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언니, 그 기사는 연재 칼럼이 아니라 납량특집으로 청탁받아 쓴 글이에요.
중앙일보사의 어린이청소년지 <소년중앙 위클리>7월 6일자 지면에 실립니다.
아래 링크로 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의 : 그림이 좀 무섭습니다. 그림은 제가 주문한 것이 아닙니다. ^^;; )
그런데 제가 송고한 글에서 한 문단이 잘렸어요. 원문 아래에 파란 색으로 표시해서 부가합니다.
<왜 어린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좋아할까?>
여름이다.
열대야를 시원하게 보내려면
무서운 이야기가 최고다.
귀신과
유령,
요괴와 미라가 나오는
만화나 영화,
이야기들은 빙수처럼
짜릿하고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왜 어린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밤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갈 정도로 무서워하면서도 아침이 되면 무서운 이야기를 또 찾아보는 이유가 뭘까?
유럽에는 유령 전설이 있는 오래된 성이
많다.
<해리
포터>를 보면 각 기숙사마다 유령이 하나씩 있을
정도다.
래번클로 기숙사의 유령인
‘회색 숙녀(Grey
Lady : 회색으로
grey와 gray
둘 다
씀)’는 영국 런던탑의 유령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가
모델이다.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한 후 에드워드의 5촌 조카인 제인 그레이는 주위 세력에 떠받들여져
여왕이 된다.
에드워드의 친누나인 메리
여왕이 즉위하기까지 단 9일동안의 여왕이었다.
다음해
2월 12일,
제인 그레이는 갇혀있던
런던탑에서 처형당했다.
지금도 매년 처형당한
날이면 하얀 옷을 입은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유령이 런던탑에 나타난다고 한다.
정복왕 윌리엄이
1078년에 세운 성채인 런던탑은
왕족,
귀족의 감옥과 처형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종종
유명인의 유령을 목격한다.
삼촌인 리처드
3세에게 왕위를 빼앗긴 에드워드
5세와 동생 요크 공작의 유령도 런던탑에 자주
나타난다.
런던탑에 갇혔던 형제는
1483년 경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친척 어른들의 정치 욕심에
희생당한 이들은 사망 당시 레이디 제인 그레이는 17세,
에드워드
5세는 겨우 12세였다.
이들 유령 전설의 바탕에는
피비린내나는 역사에 희생된 약자에 대한 동정,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민중들의 죄책감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마귀할멈은 ‘오니바바’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다양한 오니바바
이야기가 있는데 후쿠시마현에 전해지는 ‘아다치가하라의 오니바바’가 가장 유명하다.
오니바바는 지나다니는
나그네를 잡아먹는 요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이야기에 겨우 다른 지역간의 이동을 금하고 태어난 곳의 영주들에게 충성하라는 일본 중세 지배자들의 교훈이 있나 싶어
시시해진다.
그런데 오니바바의 내력을
알고 보면 이면적 주제가 보인다.
오니바바는 원래 교토 귀족
집안에서 유모로 일했다.
원래 이름은
이와테였다.
모시던 아가씨가 병에 걸려
태아의 생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처방을 받자 이와테는 임산부를 찾아 나섰다.
아다치가하라에 이르러 집을
짓고 길 가는 임산부를 기다렸다.
15년이 지나 드디어
만삭의 임산부가 이와테의 집에 머물렀다.
이와테는 임산부를 죽이고
태아의 생간을 꺼냈다.
그런데 눈에 익은 부적이
임산부의 품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교토를 떠날
때 딸에게 준 부적이었다.
충격을 받은 이와테는
즉지도 않고 살아있는 상태로 귀신이 되었다.
결국 오니바바 이야기는
지배자들에게 충성해봤자 아무 의미없고 자신만 손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일본에는 이렇듯 겉보기에는
그저 무섭지만 알고보면 엄격한 신분질서 아래 오랫동안 억눌렸던 일본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요괴 이야기가 많다.
더 궁금하면 우물에서 접시
세는 귀신 이야기를 찾아 보시라.
이번에는 중국으로 가 볼까.
중국에는 요괴가 미녀로
변해 순진한 청년을 유혹하는 이야기가 많다.
대개 남자가 기빨려 죽기
전에 도사가 구해준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천녀유혼>,
<청사>
등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청사>의 원작은 항저우 지방에 전해지는
<백사전>이다.
천년 묵은 흰뱀 백소정은
선비 허선과 사랑에 빠진다.
금산사의 법해법사는
백소정의 정체를 알고 허선을 요괴로부터 구하려한다.
백소정은 목숨을 걸고
법사와 싸워 사랑을 지킨다.
