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 고를게 국민서관 그림동화 192
로렌 차일드 지음, 김난령 옮김 / 국민서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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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고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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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롤라 (Charlie and Lola) 남매 사랑하는 독자라면 알지요? 말로 어찌 표현못할 고녀석들의 사랑스러움을. 엉뚱하고 순진한 고녀석들의 매력 때문에 자꾸 또 만나고 싶어진다는. 국적이 다를지언정 지금 이순간 어디엔가 "찰리와 롤라"스러운 남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요. 시리즈의 최신작인 <딱 하나 고를게 (원제: One Thing)> 역시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답니다. 게다가 '숫자 세기, 셈하기' 면에서 교육적 효과 역시 탁월하고요. 너무 재미있고, 찰리 롤라 남매가 사랑스러워서 앉은 자리에서 연거푸 책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면 <딱 하나 고를게>가 "딱 하나"스럽지 않고, 복잡한 셈을 수반하는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딱 하나"를 둘러싸고 나름 진지한 협상도 등장하고요. "3," "2," "0," 그리고 "1"이라는 숫자의 배열에 엄청난 협상이 오간다는 힌트만 드리겠습니다. 예비독자들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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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와 롤라 남매가 엄마를 따라 가게를 갑니다. 이 대사 많이 들어보셨죠? "말 잘 들으면, 하나씩 갖고 싶은 거 사줄게." 찰리와 롤라 남매 합해서가 아니라, 각각 하나씩이라니 흥분될만 하지요? 그런데 우리 꼬마 롤라는 이제 막 숫자 세기를 배워가는 중이라서요. 자기가 입은 원피스의 물방울 무늬의 방울 수를 세다가 가게에 늦을뻔 했고요, 무당 벌레 "스물 칠십"마리에게 필요한 신발과 양말을 궁금해하느라 더욱 늦을뻔 합니다. 게다가 롤라에게는 하나, 둘 다음에 '셋'이 아니라 '다섯, 일곱, 스물'이니, 전봇대 위 새들을 제대로 셀 수가 없겠지요? 세상에서 "1000"이 젤 큰 숫자인줄 아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아무튼 요렇게 숫자 세기 초보인 롤라에게 숫자 박사 똑똑이 찰리 오빠가 있으니 다행입니다. 찰리와 롤라는 엄마를 따라 무사히 가게에 도착해서 "각자 하나씩"인 선물도 고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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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나 고를게>는 이제 막 숫자세기의 세계에 진입한 꼬마의 호기심이 사랑스럽게 그려지는 가운데, 셈하기와 숫자세기를 실제 배울 수 있는 유용한 그림책이랍니다. 다 읽고 나면 자꾸 입에 맴돌거에요. "딱 하나만"이라는 그 귀여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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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당신이 옳다 -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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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나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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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 보이는 필독서 같아서 갖다만 놓고, 두께와 난해도에 압도당해 차마 손을 못대는 책들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자끄 아탈리(Jacques Attali)의 <등대>도 그 중 한 권인데 딱 봐도 프랑스풍 "지성미"가 폴폴 풍기는 작가의 외모 때문에 책을 골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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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너무 두꺼워서" <등대>에 도전하지 않았는데도, 서문의 화두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의 위대함에 대해 말함으로써 환희의 샘이 되기도 하는 (자크 아탈리 2013[2010]:9)" 그 '자기자신 되기(Devenir soi)'는 <언제나 당신이 옳다 (원제:Devenir soi)> 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자기자신 되기"는 "다른 사람의 불확실한 행동을 상관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쪽에 내기"를 거는 (자크 아탈리 2016[2014]: 12) 태도이기도 한데, 이는 악의 세력이 부상하고 이미 끔찍하나 앞으로 더 끔직해질 세계에서 더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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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는 "나는 이제 지쳤다.