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비밀 -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 문예 모노그래프 1
나카노 미요코 지음, 김성배 옮김 / 모노그래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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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서유기의 비밀 :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이다. 어릴적 축약본으로 읽은 후 얼마전부터 <서유기> 완역본을 읽어나가면서, 각 장마다 실려있는 한시 속 도교와 연금술적 상징어가 궁금했다. 검색해 본 결과, 이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일본 내 최고의 서유기 연구자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럼 안심하고 읽을만 하다. 책을 준비했다. (공산 혁명, 특히 문혁이후 중국 고전 연구는 거의 한 세대가 통채로 사라져 단졀된 현실이기에 일본인 학자가 중국인보다 더 중국 고전의 권위자인 경우가 많다. )

 

하지만 꾹 ~ 참았다. 서유기 원전 10권을 다 완독한 후에 읽으려고. 그리고,,, 드디어 오래 전에 미리 준비해놓은 이 책을 펴들게 되었는데,,, 맙소사! 이 책 대단하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연금술과 도교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서유기와 관련한 궁금증을 다 풀어주는 대단한 책이었다. 난 넋을 놓고 읽었다. 

 

일단 연금술, 아니 연단술에 대한 서술부터 소개한다. (납이 수은을 만나 황금이 되는 과정에 주력한 서양 연금술과 달리, 불로선약(외단) 제조에 치중하는 동양 연금술은 연단술이라 한단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금공, 저팔계는 목모, 사오정은 이토 혹은 황파로 삽입 한시에 등장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풀이한다. 손오공은 음양오행설에서 ‘금’(金)이자 ‘화’(火)인 동시에, 광물로는 ‘연’(鉛, 납)에 해당하고, 저팔계는 ‘목’(木)이자 ‘수’(水)이며, 물질로는 ‘홍’(汞, 수은)이다. 사오정을 두 개의 ‘토’(土), 즉 ‘이토’(二土)인데 ‘토’ 두 글자를 겹쳐놓으면, ‘규’(圭)자가 된다. ‘도규’(刀圭)는 연단술에서 단약을 조제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계량스푼을 의미한다. 따라서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이 함께 서천(西天)으로 취경여행을 떠나는 과정은 계량스푼으로 납과 수은의 양을 조절하여 단약을 만드는 연단술사의 행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 자주 대립하는 손오공과 저팔게를 중재하는 인물은 사오정인데, 그게 바로 ‘황파’(黃婆)가 하는 역할이다. ‘황파’는 원래 연홍에 의한 연성을 촉진하는 약품이었다. (나중에는 오로지 남녀의 성적 결합을 중매하는 할멈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음) 또한 ‘황파’의 ‘황’(黃) 역시 두말할 것도 없이 오행의 ‘토’가 배당된 방위인 중앙의 색이 황색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등등,,, 이 책의 내용을 이루 다 요약 소개할 수 없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단, <서유기>원전 완역본을 다 읽은 후에. (오행상생도, 오행상극도, 팔괘도, 십이지로 표시한 방위표, 이십팔수표, 마방진, 성수 만다라 등등 온갖 동양학 관련한 도표들이 등장하니, 이 분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좀 읽기 힘드실 수도 있다. ) 

 

또 그동안 <서유기>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원양'에 관심을 가졌다. 도교 수련법과 남녀 결합이 세트로 나오는 것이 궁금했다. 물론 서양 연금술에서도 '왕과 왕비의 결합'하는 식으로 연금술을 설명하니 그정도 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서유기>에서는 너무 과하다. 뭔가 중국사가 반영된 것 같았는데 이 책에서 그 부분 설명을 찾았다.

 

한편, 송, 원대의 연단술은 실물로서의 단약(elixir)을 만들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실상을 외부에 숨기고 내부에서는 각 연단 유파의 신비성을 지키기 위해, 연단술을 성행위로 비유하고 은어를 구사하는 시사(詩詞)의 세계 안에서 하나의 활로를 발견했다. 이것은 연단술사들에게 일종의 자위행위였지만, 그 저속함은 명, 청 포르노소설 속의 노골적인 표현과는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심원한 연단술의 이름 아래 은어를 구사한 일종의 포르노그래피의 세계가 전개되었고, 그런 내용이 그대로 <서유기>의 세계에 흘러들어 왔다는 점이다.

