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베이징 古家와 중국근대사 인물이야기에서 역사를 보다
천광중 지음, 박지민 옮김 / 현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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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이징 답사 가기 전에 읽고 기록 안하고 서가에 꽂아 버린 책이다. 오늘 다른 책 검색하다 찾아보니 리뷰가 한 편도 안 달려 있기에 안타까워서 읽은 지 몇 달 지나 세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자 적는다.

 

한 마디로, 이 책 참 좋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행복해!'하고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책 갈피에서 은은한 차향이 풍기는 것 같고 온 정신과 몸이 기분좋은 노곤함에 빠져든다. 

 

이 책은 베이징의 낡은 뒷골목인 후퉁에 숨은 사합원과 회관에 대해, 그곳에 머물던 중국 근현대사의 기라성같은 문인과 혁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 근대문학의 대가 루쉰이 살던 사오싱 회관, 변법자강운동의 캉유웨이가 살던 미시 후통의 난하이회관, 중국의 국부 쑨원이 살던 주차오지에의 중산회관, 마오쩌둥이 잠시 머물렀던 란만후통의 후난 회관,,, 등등 베이징의 수많은 회관과 그곳을 거쳐간 유명인이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건조하게 만나던 이들을 그들의 공간에 담긴 육체가 있는 존재로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이다)

 

회관 아닌 사합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로같은 후통을 보물찾기하듯 더듬어 가 보면 위안스카이(원세계)를 피해 차이어가 베이징 미엔화후통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베이징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채원배)가 살던 동청취 동탕즈후통의 옛집, 반청 혁명가 장즈지엔과 그의 딸 장한즈와 결혼한 중국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 2대의 역사적 유명인이 살았던 스지아후통, 아, 나는 동청취 베이고우옌 후통 23호 량치챠오(양계초)의 사합원에, 시산티아오의 루쉰의 서재 '호랑이 꼬리'에 가 보았어야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좁은 후통을 지나치는 그들의 낡은 옷소매자락을 몇 번이고 스치며 그들의 몸내음을 맡는다. 옷자락을 도대체 몇 번이나 스쳐야 나는 이 남자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까.

 

기쁘고 다행한 일은 '호랑이 꼬리'라 불린 작디작은 방에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고, 혁명적인 루쉰이 만들어졌고, 동시에 평범한 인성을 가진 루쉰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방에서 루쉰은 입체적이고 완전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121쪽

 

우리가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보통 명사의 집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 269쪽

 

베이징 자유여행 가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저자분이 직접 찍으신 흑백사진의 풍경, 직접 보고 느끼고 싶지 않으신가. 베이징 도시 재개발로 인해 이 유서깊은 후퉁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풍경을 오롯이 맘 속에 담아 오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답이다.

 

,,, 그리고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지극히 사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공학을 전공한 저자분이 나이 마흔에 하던 일을 때려 치고 낸 책이라는 것. 그런데도 문장과 서술 방식이 오래오래 고민하고 공부한 티가 난다는 것. 나는 이런 열정적인 비전문가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이 참 좋다. 닮고 싶다.

 

*** 사소한 지적

 

