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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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역사가 주루룩 생각난다. 나는 아버지 박대통령 시대에 태어나 현재 딸 박대통령 시대에 살고 있다. 별로 오래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생각해보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여러번 겪은 것 같다. 이러다 또 판을 새로 짤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 하다 보니 10,26과 김재규가 생각났다. (4,19까지는 아니라구요, 나 어리다구, 이 양반들아.)

 

서거 뉴스 나오자마자 '그 새끼, 잘 뒈졌다!'라고 일갈한 아버지 덕분에, 나는 10, 26당시 어린 나이에도 김재규를 국부 시해범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북한이 쳐들어 올까봐 무섭기는 했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과 모르는 진실이 더 있는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김재규가 의로운 선비, 의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국에 그에 대한 책을 찾아 보았다. 유가족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유일하게 유가족이 인정한 전기가 이 책이라 하여 문영심 작가가 쓴 책으로 찾아 읽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책은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살해한 이유를 김재규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평전이다. 전태일평전이나 츠바이크가 쓴 평전들과는 결이 다르니, 혹시 읽으실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일대기식 구성도 아니고 오직 그 사건의 전후와 의도만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혁명가로 여기고 있는 김재규를 역사가 재평가해주기를 원한다. 아래, 저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부분 인용한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를 제거할 기회가 있었지만, 박정희를 본뜬 전두환처럼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것은 김재규가 바보여서가 아니라 유신의 핵심 권력자로서 유신을 부정했다는 역설 때문이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케 하는 등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는 내란을 일으키지 앟았기 때문에 내란죄로 처형된 것이다.

- 13~14쪽 서문에서 인용

 

그런데, 서문에서부터 콱, 치밀어 오른다.  

 

지금 김재규가 누구인지 다시 묻는 이유는 유신의 악몽이 우리 머리 위에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 15쪽

 

이 책은 2013년 출간된 책이다. 당연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와 박근혜 탄핵 이전에 씌여져서 세상에 나온 책인데,,, 아아,,,

 

책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겠다. 1979년 10월, 중앙정보부(구 국정원) 부장인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부산에 내려가 민심을 살펴보고 온다. 박대통령에게 사실을 보고하나 그는 독재자답게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다. 측근 차지철은 국민들에게 발포할 것을 부추긴다. 김재규는 국민과 정부 사이에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이 사상당할 것이라 우려한다.  4.19의거 때 이승만과 비교해 본다. 그래도 이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른다고 판단하고 안가의 소행사(여인 동반 소규모 술자리)때 박대통령 살해를 결심한다. 그리고 10, 26.

 

그러나 김재규는 오판했다. 그는 거사만 하면 국민이 봉기하여 자신의 행위가 지지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보안사의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김재규가 영웅시 될까 두려워 그를 내란죄인으로 몰아간다. 유신체제에 길들여진 재판부는 기존 관행을 유지하여 재판 삼세판을 서둘러 마치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상관에 복종한 다른 부하 직원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박대통령의 죽음으로 유신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유신 체제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체제를 유지하여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전두환은 계엄을 선포하고 언론 검열에 들어간다. 재판 관련 보도는 제한되었다. 김재규와 부하들이 아니라 유신 체제를 청산하기는 커녕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가로막은 전두환 일당이 대역죄인이었는데도 1980년 5월 24일, 혁명가 김재규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 즈음, 그가 목숨을 바치며 막으려했던 국민 학살이 광주에서 전두환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책에는 함세웅 신부와 강신옥 변호사의 글은 물론, 김재규의 공판 기록과 최후 진술 자료가 다 실려 있다.  최후진술에서 김재규는 10월 26일 혁명 목적을 '1 자유 민주주의 회복 2 보다 많은 희생 방지'라고 말했다.  내란죄 혐의에 대해 '나는 군인이고 혁명가이며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하지 않았다. 군인이나 혁명가가 정치를 하면 독재를 하기 마련인데 독재를 마다하고 혁명을 한 내가 독재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다'며 당당히 말했다. 사형당할 것을 각오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거사했음을 밝혔다.