- 본문 137쪽에서 인용

 

하지만 책은 연단술 관련 설명만 하지 않는다. 손오공과 돌, 용과의 관련성이나 각 등장 인물 분석, 소설 속 숫자의 신비,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 별의 화신들, 도교의 신들, 나타태자 이야기, 희곡 유행이 <서유기>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작가를 둘러싼 논쟁(오승은 설과 구처기설), <봉신연의>,<금병매><수호전>과 관련성, <서유기> 이후 등장한 <남유기>와 <북유기>, 기타 경극 등등,,,, 엄청나게 대단한 이야기가 세세히 쏟아진다. 주석만 읽어도 매우 재미있다.

 

여튼 크게 보아 이 책의 주제는 <서유기> 안에 도교의 엘리트만이 아는 암호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 정말 <서유기>도 대단하고, 이를 분석해낸 저자도 대단하다. 또 이 어려운 책을 번역해내신 역자분도 대단하다. 한마디로 대단한 책!

 

<서유기> 원전 완역본을 읽은 분이라면 필독 강추!

<서유기> 읽고 이 책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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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견문록
클라우스 리히터.브루노 바우만 외 지음, 박종대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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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었는데 리뷰로 남기려니 쓸 말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 성격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일 제2공영방송  ZDF 특별방송팀이 두 명의 유명 아시아 전문가를 동반하고 실크로드를 여행한 다큐멘타리 보고서인데, 과거 역사와 현재 문제점,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독자에게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펼쳐 보인다. 읽는이에 따라서 매우 재미있을 수도, 매우 산만해서 짜증날 수도 있다. 게다가 세 명의 필자가 나눠 썼으니.

 

책은 실크로드 정의에서 시작한다. 비단에 대한 이야기와 장건, 마르코 폴로, 티무르 등 실크로드를 둘러싼 과거 역사 요약이 이어지기에 대중 역사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곧 필자들은 시안(당나라 시절 장안)으로 날아가서 실크로드 기행을 시작한다. 이때 계속 등장하는 기본 텍스트는 현장법사의 <대당 서역기>이다. 물론, <서유기> 관련 독서를 하고 있는 나는 이 부분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은 것이다. 필자는 장안 편에서 진시황 이야기나 중화제국의 조공 시스템도 건드린다. 이 한정된 분량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배를 산으로 몰아가나, 걱정될 즈음, 역시나, 대강 이야기를 끊어버리고 란저우로 간다. 죽 이런 스타일이다.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실크로드 지역의 환경 오염이나 신 실크로드 건설 전망, 황하강의 치수 문제 등등,,, 저자는 오지랖 넓은 기자 본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심지어 파룬궁 문제까지! 아무리 다큐 특성상, 그 시점의 첨예한 문제를 다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실크로드라는 주제 아래 한 권의 책을 내려면 주제에 어긋난 것은 버려야하지 않았나 싶다. 이어 간쑤 회랑을 지나 둔황, 타클라마칸, 호탄으로 넘어가며 예의 역사서인지 기행문인지 신문기사인지 모를 서술이 이어진다. '현장법사는 당나라의 스파이?' 이 부분은 상당히 독특했다.

 

'실크로드의 보물을 약탈한 서양인들'은 괜찮았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일본인 타지바나(오타니 수하), 독일의 그뢴베델과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등 사막에 묻힌 고대 도시의 유물을 약탈하고 둔황 고문서를 헐값에 쓸어갔으며 끝내 석굴의 벽화까지 뜯어간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간략사. 좀 산만하지만 서구인의 죄악을 나열하는 서구인의 시각을 파악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가 이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래, 돌궐님의 댓글을 읽고 찾아보니 이 부분은 피터 홉커크의 명저<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참고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베꼈다. 야, 정말 이 책 애매하네.

 

몇 시간쯤 갔을까, 헤딘은 물이 나올법한 곳에 이르러 땅을 파보도록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제서야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유일한 삽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하들 가운데 하나가 고대 가옥들을 파헤칠 때 깜빡 잊고 삽을 거기다 두고 왔던 것이다. 헤딘은 즉시 그 부하에게 말을 타고 가서 삽을 찾아오라고 했다. 삽을 갖고 돌아온 그는 도중에 모래 폭풍에 휩쓸려 길을 잃었는데, 그때 우연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유적들을 발견했노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헤딘은 즉시 다른 부하들을 딸려 보내며, 그곳으로 가서 목조상들을 가져오라고 했다. 가져온 목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헤딘은 흥분으로 '눈이 돌아버릴'지경이었다.

