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문학 - 공부하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
김경집 지음 / 꿈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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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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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마음에 괴롭게 담아둔 풍경이 있었다. 서너 명의 엄마들이 유모차 끌고 종종 이동중이던 차에 맞은편에서 유모차를 끌고 오는 젊은 엄마와 마주쳤다. 사교언어의 폭풍이 지나고 "어디 가?"하는 의례적 질문을 받자, 유모차 끌던 엄마가 급 제안을 하더라. "저 아래 야채 가게 가는데......같이 안 갈래?"

*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둔기로 뒷통수를 맞은 듯 통증이 왔다. 오래가는 통증이다. 지금도 그 광경이 생각나니까.  다들 시간을 자본화(capitalize your time!)하라는 압박을 받으며 사는데, 일견 소위 '유모차 부대'는 노동의무에서 면제된 듯 하다. '야채 가게 같이 가줄래?' 의 암묵의 메세지가 무례로 통하지 않을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이들을 '유모차 부대'라고 부른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사회의 촘촘한 격자 그물 아래로 숨어 버린 인재들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처럼 대학 진학률 높은 사회에서 그 많던 고학력 여성들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그저 '아줌마 브런치 부대'니 '유모차 부대'라는 동질적인 집단 취급 받으며 사회적 삶의 수면 아래로 다 가라앉아버린 것일까? 통증이 다시 몰려 온다. 안타깝고 억울하고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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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대학 강단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다가 마음껏 읽고 쓰기 위해 개인 연구소에서 활동중인 김경집은 그런 '엄마'들에 주목했다. '주눅들고 움츠러 있지 말라고, 엄마들이 연대하면 그 파급력은 기막힐 거라고, 세상을 바꾸는 파도는 거대 담론이나 양복 부대의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마들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그가 엄마들을 주 대상으로 펴낸 <엄마 인문학>을 읽었다. 엄밀히 이 책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좌(아마도 백화점 인문학 강좌?)를 활자한 것이다. 그래서 딱딱한 이론서라기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바깥 세상을 바라봐야 (p.214)"한다는 등,  입말의 정겨움이 살아 있는 강연집같다. 출판사 측에서 함께 보내준 미술관 전시 초대권과 볼펜 한 자루 역시 정감미 묻어난다. 이렇게 믿어주고 도닥여주는데 정말 불끈 주먹쥐고 일어나야할 것 같은 사명감마저 들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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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대한민국이 1997년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고, 2015년 현재 임계점을 한참 넘은 우리 사회, 특히 교육은 "망가질 대로 망가(p.6)"져 있다고 본다. "어느 시대던 임계점에 가면 리카도와 같은 인물이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을 찾아내서 격려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 (p.224)"인데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하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부담으로 터지게 (p. 197)" 된다는 것이 저자의 위기의식이다. 나아가 그는 임계점을 넘은 지금이야말로 혁명의 최적기인데, 바로 그변화가 엄마들에서 시작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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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컷들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는 다른 엄마들의 조용한 혁명을 요청하며 그는 꽤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요약을 하건데, 그 동안 "엄마는 '읽히는' 존재를 넘어서 '읽는' 존재가 되어 (p. 292)"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김경집의 구체적 조언을 조금 더 소개해보자. 엄마들은 "골다공증만 걱정하지 말고, 내 삶의 뻥뻥 뚤린 구멍들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p. 271)" 생각하고, "'과학동아' 같은 아이들 잡지만 정기구독하지 말고 엄마들부터 문학잡지 정기구독해서 읽고 토론하라고 충고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집단을 동질화하여 살짝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인문학자가 이토록 '대한민국 엄마들'의 잠재적 혁명력을 인정해주고 각성시키고 구체적 혁명법까지 인도하는가 싶어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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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때문에 꼭 엄마만 독자여야 한다는 강박을 던진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엄마 인문학>을 인문학 입문서로 음미할 수 있으리라. 저자는 인문학이 "단순히 문학, 역사, 철학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학문 (p. 28)"이자, "인간의 문제를 되집어 보고 성찰하는 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최고의 학문 (p.37)"이라며 그 가치를 강조한다.  실제 오프라인에서 이뤄진 6회 강좌 주제에 따라 "역사, 철학, 예술, 정치, 경제, 문학"의 렌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세상 읽기의 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엄마 인문학>. '내 아이, 내 자식'을 위해서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이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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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 진격의 서막 - 800만 권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에레즈 에이든 외 지음, 김재중 옮김 / 사계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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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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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2002)에서 '반역자'로 사냥당하던 사람들, 정부에서 일괄 지급하는 약물 '프로지움'을 거부하고 아날로그의 삶을 고수하던 그들만큼이나 나는 디지털 까막눈이다. 그래도