 

김재규 처형 후 전두환은 대통령이 된다. 전대통령은 박정희 유가족이 아니라 김재규 유가족들에게 집요한 보복을 가한다. 김재규의 진의에 국민이 관심 가지는 것도 막는다. 정치인들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적 계산을 하던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일정이 시작된 것이 자기들의 투쟁 덕분이라고 비쳐지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책은 10, 26의 재평가를 요구하며 김재규 장군 명예 회복 추진 위원회가 그간 해온 업적을 소개한다. 그래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를 재평가할 제 4심의 전망은 밝다고 쓰며 저자는 책을 마친다.  

 

다 읽고 나니, 김재규에 대한 부분은 물론, 현재 딸 박대통령과 관련한 문제의 뿌리까지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273쪽에는 김재규가 거사한 동기 중 하나가 구국여성 봉사단과 관련하여 최태민과 전횡을 일으키는 큰 영애의 문제였다고 적은 항소이유서가 실려 있다.  항소이유보충서에는 국가 기밀이라며 2차적 혁명 동기는 대통령의 사생활인 여자 문제와 자식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 그때 김재규를 제대로 재판하고 유신 체제 떨거지들을 싹 청산했더라면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이후 박근혜까지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까지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신의 심장이 멎고 나서도 유신의 손발에게 나라를 맡긴 결과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나타난 것이다.

- 355쪽에서 인용

 

그러니, 지금 우리는 여전히 무늬만 바꿔 유신 체제 유지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무리들의 본색을 똑바로 봐야만 한다. 비슷한 상황이 왔는데 또 죽 쑤어 개에게 바치지 말고, 지난 역사를 읽고 깨어서 행동해야만 한다. 김재규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 지키려했던 민주주의를 위해. 딸 박대통령 시대에 희생된 많은 동료 시민들 아니 생명들을 위해.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날 김재규 묘지에 참배객들이 두고 간 물품들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3_201612131650069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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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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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오, 서문부터 연필 들고 마구 줄을 쳐 나갈 수밖에 없는 책을 만났다.

 

내 나이 서른다섯. 일과 동시에 공부를 시작했다. 답답했던 것 같다. 살아갈 수 있는 말들이 부족했다. 자유기고가의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집안일을 추스르기 위해, 두 아이를 챙기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의 시민으로 버티기 위해, 그러니까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언어, 다른 지식,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 14쪽 서문에서 인용

 

글과 삶과 나에 대해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분 추천으로 읽은 책이다. 대만족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인데 문장 작법같은 테크닉 이야기 위주가 아니라 글쓰기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글을 쓰며 어떻게 나 자신이 되어 느끼고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사 여구도 헛된 자의식 과잉도 없이 저자는 쓴다. 연필을 깎고 쌀을 씻고 사람을 만나고 수강생과 글과 말을 나누고 자신의 글을 쓰고,,,,  살아가며 덤덤히 쓴다. 남자 작가들의 글쓰기 책에서 잘 보기 힘든 일상과 글의 조화, 한 여성이자 한 시민으로서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겪고 느끼고 분노하기, 특히 약자의 시각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기, 이런 점들이 읽으면서 참 좋았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는 자들의 언어로는 이 세상의 모순과 불행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미 어떤 가치 체계에 휘말려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을 배려하지 않았음을.

- 16

 

물론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조언들도 많았다. 아래처럼.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 135쪽

 

좋은 글은 그 자체로 다른 생각의 자리, 다른 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 176쪽

 

얼마나 명확한가. 나의 역능만큼 써진다는 엄정한 진리. 영감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채워진 글은 날로 기대하지 말라는 일침. 뭔가 전율을 가져오는 '신의 한 수'같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은 갈망의 산물이 아니라 습작의 결과다.

- 171쪽

 

(아아, 이러다간 이 책 한 권을 다 옮겨 놓을 것만 같다. ^^ 이만. )

 

뒤편에는 저자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는 분들이 쓴 인터뷰 글도 실려있다. 덕분에, 내 글쓰기 뿐만 아니라  나란 인간,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서까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좌절의 지점이자 나의 희망의 근거는 무엇이었던가.

