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테마에 맞춰 지도나 도판을 놓고 일본사를 서술해 나가는 책이다. 테마는 총 88개, 일본 열도의 형성부터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
시대까지 걸쳐 있다. 2008년에서 서술이 멎는다.
일본사를 처음 읽거나 전체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책이다. 전체 흐름 보다, 각 시대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정치, 경제, 문화 등등의 각 테마를 띄엄띠엄 던져 주는 구성이기때문이다. (필진이나 편집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구성이 갖는 기본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부분을 징검다리 삼아 딛고 나아가다 보면 독자의 머릿속에서 뭔가 재구성된다. 요컨대, 잭 자체보다 책을 접하는 독자의
역량에 책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뜻.
각 테마에 지도 포함 2페이지 분량이 허용된다는 것은, 어떤 주제는 너무 간략하게 서술하지만 어떤 주제는 다른 일본사에서 간략히 다루는
분량 이상 서술이 허용된다는 말. 이거 좋다. 약점을 뒤집으면 강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일본사에서 자세히 못 읽은 대목을 발견하고 매우
즐거웠다. 장원, 공령제의 구조, 무라의 구조, 조세 제도 등 농민 생활과 경제 부분을 지도와 함께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다. 지배계급의 전쟁과
정치사 위주가 아니기에. 또한 에미시 정벌, 잇키(농민 봉기), 오키나와 부분 서술도 좋았다. 특히, 잇키 부분은 여러 번에 걸쳐 지도와 함께
보여주는데, 다른 일본사 책에서는 볼 수 없었기에 정말 좋았다. 이후 제국주의로 향한 일본사를 볼 때, 피지배계급 탄압, 중심-변방 관계,
천민이나 여성에 대한 대우 등등, 자국 내 식민지배의 경험이 이후 타국 지배로 이어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뭐 그런 거, 다 떠나서, 시시콜콜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많다.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막부, 에도 시대,,, 이런 일본사 시기 구분명에,
나는 그동안 '아, 정권이 자리잡은 지명에 그 시대 이름을 붙이는구나'하는 짐작을 했다. 그런데 '무로마치 막부'는 도대체 어디서 온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지명을 따면 '교토 막부'가 아닌가. 서구 학자가 쓴 일본사에는 아예 '아시카가 막부'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무로마치
막부'의 명칭이 꽤 오랜 세월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 82쪽에 보니 나와 있다. '무로마치'는 1378년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자리잡은 교토의
'기타오지무로마치(北大路室町)'라는 상황의 옛 저택에서 유래했단다. 등등, 덕후 기운이 물씬 풍기는(뭔가 아틀라스 중국편, 유라시아편과 다른
기운!) 에피소드가 곳곳에 있다.
기본 일본 통사를 3권 정도 읽은 독자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만, '일본사'라고 하면 고대 한일관계라는가 일제 강점기만을
떠올리며 분개하는 분들이 읽으면 그런 쪽 의미 부여를 강하게 하는 서술이 없는 점에 의구심을 갖을 것도 같다. 일본사는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친일적 서술로 보일 수 있다는 것, 다들 아실 터.
흠, 산킨코타이, 사원 순례 등 에도 시대 여행에 대한 대목만 읽으려고 찾아 들었는데 전체를 다 읽어버렸다. 덕분에, 과자 한 두 개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한 봉지를 다 먹어버렸다는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