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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 유니스, 사랑을 그리다
박은영 글.그림 / 브레인스토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박은영 작가? 아이 덕분에 일년 365일의 수만큼 많이 보았을 그림책, <기차 ㄱ, ㄴ, ㄷ>의 작가이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영국 브라이튼대학교(University of Brighton)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현재 이화여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기차 ㄱ, ㄴ, ㄷ>의 작가로 더 유명할 것이다. 나 역시 박은영을 이태리 볼로냐 국제도서전 수상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만 호감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어른들을 위한 사랑의 그림책을 내었다. <사랑해>라는 단순하면서 강렬한 제목으로!
살짝 입을가리고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는 동안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1965년생. 우리나이로 올해 49세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른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사랑해>는 '사랑 = 이 세상 전부, 내 존재 이유', '그= 내꺼 (본문에서는 'He's Mine'이라는 문구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기도 한다)'의 등식이 성립하는 사랑지상주의의 10대와 20대의 감성으로 쓰여있다. 나이가 들어도 감성의 순도를 유지할 수 있음은 예술가 특유의 자질일까? 남들은 신파조 닳아빠진 불륜 드라마에 열광하거나 질펀한 세속의 수다에 쩌들 나이에 '떠나간 님을 위해 레몬즙을 듬뿍 짜 넣은 밀크티를 준비하겠다'거나, 그를 위해 선물하려던 화분을 그리운 마음으로 키운다. 아니, 박은영 작가가 직접 그 행위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감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찬가를 대신 불러줄 수 있다. 작가의 순도 높은 감성에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사랑해>의 책장을 넘겼다.
작가는 이 책을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코앞에 와 있던 일 년 전"에 쓰기 시작하여 다시 "낙엽이 떨어질 무렵" 탈고하였다고 밝힌다. 작가는 "적막하 시간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대상"과 진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느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하였어도 여전히 사랑을 기다리는 책 속 '그녀'는 언젠가 읽었던 책 한 구절에서, 영화의 대사에서, 익명의 연인들의 그림자상으로 설정하며......즉, 이 책은 작가의 고백적 에세이가 아니라 픽션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해>를 읽다보면, 적어도 박은영 작가의 세계관에서 '사랑'이 절대적 비중으로 비집고 들어가 앉아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녀는 사랑으로 성숙하고 사랑으로 꿈꾸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때론 격정적이고 은밀하게 그녀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비어진 와인이 우리의 사랑을 관음처럼 지켜보고 (p. 56)" 침대시트는 뒹굴던 그대와 내가 벗어놓은 허물처럼 헝클어져 있다 (p. 59)" 하지만 피묻은 봄꽃같은 "사랑은 칼날 위에서 춤추듯이 위태로웠으며, 이별은 칼처럼 단호했다 (p.33)"
<사랑해>의 여섯 장의 제목은 사랑에서 비롯된 환희와 슬픔, 허탈함과 그리움 그리고 성숙의 정서를 나타낸다. ‘그대가 떠났다’ ‘그대가 그립다’ ‘나는 너를 추억한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꿈꾼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 책의 화자로 등장하는 유니스는 사랑의 영원을 꿈꾸다가 사랑을 떠내보내고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다시 사랑을 기다리며 성숙하는 여성이다. 현재 사랑에 빠져있거나, 혹은 사랑을 갈구하거나 혹은 사랑을 추억하는 이들이라면 쉽게 유니스와 동화될 수 있으리라.
박은영 작가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 포근한 감성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설레임을 준다. '또 어떤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사랑을 표현해줄까?'하는 설레임. 책 후반부에는 부록처럼 본문에 등장했던 그림들을 한 곳에 모아주었다. 이 삽화들을 추려 2014년도 달력을 제작한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여러부 사고 싶어질만큼 아름답다. 발렌타인 데이에도 한 번 녹이면 없어지고 말 초콜릿 말고 영원히 남을 <사랑해> 책을 선물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