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세계 여성사 - 남자의 신 여자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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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학사에서 낸 책은 구입하기 전에 망설이게 된다. 일본 쪽으로 나오는 전문 분야 전공자들의 책들은 대개 내용이 좋다. 다른 분야 쪽은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검색해보니 여성사에서 구석기 시대만을 다루는 책은 이 책뿐이었고, 내가 관심 두고 있는 동굴 벽화 쪽 서술 분량이 많은 것 같아서 일단 구입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구석기 시대 여성의 활약은 크게 다섯가지. 출산과 육아, 채집, 살림과 잡역, 사냥꾼 육성과 예술(벽화와 조각 등) 창작, 장신구 생산과 소비. 그런데 이 다섯가지 사항이 다 해당되는 곳은 유럽뿐이라고 한다. 유럽 여성만이 예술을 꽃피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되려면 남성들이 사냥하러 떠난 후 동굴 등에 여성끼리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데, 중국 여성의 경우 여성들끼리 남아있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는 대륙을 관통하는 큰 하천이 없어서 남성들이 자유롭게 유랑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기에 남성들이 오래 거주지를 떠나 있지 않았다고.

 

대 하천들 이를테면 황허와 창장은 물론이고 회하, 위하 등 큰 강들이 구석기 시대 인류의 생활 공간을 겹겹이 둘러쌈으로써 이들의 이동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 여성과 연관된 석기 예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본문 388쪽

 

이게 뭔 말씀인가?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1만 4000년 ~ 1만 1000년 사이에 기온이 상승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에따라 거대한 강들이 이 때 생겨났다고 하는데. 유럽 구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물과 예술작품들은 이미 그 이전에 다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중국에도 대 하천들이 없던 시기인데?

 

유럽과 중국의 구석기 시대의 이러한 차이점은 신석기를 지나 고대사회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미술과 소장품 제작을 통해 충분하게 과시된 유럽의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궁극적으로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상승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면 미술과 소장품 제작에서 보여준 중국과 아시아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지속적인 부진은 결과적으로 근현대 동양 여성의 비천한 신분을 결정짓는 근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423쪽에서 인용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유럽 구석기 동굴벽화가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 상승과 무슨 상관이 있나? 유럽 여성참정권 시위 나선 여성들이 걍 자갈돌을 던졌지 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도 던졌나? 중국, 아시아 여성들이 예술창작에 부진했다는 근거는 뭔가? 나무 등을 소재로 만든 유물은 남아 있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뿐인 거 아닌가?

 

이 책에서 동굴 벽에 찍힌 손자국을 여성의 것이라고 밝힌 부분은 재미있었다. 2009년 딘 스노 교수의 발표 등 최신 학설을 소개해 주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손자국의 목적을 작가 수인으로 보고 동굴 벽화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내린 것으로 봐서, 저자는 1994년 발견된  쇼베 동굴 쪽은 공부하지 않으신 것 같다. 이 책은 2015년에 내면서. 그렇다면 이 분은 자신이 이미 결론으로 정해 놓은 쪽의 자료만 보신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동굴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훌륭한 사냥꾼으로 배양하기 위한 교육 장소였으며 벽화는 이 교육을 위한 교재였다고 할 수 있다.

- 101쪽에서 인용

 

또한, 구석기 시대 남성은 여성에게서 섹스를 제공받고 고기를 바치고, 여성은 배란기를 숨겨서 이익을 보고,,, 이런 '러브 조이 가설'로 계속 남녀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도 저자분이 좀 안이하게 공부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러브 조이 가설'은 학계에서 이미 10년 전에 폐기되었다.

 

 

현생 인류의 진화과정 서술  부분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았다. 뭐 인간이 털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거야 사실인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털이 없어진 이유가 동굴이나 거주 캠프에서 아이를 돌보며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으며 시간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마찰로 인해 털이 없어졌단다. 무슨 말씀이신가?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채집활동에 나섰는데?  몰이 사냥에도 참여하고. 남자가 사냥해 가져다줄 고기만 기다리며 누워 있던 것이 아닌데. 게다가 성관계할 때 바닥에 누워 있다보니 마찰로 여성은 체모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주장도 하시는데, 정말 뜨악하다. 그러나 최고로 뜨악한 서술은 바로 아래.

 

처녀막은 과연 무엇을 차단하거나 경계하는 것인가? (중략) 그런데 여기서 소변과 월경혈은 가운데에 연필 1자루 정도가 들어갈 만큼 1~2개 뚫려 있는 자그마한 처녀막의 구멍을 통해 조금도 지장 없이 배설된다.

- 본문 292쪽에서 인용

 

이 부분에서는 걍 어이가 없었다. 소변이 왜 처녀막 구멍으로 나오나? 소변은 질이 아니라 요도로 나온다. 그리고 '처녀막'이란 용어도 적절치  못하다. '질 주름'이다.혹시나 모를만한 나이신가, 싶어서 저자 약력을 다시 봤다. 저자분은 1955년 출생하셨다. 

 

구석기 시대 쪽으로 다른 책들을 두루 읽으신 독자라면 이 책도 한번 읽어볼만하다. 내가 보기에수긍은 가지 않으나, 열심히 자료 찾고 추적한 노고가 느껴진다. 참고 도서 소개도 좋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에 대한 책들을 처음 읽는 독자가 이 책을 맨 처음으로 읽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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