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가 마흔에 쓴 늙음을 경계하는 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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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 계로록>은 1931년생 일본 소설가인 저자가 1972년에 발표한 <계로록(戒老錄>을 번역한 책이다. 앞으로 겪을 노후를 생각하며 경계하는 마음에서 저자가 40대에 쓴 이 책은 현재까지 40년이 넘게 일본에서 초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벌써 서문도 세 번이나 다시 쓰며 저자 나이 80대에 이르기까지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책을 읽기전에 이리 저리 검색하고 알아보니, 이미 평판이 좋은 책이었다. 좀 거품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명불허전!이었다.  나이듦과 노후에 대비하는 자세에 대한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책들은 많지만 이렇게 딱딱 짚어가며 노인이 된 후에 경계해야 할 것을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은 드물다. 목차만 봐도 책의 장점이 보인다. 이하, 각 꼭지의 제목을 인용한다.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노후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최고 연장자가 되어도 자신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손자를 돌보아줄 것, 그러나 공치사는 하지 않을 것
젊음을 시기하지 않을 것, 젊은 사람을 대접할 것
젊은 세대는 나보다 바쁘다는 것을 명심할 것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한다

날마다 보살펴주는 타인에게 감사할 것

 

위와 같이, 자신을 돌봐주는 손아랫 사람을 대할 때 명심해야할 이런 삶의 자세에 대한 잔소리도 있어서 속이 시원하다. 내말이~!  하지만 이런 말, 내가 엄마께 직접 하면 싸움난다. 서운해하신다. 그래서 엄마보다 10살 많으신 유명한 작가분이 쓰신 책이야, 하며 엄마께 선물했다. 그 외에도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러시아워의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동하지 말 것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을 쓸 것
자주 씻을 것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글 것
일생 동안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할 것

 

같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생활 에티켓 당부까지 있다. 정말 어르신들 직접 모셔보고 시달려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이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저자 소노 아야코의 다른 에세이를 읽어보니, 저자는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80대, 90대에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아무리 자식된 도리로서 봉양한다고 해도, 오죽 힘들고 속상했을까. 자기 작품까지 쓰면서. 그래서인지 노부모를 위해 죽 한번 끓여본 적 없는 남성분들이 늘어놓는 뻔한 효도며 인간 도리며 나이듦의 철학 이야기가 담긴 책 열 권보다 이 책 한 권이 내게 더 와 닿았다.

 

강추. 나이 들어가시면서 자식에게 응석만 부리고 억지 쓰는 부모에게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신 분이라면 이 책을 사서 선물해드릴 것을 권한다. 큰글씨 책도 있어서 눈이 잘 안 보이시는 부모님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또, 반백 나이(그러니까 50세) 넘어가면서 약간 독불장군식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고 아차! 하는 분들께도 권한다. 이 책은 예방 주사도 될 수 있다.

 

엄마와의 갈등 때문에 찾아 읽은 책인데, 솔직히 나도 뜨끔했다. 아래 인용부분을 읽었을 때였다. 나도 미리 조심해야겠다.

"애완 동물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은 노화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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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09-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나이듦의 지혜 중에 한 권을 골라서 읽는다면 어느 것이 좋을까요? 그리고 부모님 선물용으로도 같은게 좋을까요?

자유도비 2015-09-20 16: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깨비님.
아직 노년이 아닌 나이의 독자가 노년을 앞두고 자신의 마음가짐을 세우는 입장이라면 <나이듦의 지혜>가, 노년기 나이 독자가 세세한 생활 수칙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대개 연장자께 `어떻게 살아라`하는 책은 선사하기가 좀 어렵지요. 간혹 노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제 경우에는, 70대 어머니께 선물해드렸는데 좀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 세세한 생활 관리 방법에 대해서는 <늙지마라 나의 일상>도 좋았어요. 이 책 리뷰, 방금 올렸습니다. ^^

북깨비 2015-09-25 15:56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닷! 그럼 일단 두개 다 사서 읽어 보고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다면 어머니께는 이 책을 드려야 겠어요.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섭섭해 하시거나 노여워 하시면 큰일이니까요.

자유도비 2015-10-02 22:56   좋아요 0 | URL
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 출판사 목록에 있는 다른 책들도 한번 보세요. ^^
 
내 안의 어린아이 -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만나는 자기 치유 심리학
에리카 J. 초피크 & 마거릿 폴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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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내면 속에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있으며, 이 내면 아이를 내면 속의 어른이 보살펴 주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내용. 대단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내면 아이는 본능, 감정, 우뇌형 사고를, 내면 어른은 이성, 합리성, 좌뇌형 사고인 셈이니까.