- 본문 270쪽에서 인용

 

몇 시간쯤 갔을까, 그들은 물을 얻기 위해 모래를 파기로 했다. 그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삽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이 깜빡하고 고대 가옥에 삽을 두고 왔다고 자백했다. 헤딘은 자기의 말을 타고 가서 찾아오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삽을 찾아 가지고 돌아온 그는, 모래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전에 발견하지 못한 유적을 보았다고 했다. 모래 밖으로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삐죽이 나와 있더라고 말했다. 헤딘은 그에게 즉각 그것들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딸려 보냈다. 가져온 목조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헤딘은 흥분해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본문 100-101쪽에서 인용

 

이어서 카슈가르,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기행이 이어진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쪽 서술이 많다.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정보와 배경 지식이 내게 많지 않은지라, 이 지역의 상황을 저자들이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분석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내겐 꽤 유용했다. 실크로드에 대한 체계적인 대중 역사서로서나 기행서로서는 영 꽝인데, 이런 점은 읽으면서 좋았다. 금광 개발로 인한 이시클 호수의 오염이라든가, 신 실크로드 사업 밑에 깔린 범 투르크주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티무르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의 변화, 과거의 그레이트 게임과 현재의 그레이트 게임 등등,,,, 자, 인용해 보자.

 

광장 중앙에는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당연히 레닌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광장 중앙에 있던 레닌을 끌어내리고 대신 티무르를 올려 놓은 일이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 잔인했던 정복자 티무르를 자신들의 선조로 받아들인 것은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티무르가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사마르칸트를 그 중심지로 구축할 당시 우즈베크 족은 아직 이 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16세기에야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이처럼 역사를 인간의 의도에 따라 조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한 민족의 과거와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소비에트 당시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우즈베크 족의 역사를 각색했고, 이제 독립 후에는 인종주의,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우즈베크 족 자신들의 손에 의해 똑같은 짓이 저질러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 본문 402쪽에서 인용

 

그래서, 읽다보면 이 책의 시점인 1998년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았기에 나는 이 책을 단적으로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맨 앞에 실크로드 표시된 지도가, 맨 뒤에 중국 역사 연보가 있다. '주작대로'를 '붉은 참새들의 도로(66쪽)'라 원문 그대로 옮긴 것 빼고나면 그리 웃긴 번역도 안 보인다. 전체 480쪽이지만 술술 읽히는 장점도 있는데, 읽고 나서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결정적 약점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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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평 잘 봤습니다.
제가 읽어본 실크로드 관련책 중에서는 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이 재미있었어요. 서양인들의 실크로드 약탈사?가 정말 파란만장하더군요.
지난번 리뷰에서 <실크로드 이야기> 소개해주셔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들른 알라딘 중고서점에 그 책이 `오늘 들어온 책`에 있는 걸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싸게 샀어요. 게다가 낙서 하나 없는 책이더군요. 다 껌정드레스 님 덕분이에요. 감사 인사 드립니다.^^;

껌정드레스 2015-03-08 12:24   좋아요 0 | URL
오, 돌궐님. 반가워요. 역사 책 검색하다가 돌궐님 여러번 뵈었어요. ^^
이 책에서 실크로드의 보물 약탈사 읽어가면서 왜 이리 기시감이 드는지 이상했는데 돌궐님 댓글 보니 알겠네요. 이 책의 그 부분,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베꼈어요. (이 리뷰 본문에 그 부분 다시 넣어 쓰고 별점 깎았어요.)
오래전에 읽고 리뷰도 안 써놔서 잊고 있었던 좋은 책을 돌궐님 덕분에 찾았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천으로 갔다 - 서유기 다시 읽기
홍상훈 지음 / 솔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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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삼국지나 수호전에 비해 완역본으로 읽은 이는 적은 편이다. 하기사, 완역이 된 지도 한 10여년 밖에 안 된다. 그것도 솔 출판사와 문학과 지성사 두 곳밖에 없다.  그 중, 솔 출판사에서 나온 서유기 완역 번역에 참여한 역자가 서유기 안내서를 단독으로 쓴 책이 이 책이다. 문지사의 경우, 10권에 역자가 해설을 부록 겸 더해 냈는데, 솔 출판사는 단독으로 내기로 결정했나보다. 전체 100페이지 가량 되는 얇은 책이어서 서유기 해설집이라기 보다는 간단한 길라잡이 성격이다.