 

한마디로, 좋은 책을 만났다. 앞으로 저자 은유선생님의 책을 더 찾아 읽어 보리라.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거나, 자신이 인생 전환기에 있다고 느끼는 여성 글벗님들께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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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사
이노우에 키요시 지음, 성해준 옮김 / 어문학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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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키요시 선생은 마르크시즘 사관을 바탕으로 읽는 재미는 없지만 꼼꼼한 서술을 보여주는 일본사의 대가다. 선생의 이 책<일본여성사>는 비록 1947년 작이지만 내가 읽은 일본 여성사 쪽으로는 최고 수준이었다. 아니, 여성사가 아니라 일본사 전체로 봐도 그렇다. 농민봉기, 메이지 시대 노동운동사를 봐도 다른 통사류 서적보다 이 책에 더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은 엥겔스 선생의 모권(母權)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보편적으로 원시시대를 시작하여 고대,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센고쿠, 에도, 메이지,,, 일본 통사 시대 구분 순으로 일본 여성의 삶과 역사를 서술한다. 각 시대별로 천황가, 귀족, 무사, 농민, 쵸닌 등 각 계급별 여성이 처했던 현실을 조명한다.  지루하고 진지한 책인데, 70여년 전인 1940년대에 남성 노인 학자가 어떻게 이런 서술을 할까, 싶을 정도로 과격한 문장이 많아서 읽다보면 의외로 빵빵 터지게 된다.

 

현모양처란, 실은 남편에게 한없이 복종하는 처를 양처라고 하고, 남편의 학대를 숨기며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을 현모라고 했던 것이다.

- 303쪽, 메이지 시기 서양식 여성 교육의 확대 목표가 현모양처였음을 설명하는 부분.

 

각 시대별 서술은 다른 책과 유사하다. 이노우에 선생의 진가는 메이지 유신 기 서술 부분에 드러난다. 유신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거나 유신 이후 빛만 강조해서 서술하고 그림자는 한두 줄로 얼머무려 서술하는 다른 일본사 책과 달리 선생은 유신 후 농민과 도시 빈민,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메이지 시대 빈농들과 여공들에 대한 기술은 압도적! 꼭 여성사에 관심이 있지는 않더라도 메이지 시대와 산업혁명 초기 제사, 방적, 성냥 공장 현실과 농민 봉기, 노동 쟁의에 관심있는 분께 강추한다. 여튼 약자들에게는 메이지 유신이 유신이 아니었던 것. 특히 메이지 31년, 1898년부터 행해진 민법 중 가족 관련 법은 근대적 성격은 커녕 봉건시대 관습법의 개악에 불과했다. 여기에 대해 선생의 의견은 이렇다.

 

결국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지주제와 자본주의와는 천황제를 매개로 하여, 삼중 사중으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 본문 297쪽

 

이상과 같이 메이지 이후의 일본은 자본주의 시대가 되어도 자본가, 지주, 천황제 관료 정부, 결국 모든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봉건적인 가족제도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요하게 되었고, 또 그것을 타파할 뿐인 경제적인 조건이 용이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가도 사회도 모두 이 가족 관련에 끼워 넣었다. 천황과 국민은 친자(親子)이며 노동자와 자본가도 친자, 지주와 소작인도 친자, 가주(家主)와 차가인(借家人)도 친자, 가게의 경영자와 종업원도 친자, 가는 곳마다 '가족주의'가 주창되었다. 그 가족주의는 결코 인정주의가 아니라, 자식의 부모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인정'이라는 미명으로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 본문 299쪽

 

메이지 정부는 민법을 만들 때, 봉건적 가족제도에  반대하고 남녀 동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화족, 사족 가족을 본보기로 장남 아들의 가독 상속 관습을 성문화한다. 부부관계에서는 처를 남편에게 예속시킨다. 오히려 전 시대인 봉건시대보다 가부장의 권한이 강해졌는데 이는 천황제 근대 국가의 강화로 이어지며 노동 쟁의 탄압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어 군국주의와 전쟁의 광풍이 몰아치자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소리로 무시된다. 그리고 패전. 책은 여기까지 서술한다. 철저하게 모든 계급의 약자인 여성의 입장을 고수해 서술한다. 좋다.

