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가벼운 마음으로 대림미술관을 찾았다가 '설마, 설마, 설마.....저 혼잡스러운 줄이 '코코 카피탄?' 했는데 그랬다. 티케팅 하기까지 대기 몇 번째인지 알려주는 시스템이라 전화번호를 등록하니, 허거걱....말도 안된다. 티케팅하는데, 대기번호가 무려 세 자리 수이다. 세자리수!!! 대기시간 60분 예상이라고 했지만 실로 90분을 기다렸다.....대기하느라 힘을 다 빼고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 관람할 시간 촉박하느니 다음을 기약하며 무겁게 발걸음을 돌렸다.
티케팅 하기까지 내 앞 대기자만 세자릿수 .....혹시나 그런 재앙이 또 있을까 싶어 대림미술관 안내 번호로 십수차례 전화를 걸어도 통화는 번번히 실패. 그래, 설마  또 세자릿수겠어? 가보자. 그래서 또 대림미술관을 찾았으나...오호, 통재라.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역시 대기 50분!!!!!!티케팅 하는 데만 대기 50분!!!!!!
되레 늦은 오후로 갈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듯 하다. 도대체 왜 코코 카피탄이 이처럼 주목받고 입소문 타고 있는걸까? 도대체 어떤 전시이길래, 이처럼 긴 대기시간을 감수하고도 사람들이 몰릴까? 더욱 궁금해진다.


대기 50분 시간 때우며 미술관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한적할 때 찾았다면 몇시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도록 아기자기한 공간인 듯 하다. 카페(티켓 소지자에게는 아메리카노 한정 1000원 할인)도 있고, 예쁜 정원과 잉어도 있다. 기다림에 지쳐 역으로 아트숍부터 방문. 관람의 끝은 미니어처화된 예술작품의 구매와 소비? 암튼 구매충동을 눌러본다. 



오랜 기다림 끝, 드디어 티켓 발권 받아 전시관으로 고고!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의 전시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Coco Capitán: Is It Tomorrow Yet?)>은 1992년생 작가의 사진을 위시해 페인팅, 핸드라이팅, 영상, 설치 등 총 150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공간은 2층을 시작으로 대림미술관의 3층과 4층까지 각각 독립된 세션으로 하여 구성하였다. 
2층에서는  패션 화보, 페인팅, 설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전시회에 실제 오기 전부터 노출이 많이 되었던 친숙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이 노란 구찌(Gucci) 티셔츠 사진은  예술가와 기업 간의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준다고 한다.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을 찍어내야하는 사업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굳이 그으려 하지 않는다. 납작해진 코카콜라 캔을 소비문화를 경멸하거나 배척하려는 의도에서만 활용한 것은 않닌 듯 하다. 


앤디 워홀 스타일을 패러디(?)한 작품도 있는데, 코코 카피탄은 자신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점만 빼고는 앤디워홀과 닮았다는 문구도 같이 전시한다.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작품처럼 코코 카피탄은 아디아스 운동화를 복제시켜 놓았다. 관람객 중에는 '나 나이키 신고 여기서 사진 찍어야해?'하면서 머쓱해하는 이도 있었는데, 브랜드 개별 네임이 중요한 것이 아닌 듯. 브랜드의 복제품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소비사회에 이미 최적화된 우리들. 


이처럼 많은 관람객의 행렬은 2층, 3층, 4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관람객은 모바일 투어를 하는 듯. 코코 카피탄의 작업 노트를 들으며 감상한다면 작품이 새롭게 다가올 듯 하다. 하지만, 일단 너무 많은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사색하며 작품과 인사하기란 어려운 노릇. 그냥 줄 행렬의 이동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될까 사진도 아껴 찍어가며.....


 전시회 관람 전에 미리 다녀간 이들의 리뷰를 여러편 읽었는데, DEATH가 화두로 자주 등장하는 3층 전시관에서 감동을 많이들 받은 듯 하다. '이야. 이 젊은 친구는 "살고 싶어, 죽기 싫어"라고 낙서만 하여도 작품이 되는구나.....멋지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할 시기의 젊음, 사라질 구두광과 흰색 바지의 날렵한 선......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사진은, 거의 'anorexic body'로 오인받을 만큼 앙상한 팔을 쭉 뻗어댄 'hold onto life'였다. 말괄량이 삐삐가 아침 풍욕하러 나온 사진처럼 느껴졌기에......