 

저자는 꼭 서유기 전체를 다 읽은 후 이 책을 읽으라고 처음부터 당부하고 있다. 그래서 10권을 마친 후 바로 이 책을 잡았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요약해서 소개하지는 않겠다.

 

제 1부 『서유기』해제

1. 들어가는 말
2. 서유기 이야기의 연원과 구조
3. 서유기 속의 우주
4. 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
5. 서유와 전투의 상징 체계
제 2부 『서유기』의 불교, 도교 용어 풀이
제 3부 『서유기』의 주요 등장 인물
제 4부 현장법사의 서역 여행도

 

서유기 이야기의 연원, 구조, 창작 배경, 도교 불교 상징과 의미, 등장 인물 분석 등은 다른 서유기 해설서들 내용과 비슷하다. 내 입장에서 보기에, 이 책 1부의 '5. 서유와 전투의 상징 체계' 중' 2 민중과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 부분이 내가 읽은 다른 책과 비교해서 신선하고 좋았다. 소개해보자면,

 

서역을 향한 삼장법사 일행의 여행이 산 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모든 중생의 제도를 목적으로 하는 대승 불법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이 작품에 무시할 수 없는 민중 의식이 내재해 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대승 불법을 얻어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당나라 왕실을 포함한 귀족이나 승려 등의 특권 계층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삶의 질곡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에서도 기존의 중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신분 질서의 변혁을 지향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92쪽에서 인용

 

결국 <서유기>의 화자(작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진보적 민중 신앙으로서 대승 불교의 유입과  전파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혹은 그들)의 관점에서 손오공이 불교에 귀의한 것은 넓은 의미의 '도'를 추구하는 순수한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 본문 99쪽에서 인용

 

관심있으신 독자분들은 이 책과 <서유기 즐거운 여행>, <서유기의 비밀 : 도와 연단술의 심볼리즘>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각각 한국, 중국, 일본 학자들이 썼기에 비교하며 읽기가 더 재미있다.

 

참, 얇지만 뒤편에 불교, 도교 용어 풀이가 잘 되어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원양'은 '元陽之氣를 가리킨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자 후천적인 양생의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이 기운은 타고난 정기가 변화된 것으로, 오장육부 등의 모든 기관과 조직의 활동을 추동하고, 생명 변화의 원천이 된다.'고 친절히 나와 있다. 문지사본에는 원양이 동정이라고 나와있었지만 문맥상 아닌 것 같아 그동안 서유기 10권 읽으면서 헤맸는데. 아, 진작 이 의미를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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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10 - 대산세계문학총서 030 대산세계문학총서 30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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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10권이다. 이번 10권은 1~9권보다 월등히 두꺼운데, 그건 200여쪽에 달하는 역자 해설이 부록으로 함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325쪽까지만이다.

 

삼장 일행은 옥화성을 떠나 금평부에 있는 자운사에 머무른다. 여기서 소합향유를 공양받는 존재들을 만나는데, 그곳 사람들은 이들을 부처님 세 분이라 말한다. 이에 삼장이 절하자 역시나 납치된다. 이들은 부처가 아니라 소머리 귀신, 코뿔소 요괴들이었다. 손오공은 규목랑 등 네 별자리와 힘을 합쳐 요괴들을 퇴치한다. 여기서 잠깐, 인도의 소 요괴들과 대결하는 것은 혹시 힌두교와 불교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불교 설화에 보면 힌두교와 불교 승려가 대결하는 장면에서 소와 사자의 환영이 공중에 나타나 싸우는 장면도 있던데.

