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견문록
클라우스 리히터.브루노 바우만 외 지음, 박종대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글쎄다,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었는데 리뷰로 남기려니 쓸 말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 성격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일 제2공영방송  ZDF 특별방송팀이 두 명의 유명 아시아 전문가를 동반하고 실크로드를 여행한 다큐멘타리 보고서인데, 과거 역사와 현재 문제점,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독자에게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펼쳐 보인다. 읽는이에 따라서 매우 재미있을 수도, 매우 산만해서 짜증날 수도 있다. 게다가 세 명의 필자가 나눠 썼으니.

 

책은 실크로드 정의에서 시작한다. 비단에 대한 이야기와 장건, 마르코 폴로, 티무르 등 실크로드를 둘러싼 과거 역사 요약이 이어지기에 대중 역사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곧 필자들은 시안(당나라 시절 장안)으로 날아가서 실크로드 기행을 시작한다. 이때 계속 등장하는 기본 텍스트는 현장법사의 <대당 서역기>이다. 물론, <서유기> 관련 독서를 하고 있는 나는 이 부분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은 것이다. 필자는 장안 편에서 진시황 이야기나 중화제국의 조공 시스템도 건드린다. 이 한정된 분량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배를 산으로 몰아가나, 걱정될 즈음, 역시나, 대강 이야기를 끊어버리고 란저우로 간다. 죽 이런 스타일이다.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실크로드 지역의 환경 오염이나 신 실크로드 건설 전망, 황하강의 치수 문제 등등,,, 저자는 오지랖 넓은 기자 본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심지어 파룬궁 문제까지! 아무리 다큐 특성상, 그 시점의 첨예한 문제를 다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실크로드라는 주제 아래 한 권의 책을 내려면 주제에 어긋난 것은 버려야하지 않았나 싶다. 이어 간쑤 회랑을 지나 둔황, 타클라마칸, 호탄으로 넘어가며 예의 역사서인지 기행문인지 신문기사인지 모를 서술이 이어진다. '현장법사는 당나라의 스파이?' 이 부분은 상당히 독특했다.

 

'실크로드의 보물을 약탈한 서양인들'은 괜찮았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일본인 타지바나(오타니 수하), 독일의 그뢴베델과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등 사막에 묻힌 고대 도시의 유물을 약탈하고 둔황 고문서를 헐값에 쓸어갔으며 끝내 석굴의 벽화까지 뜯어간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간략사. 좀 산만하지만 서구인의 죄악을 나열하는 서구인의 시각을 파악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가 이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래, 돌궐님의 댓글을 읽고 찾아보니 이 부분은 피터 홉커크의 명저<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참고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베꼈다. 야, 정말 이 책 애매하네.

 

몇 시간쯤 갔을까, 헤딘은 물이 나올법한 곳에 이르러 땅을 파보도록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제서야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유일한 삽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하들 가운데 하나가 고대 가옥들을 파헤칠 때 깜빡 잊고 삽을 거기다 두고 왔던 것이다. 헤딘은 즉시 그 부하에게 말을 타고 가서 삽을 찾아오라고 했다. 삽을 갖고 돌아온 그는 도중에 모래 폭풍에 휩쓸려 길을 잃었는데, 그때 우연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유적들을 발견했노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헤딘은 즉시 다른 부하들을 딸려 보내며, 그곳으로 가서 목조상들을 가져오라고 했다. 가져온 목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헤딘은 흥분으로 '눈이 돌아버릴'지경이었다.

- 본문 270쪽에서 인용

 

몇 시간쯤 갔을까, 그들은 물을 얻기 위해 모래를 파기로 했다. 그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삽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이 깜빡하고 고대 가옥에 삽을 두고 왔다고 자백했다. 헤딘은 자기의 말을 타고 가서 찾아오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삽을 찾아 가지고 돌아온 그는, 모래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전에 발견하지 못한 유적을 보았다고 했다. 모래 밖으로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삐죽이 나와 있더라고 말했다. 헤딘은 그에게 즉각 그것들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딸려 보냈다. 가져온 목조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헤딘은 흥분해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본문 100-101쪽에서 인용

 

이어서 카슈가르,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기행이 이어진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쪽 서술이 많다.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정보와 배경 지식이 내게 많지 않은지라, 이 지역의 상황을 저자들이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분석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내겐 꽤 유용했다. 실크로드에 대한 체계적인 대중 역사서로서나 기행서로서는 영 꽝인데, 이런 점은 읽으면서 좋았다. 금광 개발로 인한 이시클 호수의 오염이라든가, 신 실크로드 사업 밑에 깔린 범 투르크주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티무르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의 변화, 과거의 그레이트 게임과 현재의 그레이트 게임 등등,,,, 자, 인용해 보자.

 

광장 중앙에는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당연히 레닌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광장 중앙에 있던 레닌을 끌어내리고 대신 티무르를 올려 놓은 일이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 잔인했던 정복자 티무르를 자신들의 선조로 받아들인 것은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티무르가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사마르칸트를 그 중심지로 구축할 당시 우즈베크 족은 아직 이 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16세기에야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이처럼 역사를 인간의 의도에 따라 조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한 민족의 과거와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소비에트 당시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우즈베크 족의 역사를 각색했고, 이제 독립 후에는 인종주의,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우즈베크 족 자신들의 손에 의해 똑같은 짓이 저질러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 본문 402쪽에서 인용

 

그래서, 읽다보면 이 책의 시점인 1998년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았기에 나는 이 책을 단적으로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맨 앞에 실크로드 표시된 지도가, 맨 뒤에 중국 역사 연보가 있다. '주작대로'를 '붉은 참새들의 도로(66쪽)'라 원문 그대로 옮긴 것 빼고나면 그리 웃긴 번역도 안 보인다. 전체 480쪽이지만 술술 읽히는 장점도 있는데, 읽고 나서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결정적 약점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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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평 잘 봤습니다.
제가 읽어본 실크로드 관련책 중에서는 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이 재미있었어요. 서양인들의 실크로드 약탈사?가 정말 파란만장하더군요.
지난번 리뷰에서 <실크로드 이야기> 소개해주셔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들른 알라딘 중고서점에 그 책이 `오늘 들어온 책`에 있는 걸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싸게 샀어요. 게다가 낙서 하나 없는 책이더군요. 다 껌정드레스 님 덕분이에요. 감사 인사 드립니다.^^;

자유도비 2015-03-08 12:24   좋아요 0 | URL
오, 돌궐님. 반가워요. 역사 책 검색하다가 돌궐님 여러번 뵈었어요. ^^
이 책에서 실크로드의 보물 약탈사 읽어가면서 왜 이리 기시감이 드는지 이상했는데 돌궐님 댓글 보니 알겠네요. 이 책의 그 부분,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베꼈어요. (이 리뷰 본문에 그 부분 다시 넣어 쓰고 별점 깎았어요.)
오래전에 읽고 리뷰도 안 써놔서 잊고 있었던 좋은 책을 돌궐님 덕분에 찾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