 

"빅데이터" 가 대세라는데 조바심은 나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려는 보기는 했다. 막상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빅 데이터가 데이터량 (Volume), 다양성 (Variety), 속도 (Velocity)의 3V로 요약되는 특성을 가졌다는 정도. 왠지 나의 삶과 세계관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한 암호문 같아 굳이 정신을 집중해서 읽지도 않았는데,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은 달랐다. 메모해가며 읽고, 자료 찾아가며 읽었는데도 또다시 읽어보려 서가 가장 전면에 꽂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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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빅데이터는 부록 형식의 특별좌담에서 송길영(다음소프트) 부사장이 언급했듯 "다루기에 너무 큰 (too big to handle)" 데이터이자, 앞으로 계속 커져나갈 것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에 자료로서는 고약한 녀석이다. 연구자 역시 '신호'와 '소음'을 구별해서 활용가능한 데이터로 재가공할만한 안목도 쉽게 갖추기 어려울테고. 특히 질적 연구방법을 강조하는 전통에 있는 학문은 인간세계를 수량화시켜주는 빅데이터와의 조우를 미뤄왔다. 하지만, <빅데이터 인문학>의 공저자인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스티스 미셸이 지적하듯, "빅데이터는 인문학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변형시키고, 상업 세계와 상아탑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p.17)"해줄 축복일 수 있다.  지적 열정이 넘치는 하버드대학의 두 과학자는 빅데이터는 '재앙보다는 축복'이라는, 아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신세계를 창조해낼 것이라고 본다.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스티스 미셸은 역사적 도구를 관찰해주는 도구로서 "구글 엔그램 뷰어(Ngram viewer) "를 개발했고, 컬처로믹스(Culturomics)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창조해냈다. 이는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의 문화 개념과, 빅데이터를 지칭하는접미사로서의 '-오믹스- oimcs'를 겹합해낸 신조어이이다. 실제 그들이 제시한  엔그램 뷰어는 '듣도 보도 못한' 신개념 관찰도구이다.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입력하고(웹사이트 books.google.com/ngrams), 엔터만 치면 구글이 디지털화해온 800만 권의 책을 검색하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암(cancer)과 열(fever)라는 단어를 앤그램 뷰어를 통해 검새해보면 디지털화된 대량의 텍스트를 정량적으로 분석해낸 매끄러운 곡선이 도표화되어 나온다. 아래의 표를 보면 19세기 초반만 하여도 cancer라는 단어는 거의 텍스트에 등장하지 않다가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급증하며 사용된 반면 fever는 반대의 사용빈도경향성을 보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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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만 권이라 하면, 구글이 지난 2004년부터 디지털화해온 책 중 일부이자, 2010년 기준 추정치로서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1억 3000만여권의 책 중에는 더욱 작은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구글은 2020년까지 남은 1억여 권의 책을 모두 디지털화하리라 전망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문화의 렌즈로서의 '엔그램 뷰어'의 활약상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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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작권법이라든지 물리적인 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 디지털 아카이브에 포괄시킬 수 없는 물건들(3D 프린터가 대안이될 수 있을까?), 미출간 원고, 검색어로서의 성명과 오명 등의 장애물에 더해 여러 인식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그중에서 일반 대중도 관심 가질만한 주제로는 업압과 검열이 빅데이터에 미친 영향이다. 저자들은 대표적인 억압의 사례로 나치의 독일문화통제 정책을 들고 있다. 실제 나치 괴헬스의 제국문화부에게 '퇴폐 미술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마르크 샤갈의 이름은 1936년과 1943년 독일어로 쓰인 텍스트에서 증발해버렸다. 하지만 헬렌 켈러가 독일 학생조직에게 쓴 편지에서 "책들을 불태울 수 있지만, 그 책들에 담기 사살은 오랜 시간 백만 가지 통로로 스며들었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리라(p.154)"고 말했듯이 샤갈을 비롯,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혔던 미술가들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게다가 엔그램 뷰어를 활용하면 검열과 억압의 역사를 자동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현대사에서 천안문 광장 학살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억압당했는지는 엔그렘 엔터 한 번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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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은 단지 '문화 연구의 새로운 렌즈'로서의 엔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21세기형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학자뿐 아니라, 통섭의 학문의 재미를 알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 모두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부록 형태로 실린 특별좌담에서 청전환(성균관대) 교수가 부러움을 솔직히 표현했듯이 에레즈 에이든과 장 바티스트 미셸은 학제간 상호작용에 야박한 한국 사회에서의 건조한 학문적 분위기와는 달리, 놀듯이 "좋아서, 좋아 미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재미를 보여준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을 가치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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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문법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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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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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한 신문방송학과 교수(전북대)이면서도 역사, 사회, 문화, 정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활약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강준만 교수. 고백하건대 그의 이름에는 익숙해졌지만 정작 그가 쓴 <싸가지 없는 진보> 등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다작 저술가인 그가 2015년에는 <생각의 문법>을 내놓았다기에 호기심이 동하여 냉큼 읽어보았다. '머리말'의 타이틀부터 생각의 촉을 따끔따끔 자극한다. "왜 우리는 생각의 문법에 무심할까?"