 

손오공은 사위국 공주로 변신한 요괴를 퇴치하고 진짜 공주를 찾아 준다.  공던져 결혼하기 이벤트를 꾸며 1년동안이나  첫날밤 그의 원양진기를 빼앗아 태을상선이 되기로 음모를 꾸며 놓고 있었던(98)' 여요괴는 알고보니 달나라 옥토끼였다. 월궁의 주인인 태음성군이 와서 옥토끼를 데려간다. 마음이 많이 여유있어진 손오공은 요괴의 본모습을 보고도 예전처럼 단매에 때려 죽이려고 봉을 꺼내들기는 커녕, 옥토끼를 귀여워한다. 오, 손오공 너 많이 변했다? 뿐만 아니라 삼장도 둘째만 편애하는 어리석은 가부장 같은 모습을 보이던 지난 1~9회와 달리 이제는 제대로 헛소리하는 저팔계를 야단치고 옳은 말하는 손오공을 두둔한다. 이들, 다 성장하고 있었다.  

 

이어 구원외 부자의 지극한 공양을 받는 일행. 이어지는 환대를 거절하고 떠나는 날 하필 구부자집에 도둑이 든다. 부인을 호의를 거절당한 것이 분해 앙심을 품고 일행을 고소, 손오공이 해결하고 구부자도 염라대왕에게 말해서 살려준다.

 

*** 주의! 조만간 <서유기> 완역본을 읽을 계획이 있으신 분은 이 이하 읽지 마세요. 서유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드디어 여래 계신 영취산에 이르렀다.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 법, 역시 취경일행은 세찬 강물을 만난다.  위태로운 외나무 다리만 있을뿐. 일행이 못 건너고 있자 부처가 뱃사공으로 변신해서 밑바닥이 없는 배로 건너준다. 이때, 상류에서 사람 시체가 한 구 떠내려오는데,,, 바로장이었다! 이 대목,  역자 주에 따르면 당나라 스님이 능운도에서 육신의 껍질을 벗고 성불하는 과정은 불교의 해탈이 아니라 도가의 이른바 시해(尸解)과정이었다. 해탈은 곧 속박과 고통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신적 자유 상태에서 도를 깨쳐 평온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인데, 도교의 시해는 뱀이나 매미처럼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듯 속세에 더렵혀진 육신을 버리고 우화등선하는 방식이다.(245)’ 라고 하니, 불교이든 도교이든 삼장이 취경여행을 통해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근데,,,,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들의 취경 여행을 따라온 나는 그럼,,,, 책을 놓고 이런 생각을 한참 멍하게 했다. 아마 장편 소설을 읽는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줄거리 요약하면 별 거 아닌데 하나하나 등장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전체적으로 묵직하게 뭔가 느낌이 다가오는 맛. 차근차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미련하게 읽지않고 다이제스트 판으로 접하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맛.

 

여튼 일행은 부처님 만나 5048권 불경 받고 돌아가게 된다. 아난과 가섭의 대가 요구를 거부한 탓에 글자 없는 백지를 받아가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유자진경으로 바꿔 간다. 이 과정에 걸린 시일이 십 사년, 오천 사십 일인데 여드레 모자라 경전 수효인 5084에 안 맞기에 일행은 8일만에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시해과정을 통해 삼장도 범태육골을 벗은 지라, 개고생하며 걸어 올 때와 달리 이번에는 팔대금강의 구름을 타고 날아간다. 그런데 구구 81인데 지금까지 겪은 재난은 80난이다. 아직 한 재난이 남았다. 이들은 추락한다. 주위를 보니 통천하였다. 강 건너 갈 일을 찾아보는데 예전의 그 자라가 나타나 등에 태워 강을 건네 준다. 그러나 자라의 부탁을 삼장은 잊었다. 자라는 심통나서 일행을 빠뜨려 버린다. 이제 완성 되었다. 일행은 강 기슭에서 경을 말리고 다시 날아 당태종 앞에 경을 내놓고 다시 날아 서천으로 돌아온다.  현장은 전단공덕불, 손오공은 투전승불, 저오능은 정단사자, 사오정은 금신나한, 백마는 팔부천룡이 된다. 마지막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손오공이 머리를 가리키며 부처님께 부탁한다.  송고주를 외워 금테 벗겨 달라고. 그러나 손오공은 취경 여행길에 이미 성불하지 않았는가. 부처는 말한다.  “그것이 아직까지 네 머리에 씌워져 있을리 있겠느냐?” 아아, 그렇구나. 걍 의식하지 말고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오늘 걸을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면 나를 옭죄던 것들이 어느덧 자연스레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 한번 더 책을 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 여기부터는 다시 읽으셔도 됩니다. ^^

 

자, 이제 나의 취경여행을 마쳤다. 어떻게 이 마지막 리뷰를 마무리할까. 살짝 고민하다 서유기 각 장의 마지막 문장의 형식을 빌려 마친다.