본문 92쪽의 朝花夕拾은 조화석'십'이 아니라 조화석'습'이라 읽고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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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도, 베이징
조관희 글.사진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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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여행 서적이야 많다만 실용적인 교통과 숙소, 관광명소, 음식점에 대한 정보 위주여서 학구적인 궁금증을 가진 독자는 읽을 거리가 없다. 그런 책에 이따금 역사나 문화에 대해 구색맞추기 식으로 들어가 있는 내용들은 오래전 상황이거나 근거 없는 낭설과 야담, 허접한 흥미거리 위주여서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너무 전문적인 책을 읽노라면 분야별로 여러 권을 찾아 읽어야해서 번거로운데, 이 책은 딱 한 권으로 베이징의 과거 현재 역사와 명소, 베이징 시민들의 현재 삶까지 다 접할 수 있어서 좋다. 그것도 전문가의 신뢰성 있는 서술로.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별로 나눠져 (내가 읽기에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계절별로 그 계절에 가 보면 좋은 베이징의 명소를 소개한다. 모든 소개에는 역사를 곁들여 말해주고 있는데 그 서술에 깊이가 있다. 봄 부분에서는 베이징의 호수인 베이하이(北海)와 중난하이(中南海)의 춘경을 소개한다. 원 시절 마르꼬 뽈로의 다리로 유명했던 루거우챠오(盧溝橋)를 소개할 때에는 관련 한시와 중일전쟁 발발까지 설명해 주신다.이어 저자는 종축선을 따라 설계된 계획 도시 베이징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베이징의 배꼽이라고 톈안먼(天安門)광장을 칭하기도 한다. 여름 편에서는 옌징(燕京)과 베이징대학, 베이징의 후퉁(胡同)을 소개한다. 에드거 스노우가 살았던 후퉁 사진도 있다. 거지 선완싼(沈萬三)과 스차하이(什刹海) 전설을 들려 주시기도 한다. 징항운하(京杭運河) 이야기도 이어진다. 가을편에서는 베이징의 가을 풍경 이야기로 시작하여 쑨원의 일화가 얽힌 비윈쓰(碧雲寺)와 베이징 주변의 장성의 역사를 서술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금성 - 구궁(故宮)에 대한 본격적 설명이 시작한다. 이 부분만 읽어도 베이징 관광가면 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 겨울 편에서는 칸발릭이라고 불렸던 원 시대의 베이징, 원 이전의 베이징,,,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저우커우뎬(周口店)의 베이징원인(北京猿人)까지 설명한다. 그리고 쓸쓸한 겨울에 어울리게도 명 마지막 황제의 최후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하지만 저자분은 마냥 감상에 빠지지 않고 베이징 일반인들의 겨울 나기 풍경(탕후루와 훠궈 먹기)과 베이징의 명동, 왕푸징(王府井) 풍경 묘사를 통해 현재 베이징에 살고 사랑하고 먹고 숨쉬는 사람들의 현실로 독자들을 다시 데려다 놓는다.

 

중문학을 전공하신 분 답게 곳곳에 중문학 명시와 명 문장들을 인용해 놓으셔서 읽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고맙게도 참고문헌을 통해 출전까지 밝혀 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매우 아쉽다. 이 책은 감상적이거나 정체불명의 정보 나열인 다른 여행서적과 비교도 안될 정도여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두고두고 참고하며 많은 도움을 얻을 것 같다.

 

여튼 베이징 여행을 앞두고 있는 분께 강추! 그리고 여행 계획이 없으신 분에게도 강추!중국 통사류 책들을 읽을 때 곁들여 읽으면 좋은 책이므로 중국 관련 독서 계획 있으신 분들께도 강추! 흔한 여행서적이 아니라 깊이있는 인문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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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찾아서 2 이산의 책 7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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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2권은 명말에서 시안사변까지 다룬 1권에 비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대개 중국사 역사책은 1945년 이후에는 중공 성립 과정 조금, 그리고 바로 경제개방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그 사이의 빈 역사는 위화의 소설이나 장예모 영화나 보면서 채워갔기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이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러실 것 같다)

 

1권에 이어, 큰 의미는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일단 요약해 보기로 한다. 2권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한다.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동부해안지역을 상실한 중국은 분열된 상태로 일본과 전쟁을 해야만 했다. 충칭에는 국민당 정부가, 옌안에는 공산당 정부가 각각 들어선 것이다. 일본의 항복이후 미국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민당군은 패배하여 대만으로 가서 2,28학살을 저지르고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곧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이어서 저자는 중국의 정부 구조, 군대 개혁, 외교정책을 다루며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실패를 다룬다. 사이사이 티벳 문제와 중소 국경분쟁, 닉슨 방문등 굵직한 문제들도 서술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거물 정치인을 희생시켜 돌파구를 찾는듯한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 모습도 담담히 묘사한다. 저자는 뒷부분으로가면 덩샤오핑 집권이후 문호개방과 경제특구 등 개혁 개방 쪽 역사를 깊이있게 다룬다. 그리고 1989년의 천안문 시위군중을 학살한 사건으로 책을 마친다.