실로 전시관 3층에서는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타이틀 아래, 코코 카피탄의 창의적 혼자 놀기의 씬들이 펼쳐진다. 물론 관람객이건, 카메라 렌즈건 코코 카피탄은 자신을 관찰하는 눈을 의식하기에 진정한 '혼자 놀기'라 할 수는 없지만......역시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난다. 한국 사회의 1996년생 중, 이처럼 무슨 짓을 하고 놀거나 만들거나 말해도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해주는 예술계 스타가 누구던가? 비록 두발규제는 옛 뉴스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표준화'의 각종 잔소리세트 속에서 자라나는 친구들이 만약 코코 카피탄의 제멋대로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을 드러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하긴, 이런 질문 역시 판에 박힌 생각같다.  



4층 전시장은 이색적인 공간이다. 대형 핸드라이팅과 실물크기 싱크로나이즈 선수들 사진이 양쪽 벽을 마주하고 서있는 구조의 널찍한 전시공간이다. 

위 사진은 대림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빌어온 것이고, 실제 4층은 북적북적. 아래와 같다.



사실, 리뷰를 쓸 만큼 몰입해서 전시를 즐기지 못했다. 인산인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동선도 확보가 안되고 작품과의 교감이 이뤄질 시간도 부족했다. 왜 2018년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코코 카피탄 열풍이 불 수 있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처럼 많은 젊은이(2번 방문하여 총 2시간 이상 waiting하며 관찰한 결과, 관객 8~90%는 20대로 추정됨)가 코코 카피탄의 세계를 궁금해할까? 나는 이 젊은 예술가보다는, 이런 팬덤 현상이 유독 한국만의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왜 젊은이들이 코코 카피탄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아직 전시 기간에 여유가 있으니, 평일 오전에 혼자 다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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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게 마련"이라는 삶의 경험을 농축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나무와 풀"에서 덤으로 기운을 더 얻는 이도 있겠죠. 제가 그렇습니다. 아는 건 없어도, 제대로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관계를 맺지도 못하면서 나무를 보면 사시사철 참 좋습니다. 기운을 충전받기에 고마움을 늘 느낍니다. 1년에 365일 생일이라면 365일 수목원 나들이 생일선물을 해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조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나무 구경을 제대로 하러 작정하고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주목받는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으로요. 


다양한 경로로 입장권 할인 받거나, 무인발권 시스템으로 대기 없이 빠르게 티케팅할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발길가는 대로 돌아다닐 작정이므로 사실 지도를 미리 머릿속에 채워두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5시간 쯤 확보하고 올 경우라면, 지도를 꼼꼼 살피겠습니다만......


천리포수목원은 그 설립자, 민병갈님을 알고 보면 더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는 이 분은 미군이라는 신분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으셨다지요. 하지만 (만약 전생이 있다면) 마치 전생에 한국인이었듯 한국의 많은 부분이 친숙하고 못내 좋아서, 3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하여 귀화하셨습니다. 그 사이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풀과 나무로 채워나가셨지요. 수목원 내, 민병갈 전시관에는 누군지 참 재치 넘치게 이 분을 일컬어 "오타꾸의 궁극을 보여준 식물계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연세가 드실 수록, 되레 그 어려운 식물 학명도 척척 외우시고 수목에 대한 앎과 사랑이 깊어지셨기에.....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참아냈던 효자이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한국 땅의 나무와 풀들을 공부하시고 아끼셨다지요. 이 분의 생전 쓰셨던 집무실입니다. 한눈에 수목원의 주요 전경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암투병으로 몸이 쇠약해지셨을 때도 이 수목원으로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셨답니다. 


발길 가는 대로 탐색해서 이하 사진에 두서가 없습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예사로운 생명이 하나 없습니다. 만지고 싶어 자꾸 발길이 느려집니다.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는 유언대로 목련나무 아래 잠드셨다네요. 그래서인지 수목원에서 목련나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오호! 그런데, 이 가을에 목련 꽃을  발견합니다. 봄에 피는 꽃의 대명사 목련이 아니던가요?
이게 왠일? 하며 수목원을 나오다보니, 수목원 입구에 이런 mission이 있었네요. 의도치 않게 미션 완료한셈이네요. 인증 샷은 아래에! 


