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일곱 딸들
브라이언 사이키스 지음, 전성수 옮김 / 따님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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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엔 석기 씨가 아니라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사람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만 유전되는 것에 착안하여 현대인들의 모계 조상을 찾아낸다.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 유럽인들의 조상은 일곱 여성이라고 한다. 이 일곱 여성을 포함한 33명의 여성이 전체 인류의 조상이며, 이들의 조상은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다. 저자는 그를 이브라고 이름 짓는다. 이제는 상식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최근 집필된 세계사 통사류 서적에도 점차 발췌언급되고 있어 궁금했는데 이번에 원전을 찾아 읽었다.

 

아프리카의 씨족들이 세계에서 단연 가장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이들의 유전적 관계 역시 재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조상의 조상을 찾을 수 있다. 마침내 내 꿈이었던 전세계 인류의 완전한 모계 가계도가 만들어지려고 한다. 모든 씨족들은 아프리카인의 어머니이자 전세계 사람의 어머니인 단 한사람의 조상만이 남을 때까지 하나의 가지로 모아진다. 그녀의 존재는 미토콘드리아 DNA와 인류의 진화에 대한 1987년의 논문에서 이미 예상되었다. 나는 즉시 그녀에게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전혀 아프리카식 이름 같지는 않다.  그녀가 바로 오늘날 60억이 넘는 전세계인의 모든 모계조상들의 뿌리이다. 우리 모두는 그녀의 직접적인 모계 후손이다.  (중략)

유전학은 현대인간의 기원이 약 1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매우 분명하게 말해준다. 약 10만년 전 어느 때부터 현대인간은 아프리카에서 펴져나와 나머지 세계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 본문 287 ~ 288쪽에서 인용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은 과학서 답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설명과 연구 방법, 기존 학설과 존쟁, 현재까지 인정된 결과 등을 설명한다. 뒤쪽은 유럽인들의 조상 어머니인 이브의 일곱 딸들의 생애와 생존 당시 모습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이 있다. 우설라, 제니아, 헬레나, 벨다, 타라, 캐트린, 재스민이라 이름 지은 일곱 여성의 일대기를 들려준 후 후손들의 분포를 알려준다. 이 부분이 매우 재미있다. 기존 다른 구석기 시대에 대한 학술적 내용이 허구적 내용과 잘 어울려져 있다. 그래서 어떤 여성은 쌍둥이를 낳고 어떤 여성은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어떤 여성은 통나무 보트를 개발하며 어떤 여성은 늑대를 개로 길들인다. 그 시대에 있었을법한 일은 다 이들 일곱 조상 여성에게 골고루 배분해서 일어나게 짜 놓았다. 대단한 구성력에 필력이다. 

 

결국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인류의 조상이 세계로 퍼져 나가 현대인이 되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대 유럽인의 80%는 4~5만년 전에 유럽에 살기 시작한 수렵인(크로마뇽인)의 후손이며 20%만이 근동에서 이주해온 농경민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은 공통조상으로 연결된 존재라며 인종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많은 이야기들은 인종 분류의 생물학적 토대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여기서 예를 든 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으로서 가장 쉽게 해독할 수 있는 유전자가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이다. 세포핵 속에 있는 수만개의 다른 유전자들도 같은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혼합체이자 서로 연관되어 있다. 각각의 유전자는 다른 공통조상으로 각기 연결되어 있다.

- 306쪽에서 인용

 

참, 이 책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현대유럽인에게 없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현대유럽인들에게는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 이 책에 실린 연구를 하던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점을 검색해서 더 알아보시면 즐거운 독후활동이 될 것이다. (2017년 2월 말 기준, 내가 접한 가장 최근 연구 결과 뉴스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두뇌와 고환에서만 보인다고 한다.)

선사시대와 인류의 기원을 알아보려는 독자들의 필독서가 될 만 한 책이다. 현재 절판인데, 가까운 도서관에 없으면 중고로 구입해서 읽는 것도 괜찮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곱 딸들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저자의 문장력을 맛보시라는 의미에서 강추한다. 맛나고 영양가 높은 것은 나눠 먹던 구석기 시절, 이브의 딸의 후예답게 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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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경제학 (반양장)
마셜 살린스 지음, 박충환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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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도 석기 씨 이야기다. 지난 두 달간, 구석기 시대 쪽으로 50여권 읽었다. 이제 구석기, 하면 구남친 이름처럼 느껴진다. 석기 씨에 대한 책들 중 이 책은 독특하다. 별 경제도 없을 것 같아보이는 구석기인의 경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옛날 구석기인이 아니라 !쿵족 등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의 수렵채집경제민을 연구한다. 1972년 발간된 이 책은 이미 경제인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데 한글번역본은 2014년에야 나왔다. (그러니까 2014년 이전 나온 국내 역사책에 이 내용이 있다면 그분은 원서로 보신 것. 진짜 공부하고 책 쓰신 것이다. )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제1장 '원초적 풍요사회' 부분이다. 저자는 수렵채집민은 구석기 수준의 기술적 무능력 때문에 많은 노동 시간을 들여 고된 노동을 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우리 농경민의 생각이 편견임을 밝힌다. 오히려 그들은 농경민보다 다양한 식단을 즐기며 적은 시간을 노동하며 여가 시간을 즐긴다는 것을 풍부한 민족지 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수렵채집경제의 '가족제 생산 양식'을 설명하고, 4장, 5장에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구석기 수준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물질적 교환관계를 사회, 정치, 도덕적 가치로 설명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원시적 교역과 분배 체계를 분석한다.