강준만은 영어문법에 강박을 가진 한국인이 정작 한국어 문법은커녕, 문법의 존재함 자체에 무신경하다는 지적을 한다. 익숙해져서 되짚어보거나 자기반성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법'이란 통상의 'grammar'가 아니라 '생각의 고정관념,' 즉 검증하지 않은 확신과 편견을 일컫는다. 그는 한국 사회의 경우 성찰하지 않은 확신과 신념이 독장미처럼 사회에 퍼져, '공공의 적' 수준이 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나아가 학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각의 문법' 50가지를 해부해본다. 확신과 신념의 생성된 근원과 과정을 탐색한 책이 바로 <생각의 문법>이다.


 

"착각과 모방," "동조와 편승," "예측과 후회," "집중과 몰입," "인정과 행복," "가면과 정체성," "자기계발과 조직," "경쟁과 혁신," "네트워크와 신호," "미디어와 사회"의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 <생각의 문법>은 다시 50개의 하위 질문으로  세분화된다.  인물과 사상사 편집실의 혁혁한 공인지, 베스트셀러 저술가로서의 강준만 교수의 감각 덕인지 50개의 질문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흥미롭다.  예를 들어,  "왜 정치인들은 자주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는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를 소개하고, 한국 사회 연례행사인 민족대이동’은 로렌츠의 각인(imprinting) 효과로 해석한다. 그 외에도 자살한 여배우 이은주를 언급해가며 '베르테르 효과'를 이야기하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SNS 자기과시중독증은 인정투쟁 이론을 들어 설명한다. 이쯤에서 <생각의 문법>이 한국 사회에서 '최대공약수'로 통용되는 문법을 해독하기 위해, 진화심리학, 생물학, 사회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의 렌즈를 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각주로만 이십여 쪽(pp. 349-73) 을 할애했을만큼 많은 이론과 저서를 참조했다.  주로 서구에서 활약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한국 사회의 현상에 적용한다. 예를 들자면 아인슈타인의 명언 인용을 시작으로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가 재정의했다는 '몰입 (flow)'의 개념을 설명한후, 한국 사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몰입이 부재한다며 아쉬워하는 식이다.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몰입은...(중략)...'영어몰입교육'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용도로만 사용된 (p.120)" 듯 하단다.

<생각의 문법>을 읽어나가다보면 '지식의 백과사전' 이 현란한 전문용어로 채워져 두꺼워짐을 느끼는 동시에 살짝 방향감각에 혼란도 온다. 50개의 질문과 답, 그 자체를 한 촉으로 꿰뚫는 문법의 규범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앎이 미천한 독자로서 강준만 교수가 꼽은 '최대 공약수의 공통해독 코드'를 짚어내지 못하고 정보의 망망대해를 헤엄치는데서 온 어지러움증인지.  50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매 페이지마다 동동 떠오르는 전문용어나 이론들을 걷어내고 나면,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된 생각의 문법의 원맥이 무엇이라는 것인지를 알고 싶다(아니면, 그 코드를 알 수 있을만큼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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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가의 개 지성과 감성이 자라는 어린이 세계문학고전 20
아서 코난 도일 지음, 토니 에반스 엮음, 김선희 옮김, 펠릭스 베넷 그림 / 가나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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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가의

