얊지만 대단한 책이다. 읽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했다. 넉 달 전에
읽었지만 감히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이런 책의 리뷰는 기를 모으고 모았다가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고, 찬물에 세수하고 써야 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엄청 잘 쓸 예정이란 말은 아니다. ) 일단 목차부터 옮겨 놓는다.
1. 운석과 야금술
2. 철기시대의 신화
3. 성화된 세계
4. 지모,
생식석
5. 야금술의 의례와 비의
6. 용광로에 대한 인신제물
7. 비빌로니아 야금술의 상징과 의례
8. 불의
지배자
9. 신성한 대장장이와 개화 영웅
10. 대장장이, 전사, 입문 스승
11. 중국의 연금술
12. 인도의
연금술
13. 연금술과 통과의례
14. 기술의 비밀
15. 연금술, 자연과학, 시간성
이 책은 요약 소개가 안 된다. 나는 책 읽을 때 연필로 줄 긋고 메모하며 읽는 버릇이 있다. 덕분에 이 책은 완전 밑줄과 메모 범벅이
되어 버렸다. 아예 소형 연필깎이를 옆에 두고 읽었을 정도니까.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품었던 의문을 엘리아데 선생이 어찌 그리 잘 알고 딱딱
풀이해주시는지 깜짝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문학서도 아니고 이론서인데 감동받아 막 눈물도 났다. (이래서 내가 책 읽는 변태인가 보다.)
나는 그동안 중세가 궁금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고방식, 편견, 차별을 규정짓는 기본 틀이 중세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서양사를 읽으면서 가톨릭 관련한 중세인의 의식 구조와 민간 신앙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좀 읽다보니 이상했다. 중세 이전, 고대에 아니
선사시대에 뭔가 기본 틀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다. 선사시대의 역사를 보려면 신화와 고고학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건 완전 내
역량 밖이고 재야 학설이 너무 많다. 아리엘 골란을 읽고 난 후, 난 길을 잃고 헤맸다. 아니, 길 없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좀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뭔가 인류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세계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틀의 문제만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과 불평등의 발생까지 현실적 고난이 이어지고, 인류는 그 충격에서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 관심이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 읽기에, 이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야금술과 연금술에 남아 지금까지 신화전설민담 등 설화나
비의적 종교 의례와 성인식 등 통과의례에 남아 있는 상징이 그런 변화가 있기 전 우리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을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아프리카 대장장이부터 중국 도사들까지, 저자는 종횡무진 예를 들이대며 설명한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보물 창고를 열었지만, 그 번쩍이는 황금과 보석의 광채에 놀라 그만 입구에 서서 얼어붙은 아이가 되었다. (항복. 항복. 엘리아데 선생님,
제가 졌어요. 더 공부해서 리뷰 다시 쓸게요. 더 이상 선생님의 망치로 머리 두들겨 맞다가는 제가 돌아버릴 것 같군요. )
중세의 종교적 세속적 민간 전승에 따르면, 예수와 악마는 모두 '불의 지배자'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대장장이와
제철공의 신화적 이미지가 오랫동안 민중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또 이런 민담에는 통과의례적 의미가 지속적으로 함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략) 불과 대장간, 불에 의한 죽음과 소생, 모루 위에서의 단련 등 통과의례적 상징은 샤먼의 신화와 의례를 통해서 명백히
확인된다. 민담을 통해서 되살아난 이와 유사한 이미지들은 듣는 사람이 그러한 상징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 본문 111쪽에서 인용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 문학동네 출판사는 이 시리즈 책들을 어서 빨리 더더더 많이 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