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을 찾아서 2 이산의 책 7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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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2권은 명말에서 시안사변까지 다룬 1권에 비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대개 중국사 역사책은 1945년 이후에는 중공 성립 과정 조금, 그리고 바로 경제개방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그 사이의 빈 역사는 위화의 소설이나 장예모 영화나 보면서 채워갔기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이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러실 것 같다)

 

1권에 이어, 큰 의미는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일단 요약해 보기로 한다. 2권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한다.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동부해안지역을 상실한 중국은 분열된 상태로 일본과 전쟁을 해야만 했다. 충칭에는 국민당 정부가, 옌안에는 공산당 정부가 각각 들어선 것이다. 일본의 항복이후 미국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민당군은 패배하여 대만으로 가서 2,28학살을 저지르고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곧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이어서 저자는 중국의 정부 구조, 군대 개혁, 외교정책을 다루며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실패를 다룬다. 사이사이 티벳 문제와 중소 국경분쟁, 닉슨 방문등 굵직한 문제들도 서술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거물 정치인을 희생시켜 돌파구를 찾는듯한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 모습도 담담히 묘사한다. 저자는 뒷부분으로가면 덩샤오핑 집권이후 문호개방과 경제특구 등 개혁 개방 쪽 역사를 깊이있게 다룬다. 그리고 1989년의 천안문 시위군중을 학살한 사건으로 책을 마친다.

 

일단 책 자체가 분량이 있으므로 다른 역사서에서 대강대강 큰 사건 위주로 지나가던 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전후 관계를 파악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1권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저자는 공산당이나 국민당의 편을 들거나 비판하거나 호의적으로 그리려는 시도 없이 비교적 사실을 성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각 나라들 묘사하듯 말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자세히 서술한 점이 좋았다. 이렇게 중-미 관계사를 읽다보니 뜻밖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시야의 폭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또 이 저자분의 서술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16세기 명말부터 한 흐름으로 중국근대사를 다뤄주시다보니 어떤 중국사의 보편적 맥락에서 현대의 제반 문제까지 보고 분석해 주시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명 청 시대의 관료제나 현재 공산당 지배계층이나 같은 맥락에서 부정부패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거나, 현재 중국이 진행하는 개혁과 개방 정책도 자신들의 (공산주의) 이념의 순수성은 유지한 채 서구 자본주의의 장점만 취하려는 태도에서 19세기적 오류(아마 양무운동인듯)가 보인다고 지적하는 점 같은 부분말이다. 대표적으로 천안문 사태를 평가한 아래 인용 부분을 한번 볼까. 

 

일부 중국 시민과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분노와 잔인성의 폭발은, 그것이 바로 그들이 죽인 군인들의 가혹한 행동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종류의 전통을 드러내고 있다. 거의 또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특별한 지도 이념도 없는 보통 중국 인민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저항하여 들고 일어났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 내적인 절망감, 비참한 생활환경, 바로 이런 것들이 비타협적이고 무관심한 정부에 대항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기 없이 군인을 죽이려 하는 사람은 적의 무기고를 점령할 때까지 맨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명 말의 농민반란, 왕룬의 절망적인 추종자들, 린칭 또는 백련교도, 염군, 의화단, 20세기 후난과 상하이의 농민과 도시 노동자, 이들 모두가 그들이 참을 수 있는 냉대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 본문 348-9

 

여튼,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 자신은 여러번 딴길로 샜건만, 이 저자분은 16세기 명말부터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일관된 시야로 이 방대한 역사를 들려 주셨다. 이 아래 인용 부분을 보시라. 1권의 처음과 2권의 마지막 부분인데, 말도 안되는 비유지만, 완벽한 수미상응이지 뭔가.

 

교토에서 프라하까지 그리고 델리에서 파리까지 각 수도에는 거만한 국가적 상징물이 있게 마련인데, 그 도시들 가운데 베이징에 있는 궁전처럼 정교함을 자랑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청난 성벽 뒤에 자리잡은 베이징의 황궁에서는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자금성의 넓은 대리석 정원이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고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각 건물과 알현실의 넓은 계단과 거대한 문들은 기하학적 순서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베이징 남쪽을 향해 세워진 아치문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서 모든 방문자들에게 만물의 이치가 중국어로 하늘의 아들(天子), 바로 황제에게 체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1권 처음부분

 

지난 4세기 동안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1980년대의 중국 지도자들에게도 정치적 저항이나 통치행위에 참여하려는 욕구는 여전히 불충의 증거이자 무질서의 전조로 보였다. 그러나 중국이 허약한 무능력의 악순환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면 1990년대에는 그런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자금성의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넓은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지만, 그것들은 지금 그 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으로부터의 새로운 도전을 반사해 버리고 있다. 인민이 그들의 목소리를 되찾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근대 중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2권 끝부분.

