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걷다 - 중국 800년 수도의 신비를 찾아
주융 지음, 김양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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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50년대 북경에서 공사를 하던 중에 자금성 북쪽의 문인 지안문 지하에서 돌로 만든 쥐가, 자금성 남쪽의 문인 정양문 지하에서는 돌로 만든 말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자오선이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십이지에서 쥐(子)는 북방이고 말(午)는 남방이다. 자금성이 있는 베이징은 이렇듯 확고한 남북 방향의 중축선을 따라 건설된 도시였던 것이다. 고고학 발굴 진행에 따라 베이징의 이 중축선은 명, 청시대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대도 시절 도성 시절부터 관통하는 선과 그 시작과 끝점만 다를뿐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계의 어느 오래된 도시를 가서 걷더라도 느낄 수 없는 베이징만의 장엄한 질서의식은 바로 이 중축선 때문에 생긴다.

 

중축선(中軸線)이란 사각형의 성곽과 이 성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추상적 라인이다. 중국의 中자를 구현하는 선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보면 이 선을 따라 나열된 사각형 건축물로 인해 첩첩 기복을 느껴 천자의 위엄에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서양의 사절들이 처음에는 중국 황제에게 절하는 예식을 거부하다가도 자금성을 걸어 들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몸이 움츠러들어 결국에는 스스로 절하게 된다는 전설이 생겨났나보다. 중국에서 집과 도시는 사각형 위주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 관념 때문이리라. <여씨 춘추>나 <주례>의 <고공기>에는 이런 유교에 기반한 도읍건설의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도읍 건설의 이상이 모든 왕조의 도성에 다 관철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자연적 조건에 맞춰 배치된다. 베이징의 경우, 원나라의 흘필렬이 대도(베이징의 원 시절 이름)를 계획할 때부터 이 도시는 중축선을 갖게 되며 이후 원나라에서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는 이 중축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현재도 이 중축선은 급격한 도시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2.8 km에 걸쳐 잘 보존되어 있다.

 

청 초에 세워진 천안문은 성루의 전우가 너비 아홉 칸, 깊이 다섯 칸으로 도시 제왕의 '구오지존'을 상징한다.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친히 출정을 나갈 때는 천안문엔서 조서를 반포하고 깃발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승리를 기원했고, 개선하고 돌아올 때는 천안문 중문으로 입성함으로써 사직의 안정과 공고함을 표현했다. (중략)

1900년 8국 연합군은 천안문에서 열병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들의 성취감과 망해가는 왕조에 대한 멸시를 표현했다. 30년 후 또다른 열병식의 주인은 이미 대총통의 지위를 훔친 원세계였다. (중략)

천안문은 봉건 제왕들이 권력을 전시하던 무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애국민주주의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했다. 천안문은 5,4운동, 12.9 운동 및 신중국 개국대전의 증인이었다. (중략)

장정은 천안문의 제1차 설계에 참여했다. (중략) 그는 성문 위쪽에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를 걸 것을 제안했다. 중국의 전통적 대련을 변형하여 횡폭 방식으로 좌우로 배열하고 성루에 진홍색 궁등을 걸어 천안문의 혁명적 주제와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자는 것이었다. (중략)

개국 첫해에 이루어진 천안문의 장식은 비록 근본적인 개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미지 변신에는 성공했다. 제왕 통치의 상징에서 인민 민주주의 상징으로 변화한 것이다.

- 본문 117쪽 - 121쪽에서 발췌인용

 

이 책은 이 800년 중축선의 도시, 베이징의 건설 당시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민국 시절이 된 이후 새 지배권력에 따라 베이징이 보수되고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이념을 덧씌워 만들어 가는 과정을 쉽게 들려 준다. 좀 투박하지만 흑백 옛사진과 더불어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베이징 자금성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베이징을 자유 여행으로 많이 가 보았거나 건축, 도시설계에 관심있으신 분이 읽으신다면 내가 보고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건질 수 있는 책임이 확실하다.

 

좀 책이 엉성해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북경 방송국에서 북경 800년 도읍사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생긴 원고로 낸 책이어서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자국 방송용 답게 과한 찬사가 많고 천안문 광장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1989년 민주항쟁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빠뜨리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므로 이 부분은 그냥 귀엽게 봐 주며 읽으면 된다.

 

참,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세워진 경기장이 이 책에서 말하는 중축선의 정 북방이라는 것. 풍수적으로 이는 중국 중심의 강화를 의미한다. 물론, 그건 걔들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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