 

 

 

 

 

 

덩치 꽤나 좋은 10살짜리 사내 녀석이 자기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들고 쪼르르 나왔습니다.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요."하면서요. 1시간쯤 전만 해도 태평하게  잠옷 바람에 뒹굴뒹굴하며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던 녀석이 말입니다. "미친 개인지, 괴물인지" 너무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답니다. 하긴 제가 어렸을 때 한동안 추리 소설에 푹 빠져서 '아가사 크리스티 걸작선'을 한 권 한 권 사 모았는데, 책장에 조르르 꽂혀 있는 그 빨간색 표지조차 무서워서 잠을 못 이뤘던 기억이 나더군요. 기억의 중첩.....

어린 시절의 저만큼이나 아이도 추리문학의 세계에 폭 빠져 들었나봅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데 말이지요. 아이가 읽은 <바스커빌가의 개>는 그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과감히 에피소드의 부피를 줄이고 문장을 가다듬어 어린이용으로 펴낸 책입니다. 흥미로운 일러스트레이션, 본문 어휘풀이, 추리소설가 도진기의 추천사 등까지 곁들여져 초등 3학년 이상이면 혼자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난이도입니다.

 

 

<바스커빌가의 개>는 그 유명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1902년에 발표된 이 이야기는 영국의 후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서 다트무어를 배경으로 전개되기에 2015년 한국에 사는 어린이 독자에게는 생소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나 출판사는 이 걸작을 60여 쪽 분량으로 압축하되 원작의 감동과 가치를 살려냈고, 작품의 문학사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한 그림과 사진자료까지 부록으로 실어주었기에 초등학생에게 친절한 고전 입문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코넌 도일이 상상해낸 가상의 인물이지만 왠만한 실존 위인보다도 명성이 높은 셜록 홈즈는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바스커빌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미스터리한 저주를 악용한 사건을 추리로 해결해줍니다. 괴물체, 전설, 시체와 황무지 등의 요소가 미스테리함을 배가시키며 독자의 손에 땀이 나게 합니다.  

 

 

 

 

사실 이 소설의 최초 아이디어는 토넌 도일이 아닌 당시 종군기자였던 플레처 로빈슨에게서 나왔습니다.  실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다트무어 출신의 기자에게서 고향 지역에 전승되는 기괴한 전설을 전해들은 코난 도일이 재짝 작품화한 것이지요. 요즘처럼 스마트 기기니 CCTV에 일상적으로 사생활을 노출시키고 CSI 등 과학수사대가 활약하는 시대에 사는 요즘 꼬마들에게는 의아하겠지만 <바스커빌가의 개>가 쓰여졌던 20세기 초만 하여도 살인사건은 셜록 홈즈같이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탐정이 아니라면 해결하기 어려웠겠지요?

 


 

 

 

 

 

 

 

 

 

 

 

 

 

 

 

 

 

 

