사제도가 살인과 차량에 의한 중과실치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비경제적 관점에서 인간 생명에 어떤 가치를 매기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계적 생명 가치로 사용되는 생명 가격표는 비용 편익 분석의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통계적 생명 가치는 사망에 적용되지만 질환 발생률 감소, 상해 발생률 감소, 불안 장애 감소, 삶의 질 개선 등과 같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다른 영향도 비용편익분석에서 고려해야 한다.

 

생명 가격표의 그것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노동의 극단적 사례, 노예 신분과 계약 노동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예를 들어 저자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던 운전 교습 강사는 만약 차로 보행자를 치었을 때 돈을 아끼려면 후진했다가 마저 일을 끝내라.”라며 매우 잔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도 부상자에 대한 보상금이 사망자 보상금보다 많은 경우가 있어 운전 교습 강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가상 희생자들의 자녀 양육에 드는 비용에 대해 정식으로 재정 분석을 하는 부부들은 많지 않지만,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는 부부들은 의식적으로 출산과 양육에 따르는 기대 비용을 반드시 고려한다.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엄청난 재정적 문제가 수반되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년 큰 비용이 드는 불임 치료를 받는다. 여성들을 위한 수태 대리모 산업도 성황이다. 임신 촉진 치료가 필요하면 비용은 훨씬 더 올라간다.

 

전시 상황에서는 생명 가치는 평가 방법이 급격히 달라진다. 전쟁의 목적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기에 적국의 군인을 죽이는 일은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뿐 아니라 훈장이나 국민적 차원의 치하를 받기도 한다. 적국의 군인을 살해하는 일은 예상할 수 있는 전쟁의 결과물이며, 군인의 의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적국의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깍아내리는 전쟁의 잔혹한 파괴력을 증명한다.

 

생명의 가치를 추산하는 방법에 한계가 많은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생명의 수량과 질에 매겨지는 가치는 그 사회가 공정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 주고 생명을 연장하거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을 개인 소득, 기대 여명, 치료 비용이나 치료 가능성 이런 것들의 우선순위를 가능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생명에 끊임없이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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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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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동물, 호랑이는 왜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는가? 호랑이를 이 땅에서 몰아낸 것은 누구인가? 이 책은 우리나라 최고의 생태 작가이신 이상권 선생님이 조선 호랑이 멸종사를 밝힌다. 호환(虎患)이란 호랑이한테 당하는 피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쓰였다. 인간은 땅을 뺏으려고 했고, 호랑이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

 

조선 정부는 한양에 호랑이를 잡는 군대착호군을 배치하고 지방 각 군현에는 착호인을 한 명씩 두었다. 전국에 배치된 착호인이 1만 명 가까이 되었다. 조선시대는 문반과 무반이라는 양반 지배계급이 있다. 각 지방에서 거둬들인 호피는 왕실 창고에 보관되어 필요할 때마다 팔기도 했지만, 왕실 외에 벼슬아치들에게도 배분되었다. 양반일수록 크고 화려한 호랑이 가죽을 사용해서 가마를 만들었다. 가죽을 구할 수 없다면 가마에다 호피 무늬 그림을 그려넣었다. 여자들은 호랑이 가죽보다 표범 가죽을 더 좋아했다. 표범 가죽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조선은 호랑이 사냥을 독려하기 위해서 호피공납제를 실시했는데 겨울 석 달 동안 매달 한 마리씩 사냥해 석 장의 호랑이 가죽을 바치게 했다. 조선인들은 기를 쓰고 호랑이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호랑이는 줄어드는데 계속 잡아내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가짜 호피가 등장했다.

 

중국 사람들은 조선인은 1년의 반을 호랑이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가 사람을 잡으러 다닌다!” 호랑이만 잡으면 높은 벼슬도 주고, 부자가 된다면서요? 하고 비아냥거리지만 조선호피를 갖고 싶어 했다. 해마다 각 마을에서 호피를 석 장씩 거둬들였는데 해마다 1,000장이 넘었다. 이 말은 한 해에 1,000마리의 호랑이가 죽어갔다는 뜻으로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는 사방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한다. 인간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고, 다른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눈을 아주 좋아한다. 달빛이 쏟아지는 겨울밤이면 하얀 눈이 잔뜩 내린 곳으로 와서 신선들이 춤을 추듯이 혼자 논다. 일본이 한일합방이 되던 날, 호랑이 이름을 바꿨다. 원래 범이었으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자마자 범 호 자에다 늑대 랑을 결합시켜서 호랑이라고 부른 것이다.

