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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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주 사건은 탈옥수 매그위치의 등장과 관련해 벌어진다. 핍의 유산 증여자가 밝혀지고, 매그위치가 체포되고, 무일푼이 된 핍은 매부 조 가저리의 보살핌을 받고 그제서야 교훈을 깨닫는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상태였으므로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갈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참회의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 하느님, 그를 축복하소서! 오, 하느님,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을 축복하소서!"

- 본문 387쪽에서 인용. 병상에서 눈 뜬 후 매부 조 가저리를 발견한 핍의 말.

 

여기서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은 원작에 'gentle christian man'이라 적혀있다. 그렇다. 젠틀맨, 신사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으로 인용되곤 한다. 신앙은 긍정하고 계급은 부정하던 당시 대중 소설의 독자, 시민계급의 구미에 실로 맞는 주제라 볼 수 있다.

 

한편, 사랑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에스텔러 역시 고된 결혼생활을 정리한 후에 성숙해진다. 그제서야 자신를 바라보던 핍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련이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어서, 하느님이 너를 축복해 주시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너를 용서해 주시기를!이라고 말이야. 그때 그렇게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면, 네가 지금 이 순간에 다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거야.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네 심정이 한 때 어떠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야.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동정심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줘.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고 나에게 말해 줘. "

- 426쪽에서 인용.  새티스 저택에서 핍을 우연히 만난 에스텔라가 하는 말.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라니! 이 얼마나 '돌아온 첫사랑 그녀'의 대사로 어울리는가! 외워두어야겠다. 겪고도 깨우치지 못해 새로운 섶을 지고 새로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그나마 에스텔러는 다행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핍과 에스텔라는 각각 하층과 상층 계급에서 출발했지만, 인생의 교훈을 얻은 계단의 위치는 같다. 이제 같은 높이에서 만났으니 둘에게 새로운, 더 나은 미래가 열릴지도 모른다. 소설은 둘이 함께 할 미래를 암시하며 이렇게 끝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폐허의 장소에서 걸어 나갔다. 오래전 내가 대장간을 처음 떠났을 때 아침 안개가 걷혔던 것과 똑같이, 그렇게 저녁 안개가 그 순간 대지 위에서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밑으로 넓게 펼쳐져 나타난, 고요한 달빛 속의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 427쪽에서 인용.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하층계급에 속하는 대장장이 조 가저리가 진정한 신사였고, 늦게 깨달은 얼치기 신사 견습생 핍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새티스 저택이, 상류 사회가, 신사라는 계급이 '폐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에스텔러의 손을 잡고 폐허를 나선다. 이제 둘의 이별은 없을것만 같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조차 나에겐 에스텔러에 대한 서술이 거의 와닿지 않는다. 에스텔러, 그녀는 이름 그대로 별stella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디킨스선생은 여성 인물을 잘 못 그려 내는듯. 반면 미스 해비셤이나 가저리 부인같이 독특한 성격을 가진, 약간 괴팍하고 사이코같은 여성은 잘 표현한단 말이야. 흠, 이상해. 이제 디킨슨 선생의 연애편력을 파헤쳐 봐야할 시간인가? -_-

 

또 하나, 이런 핍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정신적 스승 겸 인도자 샤먼같은 조 가저리의 직업이 대장장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서구 문명 전통에서 연금술사와 대장장이의 역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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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껌정드레스 2015-06-03 17:46   좋아요 0 | URL
소설에는 어떤 직접적 언급은 없어요.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가 마지막 문장이어서, 저는 긍정적 미래를 암시한다고 생각했어요.

유부만두 2015-06-03 17:48   좋아요 0 | URL
전 둘이 각자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고 싶네요 ^^
 
위대한 유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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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약본 아닌 원전으로 읽을 가치가 있다. 책 표지에 있는 영화와  다르다.

 

대장장이 조 가저리와 누나 부부에게 얹혀사는 핍이 감옥선에서 탈출한 죄수를 만나고, 새티스 저택에 가서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러를 만나고, 모르는 이의 유산을 상속받아 런던으로 가서 신사 수업을 받는 것이 1권의 주 내용.