결국 허선은 천년 묵은
백사라는 것을 알지만 백소정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가만 보면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연인들이 사랑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항하며 사랑을 지키는 이야기다.
옛날에는 자신과 다른
계급이나 집단에 속한 상대와의 사랑이 금지되었다.
기생의 딸 춘향이의
사랑도,
원수 집안의 딸 줄리엣의
사랑도 금지되지 않았는가.
사회가,
기성세대가 반대하는 사랑에
빠진 자에게는 상대가 사람이든 뱀이든 요괴든 별 차이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요괴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법사와 대결하는 이야기는 약자의 사랑할 권리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예전 음료수 광고처럼
“으아!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귀신으로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이
유명하다.
우리나라 처녀귀신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함이 풀리면
인사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대표적인 처녀귀신
이야기로는 <장화홍련전>이 있다.
평안도
철산의 배좌수는 장화홍련
자매를 두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허씨에게 새 장가를 든다.
계모 허씨는 장화에게
누명을 씌워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든다.
이 사실을 안 홍련은 그
연못에 찾아가 자살한다.
귀신이 된 자매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철산부사를 찾아가지만 다들 놀라 죽는다.
그러던
중,
정동우라는 사람이
철산부사로 자원해 와서 귀신 자매의 하소연을 듣고 자매의 한을 풀어준다.
장화홍련 자매는 돌봐줄
친엄마가 없는 가정 내의 약자였다.
친아버지 배좌수는 자매를
보호하지도,
계모 허씨의 악행을
말리지도 않았다.
결국 처녀귀신 이야기는
가정 내의 약자인 소녀들이 죽은 후 귀신이 되어 자신이 당한 억압을 고발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힘이
없어 당하더라도,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복수할테니 당장 악행을 중지하라는 약자의 저항,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러니 혹시 귀신을
만나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귀 기울여 사연을 들어 볼 일이다.
약자의 저항과 경고가 담긴 무서운 이야기라고 하면
이집트의 미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미라는 대개 서구 제국주의 침략기인 19세기~20세기 초반에 이집트에서 서구의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미라가 된 죽은이의
안식을 방해하는 도굴꾼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한다.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유래한 ‘파라오의 저주’가 가장 유명하다.
실제로 당시 발굴 관련자
중 22명이 사망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발굴
당시보다 한참 늦게,
그 시절 평균 사망
연령보다 고령으로 사망했기에 이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파라오의 저주’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파라오의 저주’‘미라의 저주’를 즐겨 말한다.
이는 사실 관계를 떠나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이야기는 약탈을 일삼는
제국주의 침략자에게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서구 제국주의 국가에서
파견한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은 군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각국의 유물을 약탈해 본국으로 옮겼다.
이때 미라의 저주나
다이아몬드의 저주 등,
유물이나 보물에 얽힌
괴담이 그들의 박물관으로 함께 옮겨져 근대의 새로운 전설이 되었다.
‘미라의
저주’를 이야기할 때마다 과거 도굴꾼이나 침략자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과거 범죄를 떠올리며 뒤늦게나마 죄책감을 갖고 반성하게 되었다.
반대로,
수탈당한 쪽의 입장에서는
괴담의 형식으로나마 침략자에게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미라의 저주’역시 겉보기에는 그저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약자의 저항과
경고를 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도
‘미라의 저주’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이다.
일제가 신작로를 닦는데 길
한 복판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그 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신령스럽게 생각하고
제사를 올리는 나무였다.
일꾼들은 나무를 베면
천벌을 받는다고 하며 아무도 나무에 도끼질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미신이라며
일본인들끼리 나무를 베어냈는데,
모두 줄줄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각 지방마다 마을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전해진다.
그런데 이런 신성한 나무의
저주 이야기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반대편인 유럽에도 많이 있다.
고대 로마제국이 갈리아
지역을 점령할 때의 일이다.
로마인들은 원주민인
켈트족이 믿는 드루이드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를 베어낸다.
나무에 도끼질을 한
로마인들 역시 급사한다.
이런 이야기는 서양
선교사들과 원주민들의 우상숭배 관련해서 세계 각국에 많이 있다.
역시 겉보기로는 종교 갈등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약소 민족이 저항하는 주제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많이 있는 유령과 귀신
이야기,
괴담은 단순히 무섭지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서운 이야기는 이면적으로는 강자들에게 희생당하거나 저항하는 약자들의 입장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약자들이 죽어서 유령이
되어 출몰하거나 귀신이 되어 복수하는 이야기는 이야기를 듣는 현실의 약자들에게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그래서 기성 세대에
반발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여러분,
바로 소년중앙 독자
연령대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