 

저자의 고향은 호랑이가 많기로 유명한 영광군과 함평군에 걸쳐 있는 불갑산의 한 자락이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로부터 정호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평생 산포수로 살아왔다고 호랑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호랑이와 표범이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주로 호랑이 수컷이랑 표범 암컷이 결혼하는데, 그 후손을 수호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수호는 체구가 표범보다 훨씬 크고, 몸 곳곳에 표범 무늬가 섞여 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표범 이야기는 슬프다. 표범에게 한국전쟁은 큰 시련이었다. 여항산 골짜기에서 부부 표범은 행복하게 살 생각만 했다. 암컷이 먼저 일어나 목이 말라 골짜기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수컷은 졸음이 밀려와 잠을 청하려는데 인간과 마주쳤고 사람들을 믿었던만큼 피하지 않았다.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몸이 솟구쳐 올랐다. 신문에도 크게 나왔던 일인데 한 마리가 죽었기에 살아 있는 한 마리가 주민이나 나무꾼들에게 복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살아남은 암컷의 행방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가 즐겨 듣고 흥얼거리던 노래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에 나오는 성황당은 원래 산왕당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산왕은 호랑이 신을 모시는 곳이다. 한국의 신화는 호랑이 신을 빼면 초라해질 정도로 호랑이 신이 성황당으로 변해온 것 또한 우리의 역사라고 한다. 인간들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한국에는 호랑이가 남긴 가죽은 거의 없고 그 이름만 남아 있다는 마지막 말이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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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여중 구세주 특서 청소년문학 21
양호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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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베스트셀러 [꼴찌들이 떴다!] 양호문 작가의 중학교 1학년을 다룬 [공주 패밀리]와 중학교 3학년을 다룬 [3 조은비]에 이어 중학교 2학년 여학생 네 명의 좌충우돌 생존 분투기를 그려낸 [남성여중 구세주]로 양호문 작가의 여중생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이 책은 누구를 친구로 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남성여중 구세주]를 읽어 보니 다른 두 권도 궁금해졌다.

 

소설은 남성여중 졸업 후 10년이 지나 혜진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4년 전부터 소식이 끊긴 세주를 기다리며 중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혜진의 아버지는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끝나자 작은 고모댁으로 오게 되었다. 엄마는 훌쩍 떠나버렸고 혜진이는 사촌들과 한방을 쓰지 않으려고 고모네 침구 공장 지하방에서 지내게 된다. 남성여중 2학년 4반에 전학 수속을 마쳤지만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해 위축되어 있던 마음은 더욱 쪼그라들고 말았다.

 

마음의 문을 닫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데, 혜진에게 다가온 친구 구세주는 혜진과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 간다. 다른 아이들도 소개받았다. 차인정과 함은하였다. 혜진은 친구를 사귀어본 경험이 없어서 모든 게 재미있었고 자랑스러웠다. 자신을 끼워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네 사람은 무거운 짐을 끌고가는 장아찌 할머니를 도와드리기도 하고, 친구의 집안 잔치에 잔심부름을 도와주고, 노래와 춤을 제공하면서 잔치 분위기를 끌어올려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느 날 태풍이 와서 혜진이 묵고 있는 지하방에 물이 들었다. 고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세주에게 도움 요청을 하였다. 혜진은 세주에게 부모님이 안계시는 것에 대해 고백하고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였다. 소라산의 산사태로 쏟아져들어온 토사가 학교 건물의 중간에 있는 중앙정원을 완전히 뒤덮였고 복구하는데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고 시간도 걸린다고 하였다. 그런 와중에 혜진은 큰고모네로 보내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

 

어느 해 물난리에 장아찌 할머니의 남편과 아들의 죽음에 대해 들었다. 비만 내리면 생각난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학교 복구에 쓰라며 전 재산을 내놓았다. 알고보니 어마어마한 재산이었다. 복구비가 많이 들어 학생들을 동원하여 흙을 퍼 나르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눈을 피해 도망치려다 잡히기도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어리지만 일손을 도운다는 뜻으로 울력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세주, 인정, 은하는 2년제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 생활을 하는데 10년이 지나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는데 성인이 되어 모두 만나서 옛날 교정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소설은 우리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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