 

새티스(만족) 주택에서 에스텔러를 만난 이후 핍이 결핍을 느끼고 신분상승을 갈구하는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반면 에스텔러 쪽은 밋밋하다. 예쁘다는 것 외에 별 개성이 없어보인다. 디킨스 선생은 여성 인물 형상화에 좀 약하신 듯. 반면 주인공이 아니지만 미스 해비셤은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저 애를 사랑하거라, 사랑해, 저 앨 사랑해! 저 애가 너에게 호의를 보이면 저 앨 사랑하거라. 저 애가 너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저 앨 사랑하거라. 저 애가 네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더라도, 그리고 나이를 먹고 강해질수록 오히려 그 상처가 더욱 깊이 찢어질지라도 저 애를 사랑하거라, 사랑해, 저 앨 사랑해! 

 (중략)

내 말 잘 듣거라, 핍! 내가 저 아일 양녀로 삼은  것은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야.

- 440쪽에서 인용. 미스 해비셤의 말.

 

"내 너에게 말해 주마." 그녀는 여전히 급하고 격정적인 속삭임으로 말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것은 맹목적인 헌신이고 절대적인 겸손이며, 완전한 복종이고 자신과 세상 전체를 거스르는 신뢰와 믿음이며, 네 온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것이야. 내가 그랬듯이 말이야!"

- 441쪽에서 인용. 미스 해비셤의 말.

 

미스 해비셤은 결혼식 날 아침에사랑하던 남자에게 배신당해 평생 그 상처에 파묻혀 산다. 세상의 남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리만족을 위해 에스텔러를 양녀로 삼아 예쁘게 키워 온갖 연애스킬을 가르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여생도, 에스텔러의 인생도 망친다. 반면, 어릴적 아버지의 폭력이 일상이었던 가정에서 자라 상처받은 조 가저리는 결혼한 이후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아내인 핍의 누나에게 잘 대해준다. 이렇게 과거의 상처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른 두 인물의 대비가 눈에 들어와서 흥미롭다. 결국 진정한 신사는 조 가저리였고, 진정한 숙녀는 비디였다. 왜냐구? 생각이, 심사가 뒤틀리지 않고 멀쩡하거든!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을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핍. " 

- 134쪽에서 인용. 조 가저리의 말.

 

"네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떠나든지 간에, 너에 대한 내 기억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거야. 다만 신사라고 해서 남을 부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

- 277쪽에서 인용. 비디의 말

 

하지만 신분상승과 에스텔러와의 결합 가능성에 눈먼 핍은 조 가저리와 비디의 장점을 보지 못한다. 그들을 창피하게 여기고 서둘러 그 곳을 떠난다. 이렇게 1권에서는 유산 상속 후 신사교육을 받으며 점점 변해가는 핍의 모습이 흥미롭다. 디킨슨과 그의 소설의 시대에, 근대적 개인으로 각성한 시민 계급은 계급상승과 인격도야정도는 반비례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게 그려내는 소설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던 그런 시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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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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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짧은 글 모음집이다.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이란 부제가 붙었다. '유쾌한 지식여행자'라니! 딱 저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카피다.

 

내용 소개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책에는 동시통역 에피소드, 동서양 혹은 일본과 러시아의 문화 차이, 해외 여행, 어릴 적 경험, 자신의 삶, 읽고 본 것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제목은 '문화편력기'이지만 문화에 대한 지식 정보를 얻는다,,,기보다 글쟁이인 한 인간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책은 본업인 통역 사이사이 짬을 내어 연재한 칼럼 모음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짧고 가볍게 지나가는 듯하지만, 그 짧은 글에 담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캠브리지대학에서 필기시험이 수학은 1747년, 고전은 1821년, 법률과 역사는 1872년에 시작할 정도로 서구에서 구술시험이 발달한 이유를 종이부족이 원인이었다고 평하는 대목은 놀랍다.  맛보기로 이어서, 저자가 애국주의, 내셔날리즘에 대해 논평한 문단을 아래에 인용한다. 줄친 부분의 명쾌한 비유는 정말 이 저자만의 개성이다.

 

(애국주의, 내셔널리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 이치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숨어 있는 불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더욱 목청을 높여 주장하거나 선동하는 사람들을 신용할 수 없다. 성욕을 부채질하는 것처럼, 더러운 협잡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즈모폴리터니즘이나 보편주의라는 명목하여 그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좋게 보면 위선이고, 나쁘게 보면 기만이다. 억제된 내셔널리즘이 폭주하는 공포를 20세기는 물릴 만큼 경험했지 않은가.

