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사
이노우에 키요시 지음, 성해준 옮김 / 어문학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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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키요시 선생은 마르크시즘 사관을 바탕으로 읽는 재미는 없지만 꼼꼼한 서술을 보여주는 일본사의 대가다. 선생의 이 책<일본여성사>는 비록 1947년 작이지만 내가 읽은 일본 여성사 쪽으로는 최고 수준이었다. 아니, 여성사가 아니라 일본사 전체로 봐도 그렇다. 농민봉기, 메이지 시대 노동운동사를 봐도 다른 통사류 서적보다 이 책에 더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은 엥겔스 선생의 모권(母權)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보편적으로 원시시대를 시작하여 고대,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센고쿠, 에도, 메이지,,, 일본 통사 시대 구분 순으로 일본 여성의 삶과 역사를 서술한다. 각 시대별로 천황가, 귀족, 무사, 농민, 쵸닌 등 각 계급별 여성이 처했던 현실을 조명한다.  지루하고 진지한 책인데, 70여년 전인 1940년대에 남성 노인 학자가 어떻게 이런 서술을 할까, 싶을 정도로 과격한 문장이 많아서 읽다보면 의외로 빵빵 터지게 된다.

 

현모양처란, 실은 남편에게 한없이 복종하는 처를 양처라고 하고, 남편의 학대를 숨기며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을 현모라고 했던 것이다.

- 303쪽, 메이지 시기 서양식 여성 교육의 확대 목표가 현모양처였음을 설명하는 부분.

 

각 시대별 서술은 다른 책과 유사하다. 이노우에 선생의 진가는 메이지 유신 기 서술 부분에 드러난다. 유신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거나 유신 이후 빛만 강조해서 서술하고 그림자는 한두 줄로 얼머무려 서술하는 다른 일본사 책과 달리 선생은 유신 후 농민과 도시 빈민,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메이지 시대 빈농들과 여공들에 대한 기술은 압도적! 꼭 여성사에 관심이 있지는 않더라도 메이지 시대와 산업혁명 초기 제사, 방적, 성냥 공장 현실과 농민 봉기, 노동 쟁의에 관심있는 분께 강추한다. 여튼 약자들에게는 메이지 유신이 유신이 아니었던 것. 특히 메이지 31년, 1898년부터 행해진 민법 중 가족 관련 법은 근대적 성격은 커녕 봉건시대 관습법의 개악에 불과했다. 여기에 대해 선생의 의견은 이렇다.

 

결국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지주제와 자본주의와는 천황제를 매개로 하여, 삼중 사중으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 본문 297쪽

 

이상과 같이 메이지 이후의 일본은 자본주의 시대가 되어도 자본가, 지주, 천황제 관료 정부, 결국 모든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봉건적인 가족제도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요하게 되었고, 또 그것을 타파할 뿐인 경제적인 조건이 용이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가도 사회도 모두 이 가족 관련에 끼워 넣었다. 천황과 국민은 친자(親子)이며 노동자와 자본가도 친자, 지주와 소작인도 친자, 가주(家主)와 차가인(借家人)도 친자, 가게의 경영자와 종업원도 친자, 가는 곳마다 '가족주의'가 주창되었다. 그 가족주의는 결코 인정주의가 아니라, 자식의 부모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인정'이라는 미명으로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 본문 299쪽

 

메이지 정부는 민법을 만들 때, 봉건적 가족제도에  반대하고 남녀 동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화족, 사족 가족을 본보기로 장남 아들의 가독 상속 관습을 성문화한다. 부부관계에서는 처를 남편에게 예속시킨다. 오히려 전 시대인 봉건시대보다 가부장의 권한이 강해졌는데 이는 천황제 근대 국가의 강화로 이어지며 노동 쟁의 탄압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어 군국주의와 전쟁의 광풍이 몰아치자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소리로 무시된다. 그리고 패전. 책은 여기까지 서술한다. 철저하게 모든 계급의 약자인 여성의 입장을 고수해 서술한다. 좋다.

 

또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자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는 시도가 없다는 점. 마비키(영아 살해) 부분 서술은 <일본인구사>보다 자세하다. 아들 둘 딸 한 명 정도 낳은 이후 성구분 없이 성행하던 마비키가 장남 태어난 이후에는 남아에게만 행해지고 여아는 살려 키우는 부분이 메이지 시대 여공들 역사와 이어지는 부분은 소름끼쳤다. 그리고 여공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삐끼?뚜쟁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산간 처녀들을 꾀어내는 루트가 있었다는 것, 여공들의 월급은 아버지가 수령했으며 폐병으로 죽어가거나 엄격하고 폭력적인 공장과 기숙사 생활에 지쳐 도망하는 여공들을 아버지가 다시 잡아와서 공장에 넣었다는 부분은 끔찍했다. (이래서 가부장제 타파가 나올 수 밖에 없다만, 건전한 비판을 부모 패륜으로 몰아가는 무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이 책에는 없지만 내가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추적한 바에 의하면 이 시스템이 개화기 이후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 공장 시스템으로 들어왔다는 사실 역시 끔찍했다. (순진한 처녀들을 돈 몇 푼에 꼬셔서 공장에 팔아 넘기는 루트는 정신대와도 연결된다.)

 

일본사, 여성사, 산업혁명기 역사에 관심있는 글벗들에게 강추한다. 70여년 전에 씌여진 책이고 번역은 좀 거칠지만 내용이 워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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