… (중략) …그들 (권력자들)이 앞세우는 회의적인 태도와 파렴치함, 자기도취, 자기만족, 이기심, 탐욕, 소심함, 오만함을 보는 데에도 질려버렸다 (2016:11)"라며 권력자들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겠고, 차라리 내가 변하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아탈리에 따르면 미래 사회에는 폭력, 무관용, 환경재앙, 식량 부족과 불균형, 빈부격차 특히 양극화, 실업 문제, 범죄율 상승, 인구노령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이 더욱 심각해질터인데 권력자들은 마치 자신을 선출해주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양 포퓰리즘의 공약을 남발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도 세상을 바꿔보려 하는 대신,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여기기에 이런 무능력한 권력층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 "참 희한한 세상"이라고 자크 아탈리는 탄식한다. 그리고 그런 류의 사람들에게 '정치소비자,' 혹은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 resignersreclamants' 라는 굴욕적인 이름을 지어준다. "지레 체념한 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고, 동시에 그들이 속박 받는 것에 대해 대가를 요구 (36)"하는 이들을 말한다. 듣기만 해도 굴욕적이고 두렵다. 내가 그런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가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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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자크 아탈리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전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자신이 될' 힘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항하는 법을 배우고 결정론적 사고에서 벗어난"다면 자기자신이 된 사람들이 대거 배출되고, 또 그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서 세상을 더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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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솔깃해진다. 그렇다면 HOW?가 문제인데……<언제나 당신이 옳다>의 2장, 3장, 4장이 바로 그 "HOW"를 위해 할애된 장이다. '자기 자신 되기,' 즉 인생의 주인인 롤 모델들을 숱하게 예시로 보여준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난 스티븐 킹, 트랜스 젠더 중국 무용수 진싱, 커트 코베인 등의 예술인들은 물론 창업에 뛰어들어 인생의 주인이 된 기업가도 소개한다. 정치 혹은 사회 활동가로서 국가의 결핍분, 무능력함을 메워주는 사람들의 예도 소개한다.
자크 아탈리는 이렇게 '자기 자신 되기'에 성공한 이들의 교육의 혜택을 입었다고 보지 않는다. 도리어 교육은 "아이들에게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도록 가르칠 뿐 (179)"이라며, 그보다는 변화의 '계기'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계기와 계기 사이에는 침묵과 집중, 명상의 단계인 '휴지기'가 필요한데 휴지기는 다시 다음의 다섯 단계로 심화될 수 있다.
1. 인간이 처한 상황과 주변 상황, 다른 사람들 ˖문에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파악한다.
2.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중받도록 한다.
3. 자신의 고독을 인정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4. 자신의 유일성을 성찰하라. 일생 동안 여러 재능을 동시에, 혹은 차례로 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한다.
5. 참자아를 발견한다. 스스로 선택한다.  

 

 좋은 말씀이라는 걸 알겠다. "언제나 당신이 옳다"라는 한국어판 제목도 사실, 용기를 주는 말이다. 휩쓸려가거나, 힘있는 자들에게 의존적이 되기 쉬운 세상에서 '네 안의 힘'을 믿고 '네 재능을 발휘하여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메시지를 주니 참 듣기에 아름다운 말이다. 게다가 실제 그렇게 해서 '자기 삶'을 살고 '타인에게도 그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이들'이 많다니 고무적이고.

그. 러. 나.

