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통이 어려운가 - 마음의 통로를 여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정문주 옮김 / 고즈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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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를 읽은 후, 가토 다이조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저자는 거의 반 세기를 상담자로 살며 남의 인생에 조언을 해 준 사람이다.

 

저자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타인과 나의 경계를 각각 x,y 좌표축으로 삼아 인간의 내면을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후, 자신과 타인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이 클수록 소통은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상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상대의 거리감을 알야야 한다. 예를 들어, 친한 사이도 아닌데 시시콜콜 관심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상대가 친절하게 응대해주지 않는다고 소통이 안된다며 서운해하는 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상대와의 거리감을 모르는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상대의 말을 흘려들을 줄 모르기 때문에 매번 놀랄 만큼 과잉 반응을 보인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반면 자기 집착이 강하기에, 상대가 자신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부정하는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낸다.

타인에 대한 과잉 의존, 무관심, 과잉 반응은 같은 심리를 다른 관점에서 표현한 말이다.

- 58쪽에서 인용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는 사람도 상대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동정해 주길 원하므로, 그 사람의 주의는 '상대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지'에 쏠려 있다. 애정 결핍이 심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애정이 결핍된 사람은 행복의 길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간다. 컨디션이 좋은데도 '몸이 안 좋다. 힘들다'며 동정을 끌 만한 이야기를 한다.

 - 82쪽에서 인용

 

자신의 불행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성장기에 부모 자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쩌다 만난 상대에게 진정한 부모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비참함을 최대한 강조한다. 요컨대 '내가 이만큼 괴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자기 집착이 강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가엾은 모습을 부각시키면 자신의 이미지는 나빠지고 사람들은 도망가 버리는데, 남들이 좋게 봐 줄 것으로 생각하고 호소하는 것이다.

- 204쪽에서 인용

 

강한 자기 집착은 동시에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대에게서 무엇이든 얻어 내려는 탐욕 그리고 노라고 말할줄 모르는 유약함이다. 그래서 자기 칩착이 강한 사람은 교활한 사람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결국 심리적으로 병든 사람은 똑같이 병든 사람과 엮인다.

- 205쪽에서 인용

 

등등, 책에는 온갖 자신의 문제를 모르고 소통이 안 되는 상대에게 불평하는 짜증나는 사람들의 예가 잔뜩 실려있다. 소통에 대해 알려고 읽었는데 뜻밖에 폭탄을 피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하긴, 상대 입장에서 보면 내가 폭탄일 수도 있겠다만.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할까?

 

먼저 상대를 파악하고 관계를 맺어도 될 사람과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상대와 소통하려는 사람은 마음의 통로가 좁다.  (중략) 따라서 자신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주위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업무상 이해관게만 맺는 것이 좋은 사람인지, 친구로 우정을 나눠도 좋을 사람인지,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기대해도 좋을지 아닐지 등등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그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야 한다.

- 75 ~ 76쪽에서 인용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소통을 잘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반성하면 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진정한 나인가? 남들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해 주는가?

- 211쪽에서 인용

 

여기까지 소통법을 배워보니, 예상했던 것과 달리 현실을 똑바로 보고 과잉 소통 욕구를 덜어내야 한다는 쪽으로 나는 읽힌다. 새로운 노하우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을 한 권 읽은 내 입장에서 보면, 저자의 기존 책과 같은 이야기가 또 나와서 시시했다. 하지만 나, 엄마, 기욤이의 경우가 다 나와서 얼굴이 뜨거웠다. 정말 정신차리고 자아 성찰, 긴장하며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나이듦과 관계, 내면 아이, 성장, 가족 등에 대한 책을 주욱 읽어 보고 있다. 이 저자의 책까지 읽고 각 저자들의 특징을 정리해 보니  전공 심리학자가 쓴 책, 상담가가 쓴 책, 에세이 작가가 쓴 책이 다 다르다. 내용 뿐만 아니라 글 쓰는 스타일도 그렇다. 상담자들이 가장 자기계발서 저자같은 문체를 보인다. 쉽고, 반복적이고, 결론 위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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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불안할 때,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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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알아봐서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읽다보니, 이 저자와 이 출판사에 대한 좋은 평이 많이 보였다. 이 책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는 제목부터 울컥, 뭔가 올라온다. '그릇된 노력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타인에 대한 경멸은 자신에 대한 증오를 나타낸다''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무장한다''일상의 축적이 행복을 낳는다'등 본문 각 꼭지 제목도 마음에 와 닿는다. 원문이 이런지 번역자와 편집자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현실순응적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는 자신을, 자신의 현재 처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못 받은 사랑을 받고 싶은 기대를 버리고 인간 관계의 거리감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평온이 온다고 한다.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말고 현재에 감사하며 꾸준한 노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축적해야 한다고 한다.

