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SAMURAI KODEF 안보총서 35
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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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전에 고민을 좀 했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데 거의 2만원인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 영국 학자가 어떤 시각으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을 서술했는지 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읽고 불쾌해지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책의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일본 역사는 물론, 문화, 풍습, 심지어 일본인들의 민족성이나 서구인들이 보는 일본다움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무라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이 통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충실한 화보와 현장의 사진, 각 현에 있는 박물관의 소장품 소개 사진을 잘 배치해 놓아서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소장하고 이후 일본 관련 책이나 영화를 볼때마다 꺼내서 참고사항을 찾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용은 전체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통사식 구성을 따른다. 고대 사무라이들의 조상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후, '사무라이'란 용어가 역사에 등장한 10세기 이후부터 본격적 내용이 펼쳐진다. 주로 겐페이 전쟁과 남북조, 센코쿠 시대, 세 번의 막부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이다. 중간에 무기, 성곽. 할복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일본사에 유명한 사무라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의 가미카제 특공대의 이야기로 끝난다.

 

내게 특히 유익했던 점은, 제9장 '최후의 사무라이'에 다룬 사이고 다카모리의 세이난 전쟁에 대한 부분과 제 5장에서 다룬 큐슈의 시마즈 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다른 일본사에서 한 쪽 정도로 지나간 부분을 깊이 다루어 주기에 가고시마 여행 후 궁금했던 점이 많이 풀렸다.

 

아쉬운 점은, 내가 보기에(아마 대다수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까) 이들 일본 사무라이들의 무사 정신이란 것이, 선불교 관련한 정신 수련 등을 논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약탈경제체제'의 합리화 이념일 뿐인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점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아마 우리보다 앞선 근대화 과정을 거쳐 동양 정신의 모든 긍정적 면을 선점하여 서구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식을 공급한 일본 근대화 시기의 지식인들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을 깊은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서구 학자, 일반인들의 상식 탓일 게고. 왜구를 바다의 사무라이로 파악하여 서술한 부분도 좀더 비판적인 시각이 있기를 바랬으나 저자는 끝까지 지나치게 객관적인 서술로 일관한다. 마지막에 특공평화회관에서 저자가 본 것이 사무라이식 죽음과 평온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일본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그리고 일본 역사 기행 준비하는 독자라면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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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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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가 이름만 알았던 일본침략사에서 침략의 선봉에 서거나 배후에 조종했던 자들, 또 대표적 업적에 가려 현재 우리가 그 공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침략 합리화이론 제공 사상가들의 삶을 열전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번째 인물은 메이지천황 무쓰히토이다. 저자는 메이지 시기 차곡차곡 쌓은 국력으로 이들 일본인들이 어떻게 동아시아 침략에 나섰는지 그 배경 지식을 그의 시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과 사이고 다카모리를 통해 정한론의 싹이 어떻게 텄는지도 밝혀주고 있다.

 

또한 서구에 일본 정신으로 '무사도'를 알린 니토베 이나조를 통해, 외국어에 능통한 이 시기 지식인들이 얼마나 서구인들이 원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선점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 여론을 이끌었는지도 알 수 있다. 또, 후쿠자와 유키치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우리는 그의 대표적 저서만을 통해 그를 위대한 근대 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촉구하는 논설을 많이 쓴, 국내용 지식인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정치색 없이 신앙가로 알고 있는 우치무라 간조 역시 일본과 예수, 오직 두 개의 ‘J’만을 사랑한 종교인이었을 뿐, 식민치하에서 고통받는 조선 민중의 모습을 제대로 예수의 가르침대로 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이들 일본 근대의 위대하다는 사상가, 지식인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이들이 촘스키같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비판까지 하는 세계의 지식인이 아니라, 그저 일본 국내용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이 책의 '열도의 침략자들'편에는 다른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침략자들의 생애가 잘 드러나 있다. 즉, 국사 교과서에 이름과 주요 지배 정책만 주욱 지나가던 일제 강점기 총독들인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 미나미 지로의 생생한 침략사가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일본 육군 실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을미사변 관련자들인 이노우에 가오루, 우치다 료헤이도 소개하여 이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준비하여 침략에 나섰는지를 밝혀준다. 또한 쇼와 천황 히로히토를 단적으로 전범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내게는 이토 히로부미 편이 인상깊었다. 안중근 의사의 삶만 알았지, 이토의 일본 내에서의 비중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읽어갈수록, 우리나라를 비롯 동아시아 침략을 오래 준비하고 실행한 행동대 조슈 군벌들과 이들에게 합리화 이론을 제공한 일본 근대시기 사상가들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가치관은 정말 일본 열도가 동해상에 떠 있는한,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우리가 그들의 사고방식, 행동방식을 알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을 쿠슈처럼 바다건너 자신들이 진출할 땅으로 쉽게 여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고방식과, 이들 1910년의 침략자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현재 일본 정치가들의 사고방식 역시 한 맥락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에게 확인, 각인시켜주는 장점을 가진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