- 55쪽에서 인용

 

요시와라 유곽 특유의 '아린스'문체는 출신지역이 각각 다른 유녀들이 자기 고향 방언을 사용하여 생기는 지방색을 지워, 유녀의 출신지를 불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영어 등이 표음문자라고는 하지만 이름뿐이고, 말의 표기가 역사와 의미를, 발음이 현재를 각각 분담하고 있으며 그 증거가 발음기호다,,,, 등등 통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성찰이 담긴 짧은 글들을 읽다보니,,, 아쉽다. 이 분이 작심하고 묵직하고 긴 역사 에세이를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건강하게 더 오래 사시다가 은퇴하신 후에 전업 작가 생활을 하셨다면 어떤 책이 나왔을까.

 

요네하라 마리, 관심이 가는 저자다. 본업인 러시아 동시통역을 하면서 얻은 일/러 문화와 역사 이야기, 프라하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독특한 이력에서 오는 감성 그리고 인간 관찰력과 유머. 이 저자만의 특성은 확실하다. 그런데 전문 역사서가 아니어서인지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읽을 때는 재미있는데 소장하고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다거나, 다른 일 하다가 생각난 정보를 확인하게 되지는 않는다.

 

박사 학위를 가진 다른 역사 저술가, 역사문화 에세이를 쓰는 시오노 나나미와 요네하라 마리,,,,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글을 쓰는 필자들의 개성과 장단점을 비교해 보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 오타

62쪽  이반 츠베타예바 => 츠베타예프.

아버지는 츠베타예프, 딸은 츠베타예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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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의 즐거움 - 17~19세기 유럽의 일상세계
위르겐 슐룸봄 지음, 백승종.장현숙 엮고 옮김 / 돌베개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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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접하는 독일 미시사 연구서적이다. 저자 위르겐 슐룸봄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30여년간 독일 농촌지역의 산업화 과정을 연구해왔다. 연구 방법은 주로 독일 오스나브뤼크(Osnabruck) 지방에 있는 벨름 교회공동체(Kirchspiel)에 있는 가족 관계 문서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 교적에 있는 영세, 혼인, 장례 기록 등등의 문서를 바탕으로 저자는 어떤 시점에서 가족 및 친족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여 독일 농촌 인구의 사회적 구성과 이동, 성격 등을 말한다.

 

그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미시사 위주로 읽어서 그런지, 뭔가 좀 독특한 예외적 현상을 소소히 파헤치는 서술에 익숙했나보다.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식의 세례식에 사인한 농부의 숫자 등등 소소한 기록을 통계내어 당시 농민들의 삶을 그려내는 방식, 소작농 자식의 세례식에 대부모가 되어준 지주의 숫자와 친족 관계 등을 추적하여 독일 농민 계급 분화를 파악하는 방식,,,, 등등 책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 연구 과정이 재미있지, 엄청난 새로운 역사 사실을 제공하거나 시각의 전환을 주는 편은 아니다.

 

이 책은 통사식 구성이 아니다. 한 주제로 구성된 책도 아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저자의 논문 모음집이다. 1~4장, 독일지역 소작농의 모습을 담은 부분은 내게 매우 유익했다. 기존 통사류에서 대강 몇 문장 결론으로 서술하고 지나가는 서구 농촌사회 관련 내용을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1장인 '1. 농민들은 과연 글을 쓸 줄 알았는가 - 18~19세기 벨름 지역 농민들의 문자 해독 능력에 관한 연구' 부분은 농민들의 문자 해득 능력에 대한 연구 논문이다. 가족 경제 능력의 차이, 출생 순서 차이, 성별 차이에 따라 문자 해득력에는 차이가 있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결론인가? 다음 2장인 '2. 농가주인이 소작농을 다 잡아먹습니다 - 19세기 독일의 소작제도를 비판한 한 농민의 편지'는 참으로 통쾌유쾌하다. 이 농민의 편지는 지주의 횡포에 지쳐 미국 이민을 떠난 독일의 소작농이 떠나기 직전에 관청에 '찌르고' 간 편지이다. 게다가 이 농민 아저씨가 미국에 가서 자기 땅을 경작하며 성공한 후일담도 있다. (하지만 이 독일 소작농의 성공은 미대륙 원주민의 좌절과 실패이니 이 또한 역사서를 읽는 사람으로서, 마냥 통쾌할 일도 아니다.) 특히 3장인 '3. 남의집살이, 계층 현상인가 통과의례인가 - 17~18세기 유럽사회에 널리 퍼진 남의집살이 현상'은 서유럽의 계절 농촌 노동자와 하녀 집단에 관심있는 내게 저절로 유레카 소리가 나오게 하는 논문이었다. 저자는 인구 동향 분석을 통해, 서유럽의 하녀 등 남이집살이하기라는 직업은 그 직업이 영구불변의 계급이 아니라 일생에서 지나가는 단계였다고 본다.