 

책 내용은 약간 자기계발서같다. 차근차근 심리설명 없이 '~ 해라'하는 식으로 결론만 바로 제시하는 편이다. 결론보다 그 과정 단계단계에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설명 부분이 약하다. 비전공자의 상담 칼럼같이 읽힌다. 이솝 우화 등 친근한 이야기의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 점은 좋았다. 어떤 예화 부분은 내가 평소에 자주 들던 예여서 깜짝 놀랐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인건가?

 

자신의 원점을 돌아보고 성장 과정을 되밟아본 다음에 어떤 것을 바꾸고 어떤 것을 기대해야 좋을지 판단하고, 가능한 것을 하나하나 바꾸어나가는 것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이다.

- 80쪽에서 인용

 

"내게 주어진 운명에 맞추어 산다"는 목적을 가지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91쪽에서 인용

 

'부모를 좋게 생각하고 싶다'는 바람 역시 억압의 원인이 된다. 사람은 고립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감춘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에 부모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곡해한다. '우리 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이야"라고 생각하는 쪽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모순을 일으키지도 않기 때문이다.

- 109쪽에서 인용

 

현실에서 거액의 빚을 짊어진 사람은 자신이 빚을 지고 잇다는 사실을 작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지만, 어린 시절에 심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그런 자각 없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려 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 264쪽에서 인용

 

여튼,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그래, 나도 아팠고 너도 아팠다. 인정하고, 여기에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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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부터 청춘
야마사키 다케야 지음, 김형주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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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에세이를 주욱 읽어보고 있다. 크게 봐서는 대개 내용이 비슷하다.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노년의 지혜를 갖고, 건강 관리를 잘하고, 아랫 세대에게 너무 의존하거나 폐 끼치지 말고,,, 그런 착하고 좋다못해 뻔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별로 저자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일찍 노령화가 진행된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미 이 분야에 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어서, 주로 일본 번역서를 읽다보니 특유의 '폐 끼치지 않고 和를 중시하는 일본 문화가 반영되어서일까. (마루야마 겐지 선생은 제외. 이분은 워낙 독보적.) 아니면 저자들이 원래 문학 전공자에 평생을 작가로만 살았던 분이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자 이력을 보고 책을 골랐다. 1935년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난 저자는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현역 시절에는 발로 뛰며 무역 업무를 했고, 은퇴한 지금은  ㈜인터내셔널 아이 사장으로 비즈니스 컨설턴트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저자의 이력이 반영되서인지, 이 책에는 그렇고 그런 착한 이야기는 기본으로 깔려 있지만 다른 시각의 이야기도 꽤 있다. 제 3장에서 돈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또, 사람을 상대로 오래 일해와서 그런지 외모 관리에 대한 조언 부분도 신선했다. 이상하게, 남성 어르신들은 외모 관리에 대한 부분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해도 머리숱이나 아랫배 등 자신의 몸이 겉으로 보이는 외모 정도이지, 복장으로 꾸며지는 외모에 대한 부분은 별로 신경 써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아직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부분도 언급한다.

