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의 비밀 - 소리로 세상을 다스려라
성낙주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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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괴하고 이상한 전설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전설이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에밀레종 설화다. 아마 <손순매아>나 <심청전>과 더불어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이야기 탑 3에 들지않을까싶을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 왜 어른을 위해 아이를 죽이는 건대? 그래도 <손순매아>나 <심청전>은 해피엔딩이기나 하지, 에밀레 설화는 종만 완성되었을뿐 아무런 숭고한 주제 없이 아이가 엄마를 죽어서도 저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나. 소름끼친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120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왜 이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생명력을 갖고 전해지는 것일까?

 

난 일단 종(鐘)자를 째려 봤다. 에밀레종, 종각, 할 때의 종은 쇠북 종(鐘)이다. 金 더하기 童이다. 물론 형성문자이므로 童은 의미 없이 소리를 담당하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그게 다일까? 왜 아이 童가 쇠랑 같이 종으로 만들어질까? 이상하지 않나? 일단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신화, 상징, 연금술 쪽 답을 얻었다. 하지만 엘리아데 선생의 해석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설화에 다 적용되는 원형적 화소이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 있는 종에도, 중국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는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의 대표 종이 되었을까? 뭔가 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설화는 민중의 역사다. 이때 역사는 정형화된 사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설화 향유층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적층, 구전되는 역사다. 그렇다면 에밀레종 설화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더 추적할 능력이 없다.

 

다행이다. 이런 의문을 품은 분이 계셨다. 자, 이번에는 성낙주 선생님의<에밀레종의 비밀>이다. 저자는 에밀레종 전설을 성덕대왕신종이 만들어진 혜공왕 당시 신라 역사와 결부시켜 해석한다. 말을 경망스럽게 하는 어머니, 희생된 아이, 종 만드는 장인인 외삼촌. 이들은 각각 혜공왕의 모후인 만월부인, 혜공왕, 혜공왕의 외삼촌인 김옹(元舅)이며, 섭정을 맡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전횡에 희생된 혜공왕을 애처롭게 여기는 당대 신라인들의 여론이 반영되어 형성된 이야기가 에밀레종 설화라고 본다. 즉 에밀레종 설화는 신라 중대왕실인 무열왕계 왕실의 몰락을 고발하는 정치적 암시가 넘치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런데 다음 장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친다.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이 평화의 시대를 다스리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신기(神器)의 역사가 이어진다. 저자는 당시 신라 왕실이 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 평화와 화합을 원하는 염원을 만파식적,흑옥대와 더불어 에밀레종 제작에 담았다고 본다. 에밀레종을 비롯한 신라 중대 이후 종들의 용뉴에 보이는 원통, 이것이 바로 만파식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문무왕의 수장릉, 감은사,,,, 많은 이야기와 유물, 유적이 달려와 하나에 모인다.

 

이상, 책의 내용이 설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참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히스토리아, 라틴어권 남유럽언어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지 않은가. 제도권 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볼 지 몰라도, 에밀레종 설화는 원래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공통 화소를 가진 인신공희담이다. 이 화소가 특히 신라 혜공왕대 만들어진 에밀레종에 유독 설화화되어 전승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판도 많고 공들여 만든 책이다. 그런데 일본어 지명, 인명이 모두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적혀 있다. 헤이안 시대가 평안시대, 하는 식으로. 한자 병기도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어 읽으면서 평소 익숙한 인명 지명이 아니어서 좀 힘들었다. 대개 일본어 표기는 일본발음으로 적는데, 이건 푸른역사 출판사의 독특한 스타일인가? 같은 출판사의 다른 책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 사소한 지적 : 사실 범종이나 신라사 관련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세계사 부분에서 좀 이상한 내용임.

 

1 158쪽. 측천무후가 '후궁이 된 다음,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목 졸라 죽이고 그 혐의를 자신을 총애하던 황후에게 뒤집어씌워 돼지우리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끝내 황후의 사지를 잘라버린 악의 화신이었다'라고 된 부분. 좀 의아하다. 무후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곤장을 친 후 술항아리에 넣어 죽인 것 같은데. 한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후가 척부인의 손발을 잘라 돼지우리에 넣지 않았나?