혼자 왔더라면, 점심 식사로는 생수만 챙기고 5시간이고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한그루 참 개성이 강한데 서로 어우러지네요. 원산지를 보면 민병갈 박사가 세계 각지에서16,000여종의 식물을 수집하고 키워왔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민병갈 박사의 집무실과 그 밖 풍경입니다. 심지어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탁트인 서해바다와 함께 낭새섬도 볼 수 있어요. 하루에 두번 길이 열려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지요. 



이미 9월 숙소 예약이 꽉차서 포기해야했던 수목원 내 한옥 별채. 그 중에서도 이 집이 단연 으뜸입니다. 메롱나무집. 봄에 오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히 힘을 얻어 왔으니, 이제 어떻게 이 힘을 흘려보낼까요. 보내고 새로 받고.....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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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라의 손(Tara's Great Hands)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 전시 일정은 행여 놓칠세라 일부러챙겨둔다. (기획자와 행사 관계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점점 아이 눈높이의 생기 넘치는 체험전에서 어른 눈높이의 세련된 갤러리풍으로 변질되가는 듯 하지만) 챙겨 찾는 보람을 느낀다. 


이번 "타라의 손 (Tara's Great Hands)는 평소 눈여겨 보았(지만 워낙 고가이기에 집안으로 들이지 못했던) 보림 출판사 그림책 원본을 볼 수 있을 듯 해서 찾았다. 더 솔직해지자면, "나무"를 보고 싶어서 찾았다. 이유는 탐색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늘 나무향에서 힘을 얻으면서도 초록이 무섭다. 인류 멸망을 다룬 어떤 SF 중에서도 식물이 인류의 정신을 조종해서 자멸하게 한다는 SF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믿는 이유겠지만. "타라의 손" 전시실을 들어서자 마자, 기대했던 대로 "나무"랑 만난다. 

전시 제목 "타라의 손"은 인도의 남쪽 첸나이 지역에 기반을 둔 출판사 ‘타라북스’에서 따왔을 듯. ‘타라 Tara’가 '나무'일거라 생각했는데, 인도 말로 ‘별’이라고 한다. 또한 짐작했던 대로 '타라의 손'은 한 점 한 점, 한 면 한 면, 사람의 애정과 끈기를 담아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이 출판사의 특징을 나타내는 듯 하다. 전시회 휘리릭 둘러보고 나가는 관객이 많던데, 5F 구석에 마련된 영상실에서는 타라북스의 최근 대표작인 "CREATION"의 제작과정 영상을 보여주는 데 꼭 감상, 추천한다. 팀웤이 단단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일이 실크스크린 작업에, 한장 한장 그림책 낱장을 모으고 실로 꿰어 책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18000여권의 제작을 위해 이 팀은 8개월 꼬박 일했다고 한다. 

보림 출판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나무들의 밤" 책을 좋아해서, 기대는 했지만 흐뭇하리만큼 잘 소개되어 있었다. 단 '옥의 티(?)'가 있다면, 기념품으로 파는 에코백의 가격이 무려 무려 80000원이었다는. 일본에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그 반값이었다면 업어 왔을 텐데 과도히 비싸다! 

어린이를 위한 실크스크린 및 파지 책, 체험 코너 


 인도 각 지역에서 전해지던 신화, 설화 등의 직접 전역에서 수집하고, 인도 토착 문화의 숨결을 살리려 노력해온 타라북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그림책을  만나게 해준 보림 출판사와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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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2018년 9월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 국립현대무용단의 "스텝업 프로젝트(Step-Up Project)" 공연을 보고 난 후, 기획팀장 곽아람의 글이 더 잘 이해된다. 아하, 지속가능한 현대무용 레퍼토리의 개발과 팬심 확보, 확대! 원대한 꿈을 꾸며 진행되는 프로젝트구나! 


현대무용은 왜 공연을 한 두 번만 해요?"라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았다. 답은 간단하다. 공연은 많고 관객은 적기 때문. 

결국 작품이 남는다.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스텝업'이 좋은 공연으로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인 만큼, 계속 그 역할을 해 낼 수 있도록 창작자들과 관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 "

  


연 이 원대한 꿈의 첫 스텝은 성공일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 렇 ! 다! 놀랍게도 또 매진이다. 9월 7일 공연의 좌석을 더 구할 수가 없을 지경!