 

또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자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는 시도가 없다는 점. 마비키(영아 살해) 부분 서술은 <일본인구사>보다 자세하다. 아들 둘 딸 한 명 정도 낳은 이후 성구분 없이 성행하던 마비키가 장남 태어난 이후에는 남아에게만 행해지고 여아는 살려 키우는 부분이 메이지 시대 여공들 역사와 이어지는 부분은 소름끼쳤다. 그리고 여공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삐끼?뚜쟁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산간 처녀들을 꾀어내는 루트가 있었다는 것, 여공들의 월급은 아버지가 수령했으며 폐병으로 죽어가거나 엄격하고 폭력적인 공장과 기숙사 생활에 지쳐 도망하는 여공들을 아버지가 다시 잡아와서 공장에 넣었다는 부분은 끔찍했다. (이래서 가부장제 타파가 나올 수 밖에 없다만, 건전한 비판을 부모 패륜으로 몰아가는 무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이 책에는 없지만 내가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추적한 바에 의하면 이 시스템이 개화기 이후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 공장 시스템으로 들어왔다는 사실 역시 끔찍했다. (순진한 처녀들을 돈 몇 푼에 꼬셔서 공장에 팔아 넘기는 루트는 정신대와도 연결된다.)

 

일본사, 여성사, 산업혁명기 역사에 관심있는 글벗들에게 강추한다. 70여년 전에 씌여진 책이고 번역은 좀 거칠지만 내용이 워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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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미셸 파스투로 지음, 강주헌 옮김 / 이마고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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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블로그에 리뷰 안 쓰던 시절에 읽은 책이라, 이번에 뭐 좀 찾다가 다시 읽고 리뷰 남긴다. 이 책은 2002년에 나왔지만 전혀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책 같은 느낌이 없다. 유럽 중세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미술 전공자나 일러스트 그리는 분들께도 강추. (역사서 삽화 보면 엉뚱한 인물이 스트라이프를 입고 있는 예가 많다. 전혀 고증이 안 된 셈)이 저자는 문장, 동물, 색으로 중세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라, 강렬한 제목이다.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기시되었던 스트라이프가 어떻게 활동적인 젊은이를 상징하는 무늬가 되도록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문헌이나 미술 작품, 복식사 등등을 통한, 저자의 다른 저작인 <블루, 색의 역사>와 같은 추적의 역사를 보여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스트라이프는 차별의 상징이었다는 것. 줄무늬는 눈에 확 띄기 때문에 다른 것과의 차이를 의미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정적 의미를 가졌다. 기독교 유럽에서는 구약성경 레위기에 '두 종류의 실로 짠 의복을 몸에 걸쳐서는 안 된다'는 구절에 거슬러 올라가 스트라이프를 배격한다. 그래서 스트라이프 옷은 유대인, 죄인, 광대, 유랑 연애인, 사형 집행인, 매춘부 등 차별받는 집단들이 입는 옷이었다고. 한편 줄무늬는 창살처럼 외부와의 경계이자 그 안의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의미도 있기에 환자복이나 잠옷, 아기 옷이나 용품, 수영복, 침대 시트 등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던 스트라이프가 프랑스 혁명의 세로 스트라이프 삼색기의 영향을 거쳐 근대에 이르러 활동적이고 젊은 이미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 매우 재미있다. 얇은 분량에 집약적으로 내용이 담겨 있지만 결코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고대에서 근대까지 방대한 문화사의 흐름을 압축해 놓았다.