 

2 369쪽.  알렉산더 대왕이 '뫼비우스의 띠'를 단칼로 내리쳐 끊었다고 적혀있다. 이상하다. 이 일화에 나오는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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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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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안젤라의 빨간 역사책이다. 그의 고대 로마사 시리즈 3부작 중에서 이 책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뭐 내가 특별히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체질이어서가 아니고,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폼페이 전>를 봤기 때문이다. 폼페이의 도무스에서 뜯어온 에로틱한 벽화를 보고 학구적으로 고대 로마인의 삶을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라고 믿어 주세요)

 

이 책은 고대 로마인들의 성과 사랑, 결혼과 이혼, 모든 종류의 성관계에 대한 세밀한 사실을 다룬다. 책의 서술 방식이 흥미롭다. 115년의 어느 하루 동안 로마의 광장을 지나치는 10여 명의 사람들의 행적을 따라 가서 그들의 사랑과 성의 현장을 슬쩍 엿보는 구성이다. 각 장의 처음 부분은 소설 식이지만 곧 그 장면과 이어지는 문헌과 비문헌 자료의 인용으로 '학구적이고 건조한' 서술이 이어진다. 예를 들자면 원형 경기장 지하 통로를 걸어가는 귀부인을 따라 갔더니 남성미 넘치는 검투사 노예를 만나서,,,, 이어 당시 로마 귀부인의 복장이나 외도, 결혼 풍습 등등을 서술하는 식. 표지만 빨간 책이고 제목만 침 넘어갈 뿐, 뭐 그리 낯뜨거운 내용은 없다. (그래도 다른 역사책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은 확실하다. )

 

특히 76년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 유적 발굴 자료를 폭넓게 인용한 부분이 흥미롭다. 빅토리아 시대 도덕률이 지배하던 19세기 후반에 이런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와 유물을 접한 유럽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안그래도 고대 로마 제국을 이교도 집단으로 여겨 그들의 성생활을 환락적 변태적으로 묘사하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책을 보면 현대인의 성생활과 비교해 봤을 때 뭐 그리 쇼킹한 것은 없다. 영화나 대중 역사서에 고대 로마인들의 성적 방종이 묘사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당시 기준에 맞게 보지 못하기에 생긴 일이다. 또한, 정적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적힌 당대 1차 사료를 너무 곧이곧대로 믿은 탓이다. 어차피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을 죄악에 물든 이교도집단으로 매도한 중세 기독교 인들도 했고, 근엄한 빅토리아 인도 했고, 지금 우리도 다 하고 있는 일. 그들 고대 로마인들이 성과 사랑에 솔직했다고 해서 타락했다며 도덕적으로 더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출토된 유물과 벽에 그려진 그림에 여성 상위 체위가 많이 등장한다고 하여 고대 로마 여성들의 권리가 높은 편이었다는 서술은 좀더 조심스러워야할듯. 어찌 되었든 모든 여성은 그들이 속한 계급의 아래쪽에 속하지 않은가. 로마 귀부인 소수가 암암리에 연애와 혼외정사를 즐겼다고 하지만 하층 여성들의 기록이 없기에 속단할 일이 아니다. 내가 좀 예민해서인지, 난 이런 점을 가지고 침소봉대하여 여성이 성적 매력으로 권력을 누리고 어쩌구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고 어쩌구 하는 일부 저질스런 대중 역사서 필자들의 헛소리가 싫다. 아, 이 책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로마 여성의 지위는 그리스 여성과 비교해서 딱 알맞은 정도만 논한다.

 

여튼, 책에는 소소하게 읽을 거리가 많다. 거룩한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사창가에서 화대를 지불하기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동전이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나 다양한 체위가 그려진 그림판 등등. 대부분은 거의 오늘날 현대인들의 성생활 모습과 비슷하다. 뭐 동영상 대신 창문에 체위 그림판을 노예가 열나게 갈아 끼웠다는 차이 정도? 확실히 다른 점은 고대 로마인들은 남성의 양성애를 허용?장려?하는 분위기였다는 것. 그런데 성인 로마 남성이 14세 이하 자유민 소년과 관계하거나, 남-남 관계에서 수동적 역을 맡는 것은 법으로 처벌받는다는 것. 그러나 노예나 남창을 상대로 남성 역할을 하는 것은 허용되었단다.