 

2권 뒷부분에 수록된 가나다 순 용어 해설도 매우 유익했다. 서가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참고할만한 내 인생의 책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중국사는 춘추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 고대사만 알고 오히려 현대사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또 이유 없이 현대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아마 한반도인으로서 중국을 무시하는 시대를 살아본 세대는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싶다). 그런 분들께 스펜스의 이 책 2권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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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을 걷다 - 중국 800년 수도의 신비를 찾아
주융 지음, 김양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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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북경에서 공사를 하던 중에 자금성 북쪽의 문인 지안문 지하에서 돌로 만든 쥐가, 자금성 남쪽의 문인 정양문 지하에서는 돌로 만든 말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자오선이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십이지에서 쥐(子)는 북방이고 말(午)는 남방이다. 자금성이 있는 베이징은 이렇듯 확고한 남북 방향의 중축선을 따라 건설된 도시였던 것이다. 고고학 발굴 진행에 따라 베이징의 이 중축선은 명, 청시대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대도 시절 도성 시절부터 관통하는 선과 그 시작과 끝점만 다를뿐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계의 어느 오래된 도시를 가서 걷더라도 느낄 수 없는 베이징만의 장엄한 질서의식은 바로 이 중축선 때문에 생긴다.

 

중축선(中軸線)이란 사각형의 성곽과 이 성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추상적 라인이다. 중국의 中자를 구현하는 선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보면 이 선을 따라 나열된 사각형 건축물로 인해 첩첩 기복을 느껴 천자의 위엄에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서양의 사절들이 처음에는 중국 황제에게 절하는 예식을 거부하다가도 자금성을 걸어 들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몸이 움츠러들어 결국에는 스스로 절하게 된다는 전설이 생겨났나보다. 중국에서 집과 도시는 사각형 위주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 관념 때문이리라. <여씨 춘추>나 <주례>의 <고공기>에는 이런 유교에 기반한 도읍건설의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도읍 건설의 이상이 모든 왕조의 도성에 다 관철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자연적 조건에 맞춰 배치된다. 베이징의 경우, 원나라의 흘필렬이 대도(베이징의 원 시절 이름)를 계획할 때부터 이 도시는 중축선을 갖게 되며 이후 원나라에서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는 이 중축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현재도 이 중축선은 급격한 도시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2.8 km에 걸쳐 잘 보존되어 있다.

 

청 초에 세워진 천안문은 성루의 전우가 너비 아홉 칸, 깊이 다섯 칸으로 도시 제왕의 '구오지존'을 상징한다.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친히 출정을 나갈 때는 천안문엔서 조서를 반포하고 깃발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승리를 기원했고, 개선하고 돌아올 때는 천안문 중문으로 입성함으로써 사직의 안정과 공고함을 표현했다. (중략)

1900년 8국 연합군은 천안문에서 열병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들의 성취감과 망해가는 왕조에 대한 멸시를 표현했다. 30년 후 또다른 열병식의 주인은 이미 대총통의 지위를 훔친 원세계였다. (중략)

천안문은 봉건 제왕들이 권력을 전시하던 무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애국민주주의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했다. 천안문은 5,4운동, 12.9 운동 및 신중국 개국대전의 증인이었다. (중략)

장정은 천안문의 제1차 설계에 참여했다. (중략) 그는 성문 위쪽에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를 걸 것을 제안했다. 중국의 전통적 대련을 변형하여 횡폭 방식으로 좌우로 배열하고 성루에 진홍색 궁등을 걸어 천안문의 혁명적 주제와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자는 것이었다. (중략)

개국 첫해에 이루어진 천안문의 장식은 비록 근본적인 개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미지 변신에는 성공했다. 제왕 통치의 상징에서 인민 민주주의 상징으로 변화한 것이다.

- 본문 117쪽 - 121쪽에서 발췌인용

 

이 책은 이 800년 중축선의 도시, 베이징의 건설 당시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민국 시절이 된 이후 새 지배권력에 따라 베이징이 보수되고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이념을 덧씌워 만들어 가는 과정을 쉽게 들려 준다. 좀 투박하지만 흑백 옛사진과 더불어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베이징 자금성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베이징을 자유 여행으로 많이 가 보았거나 건축, 도시설계에 관심있으신 분이 읽으신다면 내가 보고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건질 수 있는 책임이 확실하다.

