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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의 즐거움 - 17~19세기 유럽의 일상세계
위르겐 슐룸봄 지음, 백승종.장현숙 엮고 옮김 / 돌베개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접하는 독일 미시사 연구서적이다. 저자 위르겐 슐룸봄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30여년간 독일 농촌지역의 산업화
과정을 연구해왔다. 연구 방법은 주로 독일 오스나브뤼크(Osnabruck) 지방에 있는 벨름 교회공동체(Kirchspiel)에 있는 가족 관계
문서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 교적에 있는 영세, 혼인, 장례 기록 등등의 문서를 바탕으로 저자는 어떤 시점에서 가족 및 친족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여 독일 농촌 인구의 사회적 구성과 이동, 성격 등을 말한다.
그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미시사 위주로 읽어서 그런지, 뭔가 좀 독특한 예외적 현상을 소소히
파헤치는 서술에 익숙했나보다.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식의 세례식에 사인한 농부의 숫자 등등 소소한 기록을 통계내어 당시 농민들의 삶을 그려내는
방식, 소작농 자식의 세례식에 대부모가 되어준 지주의 숫자와 친족 관계 등을 추적하여 독일 농민 계급 분화를 파악하는 방식,,,, 등등 책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 연구 과정이 재미있지, 엄청난 새로운 역사 사실을 제공하거나 시각의 전환을 주는 편은 아니다.
이 책은 통사식 구성이 아니다. 한 주제로 구성된 책도 아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저자의 논문 모음집이다. 1~4장, 독일지역 소작농의 모습을
담은 부분은 내게 매우 유익했다. 기존 통사류에서 대강 몇 문장 결론으로 서술하고 지나가는 서구 농촌사회 관련 내용을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1장인 '1. 농민들은 과연 글을 쓸 줄 알았는가 - 18~19세기 벨름
지역 농민들의 문자 해독 능력에 관한 연구' 부분은 농민들의 문자 해득 능력에 대한 연구 논문이다. 가족 경제 능력의 차이, 출생 순서 차이, 성별
차이에 따라 문자 해득력에는 차이가 있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결론인가? 다음 2장인 '2. 농가주인이 소작농을 다 잡아먹습니다 - 19세기
독일의 소작제도를 비판한 한 농민의 편지'는 참으로 통쾌유쾌하다. 이 농민의 편지는 지주의 횡포에 지쳐 미국 이민을 떠난 독일의 소작농이 떠나기
직전에 관청에 '찌르고' 간 편지이다. 게다가 이 농민 아저씨가 미국에 가서 자기 땅을 경작하며 성공한 후일담도 있다. (하지만 이 독일
소작농의 성공은 미대륙 원주민의 좌절과 실패이니 이 또한 역사서를 읽는 사람으로서, 마냥 통쾌할 일도 아니다.) 특히 3장인 '3. 남의집살이,
계층 현상인가 통과의례인가 - 17~18세기 유럽사회에 널리 퍼진 남의집살이 현상'은 서유럽의 계절 농촌 노동자와 하녀 집단에 관심있는 내게
저절로 유레카 소리가 나오게 하는 논문이었다. 저자는 인구 동향 분석을 통해, 서유럽의 하녀 등 남이집살이하기라는 직업은 그 직업이 영구불변의 계급이 아니라 일생에서 지나가는 단계였다고
본다.
오랫만에 흐르는 침 닦으며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은 내용보다 연구 방법이
흥미롭다. 그런데 다른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흥미로울지는 모르겠다. 서구 농촌 역사나 농촌 아니더라도 역사 서술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절판이지만 꼭 한번 구해서 읽어볼만하다. 백승종 선생님 번역이고, 뒤에 저자와 역자 대담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