 

일단 책 자체가 분량이 있으므로 다른 역사서에서 대강대강 큰 사건 위주로 지나가던 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전후 관계를 파악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1권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저자는 공산당이나 국민당의 편을 들거나 비판하거나 호의적으로 그리려는 시도 없이 비교적 사실을 성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각 나라들 묘사하듯 말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자세히 서술한 점이 좋았다. 이렇게 중-미 관계사를 읽다보니 뜻밖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시야의 폭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또 이 저자분의 서술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16세기 명말부터 한 흐름으로 중국근대사를 다뤄주시다보니 어떤 중국사의 보편적 맥락에서 현대의 제반 문제까지 보고 분석해 주시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명 청 시대의 관료제나 현재 공산당 지배계층이나 같은 맥락에서 부정부패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거나, 현재 중국이 진행하는 개혁과 개방 정책도 자신들의 (공산주의) 이념의 순수성은 유지한 채 서구 자본주의의 장점만 취하려는 태도에서 19세기적 오류(아마 양무운동인듯)가 보인다고 지적하는 점 같은 부분말이다. 대표적으로 천안문 사태를 평가한 아래 인용 부분을 한번 볼까. 

 

일부 중국 시민과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분노와 잔인성의 폭발은, 그것이 바로 그들이 죽인 군인들의 가혹한 행동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종류의 전통을 드러내고 있다. 거의 또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특별한 지도 이념도 없는 보통 중국 인민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저항하여 들고 일어났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 내적인 절망감, 비참한 생활환경, 바로 이런 것들이 비타협적이고 무관심한 정부에 대항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기 없이 군인을 죽이려 하는 사람은 적의 무기고를 점령할 때까지 맨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명 말의 농민반란, 왕룬의 절망적인 추종자들, 린칭 또는 백련교도, 염군, 의화단, 20세기 후난과 상하이의 농민과 도시 노동자, 이들 모두가 그들이 참을 수 있는 냉대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 본문 348-9

 

여튼,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 자신은 여러번 딴길로 샜건만, 이 저자분은 16세기 명말부터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일관된 시야로 이 방대한 역사를 들려 주셨다. 이 아래 인용 부분을 보시라. 1권의 처음과 2권의 마지막 부분인데, 말도 안되는 비유지만, 완벽한 수미상응이지 뭔가.

 

교토에서 프라하까지 그리고 델리에서 파리까지 각 수도에는 거만한 국가적 상징물이 있게 마련인데, 그 도시들 가운데 베이징에 있는 궁전처럼 정교함을 자랑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청난 성벽 뒤에 자리잡은 베이징의 황궁에서는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자금성의 넓은 대리석 정원이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고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각 건물과 알현실의 넓은 계단과 거대한 문들은 기하학적 순서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베이징 남쪽을 향해 세워진 아치문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서 모든 방문자들에게 만물의 이치가 중국어로 하늘의 아들(天子), 바로 황제에게 체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1권 처음부분

 

지난 4세기 동안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1980년대의 중국 지도자들에게도 정치적 저항이나 통치행위에 참여하려는 욕구는 여전히 불충의 증거이자 무질서의 전조로 보였다. 그러나 중국이 허약한 무능력의 악순환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면 1990년대에는 그런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자금성의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넓은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지만, 그것들은 지금 그 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으로부터의 새로운 도전을 반사해 버리고 있다. 인민이 그들의 목소리를 되찾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근대 중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2권 끝부분.

 

2권 뒷부분에 수록된 가나다 순 용어 해설도 매우 유익했다. 서가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참고할만한 내 인생의 책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중국사는 춘추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 고대사만 알고 오히려 현대사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또 이유 없이 현대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아마 한반도인으로서 중국을 무시하는 시대를 살아본 세대는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싶다). 그런 분들께 스펜스의 이 책 2권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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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을 걷다 - 중국 800년 수도의 신비를 찾아
주융 지음, 김양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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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50년대 북경에서 공사를 하던 중에 자금성 북쪽의 문인 지안문 지하에서 돌로 만든 쥐가, 자금성 남쪽의 문인 정양문 지하에서는 돌로 만든 말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자오선이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십이지에서 쥐(子)는 북방이고 말(午)는 남방이다. 자금성이 있는 베이징은 이렇듯 확고한 남북 방향의 중축선을 따라 건설된 도시였던 것이다. 고고학 발굴 진행에 따라 베이징의 이 중축선은 명, 청시대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대도 시절 도성 시절부터 관통하는 선과 그 시작과 끝점만 다를뿐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계의 어느 오래된 도시를 가서 걷더라도 느낄 수 없는 베이징만의 장엄한 질서의식은 바로 이 중축선 때문에 생긴다.