 

로마 시대 남성은 양성애자였다. 사실 로마 시대의 도덕은 사내아이를 이런 방향으로 교육하고 이끌었다.

(중략) 왜냐하면 지배에 대한 남성의 생각은 여성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모든 것을 지배해야 했다. 로마 남성은 승리자가 되어야 하며, 자신의 의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국의 백성에게는 무기와 법을 통해서, 다른 로마인들에게는 재산이나 사회적인 신분을 통해서, 하층민들에게는 성생활을 통해서 말이다. 요컨대 그의 남성다움은 그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타인을 복종하게 하는 도구인 것이다. 여기서 타인이라 함은 모든 사람들, 즉 남자, 여자, 아이들을 의미한다. (중략) 로마시대 남자는 성적으로 절대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패배한 적군의 병사들과 남색 행위를 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 본문 65~66쪽에서 인용

 

남성의 동성애는 '징벌'의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포로와 적, 노예, 해방노예 혹은 외국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들과 남색 행위를 했다. 타인의 남성성을 복종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권력과 지배의 형태이지 쾌락은 아니었다.

- 본문 317쪽에서 인용

 

이런 점은 놀랍다기 보다, 성관계가 갖는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한 면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말하자면 페니스 제국주의 아닌가. 이렇게 어느 면에서는 지금과 매우 달라 낯설고 이상한, 다른 시공간의 풍습이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본질을 더 적나라하게 밝혀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책을, 미시사를 읽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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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와 연금술사 - 신화상징총서 5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재실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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얊지만 대단한 책이다. 읽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했다. 넉 달 전에 읽었지만 감히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이런 책의 리뷰는 기를 모으고 모았다가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고, 찬물에 세수하고 써야 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엄청 잘 쓸 예정이란 말은 아니다. ) 일단 목차부터 옮겨 놓는다.

 

1. 운석과 야금술
2. 철기시대의 신화
3. 성화된 세계
4. 지모, 생식석
5. 야금술의 의례와 비의
6. 용광로에 대한 인신제물
7. 비빌로니아 야금술의 상징과 의례
8. 불의 지배자
9. 신성한 대장장이와 개화 영웅
10. 대장장이, 전사, 입문 스승
11. 중국의 연금술
12. 인도의 연금술
13. 연금술과 통과의례
14. 기술의 비밀
15. 연금술, 자연과학, 시간성

 

이 책은 요약 소개가 안 된다. 나는 책 읽을 때 연필로 줄 긋고 메모하며 읽는 버릇이 있다. 덕분에 이 책은 완전 밑줄과 메모 범벅이 되어 버렸다. 아예 소형 연필깎이를 옆에 두고 읽었을 정도니까.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품었던 의문을 엘리아데 선생이 어찌 그리 잘 알고 딱딱 풀이해주시는지 깜짝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문학서도 아니고 이론서인데 감동받아 막 눈물도 났다. (이래서 내가 책 읽는 변태인가 보다.)

 

나는 그동안 중세가 궁금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고방식, 편견, 차별을 규정짓는 기본 틀이 중세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서양사를 읽으면서 가톨릭 관련한 중세인의 의식 구조와 민간 신앙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좀 읽다보니 이상했다. 중세 이전, 고대에 아니 선사시대에 뭔가 기본 틀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다. 선사시대의 역사를 보려면 신화와 고고학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건 완전 내 역량 밖이고 재야 학설이 너무 많다. 아리엘 골란을 읽고 난 후, 난 길을 잃고 헤맸다. 아니, 길 없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좀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뭔가 인류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세계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틀의 문제만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과 불평등의 발생까지 현실적 고난이 이어지고, 인류는 그 충격에서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 관심이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 읽기에, 이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야금술과 연금술에 남아 지금까지 신화전설민담 등 설화나 비의적 종교 의례와 성인식 등 통과의례에 남아 있는 상징이 그런 변화가 있기 전 우리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을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아프리카 대장장이부터 중국 도사들까지, 저자는 종횡무진 예를 들이대며 설명한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보물 창고를 열었지만, 그 번쩍이는 황금과 보석의 광채에 놀라 그만 입구에 서서 얼어붙은 아이가 되었다. (항복. 항복. 엘리아데 선생님, 제가 졌어요. 더 공부해서 리뷰 다시 쓸게요. 더 이상 선생님의 망치로 머리 두들겨 맞다가는 제가 돌아버릴 것 같군요. )