<바스커빌가의 개>는 몇 줄로 압축하기 어려울만큼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복잡하고, 전설의 세계와 현실의 구체적 범죄가 중첩되어 미스테리함을 증폭시킵니다. 바스커빌가에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전설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시골 마을 바스커빌에서는 바스커빌가의 후손이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사건을 의뢰받은 명탐정 홈즈는 '전설 속의 거대한 개'가 아닌 추악한 인간의 탐욕이 실재함을 추리를 통해 밝혀냅니다. 독자는 과연 저주가 실재하는지, 아니면 검은 마음의 악인이 저주를 악이용헤 사악한 범죄를 구상했는지에 대한 답을 <바스커빌가의 개>의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에 찾게될 것입니다. 그 만큼 이 이야기는 퍼즐의 조각들을 손에 쥐고 있어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완성된 퍼즐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스릴 넘치는 추리물입니다. 아직 추리물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해본 초등학생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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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탄 엄마 느림보 그림책 50
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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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연 글 * 오승민 그림
호랑이를 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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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탄 엄마>? 그 무섭디 무서운 '천하의 호랑이'에 올라탔단 말인가요? 그림책 표지 속 엄마의 치켜뜬 눈과 기묘하게 굴곡진 몸짓을 보니 호랑이를 잡고도 남게 무서워 보입니다.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호랑이를 탄 엄마>는 참으로 적나라한 그림책입니다. 판타지를 표방했지만 지독히도 현실적인 묘사에 공감하다 못해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대통령 선거 때 '아이 키우기 좋은 대한민국' 공약폭격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초저출산 국가로서의 위기감을 안고 있습니다. 애 키우기 녹록하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대학진학률이 높고 고학력 엄마들이 많은 나라에서, 엄마이자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줄타기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요구합니다. 현실이 팍팍하거든요. '어린이집은 쉬지 않습니다'라는 공익광고 문구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말과 봄, 여름, 겨울 초등학생 방학 시즌이면 어린이집에서 공문을 보내옵니다. "대청소 기간이오니, 이 기간에 '부득이'하게 보육을 원하시는 부모님은 미리 원에 연락을 바랍니다." 내 아이가 받을 불이익이 상상되는 데 어찌 '부득이'하게 시설에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요? 꿀꺽 울분의 침을 삼키고 여기 저기 육아품앗이 손을 벌리러 다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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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탄 엄마>에는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 전투를 벌이는 엄마가 등장합니다. 세련된 단발에 진주 목걸이와 빨간 하이힐, 몸에 피트되는 정장을 입었지만 왠지 우아하기보다는 초조해보입니다. 2004년 국제 노마콩쿠르 수상작가인 오승민은 파스텔로서 엄마의 퇴근길을 강렬한 환타지로 그려내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흐르는 늦은 저녁, 어서 퇴근해 집에 가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빌딩 숲의 짙은 색감이 삼켜버릴것만 같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엄마는 호랑이와 맞닥뜨렸습니다. 떡 달라는 호랑이에게 서류뭉치를 냅다 던져주는 엄마, 호랑이는 서류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줄행랑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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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종종걸음치는 엄마에게 다시 호랑이가 그르렁거리며 달려듭니다. "할멈"이라 부르며, 팥죽 달라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버럭'거립니다. "아줌마라고 불러도 돌아볼까 말까 한데, 날더러 할머니라고?"하는 그 대사가 참 서글프네요. 엄마노릇은 여성으로서의 매력, 섹슈얼리티를 퇴색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그런 대립의 사고가 참으로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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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진주 목걸이 지뢰를 선물합니다. 발라당 넘어지는 호랑이를 뒤로하고 달아나다가 이번에는 엄마가 맨홀에 쑥 빠집니다. 빨간 하이힐 한 짝도 떨어졌고요.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바빠서 점심도 못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엄마.  고단한 직장에서의 하루가 엄마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로 상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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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했던 엄마의 단발머리는 헝클어지고, 신발은 없어지고, 치맛단은 너덜너덜하게 뜯기고......과연 엄마는 오늘 밤 안에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어리숙한 호랑이는 엄마를 '곶감'으로 단단히 오해했습니다. "그래, 내가 곶감이다! ......감히 네가 나를 가로막아?"하며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엄마는 온갖 '갑질'에 시달리고 시달려 독기만 남은 가련한 사회인같아요. 여자, 그냥 여자가 아니라 소위 "애 딸린 여자"가 커리어우먼으로 살아 남으려면 평범해서는 안 되고 '독해야'한다는 선입견을 강화해주는 설정이자 현실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네요. 씁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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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온 엄마, 엄마를 맞아 품에 달려든는 오누이는 호랑이 옷과 호랑이 머리띠를 하고 있네요. 종일 회사일과 사회생활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온 엄마에게는 '사랑을 쏟아주어야 할' 자식들마저 부담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피곤한 와중에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네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에는 잃어버렸떤 엄마의 하이힐 한 짝이 묶여 있습니다. "엄마, 얘네들은 엄마가 자서 자기들끼리 책봐."하면서 5세 꼬마가 코멘트를 하네요. 잠들어버린 엄마의 양팔에서 오누이가 깨어 있습니다. 엄마는 내일도 고된 호랑이밭으로 나가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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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연 작가는 <호랑이를 탄 엄마>의 본문에서 직접화법으로 호랑이의 정체를 밝힙니다. 바로 "천방지축 신입사원, 소리만 지르는 사장님, 부장님, 서류 보고 오만상 찌푸리는 팀장"님....그렇게 호랑이에게 시달리는 엄마가, 시나브로 호랑이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가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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