 

책 마지막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본사 간단 읽기'란 부분이 있다. 간략히 일본사를 정리해주는 부분인데, 통사를 읽고도 자꾸 까먹는 내게 두고두고 유익할 것 같다. 일본사를 전혀 모르는 분들은 이 부분을 먼저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좋겠다.

***

 

참, 이 책은 조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일본인들만 소개하지는 않는다. 조선의 미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 아사카와 다쿠미의 삶도, 일제시대 한국인의 변호를 도맡은 후세 다쓰지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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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하나마치 경영학 - 교토 게이샤 시스템에서 배우는 경쟁력의 비밀
니시오 구미코 지음, 고경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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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나비부인>, <게이샤의 추억>등의 책과 영화, 오페라를 접하면서 게이샤 관련 풍습이 궁금했었으나 기존 일본문화서적에서 깊이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교토를 상징하는 게이코(게이샤의 교토식 명칭)와 그 게이코를 관리하는 하나마치(花街) 관련한 풍습과 경영방식이 잘 나와있는 이 책을 읽고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게이샤의 정식 명칭은 게이기(芸妓)인데 게이기를 교토에서는 게이코, 도쿄에서는 게이샤라고 한다. 마이코는 20세 이하의 견습 게이코를 부르는 용어로, 의무교육인 중학교를 마친 15세부터 오키야(置屋)에서 숙식하며 전통악기와 춤, 예의, 심지어 교토 사투리까지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게이코와 마이코는 머리모양, 옷차림, 신까지 다 다르다. 물론 역할도 다르다. 20세가 된 마이코는 게이코가 되어 고객에게 연회를 제공하는 장소인 오차야(お茶屋)로 영업을 나가는데 오자시키(お座敷, 연회자리 또는 술자리)에서 게이샤가 일하는 시간에 지급되는 화대는 향을 피우는 시간으로 계산하여 받는다. <설국>에 나와있듯 말이다. 이들 게이샤의 근무지가 모여 있는 지역이 하나마치(花街)인데, 교토에는 예로부터 기온을 비롯한 5곳에 하나마치가 있어서 이를 고카가이(五花街)라고 부른다. 

이상의 게이코와 하나마치 관련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일본에 대한 전문 서적 못지않게 흥미로운데, 이 책의 목적은 경영쪽에 가까운 듯, 책의 후반부는 다른 지역에서는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하나마치가 왜 교토에서만 번창하고 있는지를 밝혀나간다. 아무래도 시대가 변하여 게이샤 동석시킨 전통적인 접대보다 골프나 가라오케, 룸살롱 문화가 더 흔해진 탓도 있겠지만 저자는 교토 하나마치만의 경영시스템을 그 원인으로 분석해 준다. 고르바초프 마저 거절했을 정도로 처음오는 손님은 거절하는 시스템, 현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후정산 결산 시스템, 고객에게 일일이 묻지 않고 오차야의 오카상이 고객의 취향을 알아서 서비스 일체를 준비하는 시스템, 끊임없이 기예를 연마하기 위해 오키야, 기예 학교인 뇨코바(女紅場), 오자시키에서 일하면서 배우며 매년 춤 공연을 여는 시스템, 게이코와 마이코, 오키야, 료리야(요리집), 꽃집, 기모노가게, 오토코시(기모노 입히는 사람), 화장사(메이크업 담당자), 결발사(가발을 올려주거나 머리 묶어주는 헤어 담당자), 기예 선생 등의 전문업자들과 분업하는 시스템이 바로 교토 하나마치만의 경쟁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경영일반 쪽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일본학 서적으로 분류해도 좋을 정도로 게이샤 풍습 관련한 내용이 충실하다. 도표와 사진 자료도 많아서 읽기 더욱 도움이 되었다. 이런 외국인 저자의 전문적인 서적을 번역해 국내에서 출간할 때에는 그들 외국인들은 당연히 아는 용어들을 국내 일반 독자용으로 주를 달아 해설해 주는 작업이 중요한데, 이 책은 단어마다 해설이 잘 달려 있었다. 그런데 '다이쇼 시대'등 일왕 연호로 인한 시대 구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으므로 서기 연대를 괄호 안에 표시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여하간 덕분에 앞으로 일본 사극을 볼 때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성적 목적보다 한 예술인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를 강조하는 단나상(스폰서 비슷)의 역할에 대한 부분을 읽으니, 연예인 키우기 같은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일반 일본인들의 성정이 꽤 뿌리깊은 것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요시모토 흥업 역시 이런 하나마치의 시스템이 바탕이 된 조직이었구나, 등등,,, 이런 식으로 비단 관련 소설, 영화 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과 일본인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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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일본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4
일본사학회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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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테마에 맞춰 지도나 도판을 놓고 일본사를 서술해 나가는 책이다. 테마는 총 88개, 일본 열도의 형성부터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 시대까지 걸쳐 있다. 2008년에서 서술이 멎는다.