 

평생 지적 호기심을 갖고, 젊어 보이는데 집착해서 도금한 인생을 살지 말고, 열등감으로 해석될 허세를 부리지 마라, 사기당하니 투자하지 마라, 자식들 생활에 간섭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데, 일본인은 기모노가 어울리는 체형이니 양복 안 어울린다. 그렇다고 후즐근하게 입지 말고 고급 재단 고급 원단 옷으로 깔끔하게 입어라, 나이가 들어도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사랑에 나서라,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팬으로 짝사랑하라, 이런 조언은 저자의 이 책에만 있다. 그중 독특한 시각을 보인 부분을 아래 소개한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탄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섬김의 대상은 충분히 있다. 자식이나 손주가 있지 않은가? 부모님께 해드리려고 했던 것을 자녀나 손주에게 해주는 것이다. 자녀나 손주에 대해 경애의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말하자면 '자식 효도'이며 '손주 효도'이다.

- 133쪽에서 인용. 읽다가 빵! 터짐. 난 평소에 자식만 부모에게 효도하냐? 부모도 자식에게 효도해야한다!란 말을 하곤 했었는데. ㅋㅋ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하는 등의 품위가 없어 보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시시하고 쓸데없는 말장난을 하지 않고 세련된 유머를 가끔 대화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어린아이의 귀여움과 어른의 지성을 겸비한 노인은 어디를 가도 인기인이 될 것이다.

- 173쪽에서 인용. 귀여운 남성분들, 보고 계십니까? ㅋㅋ

 

나이가 들면 알게 되겠지만 먹는다는 것도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가끔은 먹지 않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히 쉬는 느낌이 든다.

- 197쪽에서 인용. 이런 점이 개성적 시각. 나이 들어가면 건강 생각해서 잘 먹고,,, 이런 건 지겹다.

 

70대 80대 작가들이 쓴 에세이보면 중언부언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예를 자기 자랑하거나 하소연하려고 드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저자도 약간 그렇다. 하긴, 젊은 저자들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 이건 꼭 저자의 나이 탓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의.

 

참, 이 책 17쪽에 60세 이후의 날들을 '인생의 결승점을 목표로 하는 라스트 스퍼트'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얼마전에 읽은 김욱의 <폭주 노년>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어느정도 같은 주제에 대해 고찰하다가 글을 쓰면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같은 표현으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나이듦과 성장에 대한 책들 읽다보면 내가 내 글에 쓰려고 메모해 두었던 아이디어, 표현이 많이 나와서 걱정이다. 괜히 의심받을까봐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인데 못 쓰게 되니 말이다. 아아,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지만, 너무 많이 읽어도 글 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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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노년
김욱 지음 / 페이퍼로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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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분과 이 책, 독특하다. 1930년에 태어나신 저자분은 2015년 현재 85세이시고 번역가이자 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니라 직접 쓰신, 노년의 자세에 대한 에세이다.

 

<폭주 노년>이라는 제목은 마라톤의 막판 스퍼트에서 따 왔다. 노년은 은퇴하고 조용히 놀면서 보내는 시기가 아니라  죽음 직전에 폭주하는 시기라고 하신다. 저자는 '최후 5킬로미터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내 인생에서 걸음이 멈춰지는 순간은 죽을 때뿐이라는 각오로 젊어서보다 더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 (238쪽)'고 외치시며 젊은 번역자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번역을 하신다. 체력은 떨어져도 인간의 지적 능력은 나이들수록 더 좋아진다며, 과거는 영재의 시대였지만 미래는 노재(老材)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노재,라구요? 정말 멋짐!

 

끝까지 일하고 달린다, 바로 이 점이 이 책과 나이듦에 대한 다른 에세이 서적의 내용과 다른 점이다. 은퇴 후 어른답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고 봉사하고,,, 이런 뻔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어른답게 존경받으려면 어찌어찌해라란 내용도 없다. 건강을 위해 절제하라는 말도 없다. 이분은 끝까지 마시고 달린다. 아놔, 어쩜 좋아! 딱 내 취향인걸! 맥주 아니라 소주파이시긴 하지만.

 

즐거운 여생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산적인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최고로 즐거운 여생이다.

- 66쪽에서 인용

 

인간은 천성이 나약하다. 특히 마흔을 넘어서면서 심리적으로 급격히 무너진다. 인생의 반을 살아오면서 앞으로 다가올 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벌써 반이나 지나간 인생을 붙잡으려고 아등거린다. 어느 순간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잊고 과거에 대한 추억과 후회에 붙들리는 것이다. (중략) 60이 넘어서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청춘이다.