 

좀 책이 엉성해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북경 방송국에서 북경 800년 도읍사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생긴 원고로 낸 책이어서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자국 방송용 답게 과한 찬사가 많고 천안문 광장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1989년 민주항쟁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빠뜨리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므로 이 부분은 그냥 귀엽게 봐 주며 읽으면 된다.

 

참,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세워진 경기장이 이 책에서 말하는 중축선의 정 북방이라는 것. 풍수적으로 이는 중국 중심의 강화를 의미한다. 물론, 그건 걔들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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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 - 전족 한 쌍에 눈물 두 동이
루링 지음, 이은미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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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통시대 중국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궁금해서 읽었다. 통사는 아니고, 봉건시대 남존여비 종법사회에서 중국 여성들이 굴욕과 고난을 겪은 역사를 전족의 폐혜, 결혼과 성, 후궁과 궁녀, 기녀, 첩 제도 등을 통해 서술하며 더불어 근대 여성해방운동을 담고 있는 사례집같은 성격을 가진 책이다.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생생한 모습들이 관련 자료 인용과 더불어 잘 묘사되어 있어서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힌다. 좀 편집이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진 등 도판 자료도 풍부하다.

 

전족 부분 설명은 정말 뜻밖이었다.이 책에 의하면 전족은 4,5세부터 소녀의 발을 묶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을 구부러트리고 묶어서 마치 주먹을 쥔 상태처럼 만드는 것이라 한다. 그러다보면 살이 짓물러 고름이 되어 흘러 내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고 한다. 덕분에 중국 여성 해방운동의 역사가 전족 철폐의 역사와 맞물리는 이유를 제대로 알았다.

 

그리고 태평천국 운동이 중국 여성 해방에 많은 기여를 한 점이 흥미롭다. 태펑천국의 천조전묘 제도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농토를 인구에 따라 평등 분배한,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토지개혁제도였다. 또한 이들은 일부일처제 주장과 전족 금지령도 내렸다니,,, 이 부분 참으로 흥미롭다. 일단 스펜스 책으로 더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그나마 기록에 남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황후나 비빈, 궁녀, 기녀 등 지배계층에 속하거나 지배계층과 관련있는 사례뿐일텐데, 나머지 대다수 여성들의 삶은 어디에서 제대로 된 기록으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중국 여성이 쓴 이 책은 곳곳에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다운 시각을 보여주는데, 과연 중국 공산 혁명의 역사가 중국 여성의 평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나, 하는 생각. 더불어 이런 의문도 든다. 지금 상하이 등 경제 개방으로 한국인이 많이 진출해있는 도시의 딸 가진 부모들은 딸자식이 말썽 피우면 "너 그러면 이담에 커서 한국 남자에게 시집보낸다!"라고 야단치며 겁준다고 하는데, 과연 현대 중국여성들은 완전한 평등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이 보기에 한국은 아직도 봉건적 남녀차별이 남아있는 미개한 나라로 보이는 것일까?

 

쓸데없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여튼 이 책,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역사서의 빈틈을 채워주는 이런 독서도 필요하다. 아쉬운 점은 각 자료 인용의 정확한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 (두고두고 써먹으려 했다만, 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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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상점
리궈룽 지음, 이화승 옮김 / 소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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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제 1장에 광주13행을 배경으로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래서 앞의 책을 다 읽자마자 냅다 이어서 이 책을 읽었다.

 

17세기 후반,  청제국의 강희제는 명이후 300년간 실시해온 해금정책을  페지하고 동남연해에 강해관, 절해관, 민해관, 월해관 등 4개의 세관을 설치, 외국 상선의 입항와 무역을 허락한다. 1757년 건륭제는 '일구통상' 정책을 발표하여 항구를 한 곳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3곳의 해관을 닫아버린다. 즉 광동의 월해관만 남긴 것이다. 이후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의 요구에 따라 공행제도를 폐지하기까지 광동에서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독점적 상인(공행)들을 광주 13행이라 부른다. 이 책은 이들 광주 13행의 무역과 번성, 쇠퇴과정을 살펴주고 대표적 상인들을 소개해 주며, 서양과 중국 사이에 이루어진 문화 교류 등을 다루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중국사나 세계사 통사류의 아편전쟁 배경 설명시에 잠깐 등장하는 공행에 대해 나는 그 역할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 외였다. 이들은 막대한 활약을 하고 부를 축적하면서도 청 정부와 관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서구 상인들에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재고를 떠앉기도 하며 자신들의 업무 미숙보다 지나친 세금 때문에 파산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아편 전쟁 시에는 정부를 대신해 교섭에 나섰지만 배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그 배상금의 일부분까지 13행에서 상인들이 걷어 내주어야 했다. 영국 상인들은 공행의 폐지를 내걸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막상 아편 전쟁 후 공행이 폐지되고 나서13행을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에 나섰다가 오히려 고생했다는 것,,, 등등 간략히 알았던 건조한 큰 얼개 사이사이 미처 몰랐던 세세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CCTV 다큐제작진이 쓴 책답게 약간 일방적인 중국문화 찬미 조, 은근 봉건 군주와 시스템의 무지 고발 조로 흘러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이 부분 맨 마지막 문단에 썼음), 정식 역사서에서 대강 이야기하거나 빠뜨리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읽기 즐겁다. 특히 풍부한 도판이 실려 있어 더욱 흥미롭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수출용 그림들에 대한 부분은 서양 유화가 동양에 전래되는 과정에 관심있는 분께도 아주 좋은 책일 것 같다.