 

일본사를 처음 읽거나 전체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책이다. 전체 흐름 보다, 각 시대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정치, 경제, 문화 등등의 각 테마를 띄엄띠엄 던져 주는 구성이기때문이다. (필진이나 편집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구성이 갖는 기본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부분을 징검다리 삼아 딛고 나아가다 보면 독자의 머릿속에서 뭔가 재구성된다. 요컨대, 잭 자체보다 책을 접하는 독자의 역량에 책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뜻.

 

각 테마에 지도 포함 2페이지 분량이 허용된다는 것은, 어떤 주제는 너무 간략하게 서술하지만 어떤 주제는 다른 일본사에서 간략히 다루는 분량 이상 서술이 허용된다는 말. 이거 좋다. 약점을 뒤집으면 강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일본사에서 자세히 못 읽은 대목을 발견하고 매우 즐거웠다. 장원, 공령제의 구조, 무라의 구조, 조세 제도 등 농민 생활과 경제 부분을 지도와 함께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다. 지배계급의 전쟁과 정치사 위주가 아니기에. 또한 에미시 정벌, 잇키(농민 봉기), 오키나와 부분 서술도 좋았다. 특히, 잇키 부분은 여러 번에 걸쳐 지도와 함께 보여주는데, 다른 일본사 책에서는 볼 수 없었기에 정말 좋았다. 이후 제국주의로 향한 일본사를 볼 때, 피지배계급 탄압, 중심-변방 관계, 천민이나 여성에 대한 대우 등등, 자국 내 식민지배의 경험이 이후 타국 지배로 이어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뭐 그런 거, 다 떠나서, 시시콜콜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많다.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막부, 에도 시대,,, 이런 일본사 시기 구분명에, 나는 그동안 '아, 정권이 자리잡은 지명에 그 시대 이름을 붙이는구나'하는 짐작을 했다. 그런데 '무로마치 막부'는 도대체 어디서 온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지명을 따면 '교토 막부'가 아닌가. 서구 학자가 쓴 일본사에는 아예 '아시카가 막부'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무로마치 막부'의 명칭이 꽤 오랜 세월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 82쪽에 보니 나와 있다. '무로마치'는 1378년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자리잡은 교토의 '기타오지무로마치(北大路室町)'라는 상황의 옛 저택에서 유래했단다. 등등, 덕후 기운이 물씬 풍기는(뭔가 아틀라스 중국편, 유라시아편과 다른 기운!) 에피소드가 곳곳에 있다.

 

기본 일본 통사를 3권 정도 읽은 독자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만, '일본사'라고 하면 고대 한일관계라는가 일제 강점기만을 떠올리며 분개하는 분들이 읽으면 그런 쪽 의미 부여를 강하게 하는 서술이 없는 점에 의구심을 갖을 것도 같다. 일본사는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친일적 서술로 보일 수 있다는 것, 다들 아실 터.

