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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김정 지음 / 부크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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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제목에 끌리게 된다. 간절히 원하던 목표에 노력하여 가까스로 닿았지만, 한순간에 그것을 잃게 된다면 아득하고 절망적일 것이다. 이 책은 연합뉴스 TV 전 아나운서, 현 프리랜서 김정이 홀로 삶을 담대하게 펼쳐가는 이야기다.

 

저는 이제 모든 압박과 불안을 떨치고

제 행복과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저자는 서른이 되던 해에 백수가 되어 그토록 좋아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니 앞이 깜깜했다. 재취업을 하고 또 계약해지가 되는 과정 속에서,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이상 티비에 나오는 사람은 아니지만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면접에서 지원 동기를 묻는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요’? 일반적인 답변 말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으로 대답했다. ‘멋져 보이니까요.’ 면접관들의 표정을 유추해보면 재미있군이라고 느끼신 듯했다. ‘합격통보를 받아냈다. 우선 주말에만 계약직으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해서 팀장님과 인사를 하기 위해 회사에 나갔다. 주중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야 했다. ‘왜 저를 굳이 주중에 불러내셨어요. 인사는 주말에 나눠도 되잖아요!’ 간단한 인사를 위해 오늘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온 거라구 차라리 말을 하지 말보다 더한 솔직한 표정이라니. 이처럼 솔직한 이목구비를 지닌 그녀가 부당해고의 상처가 컸으리라 짐작이 간다.

 

야간 방송을 마치고 막차 버스를 놓쳐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시며 방금 들은 목소린데?” 하며 목소리를 알아봐 준 경험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기억이다. 티비 아나운서들은 출근하면 가장 먼저 분장실로 가서 메이크업과 의상을 다 갖춰 주니 편하게 출근하면 되었다. 회사의 두 번째 공개 채용이라 선배들에게도 처음 맞는 후배라 서툴렀다. 신입이라 분장실에 너무 일찍 가도 안되고 늦어도 안되는 상황도 겪는다.

 

게스트를 불러 대담을 진행할 때 남녀 앵커가 질문 하나씩을 번갈아 가며 하는데, 남자 앵커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저자는 다음에 할 질문만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 그게 조금 전 답변이어서 내 질문만 외우느라 게스트 답변을 듣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처음 방송을 진행하는 일은 매력적이고 하나씩 깨닫고 배우면서 점점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룬 회사로부터 이제 그만 나오세요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면 느끼는 감정은 뭘까. 선배들이 하나둘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항상 플랜 B’를 강조한다. 누군가는 근무하는 동안에 취집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취직과 시집을 합친 취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과 씁쓸함을 잊지 못한다.

 

5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마지막 방송 날이 다가왔다. 클로징 멘트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고민을 하다 그동안이라는 표현을 택하기로 했다. ‘뉴스를 마칩니다. 그동안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새벽 5시가 되기 전 회사 정문을 빠져나오면서 웬만하면 광화문 쪽은 다시는 오지 않기로 확실하게 다짐했다. 저자의 이런 기분 알 것도 같아 읽으면서 울컥해진다.

 

이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 책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통을 시작했다. 외부의 사건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오는 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진정으로 프리한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지나 유튜버, 선생님, 작가가 되기까지 그녀의 경험담을 통해 불안과 좌절을 이겨내고 더 단단하게 인생의 행복을 일구기 위한 용기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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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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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암살자], [증언들]로 영문학 최고의 상인 부커 상을 2회 수상하고,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등 걸작을 탄생시킨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덕적 혼란]은 같은 한 여성의 삶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는 연작 소설집이다.

 

노부부의 일상은 아침 식탁에 앉으면서 시작된다. 나는 노년의 여성이고 남편의 이름은 티그이다. 과도 정부위원회 지도자가 막 죽임을 당했다고 티그는 아침에 신문을 읽으며 알려준다.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 드림린을 생각한다. 나쁜소식은 먼 곳에서 들려온다. 폭발, 기름 유출, 집단 학살, 기아, 그 모든 것이. 우리는 닥쳐올 경우를 대비해 알고 있어야 한다.