 

사람들은 수렵채집인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로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즉, 그들은 극히 제한된 물질적 소유로 인해 일상의 필요와 관련된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길 수 있다.

- 본문 44 ~ 45쪽에서 인용

 

(앞에 도표) 부시맨의 수치는 남성 1명의 수렵채집 노동을 통해 4~5명의 인구가 부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면적인 수치상으로 볼 때, 부시맨의 식량채집은 인구의 20% 이상이 그 나머지를 부양하는데 종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의 농경보다도 더 효율적이다. (중략)  이는 각각의 노동 가능한 성인이 주당 이틀 반 정도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생산 능력이 있는 개인은 자신과 피부양자를 부양하고도 여전히 3일 반이나 5일 반을 다른 활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 본문 54~ 55쪽에서 인용

 

전체적으로 저자는 신석기 혁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농경민들의 문명과 야만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가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으며 그들 경제 규모와 사회, 친족 관계에 맞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음을 주장한다. 선물이나 증여, 공납, 교환 등등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수요 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이란 없다. 이윤 추구 자체가 목적도 아니었다.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선사시대사 등등 여러 분야에 관련 고전적 저술들이 신나게 인용되지만 신기하게도 다 아는 이야기같다. 증여, 덤, 빅맨 관련 전문연구인데도 걍 1970 ~ 80년까지 외가집(경상도 종가집) 명절 때 늘상 보던 풍경 이야기다.

 

물건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폐기처분 방침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는 앞서 논의한 것과 유사한 용어로 기술할 수 있고 또 유사한 원인에 귀속시킬 수도 있다. 이들 다소 냉혈한적으로 들리는 용어에는 휴대성의 한계점에서 발생하는 수익 감소, 최소한의 필수도구, 복제의 배제 등이 있는데, 이는 바로 영아살해, 노인살해, 수유기 성적 금욕 등 대다수 수렵채집민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관행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장치를 고안해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양’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데리고 다닌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 71쪽

 

석기 씨에 대한 책들 읽어나가다보면 우리 인간 사고방식의 근본틀이 이 시대에 다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구석기인들의 원초적 관념을 덮고자 강제하는 사회제도나 도덕 등등이 다 진보며 정의는 아닌듯. (이건 이 책의 주내용과 상관없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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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제와 문화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던 민간요법 약초 중 환각식물에 대한 책이다. 선사시대 구석기인들의 잊혀진 비법이라지만 현재 수렵채집 경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먼 과거의 지식이 아니다. 그러기에 민족식물학자, 인류학자들은 수렵민들의 환각 식물 사용법을 통해 구석기인들의 문화까지 재구성해낼 수 있다. 

 

책은 환각제로 쓰이는 식물들에 대해 설명한다. 수렵민들이 사용하는 환각식물들은 그냥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용도를 위해 의미를 갖고 사용되었다. 샤머니즘 의식이나 이니세이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족이 주로 사용하는 환각식물은 조상신이나 부족의 유래에 대한 신화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 8종의 꽃가루가 엉켜있는 것은 그들이 장례의식을 행했다고 보는 증거가 되지만, 샤먼이 약초 치료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샤먼이 사용하는 유명한 환각식물로 <베다>에 등장하는 '소마'가 있다. 소마는 광대버섯이다.

 

그밖에 저자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다룬다. 그런데 어떤 환각물질이든, 공통적으로 음용 후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우선 다양한 추상적 무늬가 보이는데 이는 경험자들 서로 간에 일치되며 각각 표의문자로서 일정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환각 음료를 계속 먹고 더 취함에 따라 사람들은 신화 세계의 장면을 계속 이어서 보게 된다고 한다. 이 때 나타나는 것은 동물의 명확한 형상이다. 이 동물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존경받는 샤먼이 해석해준다.