 

중세의 종교적 세속적 민간 전승에 따르면, 예수와 악마는 모두 '불의 지배자'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대장장이와 제철공의 신화적 이미지가 오랫동안 민중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또 이런 민담에는 통과의례적 의미가 지속적으로 함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략) 불과 대장간, 불에 의한 죽음과 소생, 모루 위에서의 단련 등 통과의례적 상징은 샤먼의 신화와 의례를 통해서 명백히 확인된다. 민담을 통해서 되살아난 이와 유사한 이미지들은 듣는 사람이 그러한 상징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 본문 111쪽에서 인용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 문학동네 출판사는 이 시리즈 책들을 어서 빨리 더더더 많이 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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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21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극찬을 하시니 읽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껌정드레스 2015-03-23 00:39   좋아요 0 | URL
저에게는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점들이 한꺼번에 서술되어 있어서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지만, 다른 분들께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이 책에서 저자는 매우 원형적 보편적 이야기만 해요.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식으로 세계 어느 지역 설화 화소에나 다 적용될 수 있는. 각 문화권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세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돌궐님, 칭기즈칸 이름이 테무진(鐵木眞), 철이 들어가는 것 관련한 내력 아시거나 읽을만한 책 있으면 알려 주세요. 이 책에도, 웨더포드 책에도 언급만 하고 그냥 기나가네요.

돌궐 2015-03-23 06:2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걸 알 턱이 없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책장에 있던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을 찾아보니 이븐 바투타가 여행기에서 ˝틴키즈 칸Tinkiz Khan은 하타(북중국) 지방의 대장장이˝라고 했다고 나오네요. 그리고 테무진과 그 형제 테무게, 테물룬 등에 쓰인 `테무르temur`란 말은 `쇠`를 뜻한다고도 하는군요.
<이븐 바투타 여행기>나 앙리 꼬르디에의 <중국으로 가는 길>은 저도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아직 못 읽었어요.
왜 이렇게 어려운 걸 저한테 물으셨는지... `돌궐`이라는 제 별명은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껌정드레스 2015-03-24 00:41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유라시아 유목민족에서 대장장이의 위상이 어땠는지가 궁금해서요. 부족 리더 겸 샤먼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정확히 서술된 책을 아직 못 만났거든요. ^^
돌궐님께 프로의 기운이 느껴져서, 저는 ˝심봤다!˝외치고 있었는걸요. 앞으로 많이 여쭤볼 생각입니다.

YR 2015-03-2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극찬할 정도면 꼭 읽어봐야겠네요.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에요~

껌정드레스 2015-03-23 00:28   좋아요 0 | URL
아, 제 리뷰는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궁금했던 점이 많이 서술되어 있기에 이 책이 좋았지만, 다른 분들께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죽염먹는고흐 2015-05-0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성과 속`을 쓴 작가군요. 이 책 외에 추천할 만한 좋은 역사책(여러권이라도)말씀해 주실수 있나요?

껌정드레스 2015-05-03 00: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역사 어느 분야에 관심 있으신가요? 워낙 고수분들이 많으시고 독서 이력이 각각이시므로, 제가 어떤 답글을 달아야할지 모르겠네요.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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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어가다가 덮었다. 기원전 800년부터 200년 사이까지, 현재 인류문명의 축을 이루는 종교, 철학, 윤리, 영적 전통을 설명하는 그 책에서, 기독교 쪽은 알겠는데 불교 쪽은 모르겠다. 일단 부처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축의 시대>로 돌아가기로 결정, 같은 저자가 쓴 이 책을 골랐다. (물론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도 모른다. )

 