 

넬은 열한 살이던 여름에 뜨개질을 하며 보냈다. 어머니가 출산 예정이어서 아기 배내옷 입습을 만드는 중이었다. 여동생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가 없이 넬이 뜨개질을 해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너무 여위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넬의 몫이 되었다.여동생은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아이로 태어난 것이다. 넬이 할로윈을 맞아 머리 없는 기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자고 있지 않고 깨어 있었는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공포에 떨었다. 가족들은 넬이 동생을 잘 다룬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넬은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시험에서 15점이나 차지하는 [나의 전 공작 부인]이라는 시를 무조건 통과해야 했다. 우리는 진학하지 않으면 결혼을 하거나 노처녀가 될 것이다. 최고의 영문학 교사 베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어느 해 대학에서 문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프리랜서 편집자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오언이라는 남자와 연인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로 지내다 헤어지게 되었다. 넬은 스스로를 차단해 버린 절대적 고독에 시달린다. 어느 날 티그와 오나 부부를 알게 되고, 원치 않던 관계를 맺게 된다.

 

넬과 티그는 시골로 달아났다. 남의 남편과 달아나다니 이 말에 놀랐다. 티그는 결혼 생활로부터 달아났다. 그들은 농장을 임대했다. 침실 세 개 중 하나는 티그의 방이었다. 넬이 사무실이나 서재로 쓸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그녀는 교정 원고를 펼쳐 놓을 책상이 필요했다. 세 번째 침실에는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다. 티그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때때로 오나가 티그와 아이들과 함께 차를 운전해서 농장으로 오기도 했다. 자유를 원했던 오나는 티그와 넬을 짝지어주고, 이혼을 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생활이 시작된다. 티그와 아이들은 돌아와서 편안히 둘러 앉았다. 여기서 나만 아무와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오나는 돈을 더 받으려 결별 동의서를 미루고 있었고 오히려 넬이 수익을 위해 미성년인 자신의 아들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난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넬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농장생활에 익숙해져갔다. 열한살 차이 나는 여동생 리지가 농장으로 왔다. 별 문제가 없으면 오지 않았는데 문제는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홉스 선생은 리지가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어 약을 처방했는데 치료하는 동안 직업을 갖거나 학교에 다니거나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없을거라고 넬과 함께 살아야 했다. 티그는 오나를 위해 집을 사주고 월세까지 내주었다. 오나는 몸이 편치 않아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한다고 집을 내놓은 상태에서 뇌졸중으로 죽고 말았다. 넬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넬은 가족 안에 뿌리 내린 과거와 마주하며 생의 황혼을 맞이한다.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강인한 성격의 어머니, 오빠와 어린 여동생으로 이뤄진 애트우드의 가족은 실제로 [도덕적 혼란]속의 배경과 흡사한 삶을 살았다. 도시와 오지를 오가는 생활 패턴으로 인해 열두 살까지 학교에 정규적으로 다니지 못했으나 책을 벗 삼아 고독을 이겨냈고, 열여섯 살 때부터 작가의 꿈을 꾸었다. [도덕적 혼란]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여 어디까지가 그녀의 이야기인지 짐작은 할 수 없다. 어려서는 동생을 보살펴야 했고 대학을 나와 전문직 여성이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 남편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넬의 일생을 스냅 사진처럼 포착한 소설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애트우드의 다른 작품보다 여운이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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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 - 노천명 전 시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1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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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현대시의 가장 아픈 상처 노천명 문학의 종결판이다. 노천명 묘 시비에는 [고별]시 끝 부분만 새겨져 있다. 친일시인이라는 시민사회 형벌 탓에 어떠한 안내판 하나도 없다. [사슴의 노래]에는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4편의 시집으로 엮였고, 마지막 장에는 처음 공개하는 시로 구성되었다.