 

중축선(中軸線)이란 사각형의 성곽과 이 성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추상적 라인이다. 중국의 中자를 구현하는 선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보면 이 선을 따라 나열된 사각형 건축물로 인해 첩첩 기복을 느껴 천자의 위엄에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서양의 사절들이 처음에는 중국 황제에게 절하는 예식을 거부하다가도 자금성을 걸어 들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몸이 움츠러들어 결국에는 스스로 절하게 된다는 전설이 생겨났나보다. 중국에서 집과 도시는 사각형 위주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 관념 때문이리라. <여씨 춘추>나 <주례>의 <고공기>에는 이런 유교에 기반한 도읍건설의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도읍 건설의 이상이 모든 왕조의 도성에 다 관철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자연적 조건에 맞춰 배치된다. 베이징의 경우, 원나라의 흘필렬이 대도(베이징의 원 시절 이름)를 계획할 때부터 이 도시는 중축선을 갖게 되며 이후 원나라에서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는 이 중축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현재도 이 중축선은 급격한 도시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2.8 km에 걸쳐 잘 보존되어 있다.

 

청 초에 세워진 천안문은 성루의 전우가 너비 아홉 칸, 깊이 다섯 칸으로 도시 제왕의 '구오지존'을 상징한다.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친히 출정을 나갈 때는 천안문엔서 조서를 반포하고 깃발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승리를 기원했고, 개선하고 돌아올 때는 천안문 중문으로 입성함으로써 사직의 안정과 공고함을 표현했다. (중략)

1900년 8국 연합군은 천안문에서 열병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들의 성취감과 망해가는 왕조에 대한 멸시를 표현했다. 30년 후 또다른 열병식의 주인은 이미 대총통의 지위를 훔친 원세계였다. (중략)

천안문은 봉건 제왕들이 권력을 전시하던 무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애국민주주의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했다. 천안문은 5,4운동, 12.9 운동 및 신중국 개국대전의 증인이었다. (중략)

장정은 천안문의 제1차 설계에 참여했다. (중략) 그는 성문 위쪽에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를 걸 것을 제안했다. 중국의 전통적 대련을 변형하여 횡폭 방식으로 좌우로 배열하고 성루에 진홍색 궁등을 걸어 천안문의 혁명적 주제와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자는 것이었다. (중략)

개국 첫해에 이루어진 천안문의 장식은 비록 근본적인 개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미지 변신에는 성공했다. 제왕 통치의 상징에서 인민 민주주의 상징으로 변화한 것이다.

- 본문 117쪽 - 121쪽에서 발췌인용

 

이 책은 이 800년 중축선의 도시, 베이징의 건설 당시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민국 시절이 된 이후 새 지배권력에 따라 베이징이 보수되고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이념을 덧씌워 만들어 가는 과정을 쉽게 들려 준다. 좀 투박하지만 흑백 옛사진과 더불어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베이징 자금성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베이징을 자유 여행으로 많이 가 보았거나 건축, 도시설계에 관심있으신 분이 읽으신다면 내가 보고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건질 수 있는 책임이 확실하다.

 

좀 책이 엉성해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북경 방송국에서 북경 800년 도읍사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생긴 원고로 낸 책이어서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자국 방송용 답게 과한 찬사가 많고 천안문 광장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1989년 민주항쟁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빠뜨리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므로 이 부분은 그냥 귀엽게 봐 주며 읽으면 된다.

 

참,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세워진 경기장이 이 책에서 말하는 중축선의 정 북방이라는 것. 풍수적으로 이는 중국 중심의 강화를 의미한다. 물론, 그건 걔들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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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상점
리궈룽 지음, 이화승 옮김 / 소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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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제 1장에 광주13행을 배경으로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래서 앞의 책을 다 읽자마자 냅다 이어서 이 책을 읽었다.

