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팝니다>라니, 내가 아는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은 절대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실 분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책 소개페이지를 보니 학자로서 그동안 '생각은 팔아도 느낌은 팔지 않는다'란 자세로 살아왔지만 이번 책에는 개인적 느낌을 많이 담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는 생각도 잠시, 우에노 선생님의 팬인 나는 '아아, 이 책의 리뷰는 내가 제일 먼저 써야해!'하며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우에노 치즈코 선생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란 저서 때문에 페미니스트 쌈닭같은 이미지로 국내에 알려진 것 같은데, 원래 이
분의 전공은 사회학이다. 요즘 들어서는 사회 개호 쪽으로 연구하고 책을 내신다. 간병 등 노인 케어를 어떻게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 쪽. 저자의 다른 책들에 싱글, 독신, 결혼,,,, 이런 제목이 달려 있어도 절대 달달하고 화려한 싱글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나이 들고
병 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대처방안 이야기이다. 이 책도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간다. 앞 분은 개인적 감상이 담겨 있지만 뒷
부분으로 가면 역시나, 일본 독거 노인 문제와 개호 문제가 주된 내용이다. 기존 책들과 다른 점은 노인 개호 문제를 써도 객관적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입장과 경험이 같이 언급된다는 점.
저자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향 가나가와에서의 추억이라든지 하이쿠와 목욕을 좋아하는 개인적이고 소소한 취향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노후에는 친구부자여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감이다. 남자건 여자건, 늙어가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함께 늙어가는 여자
친구다. 그리고 고양이! ^^
나이듦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간된 사카이 준코의<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와 비교해가며
읽으니 더 재미있다. 같은 우에노 치즈코 저자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도 곁들여 읽기 추천. 이 책은 홀로 늙어 죽는 삶에
대한 이론적 보고서.
우에노 저자의 책은 국내 출간될 때는 책마다 출판사가 다르다. 이번 책은 좋은 일본 에세이스트를 선점, 출판하는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런데 원래 제목이 국내에 오면 이상해진다. 원제는
이 책 <느낌을 팝니다>는 ひとりの午後に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는 おひとりさまの老後
<독신의 오후>는 男おひとりさま道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는 おひとりさまの最期
다 一人이라는 의미의 '히토리ひとり'가 들어간다. 저자는 완결성 있게 1인 가구의 노후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여성 문제와 사회 문제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번역된 제목들은 저자의 이런 일관된 집필 의도를 못 살려 주는 느낌이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제외하면, 제목이 주는 인상이 그저그런 자기계발 실용서나 젊은 싱글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개인적 이야기를 써도 분명한 저자만의 시각을
갖고 각종 사회적 병폐와 여성 문제와 연관해 쓰는데도. 아래, 그런 부분 인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래? 그럼 한번 낳아보지?하고 응원을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아이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완동물을 갖고 싶은 마음 속에는 무조건적인 애정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이기주의가 존재함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기에서 엄마가 되면 아이가 불쌍해진다.
아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 본문 117쪽.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다는 친구를 보며 저자가 하는 생각
결혼은 사회계약, '커플'은 번식기 행동, 부부는 육아를 함께 하는 전우.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일대 사업이 끝난 후에는 일단
계악을 해제하고 더 완만한 관계를 맺고 살아도 좋지 않을까. 물론 같은 상대와 재계약을 해도 좋다.
내가 그리는 '싱글의 미래'는 가족의 의무에서 해방된 초고령화 사회의 남녀 싱글들이 '남녀공학적 친구 교제'를 하는 모습이다. 인생 팔십
년, 커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것의 약 사분의 일. 인생 백 년이면 오분의 일이다. '커플'이 최종 목적지라는 생각을 이제 버려도 좋지
않을까.
- 210쪽
그러니까 이 저자는 '느낌을 팝니다'라고 해도 이런 느낌을 파는 것이다. 뭐, 우에노 선생님의 개성이 어디 가겠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