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 아야코 저자의 나이듦에 대한 책 3권을 연달아 읽었다.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나이듦의 지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계로록>에 이어 네번째로 읽은 이 책 <마흔 이후>는 노년이 아니라 중년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계로록>처럼 실용적 조언을 조목조목 하는 자기계발서적 성격이 아니다. 중년의
장점이나 삶의 자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다. 노년과는 달리 체력도 기력도 아직 건재하며 과거를 용서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사건이나 사람을 용서한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
- 25쪽에서 인용
추한 것, 비참한 것에서도 가치 있는 인생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년이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이 아닌 그 사람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정신, 혹은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중년이다. 대체로 정신이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숙되는 면이 있다.
- 52쪽에서 인용
중년 이후는 스스로를 충분히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견고한 재갈을 물리고, 자신의 페이스로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 239쪽에서 인용
오랜 세월 동안 늘 마음을 쓰며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지는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결국 그러한 완성이란 중년 이후에야
가까스로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 242쪽에서 인용
전체적으로 바람직하고 착한 이야기들이 있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장될만한
그런 뻔함. 저자의 가톨릭 신앙과도 무리없이 연결될만한 너그러움. 그래서,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이제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저자의 연세 탓인지, 한 꼭지 내에서 같은 말을 조금씩 바꿔서 계속 반복하는 경향이 보인다. 예로 드는 개인사가 그 꼭지의 주제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내가 말한다면 듣는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 ' 이런 투의 문장이 많아서 지겨웠다. 왜
어르신들은 듣는 상대가 하지도 않은 (몹쓸) 말을 미리 예상해서 방어하고 해명하고 역정내는 것일까? 이런 지겨운 화법은 우리 엄마나 주위
아줌마에게서 듣는 것으로 족하다.
문장과 글 짜임으로만 봤을 때, 아주 잘 쓴 에세이는 아니다. 저자의 연륜에서 우러나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좋을 뿐. (하지만 이런
단점은 일본어 원문이 원래 지닌 단점일 테이니, 번역자나 편집자, 출판사의 역량과는 상관없다. 나는 '타산지석 시리즈'와 '나이의 힘' 시리즈를
내는 리수 출판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단지, 이 저자의 글쓰기에서 아쉬운 점이 그렇다는 것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