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석기 씨 이야기다. 지난 두 달간, 구석기 시대 쪽으로 50여권 읽었다. 이제 구석기, 하면 구남친 이름처럼 느껴진다. 석기 씨에
대한 책들 중 이 책은 독특하다. 별 경제도 없을 것 같아보이는 구석기인의 경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옛날 구석기인이 아니라 !쿵족 등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의 수렵채집경제민을 연구한다. 1972년 발간된 이 책은 이미 경제인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데 한글번역본은
2014년에야 나왔다. (그러니까 2014년 이전 나온 국내 역사책에 이 내용이 있다면 그분은 원서로 보신 것. 진짜 공부하고 책 쓰신 것이다.
)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제1장 '원초적 풍요사회' 부분이다. 저자는 수렵채집민은 구석기 수준의 기술적 무능력
때문에 많은 노동 시간을 들여 고된 노동을 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우리 농경민의 생각이 편견임을 밝힌다. 오히려 그들은 농경민보다 다양한
식단을 즐기며 적은 시간을 노동하며 여가 시간을 즐긴다는 것을 풍부한 민족지 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수렵채집경제의 '가족제
생산 양식'을 설명하고, 4장, 5장에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구석기 수준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물질적 교환관계를 사회, 정치, 도덕적 가치로 설명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원시적 교역과 분배 체계를 분석한다.
사람들은 수렵채집인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로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즉, 그들은 극히 제한된 물질적 소유로 인해 일상의 필요와 관련된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길 수
있다.
- 본문 44 ~ 45쪽에서 인용
(앞에 도표) 부시맨의 수치는 남성 1명의 수렵채집 노동을 통해 4~5명의 인구가 부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면적인 수치상으로 볼 때,
부시맨의 식량채집은 인구의 20% 이상이 그 나머지를 부양하는데 종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의 농경보다도 더 효율적이다. (중략)
이는 각각의 노동 가능한 성인이 주당 이틀 반 정도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생산 능력이 있는 개인은 자신과 피부양자를
부양하고도 여전히 3일 반이나 5일 반을 다른 활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 본문 54~ 55쪽에서 인용
전체적으로 저자는 신석기 혁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농경민들의 문명과 야만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가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으며 그들 경제 규모와 사회, 친족 관계에 맞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음을 주장한다. 선물이나 증여, 공납, 교환 등등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수요 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이란 없다. 이윤 추구 자체가 목적도 아니었다.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선사시대사 등등 여러 분야에 관련 고전적 저술들이 신나게 인용되지만 신기하게도 다
아는 이야기같다. 증여, 덤, 빅맨 관련 전문연구인데도 걍 1970 ~ 80년까지 외가집(경상도 종가집) 명절 때 늘상 보던 풍경 이야기다.
물건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폐기처분 방침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는 앞서 논의한 것과 유사한 용어로 기술할 수 있고 또 유사한 원인에
귀속시킬 수도 있다. 이들 다소 냉혈한적으로 들리는 용어에는 휴대성의 한계점에서 발생하는 수익 감소, 최소한의 필수도구, 복제의 배제 등이
있는데, 이는 바로 영아살해, 노인살해, 수유기 성적 금욕 등 대다수 수렵채집민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관행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장치를 고안해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양’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데리고 다닌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 71쪽
석기 씨에 대한 책들 읽어나가다보면 우리 인간 사고방식의 근본틀이 이 시대에 다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구석기인들의 원초적 관념을
덮고자 강제하는 사회제도나 도덕 등등이 다 진보며 정의는 아닌듯. (이건 이 책의 주내용과 상관없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