 

읽어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책 속 광주 거리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가 본 적도 없는 전성기 베네치아의 대운하변이라든가 에도막부 시절 나가사키 데지마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 시절 한문 시간에 '은행'의 '行'자가 다닐 행이 아니라 가게 행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참나, 먼 옛날 다른 나라 역사를 읽었는데 왜 이리 내 추억이 줄줄이 떠오르는지. 너무 몰입해서 읽었나보다.

 

참, 그런데 대중 역사서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중 역사서는 저자의 역량 부족으로 자료를 충분히 찾아보지 못해서 한 쪽으로 치우처 서술할 수밖에 없었거나, 아니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일부러 한 쪽 자료만 인용해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독자는 전문 학자의 전문 역사서를 읽을 때와 다른 자세를 갖고 이런 류의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역사서라고 책 내용이 다 객관적 사실이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늘 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저자가 어떤 입장에서 왜 이렇게 서술했는지를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역체제의 타파를 내건 영국의 상업,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과 과도한 세금과 뇌물상납, 관리의 수탈이란 두 마리 고래 등 사이에 끼어서 광동 18행의 상인들이 그 선구적 역할과 진취적 기상에도 불구하고 늘 피해를 보다가 아편전쟁 이후 안타깝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저자인 중국 CC TV 다큐 제작진들은 이들 18행 공행들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겠다. 이 책에는 동인도회사에서 계약가격의 일부 대금을 미리 주고 그 대가로 공행들에게 모직물을 떠 넘겨서 이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이후 이들 공행들이 동인도 회사에 넘기는 중국차를 떼 오는 다장(茶莊)들에게 차값 대신에 이 모직물을 지불해서 자신들의 손실을 만회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들 18행들 역시 일정 부분 현재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부리는 횡포를 부렸으며, 이들이 청조의 부패한 시스템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뇌물 상납등을 통해 그 이상의 이권을 보장받아 호의호식했다는 부분 역시 이 책은 서술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과연 몰라서 그랬을까? 이런 점을 알고 읽으면, 이 책은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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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洪秀全과 太平天國 이산의 책 44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양휘웅 옮김 / 이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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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 재미있다! 서울에 눈 내리는1박2일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단숨에 620여쪽을 읽었다. 역사책인데 문학작품에 폭 빠졌다가 간신히 깨어난듯한 기분도 든다. 스펜서의 방대한 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배경 묘사 능력과 현재 시제로 표현한 문체라니,,,, 엄청난 대화면으로 수준 높은 사극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태평천국 반란군의 지도자, 훙슈취안(洪秀全: 1814-1864)과 그 주변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다른 중국사들과 달리 태평천국의 발생과 전쟁, 세력 확대와 패망 과정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저자는 꼭 필요한 경우만 간략히 서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홍슈취안과 여러 인물들의 행동 동기인 것 같다. 그들이 성경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편집하고 이용하는 과정을 저자는 담담히 서술해준다. 그래서 그냥 '하느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친동생이라 자신을 칭했던 웬 미친 놈', 정도로 희화화될 수 있는 한 인물을, 그 인물을 믿고 따랐던 일단의 추종자 무리들을, 그리고 신앙 자체보다 현실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는 지도자에게 충성했던 당시 중국 민중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런 개입이나 가치 판단없이 저자는 당시의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행동 동기와 삶의 의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홍슈취안은 1814년 중국 남부 광둥 성(廣東 省) 화 현(花 縣) 출생이다. 그는 광둥 성내로 이주해온 하카(客家)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카는 외족의 침입이나 내란,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수세기에 걸쳐 남쪽으로 이주해와 자기들만의 언어(하카어)와 풍속과 전통을 고수(변발, 전족하지 않음)하는 일종의 이주자 소수집단이었다. 하지만 민족적으로는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漢族)에 속하기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훙슈취안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려했다. 그는 과거에 응시하러 광저우(廣州)에 갔다가 중국인 침례교 개종자 량아파(梁阿發)가 쓴 <권세양언(勸世良言)>을  얻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그는 두번째 부시에 낙방하고 큰 병을 앓으며 사경을 헤매다가 환몽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하늘에 올라 하늘의 아버지와 형을 만나 세상의 요괴를 몰아내는 전쟁을 치룬 후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받는 것. 이후에야 <권세양언>을 읽고 자신의 꿈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해석하게 된 그는 더이상 과거에 응시하지않고 자신의 사명 완수를 위해 포교에 나선다. 훙슈취안의 종교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에는 근친들과 초기의 헌신적인 종교 신념을 가진 자들 외에  현실에 불만을 가진 재야 지식인들과 하카, 가난한 소작인들, 상인들, 비밀 결사 조직원들 (천지회나 삼합회), 비적, 수적 등등,,, 추종자들이 몰려든다. 배상제회는 만주족 청나라 정부를 요괴집단으로 삼아 전쟁을 벌이고 태평천국을 선포한다. 난징 입성 후 제도를 정비해가며 승승장구 세력을 확대해가더니 지도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 왕들과 장군들은 서로 학살한다. 이에 홍슈취안은 초기 시절부터의 추종자들을 잃고 불안에 빠져 족벌체제를 만들고 성서 편집에 몰두한다. 베이징을 향한 북벌도, 주위 세력지 수성도 실패하고 천왕 홍슈취안 사후 추종자들은 궁지에 빠진다. 이들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초심을 잃고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다 민심을 잃는다. 특히 외국인 조계지인 상하이 시에 대한 공격으로 기독교를 내건 반란군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감을 잃은(물론 그 이전에 아전인수격 성서 해석으로 호감 잃음) 외국 군대와 청 정부군의 협공으로 왕국은 패망한다.