 

고대로부터, 환각제가 의식에 사용됨으로써 상징 체계와 무늬가 나타나고, 이것들이 해석됨에 따라 문화적으로 고착 또는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곳에서는 주술 종교적 전통의 수호자인 샤먼이 동시에 그 사회의 예술가였을 가능성이 많은데, 그는 예술품과 주위 환경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형상을 해석하는 소임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86쪽에서 인용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의 동물과 반인반수 그림들은 다 지하세계에서 행진해 올라오는 조상신을 환각상태의 샤먼이 보고 그린 것이라는 장 클로트의 견해가 맞는 것일까? 

 

환각제가 땡겨서,,,, 가 아니라 구석기 유럽 동굴벽화가 궁금해서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동굴 벽화에 관심있다는 말을 다른 리뷰에 쓴 적이 있는데 고마우신 분이 그 리뷰를 읽고 이 책을 권해주셨다. 그 분 아니었더라면 이 책이 있는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분께 감사! ^^ 

 

 

*** 참, 생각보니 송기원 소설 <인도로 간 예수>와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에도 소마가 등장한다. 영화 <엘프>에 '노란 눈을 먹지 말라'는 대사도 있었고,,,,음, 소마와 순록은 한 세트였군. 원래 신화에서 순록은 하늘을 날아 태양을 운반하던 우주사슴이었는데, 그 기본 능력에 소마까지 드셨다니, 루돌프와 그 친구들이 겁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이제 다 이해가 간다. ㅋㅋ

 

*** 알라딘에 이 책이 검색되지 않아 페이퍼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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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세계 여성사 - 남자의 신 여자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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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학사에서 낸 책은 구입하기 전에 망설이게 된다. 일본 쪽으로 나오는 전문 분야 전공자들의 책들은 대개 내용이 좋다. 다른 분야 쪽은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검색해보니 여성사에서 구석기 시대만을 다루는 책은 이 책뿐이었고, 내가 관심 두고 있는 동굴 벽화 쪽 서술 분량이 많은 것 같아서 일단 구입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구석기 시대 여성의 활약은 크게 다섯가지. 출산과 육아, 채집, 살림과 잡역, 사냥꾼 육성과 예술(벽화와 조각 등) 창작, 장신구 생산과 소비. 그런데 이 다섯가지 사항이 다 해당되는 곳은 유럽뿐이라고 한다. 유럽 여성만이 예술을 꽃피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되려면 남성들이 사냥하러 떠난 후 동굴 등에 여성끼리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데, 중국 여성의 경우 여성들끼리 남아있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는 대륙을 관통하는 큰 하천이 없어서 남성들이 자유롭게 유랑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기에 남성들이 오래 거주지를 떠나 있지 않았다고.

 

대 하천들 이를테면 황허와 창장은 물론이고 회하, 위하 등 큰 강들이 구석기 시대 인류의 생활 공간을 겹겹이 둘러쌈으로써 이들의 이동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 여성과 연관된 석기 예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본문 388쪽

 

이게 뭔 말씀인가?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1만 4000년 ~ 1만 1000년 사이에 기온이 상승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에따라 거대한 강들이 이 때 생겨났다고 하는데. 유럽 구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물과 예술작품들은 이미 그 이전에 다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중국에도 대 하천들이 없던 시기인데?

 

유럽과 중국의 구석기 시대의 이러한 차이점은 신석기를 지나 고대사회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미술과 소장품 제작을 통해 충분하게 과시된 유럽의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궁극적으로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상승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면 미술과 소장품 제작에서 보여준 중국과 아시아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지속적인 부진은 결과적으로 근현대 동양 여성의 비천한 신분을 결정짓는 근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423쪽에서 인용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유럽 구석기 동굴벽화가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 상승과 무슨 상관이 있나? 유럽 여성참정권 시위 나선 여성들이 걍 자갈돌을 던졌지 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도 던졌나? 중국, 아시아 여성들이 예술창작에 부진했다는 근거는 뭔가? 나무 등을 소재로 만든 유물은 남아 있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뿐인 거 아닌가?

 

이 책에서 동굴 벽에 찍힌 손자국을 여성의 것이라고 밝힌 부분은 재미있었다. 2009년 딘 스노 교수의 발표 등 최신 학설을 소개해 주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손자국의 목적을 작가 수인으로 보고 동굴 벽화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내린 것으로 봐서, 저자는 1994년 발견된  쇼베 동굴 쪽은 공부하지 않으신 것 같다. 이 책은 2015년에 내면서. 그렇다면 이 분은 자신이 이미 결론으로 정해 놓은 쪽의 자료만 보신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동굴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훌륭한 사냥꾼으로 배양하기 위한 교육 장소였으며 벽화는 이 교육을 위한 교재였다고 할 수 있다.