석가모니의 전기는 어릴적 위인전 수준에서 더 읽어본 적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이 독특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유명 스님이나 불교 관련 필자가 아닌 서양 종교 전문가가 써서 그런가보다. 개인에 대한 예찬이나 평가보다 붓다의 이 언행이 이 시대에서 갖는 의미 파악 위주이다. 늘 시대배경이 궁금한 나에게는 붓다 등장 즈음 인도의 상황 설명 부분이 참 좋았다. 당시 인도는 농업 기반 부족 공동체의 질서가 붕괴하고 공화제에서 왕정, 제국으로 나아가던 시대였다. 농업 사회의 전통과 다른 상업 사회의 경쟁과 이기심, 차별과 계급, 정복 전쟁 등등 급격한 변화에 베다 전통과 카스트 제도가 무너진 시기였다. (잘은 모르지만, 마호메트 등장 시기 아라비아 반도 상황이 떠오른다. )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붓다.


또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붓다가 사용하고 붓다의 언행을 기록한 팔리어 경전을 토대로 전개된다는 점. 苦는 둑카인데 이는 단순한 인생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아니라 원래 팔리어로는'뒤틀리고 결함이 있고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붓다의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불교가 그렇게 현실도피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당시 그 시대의 아픔을 해결할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많은 신도들이 모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예수의 생애는 참 드라마틱하게 묘사되는 반면, 붓다의 경우는 깨달음 이전까지만 세세하고 드라마틱하고 이후 열반까지는 큰 기복이 없이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붓다를 따르는 빅쿠(비구 승)들의 파벌싸움, 암살 기도, 춘다의 음식 공양 - 식중독설도 있는데 저자는 독살설도 언급한다 - 으로 인한 사망 등등 붓다가 된 이후의 인생 고난도 다룬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붓다의 인생 이야기와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었다. 인간 붓다가 밋밋하고 개성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가 깨달은 이후 자신의 감정과 언행을 절제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대로 기록되다 보니 후세인에게 그렇게 보일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시각은 신자가 아니라 학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불교 경전에서 기적이나 신이한 묘사로 적힌 붓다 관련 이야기의 신화적 상징성을 덜어내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본다면, 붓다를 괴롭히는 마라(마귀)의 존재를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신의 그림자라고 설명한다. 전생담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붓다 입문서를 찾는 분이라면 알맞을 책이다.

 

책은 다 읽었지만 여전히 불교 쪽은 알쏭달쏭하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같다. 그리고 이 '붓다의 시대', '축의 시대'에 인류가 품었던 시대에 대한 고뇌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에게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자, 다시 <축의 시대>로 돌아가 읽어 보아야 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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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의 책 3
장노엘 로베르 지음, 조성애 옮김 / 이산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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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를 읽다보니 당연히 <대당서역기>에 관심이 갔고, 자연스레 현장과 실크로드 쪽으로 옮겨가며 읽게 되었다. 서구에서 현장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궁금해 찾아보다보니 이 책을 만났다. 그런데 독특하다. 실크로드 역사 이야기인데 로마에서 중국까지라니? 로마, 로마, 로마!에서라니?

 

그렇다, 저자는 로마에서 출발하여 실크로드, 더 나아가 고대 동서양 교류사를 보여주고 있다. 책을 펼치기 전에 가졌던 생각 - 마르코 폴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장건도 현장도 혜초도 이븐 바투타도 없는 서양인데 서쪽에서 출발하게? 하는 생각- 은 내 편견이었다. 166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보낸 사신이 중국 후한 시절 환제를 방문했다는 <후한서>의 기록으로 책은 시작한다. 당시 중국은 로마제국을 대진으로, 로마는 중국을 세레스라고 부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상대국을 풍요롭고 이상적인 나라로 보고 있었다는 것.

 

당시 고대 로마제국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엔트로 향하고 있었다. 동방의 풍요로운 물품을 얻을 수 있었던 오리엔트로. 그래서 저자는 로마 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교역로를 말한다. 팔미라, 알렉산드리아, 페트라 등등. 특히 이 세 도시는 제노비아, 클레오파트라, 세미라미스 여왕 덕분에 더 흥미롭다. 이어 바닷길의 고대사가 이어진다. <에리트라이 해 일주기>라는 고대 항해 안내서를 소개해준다. 다른 실크로드 서적과의 차이는 이 책은 교역로에 위치한 모든 오아시스 국가들을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 철저히 고대 로마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하지만 기존 서구인 연구자들이 범하기 쉬운 서구 우월주의의 잘못된 시각은 없다. 아래 문단과 같은 설명은 올바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설을 미화하려는 의도에서, 그리스인은 이 마케도니아의 장군이 관대한 문화정책을 베풀기 이전의 박트리아는 단지 초원과 사막에 불과하며, 유목민이 원시적인 관습에 따라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유포시키고 있었다. 이것만큼 부정확한 사실도 없다. 이때보다 수백 년도 훨씬 전부터 박트리아는 비옥하고 풍요로운 나라였다.