 

1시집 [산호림]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1938년에 시인이 스스로 만든 자가본으로 발간하였다. 대표작 [사슴]을 비롯하여 4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최재서는 산호림을 읽고 노천명을자제의 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하였고, 모윤숙도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다.“작품들은 유년을 회상하면서 향수의 감정을 드러낸 경우(중략) 그리고 사랑과 고독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시집에는 절제되지 못한 감상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기도 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감성으로 자아를 응시하고 우리의 토속적인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시집 [창변]8.15 해방을 코앞에 둔 19452월 매일신보사가 발행하였다. 이 시집에는 다수의 친일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노천명 전 시집]에 삭제하지 않고 모두 공개하였다. 이제 이런 흠결마저도 노천명 문학의 한 부분으로 수용해야 한다. 노천명 시인의 친일 시만 수록한 것은 아니다.‘기댈 데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창변]을 비롯해서 어릴 적 고향을 향토적 서정 속에 풋풋하게 표현한 가품들이 수록되었다.

 

3시집 [별을 쳐다보며]1953330일 부산 피난지에 임시 주소를 둔 희망출판사 발행이다. 표제 시 포함 전36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한국전쟁 기간 중 부역 혐의로 투옥되어 치른 수난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옥중 시편들과 함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을 담았다고 시인은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별을쳐다보며/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p115)

 

4시집 [사슴의 노래]1957616일 노천명 시인이 작고한 후 1년이 되는 1958615일 한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조카 최용정이 흩어져 있던 유고와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특히 [나에게 레몬을]은 거의 임종 직전에 씌어진 시다. 이 시에서 노천명은 평생 숙명처럼 젊어지고 있었던 고독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허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슴의 노래/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달도 없어 주/눈이 나려라. 비도 퍼부어라/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나은/슬퍼 좋다/하늘에 불이 났다/하늘에 불이 났다(p193)

 

나에게 레몬을/말도 안 나오고/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고/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어른거리는데/좋은 말 해줄 친척도 안 보이고!/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없음 향취 있는 아무 거고/곧 질식하게 생겼소(p216)

 

노천명 전 시집에는 32편의 미정리 작품을 시인이 생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과 사후에 유족(조카)이 펴낸 한 권의 시집, 그리고 [노천명 시 전집] 등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 29편과 노천명 시인이 번역한 시 3편 등이다.

 

그동안은 노천명 시인이 발표한 친일 시를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사슴]의 고고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발표한 작품들인데, 조선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거나 조선인 출신으로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 병사들을 칭송하거나 전쟁 지원을 권하는 내용들이다.

 

[사슴의 노래] 전 시집을 읽고 나니 암울한 시대를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의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느껴진다. 소박한 서정성이 어우러진 노천명 전 시집을 깊어 가는 가을에 한 편씩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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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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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는 소년의 키가 100미터에서 170센티미터가 될 때까지 성장 하는 동안 소년 기억속에 비친 좀머 씨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들어 있어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 타기를 무척 좋아하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좀머 씨>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 중 좀머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언제나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항상 호두나무 지팡이를 들고 배낭을 메고 다녔다.배낭에는 빵 한쪽과 우비가 들어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혼자말로 중얼거리곤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소리를 나는 딱 한 번 들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7월 어느 일요일 빗줄기가 우박으로 변했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날씨에도 좀머 아저씨는 걷고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데 그렇게 걷다가 죽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그 말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걷기만 했다. 어머니는 <좀머 씨는 폐소 공포증 환자야>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좀머 씨는 항상 경련을 일으키는데 자기가 떠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걷는 거였다.

 

우리 반에 카롤리나라는 여자아이를 좋아하였다. 부끄러워서 꿈에서만 그애와 놀기도 한다. 어느 날 함께 가기로 되어 비밀길도 알려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서 나뭇가지 위에 숨겨 두고 그날만 기다렸던 나는 약속이 취소되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때 움직이는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작기는 했지만 좀머 아저씨의 다리 세 개를 찾아냈다. 그로부터 1년 후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피아노 선생님이 윗마을에 사는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어서 걸어 가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자전거로는 13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배운 이후 1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어머니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속도도 내지 못하고 금방 지쳤다. 선생님은 성격이 엄격하여 숙제를 시원찮게 해왔다거나 다른 건반을 눌렀다든가 하면, 삿대질을 하고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야단을 맞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땀도 나고 제대로 연주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피아노 건반 위에 떨어진 선생님의 코딱지 때문에 엉뚱한 건반을 눌러 버려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다.

