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의 원형 - 일본의 역사 : 일본근세 서민문화사
아오키 미치오 지음, 허은주 옮김 / 소명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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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책 대단하다. 에도 시대 문화사인데 조닌이 아니라 무라비토(村人, 농민) 위주다. 책은 일본 에도시대 농촌민들의 의식주, 교육, 문화, 여가생활, 여행 등등을 놓고 근세 일본의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 준다. 심지어 문방구까지 다룬다.  

 

그 과정 추적이 흥미롭다. 마치 프랑스 아날학파의 미시사 서적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서당 격인 당시 일본 촌락의 사설 학교를 다루는 부분을 보자. 사학자는 지역 별로 몇 개나 되는 학교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끙끙대다가 마을 사원의 경내나 길거리에 있는 비석을 조사한다. 제자들이 스승의 은덕을 찬양하는 송덕비로 세워준 비석을 찾아내어 지도 위에 표시한다. 그래서 에도 시대 가즈사, 시모우사, 아와 삼국에 3300명에 이르는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어이쿠, 재미있어라.

 

책은 정치, 경제 위주로 서술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일상과 일생을 다룬다. 덕분에 그놈이 그놈같은 이름을 가진 그놈이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고,,,, 하는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와 다르게 우리의 일상 생활, 우리의 문화사와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같은 대상을 다루는 다른 역사서에서 읽지 못했던 부분이 곳곳에 나온다. 예를 들자면, 가옥 설명하는 1장에서 도코노마 설명 부분.

 

그러나 오랜 기간 낮에는 판자문을 열어서 실내와 자연이 일체가 되는 가운데 생활해온 사람들에게 장자로 차단된 고독한 공간에서의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이에 자연을 불러내는 동시에 실내 공간을 풍요롭게 채색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해서 도코노마가 마련된 것이다.

- 129 ~ 130쪽에서 인용

 

다른 일본문화사 책에도 에도 시대의 가옥에 대해 장지, 다타미, 도코노마 등등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책에서만큼 전후좌우 인과관계, 거기에 얽힌 일본 민중의 심성까지는 설명하지 않았기에 읽으면서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저자가 정말 꼼꼼하게 관련 내용을 다 서술했다. 덕분에 다른 책 읽다가 안 풀려서 끙끙대던 부분에 관한 정보를 뜻밖에 많이 찾아냈다. 일본의 대중 된장 산업의 시초와 제사 공장 여공들의 연관성이라니! 신문 제호로만 알고 있던 '요미우리(讀賣)'가 에도시대에 각종 사건을 속보로 전하는 인쇄물을 들고 다니면서 내용을 읽어주며 판매하던 사람이었다니!나는 저절로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읽어야만 했다.

 

흑백이지만 지도, 사진, 도표 등 다양한 자료가 선명하고, 필요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 두꺼운 책이 지겹지 않게 술술 읽힌다. 주석도 꼼꼼하게 달려 있어서, 모르는 인명이나 사건이 나와도 바로바로 그 페이지에서 알아가면서 읽을 수 있다. 정말 성실하게 만든 책이다. 뒤편 책 날개에 인쇄된 동아시아 지역 출간 목록을 보니 어머나, 빵빵한 것! 소명출판, 이 이름을 기억해 두고 열심히 사서 읽어야겠다.  

 

일본 문화사에 관심있는 분께 강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보다 구입해서 신나게 줄 쳐가며 읽을만한 책이다. 프롤로그 부분인, 에도 시대 개관만 읽어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참, 이 책의 문방구 부분에 의하면 종이의 한 종류인 미농 지(美濃 紙)는 당시 미노 쿠니(美濃 國)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단다. 그동안 난 겨우 종이일뿐인데 아름다움이 얼마나 농후하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고 궁금해했더랬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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