- 89쪽에서 인용

 

꼬장꼬장하고 칼칼하게 노인들의 현실을 비판하는 문장을 쓰신다는 점에서는 마루야마 겐지와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저자분은 겐지 스타일에 유머를 더했다. 찐따 왕따 에 가정 폭력 운운하는 아래 인용 문단도 웃기지만, 부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부분은 정말이지 읽다가 뿜었다.

 

평생을 일해서 헌신해 왔더니 하루아침에 뒷방 늙은이 대접을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잇을 테지만, 그럴수록 현재의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똑바로 눈을 뜨고 바라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이 들어 가족에게 '왕따'당하는 모습은 스스로 재현해 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리라는 착각, 내가 고생하고 노력해 온 만큼 지금부터는 가족들이 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 줄 차례가 되었다는 착각, 나는 죽을 때까지 가족 위에 군림하고 명령권자로서 권력을 누릴 권한이 있다는 착각이 머릿속에, 그리고 행동과 말에 배어 있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하면 가족과의 단절은 기본이고, 가족으로부터 은연중에 '찐따'로 분류되는 슬픔까지 맛봐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불행만이 아닌 가족의 불행이기도 하다.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가장을 '찐따'로 여길 수밖에 없는 고통을 가족에게 가용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가종 폭력이기도 하다.

- 214 ~ 215쪽에서 인용.

 

글 밀도가 매우 촘촘하다. 한 꼭지를 잘라 여러개 꼭지로 늘일 수 있어 보일 정도로 집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문장을 여러번 반복하고 중언부언하면서 한 꼭지 분량을 늘려 쓰는 고약한 저자들은 반성해야한다. 작가의 정신 연령은 문장과 글 구성이 말해준다.

 

이분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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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소노 아야코 컬렉션 2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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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아야코 저자의 나이듦에 대한 책 3권을 연달아 읽었다.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나이듦의 지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계로록>에 이어 네번째로 읽은 이 책 <마흔 이후>는 노년이 아니라 중년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계로록>처럼 실용적 조언을 조목조목 하는 자기계발서적 성격이 아니다. 중년의 장점이나 삶의 자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다. 노년과는 달리 체력도 기력도 아직 건재하며 과거를 용서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사건이나 사람을 용서한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

- 25쪽에서 인용

추한 것, 비참한 것에서도 가치 있는 인생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년이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이 아닌 그 사람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정신, 혹은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중년이다. 대체로 정신이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숙되는 면이 있다.

 - 52쪽에서 인용

 

중년 이후는 스스로를 충분히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견고한 재갈을 물리고, 자신의 페이스로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 239쪽에서 인용

 

오랜 세월 동안 늘 마음을 쓰며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지는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결국 그러한 완성이란 중년 이후에야 가까스로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 242쪽에서 인용

 

전체적으로 바람직하고 착한 이야기들이 있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장될만한 그런 뻔함. 저자의 가톨릭 신앙과도 무리없이 연결될만한 너그러움. 그래서,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이제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저자의 연세 탓인지, 한 꼭지 내에서 같은 말을 조금씩 바꿔서 계속 반복하는 경향이 보인다. 예로 드는 개인사가 그 꼭지의 주제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내가 말한다면 듣는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 ' 이런 투의 문장이 많아서 지겨웠다. 왜 어르신들은 듣는 상대가 하지도 않은 (몹쓸) 말을 미리 예상해서 방어하고 해명하고 역정내는 것일까? 이런 지겨운 화법은 우리 엄마나 주위 아줌마에게서 듣는 것으로 족하다.

 

문장과 글 짜임으로만 봤을 때, 아주 잘 쓴 에세이는 아니다. 저자의 연륜에서 우러나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좋을 뿐. (하지만 이런 단점은 일본어 원문이 원래 지닌 단점일 테이니, 번역자나 편집자, 출판사의 역량과는 상관없다. 나는 '타산지석 시리즈'와 '나이의 힘' 시리즈를 내는 리수 출판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단지, 이 저자의 글쓰기에서 아쉬운 점이 그렇다는 것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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