총 110분, 3작품으로 구성된 9월 7일의 STEP-UP 공연을 보고나니, '매진일 수 밖에 없구나!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 조짐의 대박 공연! 8일 또 보러 오고 싶은데 표가 없다니 너무 아쉽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춤이 좋았다. 남들 춤 구경과 직접 추는 것 사이의 무게를 굳이 따지자면 몸무게가 늘어있는 지금에야 남들 춤 보는게 더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춤 추고 싶다. 춤 추는 이를 보기만 해도 설레고 사람의 움직임으로 활기 띤 공간에 있기만 해도 충전된다. 2017년부터 계속 국립현대무용단 덕분에 감사히 충전 받고 있다. 내가 참 춤을 좋아했던 사람임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함을 다시 확인시켜준 무용단이다. 특히 이번 STEP-UP 공연은 말로 전하기 아까울만큼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주류와 비주류, 끌고 가는 집단과 진입하려는 집단, 명성 확보한 작품과 새로 선보이는 작품. "STEP_UP" 공연은 소위 기득권 아닌 집단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 장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배효섭 안무의 "백지에 닿기까지," 이은경의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 정철인 안무의 "0g." 각기 매력 넘치는 작품인데, 셋을 한 무대에 버무려 올렸을 때 '신선함'의 시너지가 팡 터진다. 

총 110분, 3작품으로 구성된 9월 7일의 STEP-UP 공연을 보고나니, '매진일 수 밖에 없구나!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 조짐의 대박 공연! 8일 또 보러 오고 싶은데 표가 없다니 너무 아쉽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춤이 좋았다. 남들 춤 구경과 직접 추는 것 사이의 무게를 굳이 따지자면 몸무게가 늘어있는 지금에야 남들 춤 보는게 더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춤 추고 싶다. 춤 추는 이를 보기만 해도 설레고 사람의 움직임으로 활기 띤 공간에 있기만 해도 충전된다. 2017년부터 계속 국립현대무용단 덕분에 감사히 충전 받고 있다. 내가 참 춤을 좋아했던 사람임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함을 다시 확인시켜준 무용단이다. 특히 이번 STEP-UP 공연은 말로 전하기 아까울만큼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배효섭 안무의 "백지에 닿기까지" - 공연 팜플릿에서 


영리하게도 배효섭은 무대 안의 무대 라는 액자 장치를 올렸다. 무용수로서의 자신의 움직임 어휘의 근족보와 움직임 본능을 명상하듯 안으로 탐색하는 동시에, 몸의 물질성이 관객에게 노출되어야만 움직임의 의미를 갖는 직업무용수의 숙명을 그 무대장치로 표현한 듯 느꼈다. 
'도대체 저런 무대 의상은 누가 디자인하고 만들었을까?' SF 영화 '스타트렉'의 의상으로도 손색없을 듯 모던한 화이트 의상은 두 무용수의 단단하고도 유연한 몸에 흐르는 맥을 잘 드러내준다. 느꼈다. 배효섭 안무가는 정말 춤추기를 좋아하는 구나! 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나? 그의 안무에는, 그가 어린시절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딱지치기와 병행했을 의미 없는 반복 동작들도 등장하고, 동물흉내몸짓이라고 봐야하나 자유로운 탐색이 이어진다. 





이은경 안무의 "말, 같지 않은 말"



이은경의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은 베네통 광고의 통통 튀는 원색을 연상시킨다. 화장법에 비유자면, 과감하리 도발적인 색상을 주로 쓰지만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서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정교하게 계산된 세련미가 폴폴 풍기는 작품. 도발적인 듯 보이는 건 표면이고 안정적 전형성이 기저에 흐른다고 느꼈다.

안무가 이은경은 유학시절 자신의 춤에 대한 교수진의 평가서를 (영문 그대로 관객에게) 읽어 전하며, "참된 몸짓을 찾으라"는 교수진의 훈육, 타인의 시선, 자기검열의 엄격함이 실제 자신의 움직임과 몸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색한다. 흥미로운 점은 타인의 시선이 주로 "키 작다. 상체 움직임이 뻣뻣하다, 파트너와의 협업에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움직임에 생각이 많다" 등등 부정적인 면에 집중된다는 점. 흠집을 찾아내어 이를 보완하라는 훈계는 사실 무용계 교육현장에만 독특한 점은 아니리라......