 

책은 현재 나의 문제가 타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자난 삶에서 양육자의 냉정함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에서 자신을 남의 기대에 맞추려 착한 아이를 연기하다가 지치고 불행해지다못해 자아 분열이 와서 생긴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내면 아이를 양육해서 행복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한다. 더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로 갈 것을 제안한다.

 

내면어른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면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경험하고 책임지지 않기로 선택할 때 그 내면어른은 수치심, 무시, 방종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내면아이와 분리된다. 내면아이는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감정에 휩싸이고 내적으로 심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내면아이는 자신이 나쁘고 못됐으며,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보잘것없고 부족한 존재라서 그런 거라고 결론 내린다. 자기가 그렇게 모자란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실제로 존재하는 어른(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결국은 내면어른도 자기를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적, 내적 분리로 내면아이는 강렬한 공포, 죄의식, 수치심과 함께 이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감정과 내면의 외로움에 시달린다. 아이는 먼저 외부의 양육자들에게, 나중에는 자신의 내면어른에게 거부당하고 버림받고 통제당하는 두려움을 배운다. 결국 아이는 이러한 두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투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거부당하고 버림받을 것이라고 믿거나 그들이 자기를 통제하려 든다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 23쪽에서 인용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내면어른과 내면아이 모두의 필요를 자각하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여 스스로 행복해지고자 해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남의 책임으로 돌리면 자기가 불행한 이유를 그 사람에게 따지게 된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남들을 탓하면서 그들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일단 자신의 행복을 책임지기로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애정을 갖고 행동한다면 충분히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 126쪽에서 인용

 

우리 중 상당수는 어렸을 때 부모나 양육자에게 인격을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웃음거리가 되고, 심판당하고,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배웠다. 이런 태도로 애정 없는 내면양육을 통해 자존감을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재양육한다는 것은 타인에게서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사랑과 동의를 자기 자신에게 베푼다는 의미다.

- 171쪽에서 인용

 

내면아이(Inner Child)라는 용어에서 어릴 적 상처의 치유만 떠올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개념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주위 어른들에게서 받은 상처만이 아니라, 냉담한 어른의 시각을 갖게된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주는 상처의 치유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타인의 행동을 개인적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징징거리는 내면 아이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훈육하는 것 역시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르술라 누버가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에서 말한 내용보다 조금 더 나간 입장을 보여주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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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김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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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아이'에 대한 책을 찾아 보다 만난 책이다. 이 저자의 <세계사 심리 코드>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독특하다. 심리학 이론과 사례 정도야 '내면 아이'를 다룬 다른 책에서도 뻔히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은 정조, 연산군 등 역사 인물에다가 박정희, 정주영, 오바마 등 현대 유명인들, <카르멘>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등 문학의 예까지 거론한다. 게다가 개인의 심리 문제를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같이 설명하고 '변혁'을 요구한다. 정말 정신세계가 궁금한 저자분이시다. 책을 읽는 내내 독서량이 많고 사서 고민하는 스타일이어서 화제거리가 풍부하고 열정적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3장에서 상처입은 어른들의 유형을 모범생, 도망자, 순둥이, 병약자, 광대, 욕심쟁이, 속물, 자기 혐오자, 공격자로 나누어 설명한 점이 특히 좋았다. 내면 아이를 다룬 다른 번역서와 달리 우리의 지난 역사적 실정에 따라 생긴 심리적 문제를 보여주는 점은 기본으로 좋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이 주요한 동기가 좌절된 결과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있다는 말은 곧 그에게 좌절된 동기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좌절된 동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상처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

- 본문 205쪽에서 인용

 

만일 단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를 양육했던 부모에 대해서까지 이해하고 싶다면 부모의 부모관계 -부모의 어린 시절을 포함하는 - 와 삶에 대해서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기의 부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럼으로써 부모와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본문 220쪽에서 인용

 

위에 인용한 두 문단은 '내면 아이'를 다루는 다른 책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이 아래 인용 문단은 저자만의 독특한 서술이 보인다. 관심이 가는 저자다. 여튼, 이분 책을 좀더 읽어보련다.

 

사람은 세상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변혁해야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정신장애란 세상을 변혁할 힘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 잘못된 부모, 잘못된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 266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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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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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LASS DIE KINDHEIT HINTER DIR>였다. 1달 배운 독어실력으로 대강 짐작하건대, 국내 번역본 제목보다 '어린 시절을 너 뒤로 가게 하라'란 원제가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들과 일반인들의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책이 술술 넘어간다.