- 본문 188쪽에서 인용

 

하여간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런 뜻밖의  글로벌한 교류는 당시 세계를 분할하고 있던 4개의 대제국인 로마, 파르티아, 쿠샨, 중국의 평화와 공존 아래 이루어졌다. 이렇게 볼 때 대다수 고대사 필자들이 말하는 고대의 평화가 결코 로마 제국만의 평화, 팍스 로마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연대기적으로 지루하게 역사를 나열하지 않는다. 인도에서 발견되는 로마 은화들, 인도에 전해지는 성 토마스의 전설, 중국에 있는 로마인들의 마을,,, 이런 이야기들을 역사 자료, 설화, 학계의 가설 등을 고루 섞어가면서 다각도로 전해준다. 솔직히 좀 건조하고 흡입력이 떨어지는 느낌이긴 한데, 그건 내가 고대 로마사와 오리엔트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6장에서 <대당 서역기>와  취경 여정 중에 있는 오아시스 국가들 이야기 나왔을 때는 비교적 이해가 잘 되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 배경지식인듯.

 

책은 끝부분으로 가면 이런 위험한 여행에 로마 사람들이 목숨 걸고 도전하게 된 이유, 즉 비단과 향료 등의 사치품에 대해 말한다. 로마인들은 비단실이 세레스(중국)의 나무에 열린다고 생각했단다. 산업스파이를 이용해 동로마제국도 비단을 생산하게 되고,,, 이런 일화도 소개하고 이런 사치품들이 로마 경제와 일상생활 문화에 미친 영향도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의 진가는 이 부분도 지나서 마지막에 있다. 대부분의 실크로드 서적이 실크로드를 통한 불교 전래와 간다라 미술을 말하듯, 저자 역시 실크로드를 통한 로마, 아니 유럽 세계가 받아들인 정신적 유산을 언급한다.  9장의 제목대로, 실크로드는 '영혼의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브라만교 교의의 어떤 측면이 기독교의 초기 교회에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몇몇 저자들이 기독교의 의식과 인도의 고행자의 그것 사이에 존재하는 놀라운 유사성을, 예컨대 고립 생활을 하는 브라만교 수도자들과, 오리엔트에서 발달한 수도원 제도 또는 원기둥 위에 올라가서 가장 완전한 극빈생활을 했던 초기 기독교의 수도자들의 존재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정신적인 영역에서 인도와 로마 사이의 영향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서양에서 동양의 종교와 철학이 유행했다는 것을 고려하고, 로마 제국 사람들이 동양과 인도의 지헤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큰 호감과 존경의 마음에 주목한다면,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그들의 신비주의의 영적인 힘과 금욕주의적인 교의가 서구에서 의식의 변화나 기독교의 신비주의 형성에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 본문 303쪽에서 인용

 책을 읽어가는 내내, 어떻게 실크로드 역사를 서쪽에서 출발해 쓸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감탄했다.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실크로드는 늘 장안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좀 더 가봐야 금성(경주)이나 헤이안쿄(교토). 다 동쪽, 동쪽, 동쪽!에서 출발한다. 아놔, 이런 틀에 박힌 사고라니. 나름 다르게 생각하는 재주가 있다고 자뻑 좀 하며 살았는데. 아아, 난 아직 멀었다.


책은 이산 출판사 책 답게 글자가 작고 빽빽하고 도판이 훌륭하다. 프랑스어로 된 저서를 옮겨서인지 종종 영어식 표기 아닌 프랑스 표기가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시바'의 여왕이 아니라 '사바'의 여왕. 뭐 나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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