 

중국 대륙에서 태평천국을 다룬 책을 읽어보면 이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토지를 분배했다거나 하는 점들을 들어 태평천국의 사회주의적 의의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기독교 신앙이 중국에 수용되고 태평천국 지도자들에 의해 성서가 편집되는 과정, 신의 계시를 빙자한 권력다툼 등 지도자들의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을 주로 서술한다. 독특하다. 그런데 "21장 폭설" 부분을 읽다보면 정말 당시 중국 민중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천국이고 구원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저자는 은근히 던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직설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과묵함이라니! 이러면 읽는 독자의 수준에 맡겨 버리는 셈인데,,,

 

상황은 태평군을 싸늘하게 외면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이 일대를 떠도는 유민들이나 집 없는 주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민과 집 없는 주민들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 때문에 끊임없이 쫓겨 다닌다. 양쯔 강 삼각주의 농민들과 소규모 시진의 주민들은 이전까지 그들의 고향이었던 곳의 주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최소한 여덟 종류의 각기 다른 군사와 싸워야 한다. 즉 태평군의 야전 부대, 태평군과 느슨하게 제휴를 맺고 있는 비밀결사나 그 밖의 비정규군, 독립적인 수적 집단 또는 지역에 기반을 둔 비적, 단련과 농촌공동체의 농민방위대 쩡궈판과 그의 형제들 같은 향신층이 모집한 대규모 청군, 장쑤 성 관료들이 거느린 청의 정규군, 청조에 고용된 미국인 프레더릭 워드가 지휘하는 서양인 용병부대, 그리고 호프 제독과 육군 준장 스테이블리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의 정규군과 해군 등이 이들이다.

- 본문 484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 뒤에 참담한 중국 민중들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 이어진다. 결국, 기독교이든 아니든, 천국이든 아니든, 만주족이든 한족이든, 외국군이든 아니든,,, 당시 전란에 휩싸여 희생된 중국 민중들에게 그들은 모두 "요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요괴"란 용어는 태평천국의 천왕인 홍슈취안과 가까운 지도자들이 자신의 적들에게 쓰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조금 더 개안한 것이 있다면, 이 부분이다. 중세사에서 반란 부분을 읽을 때, 함부로 현대의 입장에서 평가하지 말 것! 아무리 농민혁명적 의의, 초기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여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태평천국 관련 이외에도 이 책에는 광주 13행이라든가 중국 민간 신앙과 비밀 결사 단체 등등 관련배경 설명이 정말 상세하고 재미있다. 읽으면서 입맛 다시게 만드는 멋진 장면 묘사가 많아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관심있는 분께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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