아탈리의 "자기 자신 되기"를 읽고도 공허가 풀리지 않는다. 그가 구체의 언어보다는 한차원 걸러진 어휘를 써서 일지도 모르겠고, 그 역시 지식 혹은 지식인이라는 권력을 쥔 소수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교육이야말로 체제순응적, 체제 재생산의 도구적 인간형'을 양산한다고 비판하지만, 그가 이렇게 정교한 언어로 전 세계인들에게 '자기자신되기'를 촉구할 수 있음도, 결국은 그 교육의 기회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잘 활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가지지 못하고, 고통이 앞서서 '성찰'이라는 말이 사치인 이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성을 성찰'하라는 조언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내가 자탈리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는 적어도 무더운 여름날 소똥 냄새 나는 농장에서 땀흘려 일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시원하게 내린 더치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삐딱선을 탐은 내가 그를 질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유일성은 고독이라는 동전의 이면 (196)"
*
"인생의 궁국적인 목표는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 대신 창조자가 되어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열망에 따라 정의한 '나만의 의미 있는 삶', 즉 어느 누구도 똑같은 방법으로 디자인해낼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197)"
*
"자본주의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한다. 즉 인간을 노동하고 소비하는 사물, 이윤의 순수한 원천으로 변화시킨다. 그후 자본주의는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해서 스스로 사라진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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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우체부 아저씨
미셸 쿠에바스 지음, 에린 E. 스테드 그림, 이창식 옮김 / 행복한그림책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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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우체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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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로부터 잠시 쉬고 싶어도 스마트폰 카톡이 껍데기의 말들을 쉬임 없이 쏟아내고, SNS에 삶의 조작된 이미지가 계속 올라가는 요즘 세상. '외로움도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외로운 상황을 주체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즐길 수 있음은, 이미 그 사람이 남다른 차원의 내공을 갖췄다는 뜻일 테니까요. <바다 우체부 아저씨> 역시 외롭게 삽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늘 곁에 함께 하긴 하지만, 언덕 위 조그만 집에는 아저씨 뿐이거든요. 아저씨에게는 이름도 없어요. 편지를 보내줄 친구도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찝찔한 바다냄새가 함께할 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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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고독 속에서 아저씨가 평온하고 늘 부지런 할 수 있음은 아저씨의 일거리 때문일 테지요. 아저씨는 바다에 떠다디는 병을 건져올려 그 안에 들어있는 편지를 주인에게 전하는 일을 해요. 때론 산책하듯 슬슬 걸어가서 편지를 전할 때도 있고, 몇달이 걸려서 가까스로 전하기도 합니다. 편지 전하는 일을 사랑하는 아저씨이기에 아무튼 꼭 편지를 전해줍니다. 그래도 가끔은 쓸쓸해지거나 욕심이 날 때도 있답니다. 아저씨도 편지를 받아보고 싶은 거예요. '그 누구'에게서라도요. 하지만 아저씨의 표현에 따르면 그 일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인어 손톱을 찾아내는 일"보다 더 어렵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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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런, 데. 인어 손톱을 찾아내는 일만큼 어려웠던 그 일이 현실이 되었어요. 아저씨가 파티 초대장을 받은 것이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수신자가 아저씨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저녁 썰물 때 바닷가에서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았을 때 실망하게 놔둘 수 없었어요. '주인을 찾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전해야했어요. 썰물 무렵 아저씨는 조개 껍질 선물을 들고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독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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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에린 E 스테드'의 몽환적이도록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은 <바다 우체부 아저씨>를 더욱 시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자신의 꿈을 겸손하게 추구하는 이에게 결국 꿈이 이뤄지는 행복이 온다는 소박한 메시지를 실어서 말이지요. 참,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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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간 날 그림책은 내 친구 43