 

선생님의 꺼져 버리라는 말을 듣고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작별을 하기 위해 자살을 하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 소리가 났고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있었다.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것을 살피더니 기이한 모습을 하고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5~6년쯤 지난 후 좀머 씨가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여느 때처럼 목격하게 된다.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소식은 2주일이 걸렸고 2주일이 더 지나 리들 아줌마가 실종 신고를 냈다. 나는 왜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을까.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봐서 좀머 씨는 전쟁 등 참혹한 경험 때문에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피해 다니는 도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좀머 씨의 삶과 죽음을 보며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면 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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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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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이 책의 저자이며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교수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문화 잡지 대표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로 대학살이 일어나는 끔찍한 공간에서 여덟 권의 책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소녀의 놀라운 이야기다. 디타 크라우스는 직접 들려준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지만 안토니오가 부지런히 다른 사료를 수집한 사실들도 많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디타의 자신의 경험과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합쳐져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생명 처리장인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밤낮으로 하덕에서 시체를 태우는 이곳에서 청소년 담당 체육 교사였던 프레디 허쉬는 가족캠프로 알려진 이 BIIb 캠프에서 막사를 마련해 아이들을 모아놓고 돌보면 그 부모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독일 관리당국을 설득했다. 다만 놀이 등의 보육활동은 허용되나 학습은 안 되는 것이었다.

 

역사상 독재자며 폭군들은 인종과 이념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 삼엄한 검열 속에 책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허쉬가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을 나치 대원은 모르고 있다. 디타는 열네 살이고 사서가 되었다. 프레디는 나치가 널 죽일 수도 있어. 내가 필요한 사람은 위험을 아는 사람이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다고 하였다. 여덟 권의 책은 망가지거나 낡은, 적갈색 곰팡이가 잔뜩 핀, 훼손되기까지 하였다. 지리학, 문학, 수학, 역사, 언어 전부 소중한 것들이었다. 디타는 목숨을 걸고 이 책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덟 권의 종이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있으면 이들은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다. 인간 책들은 반마다 순회하며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디타는 마지막 점호 전 책을 전부 원래 자리에 숨겨두어야 한다.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와 지리 수업을 한다. 슈바츠후버 지휘관과 멩겔레 박사 등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날마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디타의 아버지는 고열로 사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프레디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라는 소설이 어린 아가씨들에게 적절한 책은 아니라고 했다. 오타 켈러가 아이들에게 화산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다. 4천여 명에 달하는 9월 입소자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루디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프레디 허쉬를 만나러 가는데 그가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의사가 와서 약물 과다, 진정제 과다 복용으로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였다. 허쉬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캠프를 퍼져 나간다. 디타는 책을 어루만지며 프레디가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거란 생각에 기쁘다. 그럼에도 슬픔은 떨쳐지지 않는다. 프레디는 왜 포기한 걸까?

 

이날 밤 수천 개의 목소리가 다시는 영원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194438일 밤 BIIB 가족캠프에 있던 3,792의 수용자들은 가스실로 보내져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제3화장장에서 소각됐다. 탈출을 시도했던 러시아인들 네 명은 처형되었다. 루디와 동료는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나치 대원 빅토르는 레더러와 탈출을 하고 아우슈비츠로 다시 와서 체포되었다. 비르케나우에서 살아남은 디타와 어머니는 다시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54월 모녀는 마침내 해방을 맞았지만 안타깝게도 디타의 어머니는 되찾은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 하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어머니가 자유를 얻은 후에 마지막 숨을 거뒀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된다.

 

실제로 사서로 일했던 인물은 디타 크라우스, 교사로 나오는 오타 켈러는 오타 크라우스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강제수용소 안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베르토 망겔의 책 [밤의 도서관]에 약간 언급이 되어 있다. 저자는 가족캠프의 흔적을 찾고 또 따라가보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여행을 떠났다. 크라코바로 날아가 거기서 오시비엥침행 열차를 탔다. 평화로운 이 소도시의 광경만 봐선 근교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경험을 담은 책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책을 보호하고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은 디타는 영웅이다. 디타가 마지막까지 의문을 가지던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프레디 허쉬처럼 차분한 사람이 왜 수면제를 과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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