 

흠, 산킨코타이, 사원 순례 등 에도 시대 여행에 대한 대목만 읽으려고 찾아 들었는데 전체를 다 읽어버렸다. 덕분에, 과자 한 두 개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한 봉지를 다 먹어버렸다는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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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7-07-14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사 시작하셨군요 ㅎㅎ. 기대됩니다. 응원합니다. 많이 많이 얘기해주세요~~

자유도비 2017-07-22 23:00   좋아요 0 | URL
마일즈님! 반갑습니다. 다정하신 댓글, 고마워요. ^^

마일즈 2017-08-20 17:52   좋아요 0 | URL
저도 다정하신 댓글, 고마움이요 ㄹㄹㄹ. <마음의 역사>저자의 책을 두 권 구했습니다. <마음의 역사>이후로 네안데르탈인과 간빙기를 중요 소재로 삼은 원서, 두권이 중고로 뜨길래, 구입해서 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자에 가까운 과학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과학적 배경지식을 인문학적으로 재배치해서, 보통 과학자들의 글(예를 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나 ,lone survivors의 저자)보다 훨씬 윤택해보이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천천히 다보면, 천천히 서평 올리려구요.
 
일본 대중문화의 원형 - 일본의 역사 : 일본근세 서민문화사
아오키 미치오 지음, 허은주 옮김 / 소명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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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책 대단하다. 에도 시대 문화사인데 조닌이 아니라 무라비토(村人, 농민) 위주다. 책은 일본 에도시대 농촌민들의 의식주, 교육, 문화, 여가생활, 여행 등등을 놓고 근세 일본의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 준다. 심지어 문방구까지 다룬다.  

 

그 과정 추적이 흥미롭다. 마치 프랑스 아날학파의 미시사 서적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서당 격인 당시 일본 촌락의 사설 학교를 다루는 부분을 보자. 사학자는 지역 별로 몇 개나 되는 학교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끙끙대다가 마을 사원의 경내나 길거리에 있는 비석을 조사한다. 제자들이 스승의 은덕을 찬양하는 송덕비로 세워준 비석을 찾아내어 지도 위에 표시한다. 그래서 에도 시대 가즈사, 시모우사, 아와 삼국에 3300명에 이르는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어이쿠, 재미있어라.

 

책은 정치, 경제 위주로 서술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일상과 일생을 다룬다. 덕분에 그놈이 그놈같은 이름을 가진 그놈이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고,,,, 하는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와 다르게 우리의 일상 생활, 우리의 문화사와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같은 대상을 다루는 다른 역사서에서 읽지 못했던 부분이 곳곳에 나온다. 예를 들자면, 가옥 설명하는 1장에서 도코노마 설명 부분.

 

그러나 오랜 기간 낮에는 판자문을 열어서 실내와 자연이 일체가 되는 가운데 생활해온 사람들에게 장자로 차단된 고독한 공간에서의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이에 자연을 불러내는 동시에 실내 공간을 풍요롭게 채색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해서 도코노마가 마련된 것이다.

- 129 ~ 130쪽에서 인용

 

다른 일본문화사 책에도 에도 시대의 가옥에 대해 장지, 다타미, 도코노마 등등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책에서만큼 전후좌우 인과관계, 거기에 얽힌 일본 민중의 심성까지는 설명하지 않았기에 읽으면서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저자가 정말 꼼꼼하게 관련 내용을 다 서술했다. 덕분에 다른 책 읽다가 안 풀려서 끙끙대던 부분에 관한 정보를 뜻밖에 많이 찾아냈다. 일본의 대중 된장 산업의 시초와 제사 공장 여공들의 연관성이라니! 신문 제호로만 알고 있던 '요미우리(讀賣)'가 에도시대에 각종 사건을 속보로 전하는 인쇄물을 들고 다니면서 내용을 읽어주며 판매하던 사람이었다니!나는 저절로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읽어야만 했다.

 

흑백이지만 지도, 사진, 도표 등 다양한 자료가 선명하고, 필요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 두꺼운 책이 지겹지 않게 술술 읽힌다. 주석도 꼼꼼하게 달려 있어서, 모르는 인명이나 사건이 나와도 바로바로 그 페이지에서 알아가면서 읽을 수 있다. 정말 성실하게 만든 책이다. 뒤편 책 날개에 인쇄된 동아시아 지역 출간 목록을 보니 어머나, 빵빵한 것! 소명출판, 이 이름을 기억해 두고 열심히 사서 읽어야겠다.  

 

일본 문화사에 관심있는 분께 강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보다 구입해서 신나게 줄 쳐가며 읽을만한 책이다. 프롤로그 부분인, 에도 시대 개관만 읽어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참, 이 책의 문방구 부분에 의하면 종이의 한 종류인 미농 지(美濃 紙)는 당시 미노 쿠니(美濃 國)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단다. 그동안 난 겨우 종이일뿐인데 아름다움이 얼마나 농후하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고 궁금해했더랬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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