 

17세기 후반,  청제국의 강희제는 명이후 300년간 실시해온 해금정책을  페지하고 동남연해에 강해관, 절해관, 민해관, 월해관 등 4개의 세관을 설치, 외국 상선의 입항와 무역을 허락한다. 1757년 건륭제는 '일구통상' 정책을 발표하여 항구를 한 곳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3곳의 해관을 닫아버린다. 즉 광동의 월해관만 남긴 것이다. 이후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의 요구에 따라 공행제도를 폐지하기까지 광동에서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독점적 상인(공행)들을 광주 13행이라 부른다. 이 책은 이들 광주 13행의 무역과 번성, 쇠퇴과정을 살펴주고 대표적 상인들을 소개해 주며, 서양과 중국 사이에 이루어진 문화 교류 등을 다루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중국사나 세계사 통사류의 아편전쟁 배경 설명시에 잠깐 등장하는 공행에 대해 나는 그 역할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 외였다. 이들은 막대한 활약을 하고 부를 축적하면서도 청 정부와 관리들에게 착취당하고 서구 상인들에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재고를 떠앉기도 하며 자신들의 업무 미숙보다 지나친 세금 때문에 파산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아편 전쟁 시에는 정부를 대신해 교섭에 나섰지만 배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그 배상금의 일부분까지 13행에서 상인들이 걷어 내주어야 했다. 영국 상인들은 공행의 폐지를 내걸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막상 아편 전쟁 후 공행이 폐지되고 나서13행을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에 나섰다가 오히려 고생했다는 것,,, 등등 간략히 알았던 건조한 큰 얼개 사이사이 미처 몰랐던 세세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CCTV 다큐제작진이 쓴 책답게 약간 일방적인 중국문화 찬미 조, 은근 봉건 군주와 시스템의 무지 고발 조로 흘러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이 부분 맨 마지막 문단에 썼음), 정식 역사서에서 대강 이야기하거나 빠뜨리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읽기 즐겁다. 특히 풍부한 도판이 실려 있어 더욱 흥미롭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수출용 그림들에 대한 부분은 서양 유화가 동양에 전래되는 과정에 관심있는 분께도 아주 좋은 책일 것 같다.

 

읽어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책 속 광주 거리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가 본 적도 없는 전성기 베네치아의 대운하변이라든가 에도막부 시절 나가사키 데지마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 시절 한문 시간에 '은행'의 '行'자가 다닐 행이 아니라 가게 행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참나, 먼 옛날 다른 나라 역사를 읽었는데 왜 이리 내 추억이 줄줄이 떠오르는지. 너무 몰입해서 읽었나보다.

 

참, 그런데 대중 역사서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중 역사서는 저자의 역량 부족으로 자료를 충분히 찾아보지 못해서 한 쪽으로 치우처 서술할 수밖에 없었거나, 아니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일부러 한 쪽 자료만 인용해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독자는 전문 학자의 전문 역사서를 읽을 때와 다른 자세를 갖고 이런 류의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역사서라고 책 내용이 다 객관적 사실이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늘 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저자가 어떤 입장에서 왜 이렇게 서술했는지를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역체제의 타파를 내건 영국의 상업,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과 과도한 세금과 뇌물상납, 관리의 수탈이란 두 마리 고래 등 사이에 끼어서 광동 18행의 상인들이 그 선구적 역할과 진취적 기상에도 불구하고 늘 피해를 보다가 아편전쟁 이후 안타깝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저자인 중국 CC TV 다큐 제작진들은 이들 18행 공행들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겠다. 이 책에는 동인도회사에서 계약가격의 일부 대금을 미리 주고 그 대가로 공행들에게 모직물을 떠 넘겨서 이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이후 이들 공행들이 동인도 회사에 넘기는 중국차를 떼 오는 다장(茶莊)들에게 차값 대신에 이 모직물을 지불해서 자신들의 손실을 만회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들 18행들 역시 일정 부분 현재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부리는 횡포를 부렸으며, 이들이 청조의 부패한 시스템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뇌물 상납등을 통해 그 이상의 이권을 보장받아 호의호식했다는 부분 역시 이 책은 서술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과연 몰라서 그랬을까? 이런 점을 알고 읽으면, 이 책은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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