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한국문학
조두영 지음 / 일조각 / 199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청전>은 내 인생의 수수께끼이다. 어릴 적에 보기에도 심청이의 정신상태는 정상이 아니고 심봉사는 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심청을 칭찬하는 조선 후기 심청네 마을 사람들이나 심청전을 읽고 효를 말하는 현대 사람들이나 다 이상하다. 나이들어 책 좀 읽고 엄마와 주변 어르신들과 갈등을 겪으며 원전으로 읽어보니 <심청전>에서 보이는 것은 갸륵한 효 정신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과 아픈 사회의 모습들이었다. 이기주의는 물론 매저키즘과 새디즘이 우글거린다. 아, 고전소설에서 이런 것만 보는 내가 변태냐, <심청전>이 변태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청이가 주위에서 강권하는 효행을 하며 사는 것이 너무 지겨워서 자살을 선택한 것만 같다. 그를 통해 심봉사와 세상에 소극적 피학적 저항을 한 것 같다. 보라, 니들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이렇게 죽는 나를! ( 이 대목에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겟세마네 (I Only Want to Say)' 가사가 생각난다. '좋아요, 죽을게요. See how I die ~~~")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나는 사악하고 삐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책 읽다가 이런저런 의문을 품고 찾아보면, 늘 이런 쪽으로 먼저 생각하고 글로 쓰신 전문가들이 있더라. 바로 이 책같은.

 

그럼, 두둥! 이 책을 소개한다.

책의 저자는 국내 최초로 국제정신분석학회 공인 정신분석가인 조두영 현 서울대명예교수시다.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예제와 연습문제가 나란히 실린 수학문제집같다. 앞 부분은 정신분석 기본 이론을 요약하고 있다. 동화, 설화를 통한 정신분석의 역사와 예를 서술하면서 브루노 베텔하임과 이부영 교수 소개도 한다. 이어서 뒷부분에서는 앞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이상, 손창섭, 김동인 등 현대문학 작품들과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우렁 각시 등 국내 설화를 분석한다. 이 중 심청전 분석 부분은 두 꼭지이다. 참, 영화 <서편제>분석 부분도 크게 보아 심청전 분석의 연장이다. 서편제의 아비 역시 심봉사나 마찬가지니까.

 

여튼, 이 책의 <심청전>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심청전에 대한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전문가의 견해를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내 생각대로 심청이는 피학적 나르시시즘 환자였던 것이다. 심봉사와 마을 사람들은 '효'란 미명 아래 자기 이익을 꾀하며 아동 학대를 일삼았고. 결국 <심청전>의 주제는 '심청이를 본받아 효도해라'가 아니라 '어떤 효가 바람직한가, 효를 강권하는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다함께 생각해보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심청전>은 사회고발소설이다.

 

어머니 곽씨 부인은 비록 집적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지만 아버지와 동네사람 등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그 피학적 열녀상이 이상화되어 심청에게 주입됨으로써 심청에게는 언제나 비교되는, 그러나 결코 능가할 수는 없는 강력한 경쟁자로, 그리고 본받아야 할 존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녀의 효행을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 371쪽에서 인용

 

결국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던 곽씨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유기당했다는 느낌에 빠진 심학규에게 심청의 존재는 그러한 상황을 초래시킨 원인으로 파악되며, 따라서 그녀에 대한 원망이 그 무의식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은 피양육자에 대한 양육자의 학대, 거부, 분노는 피양육자에게도 양육자에 대한 유사한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양육자에 대한 분노와 적의는 피학적인 양상으로 표출될 수가 있다.

- 372, 379쪽

 

'효'란 효의 대상에 대한 주인공의 공격성이 피학성으로 표출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인공들이 지극하기 이를 데 없는 피학적 성격의 효도를 행하는 이유는 섬기는 대상에게 갖는 공격성을 억제하는 부정과 반동형성이라는 자아방어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 379쪽

 

비록 자청한 일일지라도 막상 그러한 현실에 부딪히고 보면 입으로만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해 주며 자신을 험한 세상으로 내몬 아버지와, 자신을 그러한 상황 속에 남겨놓고 죽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적의를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에 대한 배신감, 분노, 공격성이 의식 수준에서 인식됨을 막기 위해서 심청은 더욱더 자신의 효성을 채찍질하는 가운데 그녀의 효는 피학적 성격을 더해 가게 되는 것이다.

- 383쪽

 

효자, 효녀의 특징이 약한 자아와 의존적 성격이라는 것은 (중략) 아버지에 대한 심청의 지나친 배려는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존성의 이면인 것이다.

- 383, 384쪽

 

심청이 가진 죄책감의 이면에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의가 존재한다. 자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죄책감에 싸여 살도록 무의식적인 가학성을 가한 것에 대한 분노, 또는 자신에게 기대어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시켜 왔고 이제는 그 해결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공양미 삼백석의 문제를 자신에게 떠넘겨 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그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그 분노와 욕구를 억압하고 그러한 자기를 스스로 처벌하는 피학성이 함께 작용하여 몸을 파는 결심이 나온 것이다.

- 385쪽

 

효를 주제로 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래소설에서 그 효의 대상인 심학규의 성품 묘사가 이처럼 이기적이고 착취적으로 그려진 배경에는 지나치게 효를 강조해 왔던 문화에 대한 자체적인 무의식적 반발이 작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393

 

프로이트 스타일 분석이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성 본능 쪽 접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렁 각시 읽다가는 성적 접근이 너무 웃겨서 몇번 뿜었다. 왕과 대결해서 신랑이 이기는 것이 늙은 왕에 대해 젊은 신랑의 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해석이라니. 아놔, 난 관탈민녀 쪽으로 역사배경 반영 보는 것이나, 우렁색시가 거부하는 데도 서둘러 부부인연을 맺어버리는 신랑을 분석하는 페미니즘 쪽 시선이 더 재미있는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