 

이 책도 재미있지만 좀 얇아서 아쉽다면, 저자의 다른 책인 <블루, 색의 역사 :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와<곰, 몰락한 왕의 역사>를 강추한다. 앞서 두 권은 역사서지만 <우리 기억 속의 색>은 에세이다. 저자의 개인 체험과 고백이 많이 들어가는데 은근 까다로운 성격의 저자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진지하게 썼는데 독자는 빵빵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프랑스어 위키로 들어가보니 저자의 다른 저작들 목록이 주루룩 보이는데, 빨리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Noir: Histoire d'une couleur>는 개인적으로도 매우매우 궁금하다. 나도 모르는 <껌정의 역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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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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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느낌을 팝니다>라니, 내가 아는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은 절대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실 분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책 소개페이지를 보니 학자로서 그동안 '생각은 팔아도 느낌은 팔지 않는다'란 자세로 살아왔지만 이번 책에는 개인적 느낌을 많이 담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는 생각도 잠시, 우에노 선생님의 팬인 나는 '아아, 이 책의 리뷰는 내가 제일 먼저 써야해!'하며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우에노 치즈코 선생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란 저서 때문에 페미니스트 쌈닭같은 이미지로 국내에 알려진 것 같은데, 원래 이 분의 전공은 사회학이다. 요즘 들어서는 사회 개호 쪽으로 연구하고 책을 내신다. 간병 등 노인 케어를 어떻게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 쪽. 저자의 다른 책들에 싱글, 독신, 결혼,,,, 이런 제목이 달려 있어도 절대 달달하고 화려한 싱글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나이 들고 병 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대처방안 이야기이다. 이 책도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간다. 앞 분은 개인적 감상이 담겨 있지만 뒷 부분으로 가면 역시나, 일본 독거 노인 문제와 개호 문제가 주된 내용이다. 기존 책들과 다른 점은 노인 개호 문제를 써도 객관적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입장과 경험이 같이 언급된다는 점.

 

저자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향 가나가와에서의 추억이라든지 하이쿠와 목욕을 좋아하는 개인적이고 소소한 취향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노후에는 친구부자여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감이다. 남자건 여자건, 늙어가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함께 늙어가는 여자 친구다. 그리고 고양이! ^^ 

 

나이듦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간된 사카이 준코의<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와 비교해가며 읽으니 더 재미있다. 같은 우에노 치즈코 저자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도 곁들여 읽기 추천. 이 책은 홀로 늙어 죽는 삶에 대한 이론적 보고서.

 

우에노 저자의 책은 국내 출간될 때는 책마다 출판사가 다르다. 이번 책은 좋은 일본 에세이스트를 선점, 출판하는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런데 원래 제목이 국내에 오면 이상해진다. 원제는

 

이 책 <느낌을 팝니다>는 ひとりの午後に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는  おひとりさまの老後

 <독신의 오후>는 男おひとりさま道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는 おひとりさまの最期

 

다 一人이라는 의미의 '히토리ひとり'가 들어간다. 저자는 완결성 있게 1인 가구의 노후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여성 문제와 사회 문제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번역된 제목들은 저자의 이런 일관된 집필 의도를 못 살려 주는 느낌이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제외하면, 제목이 주는 인상이 그저그런 자기계발 실용서나 젊은 싱글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개인적 이야기를 써도 분명한 저자만의 시각을 갖고 각종 사회적 병폐와 여성 문제와 연관해 쓰는데도. 아래, 그런 부분 인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래? 그럼 한번 낳아보지?하고 응원을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아이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완동물을 갖고 싶은 마음 속에는 무조건적인 애정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이기주의가 존재함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기에서 엄마가 되면 아이가 불쌍해진다. 아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 본문 117쪽.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다는 친구를 보며 저자가 하는 생각 

 

결혼은 사회계약, '커플'은 번식기 행동, 부부는 육아를 함께 하는 전우.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일대 사업이 끝난 후에는 일단 계악을 해제하고 더 완만한 관계를 맺고 살아도 좋지 않을까. 물론 같은 상대와 재계약을 해도 좋다.

내가 그리는 '싱글의 미래'는 가족의 의무에서 해방된 초고령화 사회의 남녀 싱글들이 '남녀공학적 친구 교제'를 하는 모습이다. 인생 팔십 년, 커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것의 약 사분의 일. 인생 백 년이면 오분의 일이다. '커플'이 최종 목적지라는 생각을 이제 버려도 좋지 않을까.

- 210쪽

 

그러니까 이 저자는 '느낌을 팝니다'라고 해도 이런 느낌을 파는 것이다. 뭐, 우에노 선생님의 개성이 어디 가겠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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