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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허균 지음 / 돌베개 / 2000년 5월
평점 :
우리 전통 미술과 문화재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낸 저자의 책이다. 읽으면서 그냥 대단하다,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책 한 권 안에
방대한 내용을 집약적으로 넣어 설명하다보니 당연히 생기는 문제는 좀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이 책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는 책은 또 없을 것
같다. (잠깐, 이 책은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나는 입문자 용 서적으로서의 완성도를 말했다) 이 책 읽기 직전에 너무도 빈약한 내용을 불심 운운하며 때우고 있는 책을 읽었기에, 내가 지금 좀 인심 후한 독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은 종교문화나 예술 관련한 내용을 다루면서 교리 나열과 저자의 개인적 신앙 고백으로 때우려는 허접한 책은 절대
아니니, 믿고 읽으시라.
절, 그러니까 사찰은 신자 아니면 주로 여행시에 들렸다가 산책 겸 돌아보고 절 아래
식당가에서 산채비빔밥이나 먹고 가는 문화 유적지나 관광지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사찰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다. 여러 상징을
통해 불법을 설명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불국의 이상세계를 신자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장엄(莊嚴)을 구현하는
사찰 조형물과 장식문양의 상징 의미를 설명한다. 미술과 신화와 종교와 역사를 오가는
내용도 알차지만, 저자 스스로 전국 250여 군데 사찰을 답사하며 찍었다는 사진도 충실하다. 사찰을 다루는 다른 서적처럼 불국사면 불국사,
해인사면 해인사, 이렇게 한 사찰의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꼭지에는 그 주제에 대한 사진만 모여있다. 가령, 연꽃이라면 보광사,
통도사, 범어사,,, 의 연꽃 사진만 실려 있다. 사진과 본문글을 보며 이해하고, 다른 사찰의 같은 소재를 다룬 사진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루고 있는 상징은 이렇다. 연꽃, 용, 귀면, 비천상, 길상과 만덕, 토끼와 자라,
물고기, 가릉빈가, 주악인물상, 십이지신상, 태극, 원상, 심우도, 불단, 단청, 천장의 꽃, 문살, 닫집, 불상, 광배, 불상의
자세·수인·지물, 탑, 탑의 층수, 사사자상, 부도, 봉발대, 사물, 전각과 문루, 불전과 존상의 배치, 석가탑과 다보탑,다리, 계단. 어디를
펼쳐 읽어도 재미있다. 구입해서 책장에 구비해놓고 두고두고 사찰 방문할 일 생길 때마다 궁금한 부분 찾아 읽기 좋은 책이다.
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이 나타났다. 세계 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 본문 12 ~ 13쪽에서 인용
심청전을 처음 접한 이후로, 왜 심청이가 연꽃에 들어가는지가 계속 궁금했다. 보광사의 판벽화
<연화화생도>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어서 연화화생이 또 궁금해 미치겠는거다. 그래서 찾아 읽은 책인데, 연화화생에 대한 깊은 이론은 없었지만, 연화의 상징
외에도 많은 것을 읽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용과 귀면(키르타무카)이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책에 의하면 용은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이다. 대웅전 앞에는 용의 머리, 뒤에는 용 꼬리 장식이 있는 것은 사찰 건물 자체가 용화화선이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부석사에 용이
있고, 의상대사를 사모한 중국소녀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선을 등에 지고 가는 거였나보다. 반면 용처럼 생겼지만 용 아닌 귀면은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참배객을 지키는 벽사의 구실을 한다,,,,이런 내용을 알아가는데 미친듯이 재미있다. 왜 절에 <토끼전>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 조형물이 있는지도 그동안 궁금했는데, 그 친구들은 바닷속 불국정토로
향하는 거였다니!
어줍잖지만, 중세 가톨릭 관련 책을 좀 읽은 기억으로 비교해보자면, 가톨릭 교회 건물이나
사찰 건물이나, 건물의 장식을 통해 문맹인 대중 신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려하는 점은 같은 것 같다. 그동안 서구 유명 성당은 엄숙한 마음으로
압도당해 보면서 우리 전통 사찰의 장식 요소들은 색채가 알록달록하다거나 미신적 요소가 있다고나 하며 편견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좀 불편했는데,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니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서 더 생각해볼 거리를 얻게 되어 기쁘다.
*** 연화화생에 대해 읽을 논문을 알려주신 알라디너 00님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