- 101쪽에서 인용

 

또한, 구석기 시대 남성은 여성에게서 섹스를 제공받고 고기를 바치고, 여성은 배란기를 숨겨서 이익을 보고,,, 이런 '러브 조이 가설'로 계속 남녀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도 저자분이 좀 안이하게 공부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러브 조이 가설'은 학계에서 이미 10년 전에 폐기되었다.

 

 

현생 인류의 진화과정 서술  부분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았다. 뭐 인간이 털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거야 사실인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털이 없어진 이유가 동굴이나 거주 캠프에서 아이를 돌보며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으며 시간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마찰로 인해 털이 없어졌단다. 무슨 말씀이신가?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채집활동에 나섰는데?  몰이 사냥에도 참여하고. 남자가 사냥해 가져다줄 고기만 기다리며 누워 있던 것이 아닌데. 게다가 성관계할 때 바닥에 누워 있다보니 마찰로 여성은 체모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주장도 하시는데, 정말 뜨악하다. 그러나 최고로 뜨악한 서술은 바로 아래.

 

처녀막은 과연 무엇을 차단하거나 경계하는 것인가? (중략) 그런데 여기서 소변과 월경혈은 가운데에 연필 1자루 정도가 들어갈 만큼 1~2개 뚫려 있는 자그마한 처녀막의 구멍을 통해 조금도 지장 없이 배설된다.

- 본문 292쪽에서 인용

 

이 부분에서는 걍 어이가 없었다. 소변이 왜 처녀막 구멍으로 나오나? 소변은 질이 아니라 요도로 나온다. 그리고 '처녀막'이란 용어도 적절치  못하다. '질 주름'이다.혹시나 모를만한 나이신가, 싶어서 저자 약력을 다시 봤다. 저자분은 1955년 출생하셨다. 

 

구석기 시대 쪽으로 다른 책들을 두루 읽으신 독자라면 이 책도 한번 읽어볼만하다. 내가 보기에수긍은 가지 않으나, 열심히 자료 찾고 추적한 노고가 느껴진다. 참고 도서 소개도 좋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에 대한 책들을 처음 읽는 독자가 이 책을 맨 처음으로 읽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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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 돋을새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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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 컬럼니스트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체중이나 첫사랑의 고민, 불편한 하이힐 등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도 있고 초경이나 음모 기르기, 섹스, 포르노그래피, 자위, 인공임신중절 수술 경험 등 대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내용도 있다. 저자는 명랑하게 자신의 흑역사를 까놓기도 한다. 레이디 가가 등 멋진 언니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도 있다. 여튼 저자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통해 이런 조언을 한다.

 

중요한 것은 현대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면서 마주치는 온갖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소리를 지르거나 내재화하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하 !"하고 코웃음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 28쪽에서 인용

 

이런 원칙에 입각, 저자가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직장 성희롱에 대응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분과 에디터가 자기 무릎에 앉아 '승진'에 대해 상의하고자 했을 때, 그를 놀리고 싶었던 나는 그의 무릎 위에 있는 힘을 다해 푹 눌러앉았고, 그 상태로 담배를 피웠다.

"혈액순환 안  되시죠?" 나는 명랑하게 물었고, 그는 땀을 흘리며 기침을 했다.

- 183쪽에서 인용

 

어떤 책을 읽든 시대적 배경과 연관해서 읽는 나로서는, 1978년생 저자가 성장한 당시 영국 사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책 <비밀 일기>와 영화<디스 이즈 잉글랜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들이 성장하던 대처 시대의 암울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메인 그리어의 책들과 다이애너비의 삶이 당시 영국 소녀들에게 얼마나 큰 각성의 계기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론서가 아니고 유명인의 경험을 담은 칼럼 모음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영국식 유머다.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이 종종 있다. 10대부터의 환각제 흡입이나 섹스 등등의 에피소드가 와 닿지 않는다. 이거, 내가 어느덧 꼰대 세대가 되어 나만 이해 못하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포르노그래피 자체가 아니다. 포르노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네안데르탈인 - 어느 행복한 날, 그는 원숭이 허물을 벗고 나타났다 - 의 첫 번째 행위는 동굴  벽에 거대한 성기를 지닌 남자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어쩌면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첫번째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성기와 장식에 큰 흥미를 갖고 있으니까.

- 56쪽에서 인용

 

성적인 언급이 많은 편인데, 위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이지 흥분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네안데르탈인의 거대한 성기 그림이라니! 우리 그이를 이렇게 왜곡하다니! 구석기 시절 유럽의 동굴 벽화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크로마뇽인이 그렸다고요! (네안데르탈인도 동굴벽화를 그렸다는 주장이 최근 나오고 있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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