 

"서유기 완역본 10권을 다 읽은 껌정요괴. 과연 이번 취경독서여행으로 그녀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또 어떤 황당하고 신선한 역사 이야기를 써 낼지, 여름에 나올 껌정의 다음 새 책에서 풀어보기로 하자. "

 

(껌정의 취경독서여행 정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7946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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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9 - 대산세계문학총서 029 대산세계문학총서 29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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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에 이르러, 취경 일행은 이제 천축국 변방에 이른다. 부처님이 계신 서천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괴는 우굴거린다. 손오공은 매우 침착해져서 점점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앞의 8권에서 구해준 여자는 요괴의 본성을 드러내고 삼장을 납치한다. 알고보니 탁탑이천왕과 나타태자를 아버지와 오라버니로 섬기고 있는 쥐 요정이었다.  이렇게 부처님이나 보살, 천상 존재들과 관련이 있는 요괴들은 한편으로 보면 중앙 권력자들과 사적 관계로 결탁해 부정을 저지르는 지방 지배자들인 것도 같다. 손오공이 요괴와의 관계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쩔쩔매는 신적 존재들을 보라. 

 

손행자는 고래고래 악을 썼으나, 요괴는 아예 못 들은 척 달아나기에 바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뒤쫓겨 거의 따라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왼발에 신고 있던 꽃신 한 짝을 벗어들더니 선기 한 모금 불어넣고 주어를 외우면서 외마디 호통을 쳤다.

변해라!“

주술에 걸린 꽃신 한 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요괴의 모습으로 둔갑하더니 여전히 두자루 칼로 쌍검무를 추어가며 손행자에게 맞서 싸우고, 그녀 자신은 번득하는 찰나에 일진청풍으로 화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 본문 44쪽에서 인용

 

 

이어 멸법국왕을 삭발해 개심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유머러스하게 서술된다. 역시 리디큘러스 마법은 폭력보다 세다. 이제 인도로 들어 섰다. 이곳은 천축 변방에 속한 외곽 고을로서, 지명을 봉선군이라 부르오. (232)’  봉선군에 온 손오공 일행은 하늘을 모독하여 가뭄이 든 봉선군이 죄업을 뉘우칠 방도를 알려준다. 이 부분에서 가뭄과 기근을 겪는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한 대목을 자세히 읽었다. 아무리 인도 변방이 공간적 배경이라해도, 분명 이는 명말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백성은 그나마 여축해놓은 식량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 있으되, 빈궁한 백성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어렵다. 좁쌀 한 말에 백 금의 값어치요, 땔나무 한 단에 닷 냥 값이나 주어야 살 수 있다. 열 살짜리 계집아이를 쌀 석 되와 맞바꾸며,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는 아무나 데려가는 대로 맡겨두는 실정이다. 성내 백성들은 국법이 두려워 죄를 저지르지 못하고 의복과 물건을 전당포에 잡혀 겨우 목숨을 부지하나, 시골에서는 관청의 위엄을 능멸하고 노략질을 하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 본문 23쪽에서 인용

 

일행은 천축국 옥화현에 이른다. 삼장은 법회를 열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옥화친왕 세 왕자를 각각 제자로 받아들여 무예를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손오공들의 병기를 훔쳐간 호구동 사자 요괴들을 퇴치한다. 역시 확실히 인도로 들어왔구나. 사자가 등장하니 말이다.  각 여정에서 등장하는 요괴들은 확실히 각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자연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10권 남았다. 100장으로 구성된 장회소설인 <서유기>는 장터에서 구연되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 회의 마지막은 다음 회를 안내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과연 이번에 나아가는 길에 또 어떤 우여곡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다음 회에서 풀어보기로 하자. (125쪽)'는 식으로. 자, 이제 마지막 10권에선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책을 집어들기가 아쉬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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