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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상점
리궈룽 지음, 이화승 옮김 / 소나무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제 1장에 광주13행을 배경으로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래서 앞의 책을 다 읽자마자 냅다 이어서 이 책을 읽었다.
17세기 후반, 청제국의 강희제는 명이후 300년간 실시해온 해금정책을 페지하고 동남연해에 강해관, 절해관, 민해관, 월해관 등 4개의 세관을 설치, 외국 상선의 입항와 무역을 허락한다. 1757년 건륭제는 '일구통상' 정책을 발표하여 항구를 한 곳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3곳의 해관을 닫아버린다. 즉 광동의 월해관만 남긴 것이다. 이후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의 요구에 따라 공행제도를 폐지하기까지 광동에서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독점적 상인(공행)들을 광주 13행이라 부른다. 이 책은 이들 광주 13행의 무역과 번성, 쇠퇴과정을 살펴주고 대표적 상인들을 소개해 주며, 서양과 중국 사이에 이루어진 문화 교류 등을 다루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중국사나 세계사 통사류의 아편전쟁 배경 설명시에 잠깐 등장하는 공행에 대해 나는 그 역할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 외였다. 이들은 막대한 활약을 하고 부를 축적하면서도 청 정부와 관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서구 상인들에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재고를 떠앉기도 하며 자신들의 업무 미숙보다 지나친 세금 때문에 파산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아편 전쟁 시에는 정부를 대신해 교섭에 나섰지만 배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그 배상금의 일부분까지 13행에서 상인들이 걷어 내주어야 했다. 영국 상인들은 공행의 폐지를 내걸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막상 아편 전쟁 후 공행이 폐지되고 나서13행을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에 나섰다가 오히려 고생했다는 것,,, 등등 간략히 알았던 건조한 큰 얼개 사이사이 미처 몰랐던 세세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CCTV 다큐제작진이 쓴 책답게 약간 일방적인 중국문화 찬미 조, 은근 봉건 군주와 시스템의 무지 고발 조로 흘러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이 부분 맨 마지막 문단에 썼음), 정식 역사서에서 대강 이야기하거나 빠뜨리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읽기 즐겁다. 특히 풍부한 도판이 실려 있어 더욱 흥미롭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수출용 그림들에 대한 부분은 서양 유화가 동양에 전래되는 과정에 관심있는 분께도 아주 좋은 책일 것 같다.
읽어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책 속 광주 거리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가 본 적도 없는 전성기 베네치아의 대운하변이라든가 에도막부 시절 나가사키 데지마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 시절 한문 시간에 '은행'의 '行'자가 다닐 행이 아니라 가게 행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참나, 먼 옛날 다른 나라 역사를 읽었는데 왜 이리 내 추억이 줄줄이 떠오르는지. 너무 몰입해서 읽었나보다.
참, 그런데 대중 역사서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중 역사서는 저자의 역량 부족으로 자료를 충분히 찾아보지 못해서 한 쪽으로 치우처 서술할 수밖에 없었거나, 아니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일부러 한 쪽 자료만 인용해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독자는 전문 학자의 전문 역사서를 읽을 때와 다른 자세를 갖고 이런 류의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역사서라고 책 내용이 다 객관적 사실이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늘 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저자가 어떤 입장에서 왜 이렇게 서술했는지를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역체제의 타파를 내건 영국의 상업,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과 과도한 세금과 뇌물상납, 관리의 수탈이란 두 마리 고래 등 사이에 끼어서 광동 18행의 상인들이 그 선구적 역할과 진취적 기상에도 불구하고 늘 피해를 보다가 아편전쟁 이후 안타깝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저자인 중국 CC TV 다큐 제작진들은 이들 18행 공행들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겠다. 이 책에는 동인도회사에서 계약가격의 일부 대금을 미리 주고 그 대가로 공행들에게 모직물을 떠 넘겨서 이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이후 이들 공행들이 동인도 회사에 넘기는 중국차를 떼 오는 다장(茶莊)들에게 차값 대신에 이 모직물을 지불해서 자신들의 손실을 만회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들 18행들 역시 일정 부분 현재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부리는 횡포를 부렸으며, 이들이 청조의 부패한 시스템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뇌물 상납등을 통해 그 이상의 이권을 보장받아 호의호식했다는 부분 역시 이 책은 서술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과연 몰라서 그랬을까? 이런 점을 알고 읽으면, 이 책은 훨씬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