 

오랫만에 흐르는 침 닦으며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은 내용보다 연구 방법이 흥미롭다. 그런데 다른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흥미로울지는 모르겠다. 서구 농촌 역사나 농촌 아니더라도 역사 서술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절판이지만 꼭 한번 구해서 읽어볼만하다. 백승종 선생님 번역이고, 뒤에 저자와 역자 대담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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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1 대산세계문학총서 79
새뮤얼 리처드슨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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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쇄업자 새뮤얼 리처드슨의 첫 소설이다. 1740년에 출간되었다. 영문학사에서는 이 소설을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가치매긴다. (서구 전체로 보면 돈키호테 아닌가?)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개성강한 근대적 인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전 로망스 시대의 고귀한 신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녀가 주인공이란 점도 중요하다. 그런데 뭐 말이 하녀지, 파멜라는 귀족 부인의 시녀로 일한 평민이다. 아버지는 교사였고. 모시던 귀족부인과 부모님께 교육을 잘 받은 여성이므로 굳이 하녀라는 신분을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귀족 아닌 평범한 소시민계급에 속하는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귀족의 구시대적 악행과 타락에 맞서는 윤리적 시민의 사고방식, 우월성을 반영하기에 근대 소설의 시초로 보기에 좋은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이 소설의 존재를 안 것은 대학시절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난 영문과 불문과 독문과 수업을 다 들었다. 학점은 개판이었지만 난 영문학사 불문학사 독문학사를 대강 귓동냥으로 주워 들었다. 그런데, 그게 깊이깊이 머릿속에 있다가 갑자기 생각날 때가 많다. 그런식으로 이 소설도, 춘향이의 정절을 지킬 권리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귀족인 B부인의 하녀인 파멜라는 부인 사후 그녀의 아들이자 작위 계승자인 B씨의 음욕에 희생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는 완력으로 파멜라를 강간하려고도 하고, 금전적 보상을 명시한 계약서(그레이가 아나에게 내밀었던 계약서의 원조)를 내밀며 첩으로 삼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파멜라는 주인의 요구에 완강히 거절한다. 1권에서 B씨는 완전 변사또다. 곤경에 처한 파멜라가 고향 부모님께 편지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서간체 소설이기에, 1인칭 주인공인 서술자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중년 남자가 그것도 첫 소설로 이정도 소설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소설은 영문학사적 의의보다 내게는 당시 하층계급 여성들이 생애 한번 즈음은 거쳐 갔던 하녀라는 신분과 정조를 지킬 의무와 권리에 대한 계급적 차이 부분에 관심이 간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겨우 15세의 나이에 꿀리지 않고 따박따박 귀족 주인에게 말대꾸하고 훈계하는 여주인공 캐릭터, 매우 맘에 든다. 아래에 인용했다. 왕이라도 날 모욕할 수 없다니,,,, 이건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 시민의 자부심을 반영한 것일까?

 

 

하지만 감히 이 말씀은 드릴래요. 나리께서 부유하시고 지위가 높고 제가 보잘것없고 비천하지 않다면 나리께서는 절 이렇게 모욕하시진 못할 거예요.(중략) 절 그냥 내버려 주세요. 나리께서 왕이라고 해도 나리께서 하셨던 것처럼 절 모욕했다면 전 나리께 신사가 아니라고 말씀드릴 거예요.

- 본문 120쪽에서 인용

 

18세기 중반 소설답게, 설교조 영탄조 대사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읽기 지루했다는 평이 많은데, 나는 왜 이리 이런 점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오! 가엾은 파멜라에게 신의 축복을!" 이런 신파조 대사가 왜 이리 멋지게 읽힐까? 내 취향, 나도 모르겠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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