*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을 위한 춤판에, 이토록 끼 넘치는 춤꾼들을 어찌 한자리에 모였나? 특히 목소리와 눈빛까지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신재희는 "끼로 똘똘 뭉친"이라는 수사어구 그 자체이다. 그녀가 관객들의 온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음을 나는 관객들 뒤통수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엔터테이너 춤꾼!  




정철인의 "자유낙하"


 2018년 스텝업 프로젝트에 응모된 총 68개의 작품 중, 엄정한 심사를 걸쳐 뽑힌 3명의 안무가 작품. 얼추 계산해도 20대 1의 경쟁율이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3작품 중에서도, 정철인의 "자유낙하"는 그 진지함과 몰입도면에서 탁월했다. 앞서 보인 이은경의 작품이 드러낸 화려한 세련미와 대극점에 있는 작품. 예술의 전당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춤판은 마치 4인 무용수, 그들만의 진지한 연습실에서의 움직임과 호흡을 옮겨다 놓은 듯 했다. 진지하고 순수해서, 춤이 끝났을 때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멈추지를 못했다. 

무용계에서 애초부터 성골이지 않았던 이들이,  되려 춤에의 그 순수한 열정과 멋부리지 않은 몸짓으로 모두를 사로잡은 작품. 가벼움의 시대에 이토록 진지한 작품이 묵직하게 잔상을 남긴다. 앞으로도 정철인의 작품이라면 달려가 보게 될 것 같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국내 무대에 1회성으로 소개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세계무대에서 선보이게 될된다."국립현대무용단"이 시도하는 "pick-up Stage"가 글로벌 예술교류와 한국현대무용의 위상알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에 팬들을 열렬한 환호와 박수, 그리고 전석매진 예매로 화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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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작하여, 올해로 4회를 맞는 "수원발레 축제"

2016년 우연히 관람하고, 2017년에도 일부러 수원을 찾았습니다. 수원시민이 아닌지라, 그 "일부러" 수원 나들이를 하기까지 발레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꿈지럭 하기 꽤 귀찮았을텐데요. 일단, 가면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늦은 오후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8시 공연 시작 직전에 자알 도착했답니다. 


발레 협동조합 (http://www.balletstp.kr/)에 속한 6개의 발레단이 이번 축제를 이끄는데요, 제가 방문했던 25일 토요일 프로그램을 살펴볼까요?

먼저 유니버설 발레단이 "해적 파드되"로 인사합니다. 발레협동조합 소속 발레단 단장이 타 발레단의 출연작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아, 그런데 대략 난감합니다. 프로페셔널 정신이 과도하게 투철했던 걸까요? 촬영기사 한 분이 아주 당당하게, 머리 높이 하나 낮추지 않고 공연 중에 무대 바로 앞으로 걸어옵니다. 매 우 당 당 히! 
그리고는 무대 좌측, 난감한 높이에 장비를 고정시킨 후에 아주 위풍당당 서계십니다. 설마 잠깐 있다 가는 거겠지? 아무리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다하여도 설마 계속 촬영할까? 아무리 무료공연이라 할지라도 배려는 있겠지?.......아, 그런데 무척 난감하게도, 저 촬영기사님의 투철한 직업 정신 덕분에 공연 내내 저 분의 아우라에 쓰러질뻔했습니다. 무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8 수원발레축제, 올해에도 이원국 선생님의 춤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원국 선생님이 30,40대보다 지금 더 멋지게 보입니다. 어찌나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후학양성에 애를 많이 써주시는지요. 단연 가장 큰 박수가 터져나옵니다. 핸드폰 배터리만 방전이 되지 않았던들, 이 멋진 광경을 많이 남겨 전했을텐데요.
내년 2019년에는 수원발레축제에 해외 발레단도 초청되어 오나봅니다. 이미 물밑작업에 들어가 큰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하니, 벌써부터 2019년 무대가 기대됩니다. 그 때까지, 발레STP협동조합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며. 멋진 행사를 계속 마련해주는 수원시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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