윤여림 지음, 임소연 그림 / 논장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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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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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한글을 잘 모르는 꼬마의 일기를, 누가 그 마음을 훔쳐 보고 고스란히 옮겨 적어준 작품 같습니다. <수영장에 간 날>은 윤여림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더듬어 글로 옮기고, 마찬가지로 어린시절 수영장에서 보낸 기억이 떠올라 한 달음에 작업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임소연의 협업으로 태어났습니다. 특별히 클라이맥스도 없고, 환상적인 시공간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통통 튀는 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끌리는 그림책입니다. 편안하게 해줍니다. '아, 나도 그랬는데. 아! 아이들이 그렇겠구나.' 그런 부드러운 기억을 되살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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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연이는 수영장에 왔는데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꼬마 수준의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코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지, 물에 빠지면 어쩌지……. 귀엽게 차려입은 수영복의 발랄한 색감과 달리 연이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오빠들은 '겁쟁이'라고 놀리고, 친구는 물에 들어가자고 조르네요. 에라 모르겠다! 풍덩! 아! 시원해! 아! 신나! 아, 재밌다! 연이는 어느새 겁따위는 저만치 날려버렸습니다. 친구랑 튜브 끌어주며 놀고, 물장구 치다보니 즐거워서 입이 절로 '헤어' 벌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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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무척 자연스럽지만, 기억을 어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닮아 그림으로 옮길 수 있나 싶게 임소연 일러스트레이터의 부드러운 그림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수영장에 간 날>을 더욱 '착한 그림책'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요."라는 연이만큼이나, 이 그림책으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된 독자 역시 "즐거운 시간" 가졌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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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이미지 - 이미지 과잉 시대에 ‘생각하는 이미지’를 말하다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 3
이종건 지음 / 궁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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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이미지 이미지 과잉 시대에 '생각하는 이미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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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모두에 "최," "순," "실"이라는 그 유명한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탈 진실(Post_Truth) 시대에 촛불 집회라는 "완전한 의미의 비폭력 상태를 유지 (8)"한 대한 민국국민을 칭송하는 동시에  가짜 뉴스 (fake news)의 치명적 독성을 환기시킨다. 말보다는 이미지에 의한 선동이 앞서서 진실을 가리는 탈 진실의 세상에서 '가짜뉴스'야 말로 "합리적 사고와 의사소통을 방해 (11)"한다고 이종건 교수는 강력히 경고하는 것이다. 현실을 치환하는 가짜 뉴스, 가짜 가벼운 이미지를 구별해내어 프로파겐다에 휘둘리지 않으려거든 '깊은 이미지'를 사유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쉽지 않다. 물론 "없는 지점 곧 영점 零點에서 플러스를 다루는 것 (33)," 다시 말해 깊이 없는 것을 해명함으로써 출발할 수도 있는 작업이지만, '얕이,' '깊이' 등 언어 그 자체가 사물화 경향을 띠고, 개념 명사는 워낙 느슨하게 의미를 나르므로 '깊이 있음'을 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묻는 일 자체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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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이미지>는 "이종건의 생활 + 세계 짓기 시리즈"의 제 3권이다. 이전에 <시적 공간>, <살아 있는 시간>을 읽을 독자라면 "산다"를 능동사가 되도록, 능동의 힘을 부추기려고 내 놓는다는 이 시리즈 기저의 의도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겠다. 혹은 메를로 퐁티,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니체, 칸트의 인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레벨의 독자라면 <깊은 이미지>가 추구하는 깊은 메세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다. 나의 경우, 두 둘다 해당 사항이 없기에 열심히 메모해가며 <깊은 이미지>를 읽어도 시선이 활자의 얕은 층만 오간듯 하다.  얕은 독해력이 안타깝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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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얕은 독해력에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던 문구가 있었는데, 바로 "어려운 아름다움 (63)"이 그것이다. 프로파겐다의 방편으로 전락하기 쉬운 '쉬운 아름다움(67)'과 달리, '어려운 아름다움'은 깊은 아름다움이기에 다른 차원의 삶의 진리로 나아가라고 우리를 추동시킨다. 이종건 교수는 "지도자의 격에 턱없이 못 미치는 미숙한 언어구사력도 문제였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사라져가는 주름살과 변해가는 얼굴 윤관은 적잖은 충격 (64)"이라며, 가짜 아름다움 즉 쉬운 아름다움에 현혹될뻔한 우리 국민이 그 얕은 프로파겐다에서 빠져나왔음을 축하하는 것도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탄핵 심판 앞에서 촛불과 태극기 양극으로 나뉘었던 대한민국은, 각자 자신의 신념에 부응하는 매체들만 믿고 다른 매체들은 불신하는 불통의 세계를 짓는 중 (130)"이며, 이미지는 "옷 젖는 줄 모르는 가랑비처럼 알게 모르게 스며들(131)'기에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음은 계속 날카롭게, 근원을 묻는 질문을 던지는 삶과 다름 아니다.
*
<깊은 이미지>를 읽으며, 소비주의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의 허상을 진실로 믿고 추구하다보면, 더 큰 힘의 결집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페터 슬로터다이크 (Peter Sloterdijk 1947~ )의 경고가 떠올랐다. <분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를 <깊은 이미지>와 교차해 읽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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