 

현재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찾아 보면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다. 폭언 등으로 어린 시절에 자신에 대한 그릇된 신념 체계가 생기면 어른이 된 후에도 대인 관계가 힘들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화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불우했던 기억은 현재 처한 어려움이나 갈등에 의해 되살아나 현재의 상황과 겹친다. 결국 내가 사랑하며, 내 사랑을 필요로하는 연인, 배우자, 자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러면 안 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니 내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하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라. 심리 치료를 받거나 긍정적 경험을 하여 극복해라,,, 책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부모를 용서하라고 한다. 과거의 일을 모두 지워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의식적으로 용서하라고 한다. 그러면 과거는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있어야 할 곳, 즉 과거로 '추방'되어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고 한다. 용서해준다고 그들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달라지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다. 저자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본인의 태도와 감정을 바꿔서  분노, 불안과 같은 병적이고 부정적 감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고 권한다. 부모를 용서하려면 어른의 입장에서 진실을 보고 부모의 삶을 전체 맥락에서, 사회 시스템 내에서 보아야 한다. 또 부모를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본인이 먼저 끊지 않으면 나쁜 신념 체계가 다음 세대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께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시는 엄마가, 왜 똑 같은 폭언을 나와 조카에게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아 찾아 읽은 책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른이 어린 시절에 자신을 돌보던 것처럼 우리 자신을 돌보면 뇌 속에 남아 잇는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인 '생물학적 흉터'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덧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받아들인 긍정적인 관계는 이 흉터를 잘 아물게 하는 특효약이다. 예를 들면 잘 이해해주는 심리요법가나 애정이 많은 반려자와 좋은 대체 경험을 하면 어린 시절에 영향을 받은 뇌의 구조마저 바뀔 수 있다.

- 269쪽에서 인용

 

위에 인용한 대목을 읽고나니 새삼 나의 글벗들께 고마움을 느꼈다. 요새 5년 사이, 내 삶과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악몽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친구분들의 애정어린 격려 덕분이다. 내 과거의 상처는 과거로 갔다. 이제는 과거의 나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글을 쓰고 싶다.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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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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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84장본)과 경판본 춘향전(30장본)을 현대역한 춘향전이다. 어린이용 아닌 판본으로 이미 읽어보았건만, 이렇게 두 판본을 비교해가며 읽어보니 <춘향전>은 판본에 따라 내용 차이가 크고, 인물 해석은 물론 주제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겠다. 

 

<춘향전>은 한시, 중국 고사 인용,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우리 시조, 민요 등등 19세기까지 국문학과 한문학의 정수를 다 담은 점, 민중들의 언어습관과 해학을 담은 점, 마치 요새 랩처럼 각운을 이용한 언어유희 등등, 가히 산문 국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제의 혁명성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성적 묘사도 만만찮게 재미있다. 진시황의 아방궁 용궁 속의 수정궁 등등 궁궐 이야기하던 이도령이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두 다리 사이에 있는 수룡궁에 나의 힘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라고 수작을 걸자 춘향이가 웃는 것을 보면(65쪽) 이 커플, 16세 맞나?싶을 정도다.

 

<춘향전>의 이본은 크게 보아 <별춘향전>계열과 <남원고사>계열이 있다.  이 책에 처음 실린 열녀춘향수절가는 <별춘향전>계열이다. 경판본 춘향전은 <남원고사>계열이다. <별춘향전>계열은 앞부분에서 춘향을 성참판의 서녀로 서술하고 태몽 등 출생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 설정으로 이도령이나 방자가 춘향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 즉, <남원고사>계열에 비해 창기취급을 하지 않고 춘향을 존중해 대하게 되는 것이다. 완판본 춘향가에는 이도령이 한양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하자 춘향이가 옷을 찢고 머리를 뜯으며 이도령에게 발악하는 장면이 있다. 또 경판본 춘향전에는 춘향이가 여종을 자기 대신 관기로 넣어 기적에서 빠진 내용이 나와 있다. 경판본에는 감옥에 갇힌 춘향이가 꿈해몽을 위해 봉사를 부르는데, 봉사가 춘향이 다리를 만지며 성추행하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각 판본별 차이에 주의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발전해왔을 정도라면, (물론 현대 드라마, 영화 포함해서) 이 작품 자체의 생명력이 대단한 셈이다. 그만큼 작품 안에 다양한 민중의 요구와 해석을 담았다는 의미니까.  

 

이제, 각종 춘향전 중에서 최고의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이명선 고사본 춘향전>을 읽어 봐야겠다.


- 책 뒤편에 완판84장본 <열여춘향슈절가>영인본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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